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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우경화는 당연? '마을'운동으로 막아낸다
[책동네] 신지명의 『마이너리티 코뮌』, 거리 소수자마을에서 대안찾기
 
가게모토 츠요시

1. 책에서 마을들을 읽는다, 생활에서 마을을 읽어낸다

 

이 책은 그때그때마다 쓰인 기록의 묶음이다. 더구나 이 책을 관통하는 과제가 '마을'에 대한 사고와 실천의 실험인 만큼 어떤 기승전결은 없다. 책이 발간된 후에도 실험을 거듭하려고 열린 상태에 있는 책이기 때문에 평자의 독후감 역시 어떤 귀결점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고민하게 된 것이 많다. 이 글은 '서평'으로 쓴 것이지만 요약이나 평가보다 평자가 이 책에서 얻은 고민거리를 어떻게 발전시켰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서평에 대신하겠다. 이 서평은 이 책의 물음들에 대해 응답하려는 평자의 모색 과정을 노출시키는 글이다. 

 

▲ 신지영의 『마이너리티 코뮌』, 도쿄, 서울, 뉴욕거리 소수자마을에서 대안찾기     © 갈무리

이 책의 핵심 과제는 '마을'이다. 이는 익숙한 말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낯선 말이다. 저자는 50년대 말 규슈지방에서 실험된 '서클 마을'운동에서 그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저자는 이어서 '코뮌' 대신 '마을'이라는 말을 쓰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마을'은 어떤 실재적인 것이 아니다. 마을은 도쿄와 같은 비-마을에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도쿄에서 마을을 읽어내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도쿄와는 다른 도쿄, 다른 서울, 다른 뉴욕을 읽어내는 일이다. "우리는 도쿄가 아니라 '점거 텐트' 속에 있다."(206쪽)

 

저자는 항상 외부자로 헤매면서 다양한 '마을'에 들어간다. 저자는 외부자이지만 그것은 지리적인 개념으로서의 '외부'가 아니다. 이때 외부자란 어떠한 개별적인 '마을/코뮌'에 대한 외부자인 것이다. '마을'이라는 말에서 헷갈리기 쉽겠지만 저자가 계속 지리적 개념에 포섭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은 기억해두어야 하겠다. 또한 저자는 마을에 정착함으로써 내부자가 되는 길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한 사례로 원전관련 산업이 관민일체로 이득집단을 만든 것을 일본어에서 '원전마을'이라고 하는 일에 대한 언급도 있다(188쪽). 마피아로서의 마을이 아니라 코뮌으로서의 마을이 이 책의 시도하려는 대상이다. 그렇게 정착되거나 고정되면 그것은 이미 '마을'이 아니다. 따라서 저자가 말하는 외부/내부라는 관점은 지리적/실재적인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마을'의 외부/내부를 가리키는 것이다.

 

저자는 '서클 마을'이나 노숙자가 사는 공원 등 다양한 마을을 언급한다. 이 책에서는 논의되지 않았지만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 <우리 마을 이야기>도 그러한 '마을'을 개념화하는 데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비-마을로 인식하기 쉬운 도쿄에 마을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며, 그러한 실천과 실험의 과정을 책에 수록된 문서들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이 책에서 '일본'이라는 용어를 의식적으로 쓰지 않으려 하는 것을 느꼈다)에서 다양한 사회운동을 통해서 저자는 그 과정을 보여준다. 게다가 작은 운동들에서. 저자는 공산당을 비롯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운동이 아니라 작은 운동에 참여한다. 그러한 작은 운동은 작은 운동인 만큼 권력이 없으며, 권력이 없는 만큼 직접민주주의가 성립되기 쉬운 조건이 있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가 성립된다는 것은 '마을'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문제해결에 대해서도 외부권력에 의지하지 않고 알아서 다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을 '문제'로 삼아야 하는가라는 물음부터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자들의 운동은 다수자들의 운동이 문제로 삼지 않을 것을 문제화시킨다. 이 때문에 다수자들의 운동은 소수자들의 운동을 불편해 하거나 권력적으로 그 문제를 포섭하려고 한다. 그러나 저자가 관여한 운동들은 그러한 권력을 부정하며, 마을을 이어나가려는 과정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너무 미세한 부분에 집착하는 것은 큰 운동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자의 사고는 이 책 마무리 부분에 있는 <실즈>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서도 엿볼 수 있다.   

