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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호남은 ‘친노’에 등을 돌렸는가?
[강준만의 직격토로] ‘친노’는 치킨게임을 하고 호남은 늘 당해야만 하나?
 
강준만   기사입력  2016/04/25 [16:38]

 야당 내분이 이종격투기인가?


기존 정치 저널리즘은 철저히 ‘공급’ 중심이다. 출입처 제도는 기자들이 정치인들의 언행에만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약방의 감초처럼 민심이 어떻다는 등의 수요 측면 이야기를 곁들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건 공급 중심의 기사에 대한 반응을 전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일부 정치인들은 “기자들이 정책 이야기를 하면 거의 써주지 않고 싸움을 하거나 싸움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만 크게 써준다”고 불평하지만, 그건 정치인 중심의 공급 저널리즘이 원초적으로 갖고 있는 속성이다. 그런 속성을 가리켜 ‘인물 환원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정치가 ‘인물의, 인물에 의한, 인물을 위한 정치’로 졸아드는 현상이다.


인물 환원주의에 충실한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이야기 틀은 이종격투기 중계방송의 아나운서나 해설자가 하는 이야기 틀과 매우 흡사하다. 그간 엄청나게 양산된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 사태 관련 기사들을 보라. 이종격투기 중계방송과 무엇이 다른가?


언론은 민심에 영합하려는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을 자주 비판한다. 대부분 옳긴 한데, 왜 그 반대의 생각은 해보지 않는지 궁금하다. 그런 비판은 유권자가 ‘갑’이라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정당의 내분 사태도 유권자들의 내분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은가. 적어도 유권자들이 정치인 못지않게 중요한 취재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건 분명하지 않은가.


언론이 앞으로 그런 취재를 많이 할 걸 기대하면서, 우선 내 생각부터 말씀드려보겠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벌이는 내분 사태의 주요 원인은 문재인·안철수의 문제라기보다는 호남 유권자들의 분열이다. 언론은 ‘호남 민심’이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호남은 노무현 시대 이후 더 이상 압도적 다수의 정치적 견해가 같은 과거의 호남이 아니다. 그래서 야당 내분의 교통정리 기능을 상실하는 바람에 지금과 같은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전북일보』가 “전북은 초선들이 친노를 에워싸고 있어서인지 광주 전남과 기류가 다르다. 아직도 새정치연합이 주류다”라고 했듯이, 광주·전남과 전북이 다르며,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의 생각이 다르다. 언론은 호남의 비노 정서에 대해 자주 말하곤 하는데, 그 이유와 실체가 무엇인지 아직까지 그 어떤 언론도 다루지 않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피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욱 서남대학교 교수가 최근 출간한 『아주 낯선 상식: ‘호남 없는 개혁’에 대하여』는 바로 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 상실된 혹은 스스로 상실한 정치 저널리즘의 일부 기능을 훌륭하게 보완해주고 있다.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들도 있지만, 이 책의 주요 논제는 호남을 넘어서 한국 정치의 핵심적인 딜레마를 제대로 건드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야당은 명실상부한 전국 정당화를 위해 호남 색깔을 지우려고 애를 쓴다. 이는 야당의 집권을 원하는 많은 개혁·진보 세력도 동의하는 불문율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늘 명분은 개혁·진보를 내세우지만 호남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호남은 개혁·진보 세력의 집권을 위해 몰표를 주고서도 지역주의적 투표 행태를 보인다고 매도의 대상이 된다. 지역적 욕망을 드러내서도 안 된다. 한국 정치인의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겠건만 정치인의 물갈이 대상도 늘 호남에 집중된다. 일방적으로 이용당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못 받는 호남의 처지를 항변하는 목소리는 망국적 지역주의 선동으로 규탄된다. 이는 보수와 진보가 합작으로 전개하는 이데올로기 공세지만, 진보가 훨씬 더 공격적이다. 적잖은 호남인들이 이에 분노하거나 좌절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실명 비판과 함께 제시하는 『아주 낯선 상식』은 매우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는 책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거의 모든 언론이 이 책을 외면했을까? 아니면 이 책이 이종격투기 모델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일까? 정치 저널리즘도 개혁하면 좋겠다.


