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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동북아 정세와 북한 핵, 미사일 문제
[논단] 한반도 비핵화 과정과 평화협정을 동시에 협상해야 평화가 온다
 
이재봉

2017년 동북아 정세가 얽히고설키며 위급하게 전개되고 있다. 남한은 북한의 도발을 막는다며 미국을 끌어들여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해왔다. 북한은 미국을 겨냥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일본 상공으로 미사일을 시험발사해왔다.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빌미로 일본의 군비증강을 부추기며 중국과 러시아의 미사일기지까지 탐지할 수 있는 싸드 (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망)를 남한에 배치했다. 일본 역시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며 중국에 맞서기 위해 평화헌법을 고치고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나아가려 한다. 중국은 미국의 접근을 반대하고 싸드 배치에 반발하며 이를 막기 위해 남한에 경제 보복을 가해왔다. 러시아 역시 미국에 맞서 중국과 손잡고 남한 배치 싸드를 반대하며 북한에 접근해왔다.

 

이렇게 물고 물리는 관계의 핵심엔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2010년대 동북아의 긴장과 갈등은 점진적으로 쇠퇴하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 급속하게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정책 및 전략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중관계의 언저리에서 북미관계가 험악해지고 남북관계가 꼬이며 한중관계가 막히고 있다.

 

이 가운데 북미관계가 몹시 위태롭고 급박하게 펼쳐진다. 20177월부터 10월 현재까지 한반도에 곧 전쟁이 터질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미국과 북한의 미치광이 전략 (madman strategy)’ 또는 벼랑 끝 전술 (brinkmanship)’이 맞부딪치고 있을 뿐이다. 미치광이 전략은 상대에게 미치광이처럼 보이면서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공포를 일으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협상술이요, 벼랑끝 전술은 상대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감으로써 양보를 받아내려는 협상술이다. 미국이든 북한이든 앞으로 전개될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거나 상대의 양보를 받아내려는 술책인 것이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정은 위원장이 위험하고 난폭해 보이지만 결코 미치광이가 아니고 유능한 협상가라고 생각한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과 김정은의 벼랑 끝 전술이 대결하는 겁쟁이 경기 (chicken game)’가 개인 차원에서 벌어진다면 둘 다 물러서지 않아 서로 죽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벌어진다면 북한보다 미국이 먼저 물러서게 될 것이다.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침략이나 폭격하더라도 북한은 조금이나마 보복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고 있다. 설사 맞부딪치면 가진 게 훨씬 많은 미국이 잃을 것도 많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결코 전쟁을 시작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속된 말로 배짱이나 깡다구가 세고 맷집이 강하기 때문에 겁쟁이가 되지 않으리라는 뜻이다. 실제로 현대사에서 북한처럼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 수치와 모욕을 안겨준 나라는 없다.

 

겁쟁이 경기에서 북한이 이긴다고 미국이 지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체면을 조금 구기더라도 유능한 협상가로서 몇 가지 실익을 이미 얻었거나 앞으로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북한과의 군사적 위기 속에서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때문에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되던 여론을 잠재울 수 있었다. 안에서의 위기나 갈등을 바깥으로부터의 위협이나 충돌로 잠재우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속성이다.

 

둘째, 2018년 국방예산을 대폭 증액시킬 수 있었다. 미국의 2017년 국방예산이 6200억 달러였는데, 9월의 의회 예산심의에서 101일부터 시작되는 2018 회계연도 국방예산이 무려 13%나 증액된 7000억 달러로 통과된 것이다. 참고로 미국 의회는 대개 3-4월과 8-9월에 야산을 심의한다.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으로 한반도에 위기가 증폭되는 시기와 겹친다.

 

셋째, 한반도에서 군사적 위기가 조성되면 미국은 남한과 일본에 비싼 첨단무기를 쉽게 팔 수 있다. 남한과 일본 모두 이미 미국 무기 구매 의사를 밝히고 있다.

