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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우연, 활짝 핀 나를 찾아가는 여행
[책동네] 신혜정 시인의 '흐드러지다', 여행을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
 
김철관
▲ 표지     © 마음의숲


습관적으로 켜놓은 컴퓨터, 잠시라도 떨어지면 불안해지는 스마트폰, 공회전처럼 켜두는 텔레비전 등은 현대인의 일상이 됐다. 

이런 뭔가에 쫒기는 불안과 초초가 현대인들의 내면에 풍요를 선사하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모든 것을 접어 두고,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홀로 흐드러져 여행을 만끽하라고 조언한 책이 눈길을 끈다. 신혜정 시인의 산문집 <흐드러지다>(2016년 3월, 마음의 숲)이다. 

우연히 여행을 통해 내면을 바라보는 한 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온전한 나와 만났을 때, 고요와 침묵을 즐겼을 때, 혼자여서 더 아름다웠던 순간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나할까. 저자는 가끔 ‘여행하다’를 ‘우연하다’로 읽곤 한다. 홀로 외롭고 쓸쓸한 곳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내면을 우연히 확인하면서 부터이다. 

이 책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 터키 이스탄불, 티베트 라다크 등 세계의 공기를 마시며 찬란하게 흐드러진 시간을 보낸 저자의 여행 기록이다.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 있는 거대한 녹지 정원인 ‘티어가르텐’을 그대로 풀이하면 호랑이 정원이란 뜻이다. 과거 봉건시대 제후들이 이용했던 사냥터가 티어가르텐이다. 1830년부터 지금까지 공원으로 남아 있고, 3km정도 꽤나 넓게 베를린 동서로 가로질러 있다. 흙길과 드넓은 잔디, 공원 안의 흐르는 호수가 눈길을 끄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티어가르텐은 베를린에서 가본 다른 공원들을 백배쯤 불려 시내 한 가운데 만들어 놓은 것처럼 규모가 커서 입이 벌어지긴 했어도 모두 비슷한 느낌이었다. 우리가 공원을 만들 때 거기에 없던 나무를 가져와 심고,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보도블록을 깔고, 물길을 콘크리트로 정비하는 것과 달리 흙과 나무가 있던 길을 그대로 살리고, 물길은 물이 흐르던 모양 그대로 두는 것이었다. 중세 때부터 있던 나무들은 그 땅이 주는 기운을 받아 윤기가 흐르고 무성하게 잎을 드리우고 있었다.” -분문 중에서 

베를린 할렘버그의 오래된 아파트에 담쟁이넝쿨이 올라 가을 정취가 물씬 느껴졌던 장면, 곧잘 길을 잃곤 하던 티어가르텐, 슈프레강이 흐르는 박물관 섬에서 강 쪽으로 선텐 의자처럼 몸을 누일 수 있는 긴 의자가 일렬로 놓였던 카페, 그 앞을 지나다니던 유람선과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 등 베를린의 풍경을 저자는 사진이 아닌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무턱대고 누군가에게 말해보고 싶어진다. 우리의 몸이 과연 같은 단어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가늠해보고 싶은 것이다. 혹시 다른 터미널에서 서로를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웃으면서 같은 목적지로 향할 수 있으니까. 그곳에 닿기까지 서로를 생각하며 즐거울 수 있겠다는 그런 상상. 아주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걸고 싶어지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터키 이스탄불은 한국의 밤거리에 십자가가 빛나는 것처럼 대부분의 지역에 집이 있고, 그 주변에 수없이 많은 모스크들이 있다. 날씨가 흐르거나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면 모스크에 들어가 앉아 저자는 명상을 했다. 하지만 영화나 뉴스를 통해 보았던 극단적 무장테러집단으로 분한 이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종교는 그저 생활 그 자체였다고. 

남북이 갈라진 우리의 현실에서 국경을 넘는 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터키는 많은 나라와 구경을 맞대고 있다. 경계를 나눈다는 것은 인간이지만 땅에는 구분이 없다. 물과 바람 동물에게 그 경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인간에게 적용돼 그 경계에 따라 삶의 질이 판이하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일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고독하게 입에 단내가 나도록 종일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어색하지 않는 것, 밥을 먹거나 차를 타거나 짐을 들 때도 철저히 혼자라는 것, 우연히 누군가를 알게 돼 이야기하며 함께 걷는 것 등을 두고 혼자 하는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홀로 떠났던 이야기는 길에서 마주쳐선 모든 당신들로 인해 완성된다. 돌아와 마음을 설레게 하는 얼굴들, 다시 가서 만나야 할 당신들, 꼭 만나고 싶은 이름들...당신, 당신들과 함께 흐드러졌던 그 시간들.” -본문 중에서 

“지났던 수많은 골목과 눈에 담았던 서로 다른 바다의 모습들... 어떤 열망들이 터키라는 지극히 이국적인 공간에 풀어졌다. 어느 순간 그것이 더 이상 이국적이지 않던 그때 비로소 돌아갈 대가 돌아온 것이다.”-본문 중에서 

해발 3500m부터 시작한 고산지대 티베트 라다크의 중심부 ‘레’. 1975년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이야기 했던 책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에서 얘기했던 라다크의 현재의 삶은 어떠할까. 

“이 땅에서 인간의 문명은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했다. 자연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었다. 오래전 정착했던 사람들은 그 속에서 산이 주는 선물을 받으며 조화를 이뤘다. 야크를 방복하고, 짐승의 살은 꼭 필요한 때만 먹으며,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살아온 그들의 생활방식은 자연을 거스르지도, 순화시키지도 않고 그대로 주변과 조화를 이루면서 흘러왔다. 마치 히말라야의 산봉우리에서 만년설이 녹아 산 아래 생명을 품었듯이 말이다.” -본문 중에서 

티베트 불교인 라마교의 절을 의미하는 ‘곰파’는 터키의 모스크처럼 곧 그곳의 생활이었다. 대춧빛 승려복을 입은 라마승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불교는 라다크의 역사이자 상징이라는 것이다. 지역에서 나는 흙과 석회로 만든 곰파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하얀 빛을 발하며 산을 받들고 있는 느낌과 고독하지만 강직한 모습으로 높은 곳에 우뚝 서있는 모습에서 저자는 감탄을 한다. 

이 책은 시간, 마음 등과 어우러지는 흐드러진 여행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여행은 그곳에 머물 때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떠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그리고 다녀온 이후에도 여행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곳에 머물기 전의 나와 머물기 후의 내가 같을 수 없으므로, 머물던 시간과 만났던 사람들로 인해 이야기는 계속해 확장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저자 신혜정 시인은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시집 <라면의 정치학>이 있고, 국내 핵발전 지역을 기행한 후 쓴 산문집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는 2015년 올해의 환경 책으로 선정됐다. 옮긴 책으로 <시크한 그녀들의 사진촬영 테크닉>이 있다.


기사입력: 2016/04/23 [17:14]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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