이상은 내가 2015년 12월 14일자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이다. 이 칼럼에 대해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이하 존칭 생략)가 「호남 자민련이라고요? DJ가 하늘에서 통곡합니다!」라는 제목의 『한겨레닷컴』(2016년 1월 10일) 칼럼을 통해 간접적인 반론을 주셨기에 답을 드리고자 한다.


이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선 김욱의 주장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엔 유명 논객이나 신문에 고정 칼럼을 쓰는 사람까지 화제가 된 책을 읽지도 않은 채 서평 기사만 읽고 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아무리 SNS 시대라지만, 세상이 너무 뻔뻔해졌다. 우리는 그러지 말자. 김욱의 책에 대한 세간의 왜곡이 워낙 심해 김욱의 주장 그대로 길게 인용하겠다. 김욱의 핵심 주장을 책의 순서대로 일곱 대목만 소개한 뒤에 김의겸의 반론으로 넘어가보자. 각 대목의 소제목은 내가 붙인 것이다.


(1) 왜 홍세화마저 ‘신성 광주’를 요구하는가?


홍세화는 2015년 5월을 맞이해 「다시 5월에, 빛고을의 새로운 도전에 부쳐」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칼럼을 통해 이런 주장을 한다.


“사회변화의 주체와 동력 형성과 그것의 구체적 실현에 대한 평소 관심에 5월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이 결합되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겠다.……항쟁정신이 물리력을 가진 국가권력의 불의와 폭압에 맞선 민중의 투쟁정신을 말한다면, 대동정신은 오늘 자본에 의해 부추겨진 우리 내면의 욕망을 성찰하고 자본권력에 맞설 수 있도록 공동의 가치와 관계를 확장하여 더불어 인간답게 살겠다는 정신이라고 하겠다. 이 정신에 비추어 광주는 지금까지 다른 지역에 비해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난 홍세화라는 이름을 보지 못했다면 웬 ‘지역주의자’가 쓴 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 홍세화는 광주가 “다른 지역에 비해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그는 특별히 광주가 “자본에 의해 부추겨진 우리 내면의 욕망을 성찰하고 자본권력에 맞설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일까? 광주는 공장도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영남파시즘의 발호에 맞선 광주라는 지역단위로 계급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1980년 5월 광주가 경험했던 ‘대동정신’이 있으므로? 만약 다른 지역과 달리 특별히 광주에서만 그런 게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그게 바로 ‘신성 광주’를 상상하는 것이다.


광주는 흔들리고 있다. 욕망을 거세당한 채 ‘신성 광주’를 믿고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잃어버린 욕망을 찾아 ‘세속 광주’를 회복해야 하는가? 예수나 부처가 아닌 인간들이 살아가는 도시인 광주는, 호남은 유사 이래 존재했던 다른 모든 세속 도시들처럼 욕망을 표출하며 살아갈 권리가 없는 것인가? 그렇게 똑같이 살면 다른 지역민들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니지만 호남만은 죄를 짓는 것인가?


(2) 호남은 언제까지 진보의 ‘인질’ 노릇을 해야 하나?


현재 호남은 친노세력은 물론이고, 정치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시민단체 활동가, 심지어 ‘지역관념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개혁․진보를 표방하는 지식인․명망가들에게까지 ‘지역적’ 인질로 잡혀 있다. 호남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호남당’이 오매불망 전국당으로 불리기만을 염원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호남당’의 모든 정치적 지분과 욕망을 빼앗긴다 한들 새누리당을 찍을 수 없는 자신들의 표를 어디에 던지겠는가? 호남의 정치적 지분이나 욕망을 얘기했다가 ‘지역주의 부패세력’이라고 욕이나 안 먹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호남은 이른바 ‘전국당’을 위해 ‘호남 없는 호남당’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호남의 욕망을 거세하는 데 ‘전국당’이라는 허상만큼이나 유혹적인 이데올로기는 없다.…….