 

넷째, 북한의 도발을 빌미로 중국을 더 쉽게 견제하고 봉쇄할 수 있다. 주한미군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고고도미사일방어망 (THAAD)을 남한에 추가 배치했다. 일본에 이어 남한도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MD)에 편입된 것이다. 일본 역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핑계로 평화헌법을 수정하고 정상국가로 변신하기 쉽게 되었다. 미국이 2000년대 중반부터 추구해온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중국 정책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미국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나자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국가로 간주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지위를 지키기 위해 중국 위협론을 퍼뜨리며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한 핵심 정책이 일본과의 군사동맹 강화다. 1996미일 안보공동선언을 내놓고, 1997년엔 일본 자위대의 무력행사 범위를 확장하는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발표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의 재무장을 막고 있는 평화헌법을 수정하여 정상국가가 되도록 촉구하면서,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도록 지원해왔다. 2013년엔 일본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동중국해 센카쿠/댜오위다오 (釣魚島)를 일본의 관할지역으로 인정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미군의 자동개입을 확인하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했다. 2015년엔 자위대가 일본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다시 개정해 공표했다. 나아가 일본과의 군사동맹 강화를 넘어 미국+일본+한국의 삼각 군사공조 강화까지 추진하며 일본과 한국이 손잡도록 2015한일 위안부 협상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이른바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북한은 늦어도 1990년대 초부터 핵무력을 개발해왔다. 2013년엔 헌법에까지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이라고 명시했다. 북한은 2013년부터 군사건설과 경제건설을 함께 발전시키겠다는 병진로선 (竝進路線)’을 채택해오고 있다. 201710월 조선로동당 창건기념일을 앞두고 열린 당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철저하게 관철할 것을 재확인했다. 앞으로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북한 핵무기를 무시하며 방관한다. 북한 핵무기는 많아야 수십 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SIPRI)10-20개로 추정하고, 미국 중앙정보국 (CIA)30-40개까지 부풀려 추정한다. 미국은 계속 줄여왔어도 7000개 이상 가지고 있으니 기껏해야 1/200 수준의 북한 핵무기를 신경쓸 필요 없다. 북한이 자멸을 원치 않는 이상 미국을 먼저 공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 핵무기를 인정하면 핵 물질과 기술을 가진 일본이 기만있을 리 없고, 남한이나 대만도 핵무기를 개발하려 할 것이다. 미국 군사력에 의존적인 일본, 남한, 대만 등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미국의 군사적 통제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추구할 수 있는데,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둘째, 북한을 봉쇄하고 제재하며 붕괴로 이끈다. 지금까지 유엔을 통하거나 일본과 남한을 앞세워 제재해왔지만, 중국 때문에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게 문제다. 미국을 비롯한 온 세계가 북한을 제재하더라도 중국이 이에 적극 동참하지 않으면, 북한이 크게 잘 살지는 못해도 그럭저럭 체제를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미국은 19537월 휴전협정 이후 줄곧 북한을 제재해왔다. 북한이 2006년부터 2017년까지 핵시험을 여섯 번 하고 다양한 미사일 시험발사를 수십 번 하는 동안, 미국은 유엔을 통해 10여 차례 최대의 압박과 최고의 제재를 가해왔다. 그런데도 북한이 붕괴되기는커녕 연평균 3-4%의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모양이다.

 

참고로 미국과 남한은 중국이 북한에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해주기 바라지만 중국은 소극적으로 응하거나 반대할 수밖에 없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북핵문제북한과 미국 사이의 모순이라는 인식이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폭격이나 전쟁 위협이 없었다면 북핵문제는 이미 해결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힘쓰는 것은 미국의 위협 때문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을 통해 북핵문제를 풀어야지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제재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미 양국의 동시 행동을 강조한다. 이른바 쌍중단 (双暂停)’쌍궤병행 (双軌竝行)’이다. 미국과 남한의 연합군사훈련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동시에 중단하고, 한반도 비핵화 과정과 평화협정을 동시에 협상하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 자신의 안보를 위해서다. 중국은 북한의 지도자들이 맘에 들지 않고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이 못마땅해도 자신의 안보를 위해 북한에 대해 강력하게 제재하기 곤란하다. 만에 하나 중국의 원유공급 중단을 포함한 경제제재로 북한이 무너질 위기에 놓이게 되면 중국으로 유입될 난민으로 중국도 커다란 혼란을 겪을 것이다. 나아가 북한이 붕괴되면 북중관계를 상징하는 순망치한 (脣亡齒寒)’이라는 말이 가리키듯 이 ()를 지켜줄 입술 ()이 없어지는 것처럼 중국의 안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태평양 건너 10,000나 떨어져있는 남한의 존폐가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보다 압록강-백두산-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1,500km를 접하고 있는 북한의 존폐가 중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크지 않겠는가.

