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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판도라>가 무시한 지역말의 중요성
[정문순 칼럼] 영화에서 푸대접받는 사투리, 들러리는 그만!
 
정문순

경상도 말을 쓰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영화 감상은 한 쪽으로 밀쳐두고 그 영화의 제작 여건을 먼저 헤아려 보게 된다. 제작비가 모자랐을까? 시간이 부족했을까?
 
경상도 말을 쓰는 배역이 필요한 영화라면 제작자나 감독이 경상도 출신 배우를 섭외하거나 출연 배우들을 어떻게든 훈련시켜서라도 경상도 억양이 입에 붙게 해야 한다고 나는 본다. 서울 출신 연기자들이 제대로 연습도 하지 않고 엉터리로 구사하는 사투리는 영화로 몰입하는 길을 차단할 뿐이어서 대사도 연기도 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본 경상도 영화중 그렇지 않은 영화가 거의 없었다.

 

▲ 영화 <판도라>     © (출처 판도라 홈페이지 스틸컷)


 
배우들이 영화를 찍으면서 생소한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몸에 익혔다고 인터뷰하는 언론 보도를 가끔또는 드물게접할 수 있다. 이는 곧 영화 출연을 통해 지역말을 익히는 연기자들이 흔하지 않음을 입증해 준다. 그렇다고 고작 사투리 갖고 시비를 거는 건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의 과민반응일 뿐일까? 물론 영화에서 사투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 배우들의 어색한 억양을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 지역말은 해당 영화에서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니다. 아니, 매우 크다.
 
특수학교의 장애 학생 인권 착취를 다룸으로써 큰 파장을 일으켰던 소설이 원작인 영화 <도가니>의 배경은 호남이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가상의 도시 무진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작품의 모티브가 된 사건의 실제 배경은 광주였다. 물론 반드시 광주를 연상할 필요는 없으며 배우들이 꼭 전라도 토박이말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은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멀찍이 떨어진 지역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영화 속 등장인물들 중 사투리를 구사하는 이는 경찰서 형사를 빼고는 거의 없다. 외부에서 유입된 이주민으로 설정된 주인공이야 서울말을 쓰는 게 자연스럽다고 하더라도 지역 토박이들도 하나같이 매끈한 서울말을 구사하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영화에서 사투리의 사용은 꼭 필요했다.
 
교감을 필두로 교사들이 자신들이 돌보아야 할 장애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는 등 오랫동안 악마 같은 범죄의 아성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학교재단이 교육청이나 경찰 등 지역사회의 토호세력과 끈끈한 연대를 다져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학교재단 이사장 아내의 동창 친구가 지역 교육청장의 아내라서 학교에 대한 교육청 감사도 하나마나하게 만들 수 있는 등 힘 있는 가해자를 감싸주고 끼리끼리 봐주는 건 수도권보다 연고 문화가 막강한 지방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가해자에게 팔이 안으로 굽을 수 있게 하는 지역사회 구성원끼리의 견고한 커넥션이나 카르텔은 한 곳에서 나고 자란 지역 토박이들이 오랜 세월 동안 서로 교류를 다져놓았기에 가능했으며, 외부로부터 인구의 유입이 거의 없는 정체된 지역사회일수록 주민들이 압도적으로 쓰는 말은 토박이 언어다.
 
외부인이 들어오지 않는 닫힌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특유의 지역 언어는 자기들끼리의 동질성이나 폐쇄적 정서를 강하게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 연대 의식 속에서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라면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범죄 비호도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입에서 사투리가 사라지거나 어설프게 구사될 경우 영화는 중요한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에서 착상한 영화 <변호인>의 경우 배경은 부산이다. 발 앞까지 넘실거리는 바닷물 등 척박하고 강렬한 부산의 자연 환경은 주민들의 억세고 박력 있는 기질과 맞닿아 있다. 총칼로 막 집권한 신군부 정권에게 이념 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잡혀간 대학생을 돕다가는 자신도 똑같은 신세가 될 수 있음을 알았음에도 기꺼이 변호인으로 나서는 노무현의 정의로움은 부산 사나이의 뚝심과 저돌성을 상징한다.
 
