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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24년, 삐라만 만든 줄 알았는데 시인이었다
김명환산문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 '삐라를 만드는 시인'의 산문집
 
이한주

내가 철도에 들어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권유였다. 결혼을 앞둔 그는 돈을 벌어야 했기에 전태일문학상실무 일을 내게 맡기고 자갈밭으로 도망갔다. 나 역시 결혼을 하고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도망쳐야 할 때 그는 선뜻 철도를 권했다. 오류동역 수송원으로 갓 발령받은 그는, 이런 곳이 없다고 했다. 이틀 중에 하루만 일 하고, 또 일하는 하루 중에 반만 일하면 된다고 했다. 세상에 그런 직장이 어디 있을까 싶어 한달 만에 시험을 보고 발령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철도 안 들어오면 안 되겠냐?”. 막상 일하다 보니 휴일도 없이 돌아가는 24시간 맞교대는 이틀 중 한나절만 일하면 되는 환상적인 일터가 아니라고 했다. 한 달에도 몇 명씩 죽어나가는 위험하고 더러운, 후배한테 권할 만한 곳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난 활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그는 나를 철도에 들어오게 할 수는 있었지만, 철도에 들어오는 걸 막지는 못했다. 
 

▲ 철도노동자 24년, “삐라를 만드는 시인”의 산문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     © 갈무리

1년 늦게 서울역 수송원으로 입사한 내가 그에 대해서 처음 전해들은 말은, “눈부시다!”였다. 어용노조에 대항해서 민주노조운동을 하던 활동가에게서 들은 말이었는데, “자신이 돌이라면 그는 황금이라고 했다. 처음, 나이 먹은 신입이 찾아와서 활동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런 전례가 없었기에 다들 프락치가 아닌지 의심했다고 한다. 그런 의심들을 불식시키고 활동가들에게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천상 시인일 수밖에 없는 그의 선한 눈망울과 탁월한 선전능력 때문이었으리라.
 
감히 단언하건대, 철도의 선전물은 그가 만든 공투본 기관지 바꿔야 산다전과 후로 나뉠 것이다. 그가 만든 선전물은 달랐다. 조합원의 피 같은 돈으로 만드는 선전물에 감히 원고료가 꼬박꼬박 지급되었다. 그는 노동력의 대가인 임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운동을 하면서, 노동력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굵은 고딕체의 주장과 격문보다 여백과 하늘하늘한 삽화가 더 크게 자리 잡았다. 심지어 무협지까지 등장했다. 무엇보다 시인의 감성과 통찰력이 선전물의 행간을 감싸고 있었다. 비로소 조합원들에게 읽히는 노보가 만들어졌다.
 
그는 선전물을 삐라라고 했다. 스스로를 삐라쟁이라고 했다. 자칭 “3류 시인의 몇 안 되는 애독자로서, 나는 그가 그런 삐라쟁인 게 싫었다. 천상 시인인 그의 감성이 삐라처럼 한번 쓰(여지)고 버려질까 봐 나는 두려웠다. 그의 빛나는 시어들이 원고 독촉 전화와 발행인들과의 미묘한 신경전으로 거칠어지고 무뎌질까 봐 더 신경 쓰였다.
 
아직도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는 몇 번의 퇴고를 마치고 시에 마침표를 찍으면 마음을 가다듬고 만년필로 원고지에 정서를 한다고 했다. 한동안 가슴과 머리에 자리 잡은 시를 정중히 떠나보내는 그만의 예식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이제 철도를 마무리해야 할 때가 왔다.”고 했을 때, 나는 그동안 그가 남긴 글자취를 모아야겠다고 했다. 그래봤자 기껏 노보를 뒤지고 노조 홈페이지 자료실을 들락거리며 그의 오래된 글들에 먼지를 털어내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는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20여 년 전 초고상태로 보여줬던 김사인 시인의 수배시절 이야기 첫눈은 여전히 단아한 기품을 잃지 않고 있으며, 신경림 시인의 첫사랑 이야기 함박눈은 다시 보아도 새로웠다. 벌써 30년도 훌쩍 넘었을 키 작은 해바라기의 감성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어 그는 여전히 젊다.

 

김명환의 『젊은 날의 시인에게에는 그의 젊은 날들이 만년필로 원고지에 정서되듯 흐트러짐 없이 또박또박 정리되어 있다. 때론 의심을 받고 때론 거부당하면서도 시대의 마디마디, 바람보다 먼저 달려와 원고지 칸칸이 가부좌를 틀던 삐라쟁이. 철도원 24년 동안 삐라만 만든 줄 알았는데, 이제 다시 보니 그는 여전히 시를 쓰고 있었다.
 
 * 글슨이는 시인입니다. 


기사입력: 2016/11/18 [14:39]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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