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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나라를 미국과 중국 장기판의 '졸'로 만들었다"
[노컷 인터뷰] 한국작가회의 최원식 이사장 "훌륭한 문학은 시대와 불화"
 
이진욱   기사입력  2016/02/29 [00:50]

한국작가회의 최원식(67) 이사장은 한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하는 데 신중을 기하며 답변을 이어갔다. 지난 40여 년간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남북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달려 온 조직의 수장으로서 짊어진 무게감은 상당할 것이다.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찻집에서 만난 최 이사장은 작가회의에 대해 "우리 사회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작품을 통한 문학적 실천과 직접 행동에 나서는 시민적 실천을 함께 추구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한일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운행 중단, '사드'(THAAD·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 논란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이 연이어 터지던 와중에 작가회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최 이사장은 "현재 동아시아 화해 운동은 박살이 났다"며 "현 정부는 민주주의 실현과 분단체제 극복에 역행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남과 북이 갈등 국면에 들어섰을 때 동아시아 관계도 동시에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남북이 화해 분위기면 동아시아도 그 흐름을 따라갔죠. 그동안 남북은 물론 동아시아 화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써 온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그런데 이러한 화해 분위기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이를 방해하고 저해하는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 이사장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정부가 미국의 동아시아 관리 정책에 일방적으로 따른 자충수"라며 정부의 외교 실패를 꼬집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어리석게도 지렛대를 놔 버린 채 미국 장기판의 졸, 중국 장기판의 졸이 된 상황"이다.
 
"국정교과서 사태 터졌을 때 1년짜리 역사교과서가 될 수 있는데, 누가 봐도 무리수잖아요. 커다란 반대에 봉착할 것을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정부에 대해 성공회대 이남주 교수는 '신종 쿠데타' '저강도 쿠데타'라고 봤습니다. 결국 이러한 흐름을 통해 보수정권을 재창출하려는 것이죠. 이렇듯 정권 재창출을 위한 교묘한 움직임을 얕은 수로 판단하고 과소평가할 경우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이를 저강도 쿠데타 국면이라고 보면 좀 더 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사회적 책임은 한국문학의 오랜 전통이요 명예로운 전통이고, 좋은 문학은 그 자체가 새로운 사회"라며 "지난해 벌어진 표절사태는 한국문학을 다시 추스러야 한다는 하나의 징후로 다가온다"고 강조했다. 임기 2년 동안 작가회의가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로부터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뜻을 모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이유다.


"훌륭한 문학은 기본적으로 자기 시대와 불화합니다. 훌륭한 문학은 자기 시대에 아첨하거나, 그로부터 도피하지 않습니다. 회원들과의 토론을 통해 이러한 점을 확인하면서 문학을 다시 추스러 나가는 것이 한국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도 기여할 겁니다. 판소리 금언 중에 '귀명창이 명창 만든다'는 말이 있어요. 결국 훌륭한 독자들이 훌륭한 문학을 만드는 거죠. 좋은 작품을 읽어주고, 좋은 의견에 귀기울여야만 좋은 문학이 커요. 그렇게 우리 스스로 수준을 높여야만 그에 걸맞은 정부도 갖게 될 겁니다."
 
지난달 23일 작가회의 이사장에 선출된 이래 취임 한 달째를 맞은 최원식 이사장과 나눈 이야기를 꼼꼼히 기록했다. 최 이사장이 들춰낸 한국 사회의 민낯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그리고 인터뷰 내내 문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그의 진심이 오롯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 이사장으로 선출 된 뒤 한 달가량 지났는데, 소회를 전하면.


= 평소에도 느꼈지만, 선출된 날 총회에서 실감한 게 있다. 총회 말미에 신입회원들이 인사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75명으로 굉장히 많더라. 최근의 보수화 바람 탓인지 운동성 강한 단체들이 후속세대에 대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이 점에서 작가회의의 젊은 회원이 75명이라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나중에 실무자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문단에 새로 등단한 작가들 사이에서는 작가회의에 가입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흐름이 세워졌다더라.
 
