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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작의 시련, <임을 위한 행진곡>의 수난
[정문순 칼럼] 역사의 합법칙을 거스르는 자들의 5.18 폄하와 왜곡
 
정문순

모든 위대한 전설이 그렇듯이 <임을 위한 행진곡>은 탄생 비화를 풍부하게 품고 있다. 힘찬 투쟁가로 고정된 지금과 달리 애초에는 망자의 넋을 기리는 무거운 진혼곡으로 출발했다. 이 노래의 탄생에 당대를 대표하는 혁명가, 운동가, 작가가 참여한 것은 명작의 위엄으로서 당연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가락을 붙인 사람이 의외의 인물이이라는 점은 명곡의 뒷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작곡가 김종률은 유신시대 ‘관제’ 가요제 격인 ‘대학가요제’ 출신이다.

 

노랫말을 쓴 사람으로 백기완 이름이 악보에 올려졌지만 황석영이 백기완의 원시를 조금 다듬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윤상원과 박기순 두 열사를 기리는 악극에서 처음 불린 뒤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면서 가사가 조금 바뀌었고 부르는 사람이나 지역에 따라 가락도 조금씩 차이가 생겼다.

 

▲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는 황석영이 백기완의 시를 다듬은 것이다. 이 소장하고 있는 악보에서 황석영이 개작한 가사도 지금과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정문순

 

역사 앞에서 치열하게 살기로 다짐한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비장한 결의를 심어주었는가. 수많은 민중가요들이 태어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살아남거나 명멸했지만 이 노래에 감히 견줄 만한 명품은 없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운동가요 중 명작으로 꼽는 이들도 있겠지만 가사의 시적인 표현력이나 문학성은 <임을 위한 행진곡>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운동가요에서 ‘소나무’나 ‘강철’은 운동가의 굳센 결의를 나타내는 식상한 비유로 많이 쓰였다. 덧붙여 말하면, 가사에 국한할 경우 1980년대 이후 운동가요 중 명작은 매우 드물다. 그런 척박한 바탕에서 탄생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존재는 단연 군계일학이요 파천황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저항가요라는 평가는 이 아름답고, 웅장하고, 간결하고, 위대한 노래가 누려야 할 지당한 대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전혀 기교를 부리지 않았지만 그 소박함이 천지를 흔들 듯한 힘을 분출하는 백기완의 원시 덕분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강조하는 것은 역사의 필연적인 법칙이다. 동지는 간 데 없더라도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시간이 흘러가도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굳건한 ‘산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산천은 자연이며 자연은 역사를 지배하는 필연적인 합법칙성을 의미한다. 광주의 원혼들이 잊히고, 짓밟히고, 비틀어지는 등 인간의 세월이 무심하게 흘러도 그것과 무관하게 인간의 역사를 주재하는 자연 법칙은 광주의 재생과 부활을 이끌고 만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의 발원지인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에서 가사의 원 구절에 해당하는 부분을 보면 원시와 가사 사이에 큰 차이는 발견되지 않는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굽이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다만 황석영 개작 가사에서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이 가사는 지금은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으로 바뀌었다.) 대목은 의미 연결이 부자연스럽다. 알고 보니, 저 구절의 원래 순서는 “세월은 흘러가도 굽이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인 것이다. “굽이치는 강물”과 갈대의 함성이 원시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어졌지만, 개작 가사에서는 ‘함성’이 앞뒤 맥락 없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형국이 돼버렸다. 시가 노래 가사로 변용되는 과정에서 흔히 생길 수 있는 일이지만 황석영의 개작이 뛰어났다고는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옥의 티다.

 

이 노래를 떠올리면 내게는 반드시 따라오는 기억이 있다. 1988년이나 1989년쯤이었을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가 열리고 광주가 금기에서 풀리기 시작한 시대, 5공 정권 내내 관제방송으로 맹활약한 두 공영방송도 5.18 전후에 광주 지역 방송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한두 편 틀어주며 체면치레를 하던 때였을 것이다. 5.18 항쟁에 참여하다 희생 당한 한 고등학생에게 뒤늦게 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주는 장면이 방송 화면을 탔다.