여기서 호남당을 탈피해 전국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자. 우선 이 이데올로기 자체가 영남패권주의의 부산물이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역당이라는 말은 거의 새누리당(계열)이 아니라 (조롱조로 과거 자민련을 상기시키며) 새정치민주연합(계열)을 겨냥해 사용된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혹은 자민련)이 지역당이면 논리필연적으로 새누리당도 지역당이 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새정치민주연합(계열)이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 지역당으로 규정되면 다른 정당이 호남을 제외한 대한민국 전체를 석권해도 그 당 역시 지역당이 될 수밖에 없다. 즉 호남이 절대적으로 외면하는 정당이 다수당일 수는 있어도 전국당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이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정당만을 지역당으로 부름으로써 호남의 지지를 못 받는 다수당(새누리당)을 은근슬쩍 전국당으로 치환시키는 것이다. 단언컨대 현 대한민국에 다수당/소수당은 있어도 지역당 아닌 당은 없다.

그런데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당만을 지역당이라고 부르는 지역당 이데올로기는 새누리당보다는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세력이 더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호남의 정치적 자주성을 봉쇄하는 (영남패권주의의 하위 이데올로기로서의) 반지역당(전국당) 이데올로기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이른바 호남 지역구 다선의원 숙청 이데올로기로 발현된다.


(3) 왜 호남인이 ‘호남 없는 호남당’을 지지해야 하나?

 

혁신위원 조국은 트위터에 “문재인, 불출마를 철회하고 부산에 출마해 ‘동남풍’을 일으켜라”고 주문한다. 호남 중진의원의 백의종군․선당후사는 호남에서 축출하는 것이지만 부산 문재인의 그것은 이해찬이 그랬듯이 고향 출마다. 고향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면 문재인은 지금보다 더 힘 있는 대선후보로 올라설 것이다. 하지만 호남출신 중진의원은 타지에서 당선돼도 국회의원이나 한두 번 더하고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호남당이 아닌 전국당이라고 내세우고 싶어 한다. 그럼 호남몰표를 인질로 잡지 말고, 전국적으로 고른 득표력을 입증하면 된다. 하지만 이 허울 좋은 전국당은 웬일인지 오직 호남을 향해서만 ‘고립된다’며 겁박하여 호남몰표가 나오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러면서도 우린 소중한 전국당이니까 호남의 ‘지역이익’은커녕 호남이라는 지역관념조차 꿈도 꾸지 말라고 강변한다. 그러고는 때만 되면 호남의 중진 정치인들을 ‘지역토호 부패세력’의 이미지를 뒤집어씌워 요란하게 싹둑싹둑 자르는 주례행사를 치른다.

 

기본적으로 지역구에 출마하려는 후보는 그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지역성을 지녀야 정상적이다. 중진이든 아니든 이곳저곳 지역구를 기웃거려도 좋다는 발상은 놀랍다. 원 지역구에서 축출 당한 엉뚱한 후보를 받아들여야 하는 다른 지역구 주민은 또 웬 날벼락인가? 호남은 이런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근원과 주체가 누구인지 따질 엄두조차 못 낸다. 호남은 그저 전국당을 꿈꾸며 정치적 천형 같은 호남색을 지우는 데 앞장서 협력한다. 호남은 그렇게 허깨비 같은 전국당 새정치민주연합을 바라보며, 친애하는 이 당이 오직 ‘호남 자민련’으로 불리지 않기만을 애타게 기도할 뿐이다. 호남의 욕망은 그렇게 ‘호남 없는 호남당’을 통해 손쉽게 거세된다. 이보다 더 쉬울 수가 없다!


(4) ‘친노’는 치킨게임을 하고 호남은 늘 당해야만 하나?

