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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여! 밤길을 되찾자
[정문순 칼럼] 여성이 죽임을 당하는 이유는 치안 미흡이 아니라 성차별
 
정문순

▲ 심야의 밤길을 활보하다     © 정문순


오늘은 ‘불금’. 여성의 잃어버린 밤길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모여 도심 밤길을 씩씩하게 행진하기로 했습니다. 준비물은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밤길을 되찾자’ 글자가 박힌 스티커들, 그리고 튼튼한 두 다리입니다.

여느 때 같으면, 저한테 밤 10시는 집에 있거나 귀가를 서두를 시간입니다. 쉬고 싶은 내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집을 잔뜩 어질러놓은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방바닥 먼지를 닦거나, 냉장고를 뒤져 출출한 배를 채우거나, 인터넷에 빠져 보내는 평온한 시간을, 오늘은 단념했습니다. 우리들은 청량한 밤기운에 서늘해진 도시를 삼삼오오 무리 지어 걷다가 곳곳에 스티커를 붙이며 지나갔습니다.

 
주말을 앞둔 도심의 밤은 불야성을 이룹니다. 출발 지점에서 50분쯤 걸으면 도심 중의 도심, 이 도시의 핵심 유흥가로 진입합니다. 대낮 같이 훤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술기운에 몸을 못 가누는 사람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속에서 여성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행진을 끝낸 사람들은 자신의 심경을 하나씩 말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안타깝다.”
“밤에는 집 앞에 차를 대고 내릴 때도 무서워서 식구들에게 나오라고 연락한다.”
“나도 여동생이 있지만 여성이 밤길을 갈 때 느끼는 공포는 남자인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클 것이다.”
 
자신이 범죄에 희생될지 모른다는 여성의 두려움은 충분히 근거가 있습니다. 강력범죄의 표적은 대부분 여성입니다. 그마저도 갈수록 수치가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강력범죄의 여성 피해자 비율은 2011년 81.8%, 2013년 85.9%로 나타납니다.
 
강력범죄 피해자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해줄까요. 이 나라의 치안이 허술하고 취약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징표일까요. 그렇게 보려는 시각도 있지만, 범죄에서 치안 문제는 부차적이거나 곁가지일 뿐 핵심이나 본질이 아닙니다. 장담하건대, 대한민국의 치안 수준은 결코 낮지 않습니다. 특히 도심 번화가일수록 치안은 우수한 편입니다. 곳곳에 그물망처럼 감시카메라가 돌고 있고 112에 신고하면 5분이면 경찰이 도착하는 나라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강남역은 대한민국에서 치안 수준이 가장 높은 지역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범죄가 발생한 공용화장실은 허술한 치안을 말해주기보다는 촘촘한 치안 구조의 틈새나 사각지대로 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제가 사는 창원에서는 지난 해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의 등산에서 성폭행을 피하려던 여성이 참혹한 변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감시카메라가 없는 곳이어서 범인 단서를 잡지 못해 사건 해결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공용화장실이나 산악 지역이 상대적으로 치안이 허술한 지역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끔찍한 범죄가 일어났다고 해서 치안 문제로 이 사건을 몰아가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범죄의 근본적 원인이 치안이 허술하기 때문이 아니듯이, 여성들이 강력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치안이나 안전이 취약한 것은 범죄 가능성을 높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치안이 완벽하다고 해서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심야의 강남역이라는 범행 시간과 장소는 상징적입니다.
 
새벽녘 강남역 여성 피살 사건은 외출이 사실상 ‘금지’된 시간에 활동하는 여성, 즉 사회활동 폭이 넓은 젊은 여성에 대한 범인의 증오심이 낳은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구도 속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피해자나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한 가해자의 멸시, 원한, 분노, 증오 등의 극단적 인식이 범죄라는 극단적 행동을 부릅니다. 여성 피해 범죄는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부정적 인식이 극에 치달은 결과 나타납니다.
 
밤길을 당당히 활보하는 캠페인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이를 치안 문제로 보는 시각은 경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여성이 밤 늦게 활보할 수 있게 치안을 강화해 달라, 가로등을 달아 거리를 밝혀달라 등을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성 치안의 취약 지대인 밤거리를 누빈 까닭은 여성을 범죄 피해 취약자로 만드는 근원적인 배경이 여성 인권에 대한 척박한 감수성에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여성 피해 범죄는 치안이나 안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비하나 증오가 본질입니다. 우리가 거닐었던 유흥가 인근에는 이름난 집창촌이 있습니다. 새벽 시간에 여성들 목소리가 대낮처럼 활발히 나오는 곳입니다. 맞은 편에 있는 경찰 지구대에까지 그 목소리는 들릴 것입니다. 시 당국은 그곳을 헐어버리고 공원으로 세월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포주들의 반발과 시 당국 자신의 소극적인 태도로 진척이 쉽지 않습니다. 여성의 몸을 사고파는 것이 정당화될 정도로 여성이 차별당하는 사회와, 여성에 대한 혐오범죄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불평등 구조나 그것을 부추기는 제도, 관습을 뿌리뽑지 않는 한 여성을 겨냥한 증오범죄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글은 ICOOP소비자활동연합회 시민기자단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6/06/07 [20:40]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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