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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향신료 들어가지 않은 연길, '현지식'은 꿀맛
[기행1] 연변 민족역사기행 출국과 연길의 한글문화 그리고 현지식
 
김철관   기사입력  2017/07/25 [08:11]
▲ 연길 공항     ©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중국 길림성 연변지역의 우리 민족역사기행을 다녀왔다. 민족의 얼과 항일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먼저 연길의 조선 문화 탐방과 항일민족교육의 상징인 대성학교를 둘러봤고, 일송정과 해란강도 멀리서나마 관찰했다. 항일 운동으로 옥사한 윤동주 시인의 생가, 지근거리에 있는 명동교회당과 명동력사전시관을 기행했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생가와 가까이에 있는 선바위도 봤다. 선바위는 안중근 의사 등이 독립운동을 위해 훈련을 한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우리민족의 명산인 백두산 천지와 금강대 협곡 그리고 고원에서 잔잔한 야생초가 차라고 있는 고산화원을 봤고, 천지 등정 후 가진 공공노동자들의 남북화해 성명발표와 민족의 얼이 깃든 장백폭포와 녹호단을 둘러봤다.

 

특히 조선(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인 도문시와 두만강에서 민족의 발자취를 느꼈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염원했다. 중국 연변 민족역사기행을 아래와 같이 주제별 나눠 여섯 번에 걸쳐 연재를 한다.

 

1, 연변 민족역사기행 출국과 연길의 한글문화 그리고 현지식

2, 조선민족학교- 룡정의 대성중학교

3, 윤동주 생가와 명동교회당(명동력사전시관)

4, 백두산 천지(서파)-금강대 협곡-고산화원

5, 남북화해 성명-백두산 장백폭포-녹호단

6, 도문과 ‘조선-중국’ 국경지대 두만강

 

1, 연변 민족역사기행 출국과 연길의 한글문화 그리고 현지식

 

공공부문 노동자 일행 31명과 함께 한반도 평화와 화해, 동북아 평화를 염원하면서 백두산(장백산), 윤동주 생가, 대성중학교, 두만강 국경지대(도문), 일송정, 해란강 등 중국 길림성 연변지역 3박 4일간(지난 7월 11일부터 14일까지)의 민족역사기행을 다녀왔다.

 

지난 11일 오전 9시 50분 중국 연길로 향하는 대한항공에 탑승했다. 솔직히 기행 일정을 며칠 앞두고 주최 측에다 개인 사정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 했었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가족에게 우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공항 내부     ©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일정을 조정해 주최 측에 가겠다는 통보를 했다. 11일 오전 6시 집인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에서 콜택시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정각 오전 7시, 약속 장소로 가니 일행들은 짐을 보내기 위한 수속 절차를 진행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국내 여행사 가이드에게 신고를 하고 미리 줬던 여권을 받아 일행과 함께 짐을 부칠 수 있었다.

 

모든 출국 수속을 끝낸 후 이곳저곳 면세점을 둘러봤다. 특별히 살 물건이 없어 동행한 일행과 한가한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정각 9시 30분 보팅 타임이 되어 인천공항 20번 게이트에서 수속을 밞고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시간 정도 비행을 했을까. 기내식이 나왔다. 먹으면서 비행기 밖을 보니 뭉게구름이 장관을 이뤘다. 식사를 마치고 옆에 앉아 있던 일행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금세 연길공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 때 시계를 보니 중국시간 11시 15분(한국시각 12시 15분)이었다. 연길공항에 착륙하자, 눈길을 끈 곳이 있었다. 연길 공항 표지판이었다. 금색으로 돼 있었고 먼저 한글로 ‘연길’이라고 적었고 바로 옆에 한자로 ‘延吉’이라고 돼 있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대기실로 향했다. 연변조선자치주 행정수도가 ‘연길’이기에 한글로 쓴 간판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식당 등 모든 간판이 대부분 한글이 먼저 나오고 한자를 병기했다. 물론 한글을 위에 쓰고 한자를 밑에 쓴 간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어쨌든 한글이 먼저였고, 상하로 볼 때는 위에 한글을 쓰고 아래에 한자를 병기한 것이다.

 

반가운 사람이 한 분 나와 있었다. 중국 연길 가이드 신명철(37)씨가 활짝 웃는 모습으로 ‘공공노동자 민족역사기행’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일행을 맞았다. 공항 내는 익숙한 롯데리아, 엔젤 인 너스 커피숍이 있었고, 한글과 한자로 병기한 간판들이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다. 공항에서 잠시 걸어 나오지 2층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고, 1층 짐칸에 짐을 싣고 2층 좌석으로 올라가 앉았다.

 

시차는 1시간 시간이었고, 서울보다 한 시간 뒤였다. 정확히 오전 11시 30분경 연길공항에서 나왔는데, 서울로 따지면 오후 12시 30분인 셈이었다. 곧바로 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10분 거리였고, 연길 시내에 있는 ‘만원춘’ 중국식당 회전 식탁에 앉았다. 이곳에 도착해 첫 현지식이라서 기대가 컸다.

 

▲ 관우상     ©
▲ 현지식     ©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먹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중국 고유의 향신료가 들어있지 않는 현지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연변에서 생산한 빙천 맥주도 한잔했다. 몇 시간 전 기내식을 먹고 왔는데도 왠지 입맛이 땡겼다.

 

식당 내 설치한 관우상 앞은 향불이며 중국 돈과 과일이 수북이 놓여 있었다. 길림성 연변주 8개 도시 중 연길은 길림성에서 행정장관을 파견한 행정도시었다. 연길에서 백두산 서파까지는 약 200여 km였고, 대충 서울에서 대전간 거리었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에다 산길이고 도로 보수작업 등으로 4~5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현지 가이드가 귀띔했다.

 

지난 201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60주년을 맞아 이전에 없었던 공항 주변에 많은 건물이 생겼다. 연길의 하남지역은 주택단지이고 하북지역은 상업단지이다. 이곳에는 우리민족을 상징한 진달래꽃의 의미로 진달래꽃 광장도 있다.

 

연길시는 6층 건물이 많은데 7층이 넘으면 법적으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하기 때문이다. 연길에는 역사적 의미가 있고, 항일투사를 투옥시킨 감옥이었던 곳을 공원으로 만들어 자국민들에게 휴식처로 제공하고 있다. 바로 연길공원이었다.

 

▲ 연길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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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25 [08:1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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