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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교과서에서 삶을 발견하다
[옛날 교과서 읽기] 종이배가 바다로 항해한다고 믿는 아이들
 
정문순
▲ <종이배>, 제2차교육과정(1964~1972) 초등 국어 1-1, 한국교육개발원 제공     © 정문순
 


인수와 순이는 종이배를 만들었습니다.
인수는 하얀 종이배를 만들었습니다. 순이는 노란 종이배를 만들었습니다.
종이배를 가지고 냇가로 갔습니다.
종이배를 냇물에 놓았습니다.
종이배가 둥둥 떠내려갑니다.
인수와 순이도 배를 따라 내려갑니다.
 
하얀 종이배가 냇가에 닿았습니다.
개미가 탔습니다.
개미는 손님입니다. 손님이 배 안에서 구경을 합니다.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하얀 종이배는 다시 내려갑니다.
 
노란 종이배도 떠내려갑니다.
냇물 따라 동동 떠내려갑니다.
짱아가 날아왔습니다.
노란 종이배에 앉았습니다.
 
짱아도 손님입니다.
노란 종이배도 손님을 태우고 떠내려갑니다. 까딱까딱 동동 떠내려갑니다.
종이배들이 돌섬에 닿았습니다.
다 왔습니다.
 
개미 손님은 돌섬으로 올라갔습니다.
짱아 손님은 풀밭으로 날아갔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하얀 종이배와 노란 종이배는 다시 떠내려갑니다. 나란히 떠내려갑니다.
 
- 종이배, 3차교육과정(1973~1981) 초등 국어교과서 1-1 
  
어릴 때는 도시에도 개울이 흔했다. 집밖을 나갈 때는 근처를 지나가지 않고는 안되었다. 개발독재 시대의 도시는 시골도 아니었지만 완전히 도시라고도 할 수 없었다. 당시 도시는 아직 망가질 시골이 많은 곳이었다. 물론 지금도, 옛날보다는 훨씬 많이 줄었지만 도시하천이 적지는 않다. 그러나 하천의 성격은 변했다. 내가 사는 도시는 단체장이 큰 돈 들여 대대적으로 개울 곳곳을 생태적으로 정비해 놓았지만 어느 여름 큰비가 한 번 내린 후 다 파헤쳐지는 고역을 치렀다.
 
자치단체의 치수 능력을 검증해 주는 존재가 되었든 아니면 방치된 채 대책 없이 죽어가기 일쑤이든 지금의 하천은 주민들의 삶과 완전히 고립되었다. 그에 반해, 수십 년 전 도시를 흘렀던 물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 공간에 속했다. 지금은 완전히 복개되어 흔적조차 남지 않았지만, 어릴 때 내가 살던 집 근처에는 큰 개울이 흐르고 있었고 물살이 센 곳은 주민들이 모여서 빨랫감 두들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의 경우, 학교에 민방위성금으로 미처 내지 못했던 쌀을 집에 도로 가져가지 못하고 봉투째 탈탈 털어 버리기 위해 개울로 향하기도 했다. 엄마한테 혼나는 게 겁났던 나는 편지봉투에 두툼하게 담긴 흰쌀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끔 놀러갔던 초등학교 단짝 집도 그 개천 옆 동네에 있었고, 세월이 좀더 흐른 고등학교 때에는 야간학습을 마친 후 인근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야구 경기에서 최동원 선수를 비추던 하이라이트를 받으며 귀가하던 길도 개울 옆이었다. 교과서의 인수와 순이처럼 아이들의 종이배를 받아준 냇물도 있었을 것이다.
 