작가회의의 모체는 1974년 꾸려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이하 자실)다. 당시 자실은 소수의 작가들로 시작했지만 고은, 황석영, 신경림 등 뛰어난 작가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키워드를 갖고 유신정권에 저항했다. 유신은 표현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억압한 시기였으니, 당대 문학 발전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 사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실은 그렇게 태어난 조직이었다. 현재까지 40여 년을 이어오면서 이제는 작가회의가 단순한 저항문학단체를 넘어 한국문학을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의 작가회의는 지부까지 치면 전국적으로 3000곳이 넘는 큰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사장으로 한 달을 보내면서 절감하고 있는 것은 작가회의가 완전히 자생적인 조직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이명박정권 때 '시위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던 상황에서도 우리는 '지원 받지 않겠다'며 각서를 쓰지 않았다. 그래서 뜻을 함께하는 문인들이 더 많이 모였다고 본다. 지금도 이러한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현재 회원들의 회비 납부율은 절반이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상을 탄 회원이 일정 정도를 작가회의에 내는 전통도 있고, 작가회의를 후원하는 특별회비도 많은 덕에 재정적인 독립을 이룬 상태다. 작가회의 선배들이 세운 하나의 원칙이 있는데, 경상비는 절대로 외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외부의 어떠한 지원 없이 우리 힘으로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그만큼 이사장으로서 '잘 꾸려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 작가회의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조직으로 꼽힌다.


= 작가회의는 무엇보다도 '문학적 실천'을 우선시한다. 문학적 실천은 뛰어난 작품을 내놓는 것이다. 뛰어난 작품은 사회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을 갖기 마련이다. 문학의 사회적 책임을 깊이 자각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내놓음으로써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그렇게 한국문학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작가회의 모체인 자실은 유신체제의 어둠이 깔린 길거리에서 태어났다. 정부의 부패, 그릇된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민족적·민중적·전인류적 가치에 입각해 시민의 자유를 행사하는 '시민적 실천' 또한 우리의 책무인 이유다.
 
결국 우리 사회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문학적 실천과 시민적 실천을 함께 추구하는 곳이 작가회의다. 훌륭한 문학은 기본적으로 시대와 불화한다. 훌륭한 문학은 자기 시대에 아첨하거나, 그로부터 도피하지 않는다. 동서양의 위대한 문학은 모두 그래 왔다. 현 시대에서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문학으로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안에서 작가의 양심에 따라 정치적 자유를 행사하는 단체가 작가회의인 것이다.
 
▶ 취임 전후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한일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사태 등 한국사회를 뒤흔든 일들이 연이어 터졌다. 이러한 사건들을 보면서 어떠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는지.
 
= 현재 작가회의 내부에서는 토론을 통해 우리 시대에 맞는 어떠한 문학적 실천을, 정치적 자유를 추구할지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높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수호하기 위한 실천은 중요한 가치로 공유하고 있다. 과거 자실은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 실현과, 이를 바탕으로 한 분단체제 극복을 원동력으로 삼아 탄생했고 발전해 왔다.
 
우리 시대의 달라진 상황은 '지방자치'와 '동아시아' 문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작가회의가 민주주의 실현과 분단체제 극복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민주주의 실현과 함께 지방자치 정착을, 분단체제 극복과 함께 동아시아 화해를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 서울 중심의 문학운동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직결된 지방자치를 좀 더 높은 수준에서 고려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지방자치를 바탕에 두고 어떤 민주주의를 실현할지, 이를 토대로 어떻게 분단체제를 극복하면서 동아시아 화해 운동을 이어갈지가 관건이다.
 
그런데 현재 동아시아 화해 운동은 박살이 났다. 전에 어떤 분이 "지금 한반도 문제는 내재화에서 외재화로 방향을 꺾었다"고 진단했는데 크게 공감한다. 당사자인 남과 북이 한반도 문제에서 배제됐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 문제 역시 외재화 했다고 본다. 현 정부가 민주주의 실현과 분단체제 극복에 동참하지 않고 역행하고 있는 탓이 크다. 누가 봐도 분명하다.


▶ 현재 한중일 문인들을 주축으로 꾸려진 동아시아문학포럼 조직위원장을 겸하고 있는데,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한일 '위안부' 합의 등으로 불거진 동아시아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나.
 
=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남과 북이 갈등 국면에 들어서면 동아시아 관계도 동시에 갈등을 일으켰다. 남북이 화해 분위기면 동아시아도 그 흐름을 따라갔다. 백낙청 선생이 '분단체제'를 처음 언급했을 때는 남과 북의 체제가 대립하면서도 공존하는, 일정한 재생산 구조를 갖춤으로써 안정성을 띠고 있었다. 현재는 이러한 분단체제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는 남이든 북이든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무력으로든, 무엇으로든 흡수하는 통일은 모두에게 불행이라고 여겨 왔기에 남북 화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화해 분위기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이를 방해하고 저해하는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 동아시아 전체가 민주화에 역행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 제가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러한 흐름도 새로운 동아시아, 새로운 한반도를 만들어내는 도정의 과정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그러한 당위를 지녀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쌓아 온 것들이 이렇게 무너져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일제 말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친일에 빠진 데는 '이제 독립은 물건너갔다'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진짜 눈을 가진 분들은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했을 때 '해방이 멀지 않았다'고 느꼈다. 당시 독립을 이루리다 믿었던 사람들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상황을 보면서 어땠을까. 그걸 생각하면 지금의 어둠과 혼란도 새벽의 직전이 아닐까.
 
