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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 언론은 석고대죄하라!
[정문순 칼럼] 박근혜-최태민 검증 방기한 언론, 최순실 게이트 불러
 
정문순   기사입력  2016/11/03 [16:50]

‘모든 것은 무너져 내린다.’ 요즘 자주 떠올리는 말이다. 그동안 진위를 의심하지 않았던 것의 진실 됨을 믿을 수 없는 세상. 진짜의 저급한 품질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진짜나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차마 의심하지 못했고, 진짜가 알고 보니 가짜이고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해왔다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물론 이 정도도 빙산의 일각일 뿐 더욱 캐면 고구마 줄기에 얼마나 더 엄청난 것이 달려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지금 사는 나라다. 나는 지금 인식론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건 나라가 아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 허깨비가 국정을 통치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날 이야기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모든 국정 운영이 최순실의 아이디어였고 대통령은 입만 벙긋하는 붕어 노릇을 했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이 나라인가. 지구 반대편의 어떤 나라는 대통령 후보가 장관 시절 국가기밀을 개인 이메일로 받았다는 의혹이 그의 대통령 자격을 물고 늘어지는 나라인데, 국가 공무에 사적인 통신수단을 개입시킨 행위로 시끄러워지는 나라에서 보면 국정 운영이 통째로 엉뚱한 자의 손으로 주물러질 수 있는 나라가 이해될 수 있을까.
 
집권자의 말, 정책, 정견이 그 자신의 고유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모순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았던 그의 행각이 이제야 떨어진 퍼즐 조각 맞추듯 이해되기 시작한다. ‘혼이 비정상’이니, ‘비정상의 정상화’니 ‘통일 대박’이니 ‘창조경제’니 하는, 도무지 한 나라의 대통령 격에 맞지 않는 생뚱하고 천박하기까지 한 말들의 근거가 비로소 눈에 잡힌다.
 
“우리 경제의 골든타임” 운운하는, 수치나 자존심이라는 용어가 머릿속에 들어있는 사람이라면 그 입에서 나오기 힘든 말들(골든타임은 세월호 때 회자된 용어이며 공염불에 불과했지만 세월호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한 박 대통령 입에서 자신의 트라우마일 수 있는 말이 서슴지 않고 나올 줄 몰랐다.)이 나오거나,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다른 대통령이 하면 참 나쁜 일이지만 자신이 하면 국민 전체의 열망에 부합하는 일이 되는 등 자가당착이 버릇이 된 박 대통령의 습관은 지적인 무능, 공감 능력 없음, 그것도 아니면 ‘혼이 비정상’인 성격 이상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런 말들이 자신의 머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자신은 읊었을 뿐이라면 그 이해 불가한 사정이 이해된다. 남의 생각에게 자신의 입만 빌려주는 대리인에게 무슨 국가 정책의 일관성이니 국가 수반에 걸맞은 품격이니 하는 것들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 정책 참모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혼자 독단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해도 즉흥적인 정책이 나올 위험이 다분하거늘, 비선 라인이 국정을 틀어쥐고 자신은 바지 대통령 노릇을 하는 한 오락가락 앞뒤 안맞는 정책을 내놓는 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나 비선 실세가 있고 그가 측근인 누군가에게 휘둘린다는 건 최소한 몇 년 전부터 소문으로 파다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밀착된 관계는 “지난 3년 간 현 정권과 관련해 끊이지 않았던 소문”(MBN 앵커 김주하의 말)이었다. 더욱이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는 훨씬 이전부터 알려져 있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의 불미스러운 관계는 둘이 교류를 시작한 1970년대 중반 이후 당시 중앙정보부와 청와대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파악했던 사실이다. 10.26 사건 이후 김재규가 재판에서 박정희의 자식들 사생활이 얼마나 문란한지 말하려고 했지만 판사에게 가로막혔다. 김재규가 폭로하려고 했던 비밀에는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가 있었을지 모른다. 최태민이 박근혜의 “몸과 마음을 지배했다”라는 유명한 표현은 미국 정부가 한국에서 떠도는 소문이라며 언급한 문서에서 나왔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는 2012년 대선 때도 거론되었다. 그러나 대선 후보 시절에도 박근혜에 대한 검증은 어디에서도 작동되지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박근혜-최태민이 더 이상 금기의 영역이 아니게 되면서 언론은 두 사람의 봉인을 푸는 데 가담하고 있다. 유력 정치인을 둘러싼 소문을 파고들어 진위를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다. 최소한 지난 대선 때 언론이 소문을 파고들었더라면 진작 두 사람의 관계는 세상을 뒤흔들었을 것이고 박근혜의 청와대 행은 큰 난관을 만났을 것이다. 그때 터질 것이 터졌다면 어쩌면 최순실이 국정을 주무를 기회도 막았을 수도 있었다. 아니 아무리 지적인 무능이 알려진 대통령이라도 언론이 그의 이상한 말투나 표현을 진지하게 의심해 보았더라도 최순실이라는 고구마 줄기와 어렵지 않게 닿았을 수도 있었다. 이 나라의 언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물론 최순실 게이트를 폭로하는 데 JTBC와 한겨레는 예외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조차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다.

 
언론이 제 역할을 제때 하지 않았으면 지금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차라리 나을지 모른다. 최순실 취재 경쟁에 막차 탄 언론들은 ‘고졸 강남 아줌마 출신 무당’과 ‘20년 연상과 놀아난 호스트바 출신’이 국정을 손에 주물렀다며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학력이 무엇이든 사는 곳이 어디든 직업이 무엇이든 그게 문제가 될 수는 없다. 국민에게 승인받거나 검증되지 않은 자들이 국정에 끼어든 것이 문제일 뿐이다. 언론은 선정적이고 편견 가득한 보도로 방향을 틂으로써 자신의 원죄를 덮으려고 하는가.
 
국민은 분노해도 언론은 분노해서는 안된다. 분노하려거든 자신에게 분노해야 한다. 마치 자신들은 아무 죄가 없다는 듯 국민의 노여움에 숟가락 들고 슬그머니 끼어들어 한몫 잡으려는 언론 당신들부터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라. 지금 이 나라에 무너지고 없는 것은 국정 운영의 정통성뿐만이 아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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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03 [16:5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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