 

다음은 2003년 당시 개혁당 유시민이 민주당을 파괴하기 위해 어떤 자세로, 얼마나 집요하게 치킨게임을 벌였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문건이다.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우리 당은 의석이 둘 뿐인 작은 정당입니다. 독자적으로 총선을 치를 경우 잃을 것은 없습니다. 의석도 늘어날 것이요 당의 존재도 널리 알릴 수 있습니다. 반면 현재 백여 개의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은 ‘파멸적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수도권 선거는 보통 2천 표 안팎의 차이로 승패가 갈립니다. 약 10만 명이 투표하는 선거구라면 유효투표의 2% 안팎의 차이가 승부를 결정합니다. 우리 당 후보들은 지역구의 성격과 후보의 경쟁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도권에서 그보다는 훨씬 높은 득표율을 기록할 것이며, 한나라당보다는 잠재적 민주당 지지표를 훨씬 많이 빼앗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라당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준다는 비난이 일겠지만 상관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민주당이 리모델링 신당으로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음을 분명하게 경고했고 민주당 의원들이 정당개혁의 흐름에 합류할 것을 끈질기게 요청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개혁세력의 통합에 실패한 죄로 우리 당도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지만 민주당 역시 그 책임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주장에 열광하는 세력이 바로 친노다. 민주당에 “파멸적 타격”을 입히고 “한나라당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준다”고 해도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버텼던 이런 세력들을 상대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적 연대는 친목도모 화합이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투쟁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총선이든 대선이든 연대(단일화)의 기회라도 온다! 살아남은 ‘김대중’도 그런 각오를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었던 역사적 산물이다. 유사 이래 공짜로 얻어진 권리는 없었다. 그리고 내 대신 남이 찾아준 내 권리도 없었다. 심지어 남이 공짜로 내 권리를 찾아줄 것만 기대하고 있다면 가히 망상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5) 호남인은 언제까지 현충일에 음주가무를 삼가는 사람처럼 살아야 하나?

 

호남은 수십 년 동안 영남패권주의와 투쟁하면서 이제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느끼는 지경까지 됐다. 무슨 도통한 사람들처럼 욕망을 도모하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는 만성적인 심리상태가 된 것이다. 말하자면 호남은 현충일에 음주가무를 삼가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1년 내내, 거의 평생을 겪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호남의 욕망추구에 대한 ‘죄의식’을 부추기는 많은 개혁․진보주의자들이 있다. 호남은 ‘광주정신’을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하며,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착한 호남 콤플렉스’는 호남을 숙명처럼 옥죄고 있다. 호남은 욕망의 실현이라는 인간으로서의 본능과 호남만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착한 호남 콤플렉스’ 속에서 만성적인 심리적 혼란을 겪고 있다. 최악인 것은 이런 도덕적 강박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투항적 영남패권주의를 은폐된 행동강령으로 삼는 새정치민주연합만을 희망 없이 바라보며 살게 될 것이란 점이다.…….


나는 이제라도 호남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홀로 책임질 수밖에 없고, 책임져야 한다는 자의식 과잉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대한민국 전체의 책임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각 계층․계급이, 각 지역이, 남녀 모두가, 자신들의 세속적 욕망을 표출하고 타협하는 과정 속에서 진보해가는 것이지 어떤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은 한 지역이 세속적 욕망을 부끄러워하며 절절한 고립감 속에서 도덕적 의무처럼 지켜야 하는 천형 같은 멍에가 아니다. 이는 말을 바꾸면 대한민국의 진보․개혁 담론이 호남에 가혹할 정도의 특별한 의무를 요구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죄악이다!


(6) 왜 조국은 “내가 호남사람이라도 새정치연합을 안 찍는다”고 했나?

 