▶ 개성공단 운행 중단 이후 남북관계가 벼랑 끝으로 치닫는 와중에, 박근혜정부가 사드 도입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 외교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높은데.
 
= 최근 들어 사드 문제를 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 얘기가 달라지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전 미국이 북한에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논의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려지지 않았나. 지금 우리도 모르게 북과 중, 북과 미 사이에서 어떠한 얘기가 오가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우리는 미국 장기판의 졸, 중국 장기판의 졸이 된 상황이다. 기가 막힌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문제를 빨리 내재화해야 한다. 남북이 직접 나서 대화를 다시 시작해 주도권을 가져와야 미국, 중국, 일본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리석게도 지렛대를 놔 버린 상태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만 봐도 일방적으로 미국의 기조에 따른 결과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일본을 축으로 하고 있다.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샌프라시스코강화조약을 맺고 일본에 대한 민주화 개혁을 중지하는 한편 동아시아를 일본이 관리하도록 했다. 이러한 기조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승만 독재정권이 붕괴된 데는 일본의 동아시아 관리에 대해 이승만 정권이 저항했기 때문이다. 물론 4·19혁명은 위대하지만, 미국이 이승만 정권을 지지했다면 이승만은 하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박정희가 정권을 잡은 뒤 1965년 한일협정이 이뤄지면서 일본에게 동아시아 관리를 위임한 미국의 정책을 받아들인 것이다.
 
▶ 외교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 그동안 중국과는 잘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외교라는 게 이렇게 확확 바뀌는 것이 아니잖나. 우스갯소리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교를 잘 못하는 이유를 말할 때 겉과 속이 똑같기 때문이라는 말도 한다. 일본은 절대 '혼네'(본심)를 드러내지 않고, 중국은 얼굴을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며, 미국은 오리발부터 내민다. 우리는 이를 다해도 현 상황을 극복하기 어려운 판에 단선적인 외교만 고집하고 있다. 졸이 된 지금의 꼴은 보통 사람들도 다 느끼는 자충수다. 중국, 일본의 외교를 보면 그야말로 일관되게 밀고 나간다. 시진핑이나 아베의 외교 기조는 그동안 바뀐 게 없다고들 말한다. 미국 역시 서양의 오랜 패권을 이어받았기에 외교에 대한 지혜를 갖고 있다.
 
반면 우리는 널을 뛰었다. 남북관계가 나빠지면 나빠질수록 미국은 동아시아 패권에 성큼성큼 다가간다. 현재 미국의 모든 전력이 한반도에 전개되고 있다는 게 그 근거다. 우리 정부가 이런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 누군지 밝히기는 어렵지만, 전직 고위 외교관들 얘기를 들어봐도 현재 정부의 외교는 문제가 심각하다고들 걱정한다. 외교야말로 한 사람이 오래 하면서 집단적으로 지혜를 전수해야 하는 분야인데, 현 정권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은 전혀 진보가 아니다. '테크노크라트'(전문 기술을 바탕으로 조직·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인 그들이 걱정할 정도로 박근혜정부의 외교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 현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한일 '위안부' 합의, 북한과의 대립 등을 무리하게 끌고가는 것을 두고 가깝게는 총선, 멀게는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노림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 이게 굉장히 무서운 수다. 국정교과서 사태 터졌을 때 1년짜리 역사교과서가 될 수 있는데, 누가 봐도 무리수잖나. 커다란 반대에 봉착할 것을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정부에 대해 성공회대 이남주 교수가 '신종 쿠데타' '저강도 쿠데타'라고 봤다. 결국 이러한 흐름을 통해 보수정권을 재창출하려는 것이다. 현재 일본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그 모델(일본 자민당은 1982년 역사교육을 장악하려는 '역사교과서 검인정 파동'을 통해 보수세력을 결집시켰고 이후 본격적인 우경화의 길로 접어들었다)일 것이다.
 
보수파에게는 지난 15년간(최 이사장은 "김영삼정부도 민주정부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정권을 빼앗겼던 경험이 워낙 뼈아팠을 것이다. 그것 아니면 잘 설명이 안 된다. 이렇듯 정권 재창출을 위한 교묘한 움직임을 얕은 수로 판단하고 과소평가할 경우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를 저강도 쿠데타 국면이라고 보면 좀 더 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점에서 저강도 쿠데타론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 지금처럼 동아시아 문제가 불거지는 상황에서 한중일 문인들간 연대 움직임은 없는지.


