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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녀'를 돌려주마
[정문순 칼럼] 말의 속박에서 풀려나는 것이야말로 여성해방
 
정문순

‘여성범죄 강력 단속 기간’. ‘학대아동을 보호합시다.’ 흔히 보는 문구다. ‘여성범죄’는 여성이 저지르는 범죄를 뜻하지 않는다. ‘학대아동’은 학대하는 아동이 아니다. 그러나 ‘여성피해범죄’, ‘학대피해아동’으로 쓰지 않는 것은 여성이나 아동은 범죄나 학대의 가해자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반영돼 있다. 약자는 피해자만 될 뿐 가해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좋은 세상이 아니다. 여성이 권리를 존중 받는 사회라면 가해자가 될 자격도 보장받아야 한다.
 
한때 나경원 의원의 별명은 ‘자위녀’였다.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식에 다녀온 사실이 드러난 뒤였다. 나 의원이 남자라면 ‘자위남’이라는 말을 들었을까? 아니다. 기껏해야 친일파나 매국노쯤으로 불렸을 것이다. ‘자위남’이라는 조어가 태어날 수 없는 이유는 자위대와 남성은 한국 사회에서 결합이 용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라면 자위대를 방문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안상수 전 새누리당 대표는 ‘보온병’이었지 ‘보온병남’이 아니었다. ‘보온병남’이 없는 것은 병역을 특권으로 생각하는 한국 남자들의 의식 세계로는 보온병과 폭탄도 구분 못하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히 비하할 수 없는 ‘~남’과 대조적으로, ‘~녀’의 쓰임은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녀’는 특정 낱말과 결합하면서 원래의 멸시적인 의미가 한층 높아지고 증폭한다. 자위녀는 자위대 행사에 다녀온 여성 정치인을 조롱하는 문맥을 벗어나 여성은 멍청하고 생각이 모자란다는 편견을 굳히고 새끼 친다.
 
마찬가지로 ‘김치녀’는 있지만 ‘김치남’은 없다. 남자는 김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김치남은 없다. ‘된장녀’는 있지만 ‘된장남’은 없다. 된장 짓을 하는 건 여자지 남자 중에는 없다는 생각이다. 나는 오랫동안 순진하게도 김치녀와 된장녀가 하찮게 대접받기도 하는 토속 식품에 여성을 빗댄 표현일 줄만 알고 있었다. 김치와 된장의 멸시와, 여성 멸시가 만나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발효식품 특유의 냄새를 여성 비하에다 끌어 붙인 것이었다. 여성을 냄새나는 존재로 비하하는 진짜 이유가 성기 비하의 의도에 있다는 것을 몰랐다. 더할 나위 없이 성적 모멸을 가하는 이 말은 최근에야 임자를 만났다. 메갈리아 커뮤니티 사이트의 젊은 여성들은 김치녀를 말하는 남자들에게 ‘김치남’이라고 성별 표지만 바꿔 돌려주었다. 김치 소리 들으니 기분이 어때? 이들은 묻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다.
 
‘김치남’을 더 깔아뭉개어 ‘씹치남’이라고 했다. 여성이 자신을 비하하는 금기어 중의 금기어를 제 입으로 발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믿어지지 않는다. 구름 위에 뜬 기분이다. 가슴을 짓누르는 브래지어를 풀어버릴 때의 해방감이 이보다 더할까. 요즘 젊은 여성들은 용감하기도 하다. 희망찬 밀레니엄 전환기에 부산대 여학생들은 학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예비역 남학생들에게 ‘똥개’ 같다고 했다는 이유로 화난 예비역들에게 성매매 사이트에 신상정보가 털리는 무지막지한 보복을 당한 시절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말이란 제 주인을 찾아가야 한다. 자신이 받은 모멸을 원저자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통쾌한 언어 전략이다.
 
리베카 솔닛은 남자들에게 ‘가랑이 사이’를 강조하고 다니지 말라고 일갈했다. 남자들이 ‘자지’로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을 흰 눈 위에다 쓴다고 해도 그건 지성이 아니라고 했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감히 이렇게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여성인권을 생각하는 남성들이라도 남근적 욕망이나 성적 우월감에 대한 경도를 버리지 못한다는 식의 점잖은 표현만 썼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비속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서구 페미니스트의 당당함이 놀랍다. 도대체 메갈리안의 말이 저런 표현보다 더 과격한가?
 
여성도 비속어나 금기어를 쓸 권리가 있다. 자신을 억압하는 말에서 도망하지 않고 그 말을 당당히 쓰거나 본디 임자에게 돌려줄 때 여성 인권은 올라간다. 말의 주도권을 둘러싼 싸움은 존재의 권리가 걸린 싸움이다. 2005년께 태어난 김치녀, 된장녀가 10살이 넘도록 살아있는 건 한국 여성 인권 수준을 잘 보여준다. 너무 오래 참았다. 말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존재도 해방된다. 여성 해방은 언어 해방이다. 
 
* 9월 7일 경남도민일보 게재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6/09/11 [13:16]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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