  

2. 원전사태 이후의 사회운동과 이방인

 

311의 지진, 312의 원전 폭발이라는 사태를 도쿄에서 저자가 어떻게 마주했는지에 대한 단상들이 중요하다. 그 단상들은 지진으로 붕괴된 지역을 어떻게 부흥시킬 것인가라는 과제에서 어떻게 마을적인 것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물음과 결부된다. 그런데 부흥의 과정이란 '일본'이라는 모호한 이데올로기를 다시 세우려는 세력들도 전유하려는 대상이다. 1923년의 지진 후 염상섭은 "진재 이후에는 동경 인심이 더 야박하여진 것 같기도 하"다(<숙박기>염상섭 전집9)고 썼다시피 부흥의 과정에서 얼굴을 내민 것은 '마을'과 배반되는 것일 수 있다. 

 

이는 반원전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고향'이라는 창가를 통한 호소는 '일본이데올로기'를 지탱해 줄 기반으로 기능했다. '고향'은 단일한 '일본'을 상징해버린다. 일본이란 것은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며, 역사성을 띠며, 정치적인 과정을 통해 구성된 지역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고향'은 황민화의 노래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동시에 '일본'이라고 불리는 여러 지역의 구체성을 제거하며, 그리운 풍경을 마치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상상하게 만든다. 운동에서 '고향'이 노래될 때 저자는 불편하게 느끼지만 다수의 참가자들은 그것에 위로받는 것이다. 

 

저자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도쿄에서 지진 후의 사회운동에 참여한다. 그때 일본어를 후천적으로 배운 자로서 일본어를 외치는 일에 대한 고찰은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다. 투쟁의 말에는 특유의 어감이 있다. 따라서 의미뿐만 아니라 억양 역시 발화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어를 학습한다는 것은 '의미'에 집중해서 배우게 될 터인데, 일본어를 쓰면서 생활한다는 것은 억양이나 말투가 의미의 잉여부분을 표현한다는 것을 느끼는 과정이겠다. 외국어 배우기란 후천적으로 유아기를 체험하는 일이겠지만 의미의 외부를 촉각적으로 알 수 있는 계기인 것이다. 한국의 외국인노동자의 '투쟁!'이라는 어조와 같은 감각을 저자는 '왓쇼이!와쇼이!'라는 구호에서 느꼈다고 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공통의 언어에 대한 사고를 펼쳐간다. 공통의 언어는 함께 경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선험적으로 아는 '모어'가 아니기 때문에 공통의 현장을 통해서 공통 언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어조와 의미를 선험적으로 바로 연결시키기 때문에 언어소통이라는 것을 선험적인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소통이나 연대라는 것은 그때마다의 관계에서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선험주의를 넘어선 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단계에 대한 체험을 소중히 해야 한다. '모어'가 아닌 말을 쓰는 일은 언어를 물질과 같은 것으로 촉각적으로 경험하는 일일 것이며, 따라서 언어가 가시화되기 쉽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방인이기 때문에 별개의 감각을 가질 수 있으며 생활 장소인 도쿄에서 도망갈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이며, 피폭에 대해서 무섭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방사능은?