 

셋째,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하거나 침공한다. 미국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200번 정도 다른 나라들을 폭격하거나 침략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전쟁은 쉽지 않다. 북한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등과 달리 남한과 일본의 미군기지뿐만 아니라 미국령 괌과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보복 능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등 북한 주변 강대국들까지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넷째,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북한이 요구하고 제안해온대로 불가침조약이나 종전협정 또는 평화협정을 맺거나 국교정상화를 이루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하지만 쉽지 않은 게 문제다.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506월 시작된 한국전쟁이 201710월까지 끝나지 않고, 19537월 맺은 정전/휴전협정으로 멈추거나 쉬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해왔지만 미국은 한사코 거부해왔다.

 

미국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부터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주한미군을 전략적 유연성을 지닌 신속 기동군으로 전환해왔다. 주한미군의 역할은 본디 1953년 조인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는 것이었지만, 1990년대부터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주한미군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고, 군항을 제주에 건설하며, 싸드를 성주에 배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터에 미국이 북한과 불가침조약이나 종전/평화협정을 맺으면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할 법적 명분이 사라지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구멍이 뚫리게 된다. 거꾸로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려면 주한미군이 있어야 하고, 주한미군을 유지하려면 북한을 악마로 남겨두어야 하며, 북한을 악마로 유지하려면 전쟁을 끝내지 않고 정전/휴전협정을 고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이 주도적으로 또는 적극적으로 북핵 문제를 풀기 어렵다. 무시와 방관, 봉쇄와 제재, 폭격과 전쟁, 협상과 타협 등 어느 하나도 선택하기 쉽지 않다. 북핵 문제가 1990년대 초부터 20여 년 넘게 해결되지 못하고 머지않아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이유다.

 

그러기에 남한의 역할이 필요하다. 한반도에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이 맺어지도록 적극적으로 나서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도록 주선하는 것이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20177월 독일에서의 연설을 통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겠다며 평화협정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북한이 20179월 대륙간탄도미사일 장착용 수소폭탄을 시험하기 전이었지만, 남한 대통령의 평화협정 언급 자체가 획기적이다. 그러나 구체적 과정은 말하지 않고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완전한 비핵화가 북한만의 핵무기 완전 폐기를 뜻한다면 비현실적이라 생각한다. 북한은 조선반도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며 주한미군 철수 없이는 핵무기를 폐기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과정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제안한다.

 

1단계로, 미국은 남한과의 합동군사훈련을 비롯해 북한에 대한 폭격 위협을 멈추고,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춘다. 북한이 제안했고 중국과 러시아도 제안했다. 미국이 거부하는 게 문제다.

 