친노패권을 추종하는 것이 그나마 소수인 호남의 유일한 살길이라 생각하는 순종적인 호남인들은 어쨌든 분열이 아닌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길을 찾고자 한다. 패권을 장악한 친노가 보기에 그들은 인질을 자처하는 ‘착한 호남’일 것이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바깥에 길이 있다고 믿는 호남인들은 죽으나 사나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패권을 장악한 친노는 이 신당을 오래된 전략적 전통에 따라 호남당으로 규정·공격하며 그런 호남인들을 ‘불령선인’ 취급한다. 이런 와중에 정당 설립의 활동과 자유를 공격하는 그들의 위헌적 사고를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것은 영남패권주의 대한민국 정치의 덤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울대 교수 조국은 새정치민주연합과 호남의 관계에 대한 의미심장한 표현을 흘렸다. 나는 겉으로 호남의 “동요하는 민심을 다독이는” 시늉을 하는 문재인과는 달리 조국은 결이 다른 직설적 속내를 부지불식간에 드러냈다고 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 교수는 전날(14일) 새정치연합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천(정배) 의원이 수도권을 버리고 호남으로 간 것은 아쉽지만, 호남에서 당선된 것은 바람직했다. 천 의원이 최대한 자기 세를 불려서 대권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면서 “내년 4월 총선이 끝나고 합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오는 10월 재·보궐 선거와 관련해선 “10월 재보선은 무공천해야 한다. 천 의원이나 무소속 연대에서 당선되면 되지 않겠느냐”며 “내가 호남사람이라도 새정치연합을 안 찍는다. 돈 대주고, 힘 대주는데 의사결정에선 소외된다고 여긴다면 찍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뉴스1』, 2015년 7월 15일)


무슨 의미인지 이해되는가? 특별히 “내가 호남사람이라도 새정치연합을 안 찍는다. 돈 대주고, 힘 대주는데 의사결정에선 소외된다고 여긴다면 찍을 이유가 없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이 말이 밖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공격하는 말이라면 십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을 위해 한참 일하고 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자기가 호남사람이라도 새정치민주연합을 안 찍겠다니?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의 정체성과 의도에 관한 거의 기밀에 가까운 핵심을 무의식적으로 흘린 것이다. 정체성과 의도에 기밀이 있다? 있다. 하지만 놀랍지도 않다. 노무현 때부터 계속되는 익숙한 사태이기 때문이다. 조국의 말은 이런 뜻이다.

 

① 현 새정치민주연합은 호남이 돈과 힘을 결정적으로 대주고 있다. ② 하지만 새정민주연합에 호남의 의사가 반영될 여지는 없다. 즉 혁신위는 호남이 문제 삼고 있는 친노패권을 척결한다든가 하는 그런 혁신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③ 호남은 그걸 느꼈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을 안 찍어도 좋다. 내가 호남사람이라도 그럴 것이다. ④ 그 경우 아마도 반발하는 호남의 의지는 상당 부분 천정배 신당에 결집될 것이다. 물론 ‘착한 호남인들’이 친노를 추종할 것이므로 패권은 여전히 친노가 장악할 것이다. ⑤ 그러므로 새정치민주연합은 불만을 가진 호남인들을 대변하는 천정배를 도와줘도 좋을 것이다. ⑥ 총선이 끝나면 천정배에 의해 결집된 불만을 가진 호남이 어디로 가겠는가? 아마도 천정배는 대권을 꿈꾸는 것 같으니 총선 후 대세를 장악해 포섭하면 된다. 그도 노무현정부 출신 아닌가? ⑦ 그러니 혁신위는 문재인 중심의 친노당권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그것을 혁신이라고 부르고 위기를 돌파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호남 일부와 수도권 승리를 해 대세를 장악하고 ‘호남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조국은 “문재인이 혁신안을 지지해 얻는 이익은 당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고, 안철수가 혁신안을 반대해 얻는 이익은 문재인 체제의 조기 안착을 막고 대선주자로서의 자기 위상을 재부각하는 것이고, 현역 의원들이 혁신안을 무산시켜 얻는 이익은 재선을 보장받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친노/비노의 ‘정치적 이익’을 평가했다.


분열을 두려워하지 않고, 호남 ‘불령선인’을 놓쳐도 총선 승리를 할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혁신위원회는 실제로 그런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들이 개혁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공천제도는 안심번호가 도입될 경우의 선거인단 구성은 국민공천단을 100%로 하고, 도입되지 않았을 경우엔 국민공천단 70%, 권리당원 30%로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세부적 내용들이 더 있지만 핵심은 정당문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이 혁신안은 기본적으로 정당혐오적이다. 나는 이 혁신안을 보며 특정 정파의 유불리 차원을 떠나 우리나라에서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정당제도가 과연 정상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7) 진중권과 일베는 무엇이 다른가?