= 동아시아는 그동안 분쟁과 갈등 속에 있었다. 평화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화약고'인 한반도 문제를 풀어야 한다. 지난 2008년 한중일 세 나라 문인들이 모여 만든 동아시아문학포럼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동안 한일, 한중, 중일 등 양자 포럼은 많았는데, 세 나라가 모인 것은 처음이다. 오는 2018년 한국에서 4회 대회가 열릴 예정인데, 세 나라 문인들은 포럼에 대해 동아시아 평화의 소중한 초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은 국제적으로 이뤄졌기에 분단의 극복 내지 통일도 국제적으로 이뤄져야만 한다. 그러려면 우리를 둘러싼 4강을 설득해야 한다. 아무리 일본이 미워도 설득하지 않으면 통일 한반도로 갈 수 없다. 중국은 물론이요, 러시아는 소련 붕괴 뒤 한 발 뒤로 빠졌지만 여전히 중요하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이 결정적이다. 이 네 나라를 설득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일처럼 가까이 붙어 있으면서 서로에 대해 무지한 나라들도 없는 것 같다. 앞서도 말했지만 남북 화해를 위해서는 동아시아 문제를 내재화시켜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중국과 일본을 설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러시아를 설득해야 한다. 북을 포위해서는 절대 안 된다. 동아시아문학포럼이 잘 발전하면 북을 포용할 수 있다. 이에 앞서 우선 세 나라 문인들이 모여 교류하면서 서로의 문학과 사회를 이해하자는 것이다. 작가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새로운 동아시아를 만드는 데 바탕이 되는 것이다.
 
▶ 작가회의 내부적으로는 동아시아 평화, 남북 화해를 위한 실천을 어떻게 이어갈 계획인가.
=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작가회의가 너무 운동단체로 비쳐지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안팎으로 있다. 그래서 성명서 하나를 내더라도 내부적 합의를 통해 꼭 필요할 때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고자 한다. 작가들의 성명서라면 더 신중하고, 더 시야를 넓게 봐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 토론을 하면서 문인들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찾아 채택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 새 집행부와 그런 논의를 하고 있다.
 
▶ 임기 2년 동안 작가회의를 어떻게 꾸려가고자 하는지.

= 현재 한국 사회에서 문학의 위상은 주변화 됐다. 1970년대 자실은 뛰어난 문학을 생산했고, 그 뛰어난 문학이 가장 뛰어난 정치적 실천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민주화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가 만들어진 지금에 와서는 뜻밖에도 문학의 위상이 떨어졌다. 이러한 변화된 조건 안에서 문학의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구출할 것이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우리 시대에는 이런 문학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회원들의 생각을 토론을 통해 듣고, 문학의 위상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분발해야 한다.
 
한국문학이 한참 잘 나가다가 지난해 표절사태 등으로 나락에 빠졌다. 표절사태는 문학을 제대로 다시 추스러야 한다는 하나의 징후로 다가온다. 좋은 문학은 그 자체가 새로운 사회다. 황석영의 문학이 미래 한국 사회의 모습을 선취했듯이 말이다. 지금의 문학에서는 그런 점이 잘 안 보인다. 그러니 표절사태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는 것이다. 토론을 통해 이러한 점을 확인하면서 문학을 다시 추스러 나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엄혹한 시기에 사회적 실천을 위한 한국문학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 우리 문학이 이렇게 된 데는 문학인들이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최근 드라마 '유나의 거리' '미생' '송곳', 영화 '내부자들' 등을 보면서 '우리 문학은 뭐하고 있었나'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 드라마, 웹툰이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파악하고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문학은,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작가회의 문인들조차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나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 옛날 식의 민중·민족·리얼이즘 문학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적 책임은 한국문학의 오랜 전통이요 명예로운 전통이다. 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출구를 찾고자 뜻을 모아야 할 시기다.
 
판소리 금언 중에 '귀명창이 명창 만든다'는 말이 있다. 결국 훌륭한 독자들이 훌륭한 문학을 만드는 것이다. 한 사회가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경청의 자세는 필수다. 정부만 그런 게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안 듣고 안 읽는다. 여기에는 민주정부들이 박정희 경제 모델을 극복하지 못한 영향도 커 보인다. 기본적으로 경제 모델이 비슷비슷해서 박정희의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넘어설 무엇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한 극복이 대안처럼 다가온다. 좋은 작품을 읽어주고, 좋은 의견에 귀기울여야만 좋은 문학이 크고 나쁜 문학이 자라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 스스로 토론하면서 수준을 높여야만 그에 걸맞은 정부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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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2/29 [00:5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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