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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당 비석 네 조각 낸 친일 승려
[책동네] 정운현의 '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김철관
▲ 표지     © 인문서원

친일파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언론은 부산을 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식의 냄비 근성 언론으로 돌변한다. 현재도 친일망동처벌법 등 관련 법하나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수수방관한 정치권이 있고, 부화뇌동한 국민성도 한 몫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30년 여 친일문제에 천착해 온 정운현(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전 사무처장이 펴낸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인문서원 2016년 8월)는 8.15 광복 71주년을 맞아 나라를 팔아먹고 독립운동가를 탄압한 악질 매국노 44인을 재조명한 책이다.
 

▲ 저자 친필     © 인기협


지난 8월 11일, 평소 존경한 저자와 우연한 기회에, 경기도 파주 주변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저자가 책 머리말 앞에 친필로 메모해, 바로 출판한 따끈한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라는 책을 건넸다. 이날 모임을 주선한 경기 파주을이 지역구인 박정 의원 보좌관인 이경선 박사도 함께 책을 받았다.
 
읽어야 하겠다면서도 일상에 바빠 차일피일 미루다가, 추석 연휴를 통해 저자가 쓴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를 꼼꼼히 읽었다. 이 책은 매국노로 잘 알려진 이완용부터 독립운동가를 잡아 고문한 노덕술, 조선의 마타 하리 여자밀정 배정자, 월북 무용가 최승희 등 44인의 매국행위를 구체적으로 들추고 있다.
 
일제가 고종의 비, 민씨를 살해하고 능욕한 사건이 을미사변이다.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 우범선이 조선인으로 유일하게 을미사변에 가담한 인물이다. 당시 훈련대 2대대장으로 일제에 포섭돼 을미사변에 가담해 친일을 했다. 그럼 근대 친일파 1호는 누구일까. 일제의 외국인 고문으로 활동했고, 강화도 조약체결을 도운 김인승이다.
 
서울 광화문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 남산 안중근 의사상과 백범 김구 선생상, 도산공원의 도산 안창호 선생상, 서울 종묘공원의 월남 이상재 선생상, 전북 정읍의 전봉준 장군 동상, 덕수궁 세종대왕상, 인천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상 등 40여 점의 애국선열과 역사 속 위인들의 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경승도 친일 작가라는 사실이다. 그의 형 서양화가 김인승(친일파 1호 김인승과는 동명이인)도 친일 전력을 가지고 있다. 형제는 일제하 대표적인 친일 미술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에서 간부(평의원)로 활동했고, 전시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바치기도 했다.
 
친일청산을 외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친일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진 애국선열의 동상을 방치한 것은 민족사 왜곡행위로, 국민성금으로 다시 세워 민족정기를 회복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
 
조상을 일본인으로 바꾼 조선인 첫 신직인 이산연은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스럽게 살아야 한다고 강변한 인물이다. 신직이란 일본인들의 조상을 모신 신사에 근무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사찰로 치면 스님에 해당하는 일종의 종교인이다.
 
친일단체에 두루 몸담은 직업적 친일분자 조병상은 일제의 인력동원과 침략전쟁 찬양에 앞장선 인물이다. 그는 징병강요는 무(武)의 연마가 목적이라고 반민특위 재판에서 진술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두 아들을 모두 일제침략전쟁의 전사로 내보내는 등 자신의 친일성을 과시한 인물이다.
 
<조선일보> 초대 사장을 지낸 방응모는 중일전쟁이후 생겨난 각종 친일단체에 참여해 일제 식민 통치와 군국주의를 찬양했다. <조선일보> 폐간 이후 자매지 ‘조광’을 통해 친일 논설을 직접쓰거나 발행을 주도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물론 친일 매국 행위를 한 친일파로 친일 전력을 참회한 사람도 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변절한 최린은 반민특위 재판에서 법정을 온통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바로 “민족의 이름으로 이 최린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처단해주십시오”라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장편서사시 ‘국경의 밤’의 시인 김동환은 반민족행위를 뉘우치며 반민특위에 자수했다. 일제 말 충남 광공부장을 지내고 2공화국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현석호도 회고록 ‘한 삶의 고백’을 통해 친일 행적을 고백했다.
 
특히 자신의 친일행적을 한 번이 아닌 여러 차례 걸쳐 공개적으로 참회, 사죄한 인사도 있다. 홍익대 총장을 역임한 이항녕 박사이다. 그는 지난 91년 7월 19일 바르게살기운동 하동군 협의회 초청으로 하동에서 강연을 할 때 아래와 같이 사죄했다.
 
“일제말 27세의 젊은 나이로 하동군수를 지내면서 저 자신의 출세와 보신에 눈이 어두워 (군민들을) 죽창으로 위협까지 했던 저를 너그럽고 따뜻하게 맞아 주신 하동군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반민특위 검거 1호 전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다가 밀정이 된 이갑성, 직업 밀정이었고 고등계형사였던 선우순.선우갑 형제, 독립선언서 기초한 변절자 최남선, 항일군 토벌에 앞장선 권력 엘리트 만주 특무책임자 김창영, 일제에 굴복한 직필 2.8독립선언 주역 서춘, 일제 문화정치 조력자 언론인 진학문, 내선일체와 황도선양에 바친 시를 쓴 시인 김용제, 황도불교 건설 외친 친일 승려 제1호 이종옥, 역사와 민중에게 무정했던 대문호 이광수, 사명당 비석 네 동강 낸 친일 승려 변설호, 고종황제 협박한 매국노 신하 송병준, 여성 친일의 대명사 모윤숙 등의 친일행적도 정론 직필했다.
 
이 책은 글과 함께 친일인사들의 사진과 사료 사진들을 대부분 공개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친일문제는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사라고 말한다. 현재 한국사회의 최고위 인사들이 친일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은 친일 군인의 딸이다. 과거 여권 대선 후보 1순위였고 집권당 대표를 역임한 부친도 친일 경력으로 논란이 됐다.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사람은 부친평전을 통해 친일 행적은 숨긴 채 공로만 잔뜩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연구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들의 반역사적 행태와 역사 왜곡 음모다. 그 절정은 박근혜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이다. 이대로라면 장차 친일문제를 둘러싸고 거짓 역사, 뒤틀린 역사가 판칠 것이 볼 보듯 뻔하다. 친일 문제 하나를 반듯하게 기록하고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대서야 무슨 역사 교육을 입에 올릴 것인가”-저자 서문 중에서-
 
저자 정운현은 1959년 경남 함양 출생으로, 대구고와 경북대를 졸업했다.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서울신문> 차장,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등 20여 년간 기자로 일했다. 1980년대 말부터 우리사회 곳곳에 뿌리박고 있는 친일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자료 수집과 취재를 해 왔다. 참여정부 시절 제2의 반민특위라고 불린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했고,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를 지냈다. 친일문제를 다룬 저서 <실록군인 박정희> <풀어서 본 빈민특위 역사기록> <임종국 평전> <친일파는 살아있다> <조선의 딸, 총을 들다> <묻혀있는 한국현대사> 등이 있으며, 소설집 <작전명 녹두> 대담집 <쓴맛이 사는 맛> 등을 펴냈다.

 


기사입력: 2016/09/17 [20:46]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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