 

2015년 9월, 천정배가 대각선 방향으로 서로 마주 보는 의원회관 사무실을 쓰고 있는 안철수의 방에 들러 소소한 정치적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에서 안철수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호남 민심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우리 당의 혁신으로는 호남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면서 천정배에게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천정배는 “새정치연합이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체적 혁신도 어렵고 혁신으로 살아나기 어렵다”며 안철수에게 “새로운 판을 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두 의원이 잠깐 만나 이런 식의 평범한 정치적 의견을 교환하자 TV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등 시중에 이름이 꽤 알려져 있는 한 인사는 다음과 같은 자극적인 트위터 발언을 했다. 그의 발언을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충분히 간추려 감상해보자.


“전국적 승리를 위해선 지역색을 벗거나 벗으려 한다는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데, 그 당 의원들이 거꾸로 호남 지역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것은……그들 스스로 총선승리나 정권교체는 물 건너갔다고 본다는 얘기죠. / 남은 것은 자기들 이권. 그래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바바리맨이 되어 바지 까고 적나라하게 지역주의 드러내는 거죠. 안철수-천정배 만남……구태 중에서도 저런 엽기적 구태는 처음 보네요. 한심한 인간들……. / 정의당이 원내교섭단체만 돼도 야당교체가 이루어지거나, 최소한 새정연이 위기의식을 느껴 제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겁니다. / 저 지랄이 어떤 지랄이냐 하면, 조금이라도 유권자들을 생각하면 인두겁을 쓰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지랄입니다. 자기들이 뭔 지랄을 해도 유권자들은 새누리당 싫어서 결국 자기들 찍을 수밖에 없다는 배짱에서 나오는 배 째라 지랄이죠. / 새정연 지지하는 분들, 배 째달라고 하는데, 확실히 째 드리세요. 다시는 저 지랄 못하게……. / 고전 읽으며 우아하게 살고 있는데……새정연 애들이 기어이 트윗질 하게 만드네……ㅠㅠ.”


기사에 발언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면 나는 기자가 조회수 올리려고 무슨 일베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을 쓸데없이 기사화한 것이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발언자는 미학자 진중권이다. 내가 놀란 건 “바지 까고” “엽기적 구태” “한심” “인두겁” “지랄” “배째라” 등의 자극적 표현이 아니다. 이런 표현들로 언론의 자유를 즐기는 건 그의 취향이다. 내가 놀란 건 “고전 읽으며 우아하게 살고 있는” 그의 사고체계다. 그는 서울과 호남의 두 지역구 의원이 만나 호남 민심 말고 뜬금없이 강원이나 충청 민심을 주제로 얘기를 나눠야 분노하지 않고 만족했을까? 도대체 그의 마음속 밑바닥엔 뭐가 웅크리고 있을까?…….


그의 호남비하 관점은 일베와 공통된 속성을 갖고 있다. 그는 말하자면 ‘일베 바깥의 일베적 개혁․진보 이데올로기’를 말초적으로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런 ‘진보적 증상’은 계급환원주의에 대한 병적인 집착 때문에 발생한다. 계급환원주의적 진보는 내가 말하는 ‘호남 없는 개혁’ 테제 중 ‘호남 없는’이라는 명제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물론 개혁적 ‘친노’도 유사 증상을 보인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진보와 친노, 그리고 일베는 ‘호남’을 두고서는 공통의 관점을 가지지만 ‘개혁’에 대한 나름의 호불호, 그 양과 질에 있어서만 의견을 달리하는 것이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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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월간 <인물과사상>에서 제공했으며, 2회에 걸쳐 나눠 싣습니다.

글쓴이 강준만은 언론과 대중문화를 포함하여 문화사 전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조지아대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위스컨신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고 1989년부터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현대사 산책(전 23권)](2002~2011), [한국대중매체사](2007), [미국사 산책(전17권)](2010), [세계문화의 겉과 속](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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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4/25 [16: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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