 

그 자리에 모인 전교생이 기립하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주자 졸업장을 받던 어머니가 오열하던 장면.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낀다는 가사는 꽃다운 나이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스러진 바로 그 학생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망자가 된 학생의 유언이 됨직한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를 산 자인 후배 학생들이 부르는 모습은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노래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실이자 생생한 역사 그대로임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죽은 자가 부활해야 할 역사적 필연성 덕분인지 광주는 군사정권과의 단절을 선언한 문민정부에서 비로소 명예회복 단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사태’ 또는 ‘폭동’이라는 오명은 ‘민주화운동’으로 바뀌었고 항쟁 참여자들은 ‘폭도’에서 ‘유공자’가 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5.18은 아직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다. 아직까지도 최초로 발포를 명령한 지휘 계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모르며,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밝혀진 바가 없다.

 

<오월애>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시민군 출신이 한탄하듯이 광주 반대 쪽 어느 지역에서는 항쟁 참여자들을 여전히 폭도라 부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지역을 정치적 근거지로 삼고 있는 세력이 집권에 연달아 성공하면서 5.18도 거대한 퇴행을 겪고 있는 중이다. 올해 개정된 초등학교 사회 6학년 국정교과서에는 5.18 희생자들이 “일부 군인들”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서술하고 있다. 대학에 입학한 후 5.18의 진실을 사진으로 처음 접했을 때 그 참혹함에 몸서리치게 했던 희생자들의 모습이 그저 시위를 진압하다 보니 그렇게 나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에 종북 색칠을 하며 ‘제창’으로 하느냐 ‘합창’으로 하느냐는 논란을 일부러 일으킨 것은 위대한 노래에 대한 더없는 모욕적인 처사일 것이다. 논란 많은 시끄러운 노래라는 평판을 일으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이 노래를 난데없이 북한과 엉뚱하게 연결하는 것도 어이없지만, 부르고 싶지 않으면 안 불러도 되는 노래로 대접한 것도 어떻게 하면 5.18의 의미를 떨어뜨릴 수 있나 궁리한 꼼수에서 나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합창’이 해당 노래를 모르거나 부르기 싫은 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해야 한다면, 잣대는 공평하고 공정해야 한다. 민중 애국가인 <임을 위한 행진곡>에만 적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작 제창이 아닌 합창을 해야 할 노래는 대한민국의 애국가다. 다른 나라 같으면 친일파가 가사를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다 친일 작곡가가 지은 노래를 애국가로 인정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떠나서도 국기에 대한 맹세와 애국가 제창이라는 국민의례는 국민에게 애국심을 공개적으로 다짐하도록 강요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비민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다. 나 자신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애틋하긴 하지만, 남들에게 애국가를 열심히 부름으로써 내 애국심이 얼마나 깊은지 증명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의 양심은 내가 누군가에게 입증하거나 인정받아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부르지 않아도 되는 노래라면 마찬가지로 국가에게도 똑같은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합창을 고집하는 것은 ‘광주’를 이해할 생각이 없는 대통령이나 이 정부 주요 인사들이 이 노래 가사를 외우지 못하거나 노래를 부를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노래가 상징하는 5.18을 이 나라의 민주화 역사에 찬란하게 뿌리내린 위대한 항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제창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으면 민주화운동이라는 공식 이름을 가진 5.18을 부정한다는 말을 들을 것 같으니, 아예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아도 되는 합창 형식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자연의 합법칙성이 존재한다면 보수 정권의 5.18 왜곡도 큰 틀에서 보면 긴 역사에서 가뭇없이 지나가는 건들바람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항쟁이 일어난 지 36년이 지나도록 5.18이 난도질과 모욕을 당하는 현실을 대수롭지 않게 봐서는 결코 안된다. 역사는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인간 역사의 필연적인 합법칙성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6/05/23 [14:07]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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