 

지진 후의 사회운동은 보이지 않은 방사능을 문제시했다. 방사능을 보기 위해서는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는 눈이 아닌 별개의 눈을 가져야 한다(물론 어떤 눈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의 시각능력에서는 파악할 수 없지만).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저자는 '귀신, 유령, 소문'(228쪽)에 착목한다. 일본정부나 도쿄전력이 '과학적'인 설명을 계속하려고 한 것도 이러한 '귀신, 유령, 소문'의 영역을 없애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러한 어용학자들의 말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모어'라는 자장에 있으면 보지 못하는 것이 필요하다. 평자의 경험인데, 지진 직후 도쿄의 친구에게 "이 사태가 된 후 어떠한 정보를 믿어야 하는지 곤란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친구는 어떻게 대답했는가? "소문이나 근거 없는 말을 믿어라!" 

저자는 지진 후 사회운동에서 '국민'이란 주어가 등장한 것에 대해서 경계할 뿐만 아니라 '시민'이라는 주어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왜냐하면 비시민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시민을 위해서라는 말이 노숙자 추방의 이유가 된 도쿄에서 '시민'은 운동의 바탕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시민'비판은 미나마타병에 대해서 계속 발언해온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가 쓴 '사민(死民)'(일본어에서는 死와 市가 같은 발음)이라는 용어가 보여주듯이 역사가 있는 것이다. 이시무레는 미나마타 병자들을 '死民' 이라고 표현하며, 도쿄의 관료들은 死民 이하인 인간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이시무레 미치코전집 4권). 구체적인 논의는 못하겠지만 일본에서 시민 비판은 계속 제기되어온 과제였다. 시민이라는 용어는 결코 국민을 대신해주는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진 후 사회운동에서는 심지어 '국민'이라는 주어까지 얼굴을 내민 것이다. 이때까지 쌓아 온 운동과 사상의 성과들은 도대체 어디에!  


그런데 이 '국민'을 주어로 삼아 외국인이나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지 않은 운동은 지진 이후에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일본공산당을 비롯한 세력들은 계속 국민주의를 내세워 왔다. 국민주의에 대한 비판 역시 있었다. 전공투 운동에 대한 화교 청년들의 고발이나 70년대 이후 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의 연대운동도 그러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그것에 응답하려는 일본인의 운동에서도 배울 만한 부분이 많다. 그렇다면 왜 굳이 지금 이 지점에서 다시 '국민'비판을 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지진 후의 운동이 그때까지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다수 모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분노를 표출하는 용어로 자연스럽게 선택한 것이 바로 '국민'이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말로 '국민'이 나왔기에 저자는 그것을 비판하려 한다. 이러한 운동은 저자가 지진 전까지 참여해온 작은 운동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저자가 관여해온 운동에서는 '국민'이란 용어는 말할 것도 없이 나타날 리 없었겠지만 막상 큰 운동의 자리에서는 마치 가장 자연스러운 대명사인 것처럼 '국민'이 난발되는 것이다. 운동과 사상의 축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공통 주어로 등장하는 '국민'이라는 말에서는 일본사회의 본질을 볼 수 있을 듯하다. 과거 운동의 문서들에서 다시 배우면서 지금 현실을 풀어나가는 작업에 저자는 '마을'의 이방인으로 이미 참여하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처음과 끝이 모리사키 가즈에의 인용이며, 기타 모든 내용은 그 인용문 사이에 있다. 이것은 저자가 무엇으로부터 현실 비판의 사상을 얻으려고 하는지를 보여준다.  

 

3. 마을에서 바라보는 <실즈>

 

큰 운동에 대한 물음으로 저자는 <실즈>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 <실즈>에 대한 논의에는 중요한 문제제기가 담겨져 있다. 이 부분이 일본어로 발표되었다면 일본에서 화제를 얻을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이다. 


저자는 이전까지 관여해온 운동이 '말하는 걸 고분고분 듣는 놈들이 아니야!'(ECD라는 좌파 랩 가수의 말)로 대표되는 바틀비적인 수동적 대항이었다면, <실즈>는 '우리말 들어라!'는 능동적 대항이라고 정리한다. 그러니까 상당한 형식적 차이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실즈>가 내세운 선언문에 대한 검토를 하면서 구태의연한 부분을 지적한다. <실즈>는 전후 일본을 평화로 규정하거나 일본을 유일한 피폭당한 나라라고 말하는 등 국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실즈> 비판은 저자가 아니더라도 이미 많이 논의된 내용이다.