여기서 남한의 주도적 역할이 꼭 필요하고, 이를 위해 북한에 대해 역지사지 자세를 가지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은 각종 핵무기와 미사일로 북한을 위협해왔다. 남한에 핵우산을 제공하며 핵무기를 실은 다양한 함정을 한반도 주변 해역에 배치해놓았다. 1993-94년엔 북한을 폭격할 뻔했다. 2000년대엔 핵무기로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2016년부터는 김정은의 목을 베겠다는 이른바 참수작전을 포함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남한과 합동으로 실시해왔다. 이런 터에 북한이 미국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북한은 주한미군 같은 외국군대를 두고 있지 않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핵우산도 받지 않고 있다. 미국은 남한과 해마다 수십 차례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벌이지만,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끌어들여 단 한 번도 합동군사훈련을 갖지 않는다. 북한 국방비는 많이 잡아도 남한의 1/10을 넘지 못하고 미국의 1/100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래식 군비경쟁을 도저히 할 수 없기에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게 하려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위협을 먼저 중단하도록 하는 게 현실적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어떠한 정책을 펴든 지지하며 추종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트럼프가 대북정책을 바꾸도록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김대중 대통령이 2002년 부쉬 대통령을 설득했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호전적 부쉬 대통령이 들어선 2001년에도 북미 관계가 몹시 험악해졌다. 부쉬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삼으며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그가 워싱턴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도 무시하고 냉대하면서 한미관계 역시 서먹해졌다. 북한의 경의선 연결공사가 중단되면서 남북관계도 꼬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2002년까지 이 모든 상황을 되돌려놓았다. 부쉬가 2002년 서울을 방문하자 그를 도라산으로 안내해 남북을 잇는 철도공사 현장을 둘러보게 하며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고 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러시아를 악의 제국으로 지칭했지만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대화를 했고 데탕트를 추진했다. 결국 공산체제의 변화와 냉정종식을 이룩했다. 닉슨 대통령은 전범자라고 규탄하면서도 중국을 방문하여 관계개선과 개혁개방을 유도했다. 친구와의 대화는 쉽고 싫은 사람과의 대화는 어렵지만, 국가를 위해 필요에 의해 대화할 때는 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전쟁 때 공산당하고도 대화를 했다.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북한의 살길을 열어주면 북한은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틀림없이 포기할 것이다.....”

 

결국 부쉬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으며 대화를 통해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겠다고도 했다. 북한을 압박하던 호전적 미국 대통령을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설득해 결국 대화와 협상으로 북핵문제를 풀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역사와 정치 그리고 평화와 통일에 대한 깊은 지식과 지혜 그리고 굳센 신념과 철학을 지녔기에 가능했다.

 

2단계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북한은 핵무력을 보유한 상태에서 우선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는다.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주한미군이 철수될 것을 우려하는 미국과 주한미군 철수에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가질 남한 보수층을 배려하는 과도기 조치다. 19506월부터 19537월까지 3년간 싸운 뒤 60여년이나 지나도록 정전이나 휴전이라는 어정쩡하고 불안한 상태를 지속해오고 있는 비정상으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3단계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북한은 핵무력을 폐기한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군사력을 비슷하게 감축한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를 이루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미동맹이 약해지거나 폐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이를 미리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에 관해 다시 생각해본다. 남한은 안보를 위해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며 주한미군에 의존해왔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남한 대외정책의 목표가 되어버린 듯한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이 북한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정책을 지속하며 평화협정을 거부하는데 한미동맹에 매달리면 남북관계는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 정책을 펴는데 한미동맹을 강화하면 한중관계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이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와 통일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남한의 경제성장과 번영에 방해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2009년부터 한중교역량은 한미교역량의 두 배를 넘는 가운데 무역으로 먹고사는 남한이 중국으로부터 얻는 무역흑자는 전체 무역흑자의 90% 안팎이기 때문이다.

 

남한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를 위해 미국에 대해서는 언젠가 헤어질 수 있는 동맹이라는 자주적 인식과 북한에 대해서는 앞으로 반드시 껴안아야 할 동포라는 민족적 시각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이와 아울러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경쟁에서는 국익을 위한 균형외교를 펼치는 게 바람직하다. 1950년대 중반부터 소련과 중국이 갈등과 분쟁을 벌이기 시작할 때 북한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국익을 추구하며 펼쳤던 등거리 외교도 배울 만하고,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시도했던 동북아 균형자정책도 다시 검토해볼 만하다.

 

<김대중 민주평화아카데미 국제학술회의> 2017/10/26, 5.18민주화운동기록관.

 

* 글쓴이는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한중관계연구원 한중정치외교연구소장, <남이랑북이랑>(http://pbpm.hihome.com)의 편집인입니다.

 


기사입력: 2017/11/29 [23:31]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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