정제되지 않는 야성미를 가진 노무현의 입에서 부산 사투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앞뒤를 재지 않고 뛰어드는 노무현의 정의로움과, 부산 말이 지닌 특유의 억양은 투박하고 거칠다는 점에서 한 몸이다. 다행히도 노무현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는 부산 출신이기에 부산 말이 입에 쩍쩍 붙는다. 그의 연기가 극찬을 받은 데는 능숙한 부산 사투리의 덕을 본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노무현 주변 인물들은 어색한 사투리 발성이나 서울말을 벗어나지 못했다.
 
근작 <판도라>의 경우도 배경은 핵발전소가 밀집한 영남권이다. 이 영화에서도 경상도 지역말은 영화의 지역적 배경을 알려주는 데서만 끝나지 않는다. 원자로 현장에서 일하는 재혁은 방사능 유출 사고로 엄청난 피폭을 당했음에도 일터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재혁이 처음부터 직업의식이 투철한 사람도 아니었다.
 
원전에서 피폭 사고로 희생된 형의 피 같은보상금으로 어설프게 자영업에 뛰어들다 고스란히 말아먹고 형을 앗아간 곳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재혁에게, 직장은 도무지 정을 붙일 수 없는 곳이었다. 홀로 아들을 키우는 형수 정혜에게 촌구석에서 조카를 키울 거냐고 따지던 재혁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도 손톱만큼의 애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직장이든 지역이든 아무런 귀속 의식을 갖고 있지 못하던 그가 원전 사고를 통해 일약 직업적 사명감이 빼어난 사람처럼 탈바꿈한 계기는 가족이었다. 원전을 지켜야 한다는 그의 사명감은 내 가족을 지켜야 한다라는 발언에서 나타난다. 이 때의 가족은 혈연관계를 지닌 협소한 의미의 핏줄에 그치지 않는다.


재혁이 원전 폭발을 막기 위해 원자로를 폭파하는 죽음의 길을 자처하기 직전 생방송으로 그의 유언이 전국에 중계된 신파적인 장면에서, 재혁은 형수에게 조카를 잘 키워달라고 부탁한다. 조카가 죽은 형이나 형수의 자식이기 이전에 형 대신 자신이 책임지고 거두어야 할 핏줄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재혁의 사고방식은 전근대적이자 가부장적이다.
 
재혁의 봉건적인 가족관은 한 다리 건너 3촌 관계인 조카도 자기 자식이고, 나아가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료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도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가족이며, 더 나아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폭에 무방비로 노출될 처지인 지역사회의 주민들도 자신의 가족 범위에 들게 된다.
 
자신의 목숨과 안전을 지켜줘야 할 가장 큰 단위의 가정인 국가(國家)를 잃고 정신없이 몸을 피해야 하는 원전 인근의 지역 주민들도 그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보호해야 할 가족일 수 있다는 뜻이다. 재혁처럼 기꺼이 죽음을 마다지 않은 길을 선택한 그의 동료들도 재혁과 똑같은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재혁의 고장처럼, 지역 주민끼리 넓은 의미의 가족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깊은 유대를 맺고 있는 곳에서는 지역 언어가 막중한 상징성을 드러낸다. 우리가 남이가가 표상하는 지방 특유의 견고한 유대 의식과 폐쇄성을 확인해 주는 것 중의 하나는 공통 언어로서의 사투리이다. 그런 점에서 <판도라>의 인물들은 능숙한 사투리를 쓰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판도라> 역시 지역 말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영화임을 드러냈다.
 
영화 <곡성>이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면 공전의 히트를 친 유행어를 낳을 수 없었을 것이다. “뭣이 중헌디?뭐가 중한데?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그런데도 배우들이 어설프게 대충 흉내 내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푸대접 받고 있는 지역말의 위상은 서울과 지방의 격차 또는 지역차별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등 대중문화가 특정 지역을 작품의 배경으로는 곧잘 끌어다 쓰면서 정작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지역 소외를 더욱 절감하게 하는 현실이 아닐까.
 
iCOOP소비자활동연합회 시민기자단 블로그에 기고한 글을 손본 것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7/01/09 [11:21]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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