 

저자는 운동이 확대되어 가는 현상의 하나의 반영으로 이 말들이 나오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운동 확대 현상을 "중산층 합류 및 우파 세력과의 뒤섞임"(507쪽)이라고 표현하는데 타당한 분석이라고 생각된다. 즉 운동이 확대되어가는 양상에서 보이는 것은 기존의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층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분노가 국민주의로 표출된 것이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선택된 대명사가 '국민'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실즈> 선언문에 나타난 말은 결코 젊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를 관통하는 모든 세대의 문제이다. 따라서 <실즈>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일본 사회의 밑바닥을 건드리는 비판이 되어야 하며, 또한 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 저자는 과감하게 개입하려고 한다.


이 상황에 대해서 개입하려는 시도는 이미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실즈>의 학생들이 오키나와 현지에 가서 기지반대투쟁에 참여하기 때문에 거기서 무언가 배워오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이 섞인 평가이다. 오키나와의 반기지 투쟁 현장만큼 배움의 장소는 없을 것이며 이 평가는 타당성을 띨 수 있으나, 일본의 전후민주주의를 물음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오키나와에 의지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라는 의문이 든다. 그것보다 전후민주주의를 비판해온 일본의 사상을 다시 배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실즈>와 함께 '국민'을 넘어서기 위해 어떠한 비판적인 지식을 배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상당한 고민거리가 된다.

<실즈>를 비판 없이 찬양하는 좌파들에 대한 저자의 비판 역시 중요하다. 전공투가 권력을 잡았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것이었는지를 우리는 민주당 정권의 꼴을 목격함으로써 알고 있다. <실즈>의 의회주의적 성향에 대해서 비판하기 위해서는 더 근본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하며, 일본의 '평화헌법'이 과연 평화스러운 것이었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 고민에 대해서는 더욱 문제제기가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뉴욕에서 경험해온 구호를 <실즈>의 구호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고 지적한 점은 평자의 <실즈>인식을 바꾸어주는 시각이었다. <실즈>의 구호의 맥락에 소수자의 목소리가 있으며, 그것을 부각시켜준 이 책은 <실즈>를 또 다르게 바라보게끔 만들어준다. 

 

4. 그리고 보이는 마을들

 

일본이 우경화하고 있다는 말은 자주 듣는다. 일본이 역사를 다시 반복할 것이라는 논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1930년대에 일어난 대량 전향은 어떠한 모습으로 반복될 것인가? 평자는 전향 현상과 그것에 맞서는 움직임의 기록으로서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동시에 마을을 통해 다양한 운동을 바라보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단지 운동의 크기를 비교해서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마을이라는 사고가 운동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동성일 수 있다고.   


끝으로 이 글에서는 논의를 전개할 수 없었으나 이 책에서 읽어내야 할 몇 가지를 지적해둔다. 뉴욕 경험을 통해 얻은 인종주의에 대한 견해를 사상으로 만들어나가는 저자의 모습에서 평자는 배운 것이 많았다. 인종주의는 묻지 마 폭력으로도 나타나는 데 평자 역시 '외국인'으로 한국에 살면서 자기 스스로를 '외국인'으로 취급받지 않도록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는 거의 신체적 감각의 차원에 있는 것이며, 저자가 느낀 것과는 구체적으로는 전혀 다른 감각일 것이다. 아무튼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만들어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도쿄 마을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활동을 하는 이치무라 미사코씨와 그 동료들의 활동을 일일이 소개해준 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또한 저자는 놀라울 정도로 거리를 이동하고 있다. 계속 움직이고 있는 저자 자체가 마을을 증식시키는 하나의 운동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책에 실린 사진들이 매우 좋다. (2016년4월8일)

 

* 글쓴이는 연대 국문과 박사과정생입니다.


기사입력: 2016/04/12 [14:24]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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