인수와 순이가 띄운 종이배는 떠내려가 언젠가는 바다에 이를 것이다. 아니, 아이들의 상상력 은 그렇게 전개될 것이다. 아이들 손을 떠난 후 종이배의 운행으로 묘사된 부분은 순전히 아이들의 상상이다. 아이들에게 종이배와, 철로 만든 배의 차이는 없다. 아이들이 좇아가 볼 수 없는 종이배의 미래는 그들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강과 바다 위에 잘 떠다니는 어른들의 배를 상상하고 나서 종이배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옆길로 새자면, 나 역시 어릴 때는 그랬다. 유신시대 말기에 흑백텔레비전에서 틀어준 반공드라마. 그 시대 반공드라마가 예외 없이 그랬듯이 내용이 매우 잔인하고 섬뜩했다. 6.25전쟁이 터졌던 때가 배경이었으리라. 공산군이 한 마을에 쳐들어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몰살하자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젊은 여자들은 어린 아기들을 소쿠리에 눕혀 차례로 물에 띄워 보내는 것이었다. 일일연속극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때 나는 강물에 흘러가는 아기들은 마을을 벗어나기만 하면 누군가의 눈에 띄어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자들이 왜 저리 비통해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른은 물에 띄운 아기 소쿠리가 구해지는 것도, 종이배가 바다에 이르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존재다. 아이는 물이 곧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존재다. 그저 종이배가 “냇물 따라 동동” 떠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살이 종이배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상상은 아이가 하기 힘들다. 이제 겨우 배 만드는 것을 흉내 낼 줄 알게 된 아이는 아직 냇물의 진짜 모습을 겪을 기회가 없었다. 가짜에 불과한 종이배가 물에서 막힘 없이 순항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어른들이 만든 배처럼 수송 역할도 잘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종이배들은 ‘짱아’(잠자리)도 태우고 개미도 태운다.
 
종이배들이 손님들을 태우거나 목적지에 내려줄 때마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준다. ‘바람’은 순풍이다. 자기 동력이 없는 종이배에게 바람은 훌륭한 엔진 구실을 해줄 것이라고 아이들은 기대한다. 바람은 종이배를 밀쳐내지 않고 조력자 구실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람이 불고 종이배들은 계속 떠내려간다. 이들 앞에 걸림돌이나 방해물은 없다. 자신들이 만든 종이배가 잘 떠내려가듯이 세상도, 자신들의 미래도 그럴 것이라고 짐작한다. 종이배들이 “까딱까딱 동동” 떠내려가는 것을 허락하는 세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인수와 순이는 어른이 되거나 어른의 세계에 편입할 것이다. 슬픈 일이다.
 
‘종이배’ 이야기는 세상이 앞으로 곧장 죽죽 뻗어나간다는 사고방식에 익숙한 아이, 즉 어른들이 보기에 세상천지 모르는 순진무구한 아이의 심리를 잘 반영한 글이다.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나의 잠재의식 속에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집과 학교,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던 초등학생 1학년짜리에게 종이배가 흘러가는 물은 신비한 미지의 세계였다. 짱아를 태우고 떠다니는 종이배가 어딘가에 꼭 있을 것 같았다. 그런 환상이 깨어진 것이 나는 참 아쉽다.
 
그것이 나만이 아니었음을 공지영의 소설에서 깨달았다. 종이배 이야기가 소설 <고등어>에서 비슷하게 반복되는 것을 보며 나는 국정교과서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절감했다. <고등어>의 작가는 이야기의 출처를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기원을 언급하는 것이 옳다. 초등학교 교과서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이 자신 말고 누가 있겠느냐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더 큰 문제는 교과서에 실린 텍스트에서 아무리 대단한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교과서는 어디까지나 교과서라는 것이다. 특히 국정교과서 체제의 교과서는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수많은 텍스트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으며 범할 수 없는 권위이자 완벽한 표준인 양 떠받들어졌다. 그래서 국정교과서는 답답하고 낡고 고루하다는 상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까마득한 시절에 배운 국정교과서 내용이 담긴 소설이라면, 대중문학의 빈곤한 상상력을 나타내는 징표라고 나는 ‘과대’ 해석한다. 
   
세상이 아무리 직선이 아니라고 해도 자신만은 예외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민들은 어쩔 수 없는 삶의 생리라고 받아들이는 반면 힘을 가진 자들은 고분고분히 수용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딸-퍼스트레이디를 해본 사람은 어떠한 무리수를 써서라도 세상을 자신에게 직선이 되도록 편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굽이지고 굴절된 세상을 살아가는 몫은 서민들에게 떨어질 것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6/06/22 [17:20]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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