島山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흥사단(興士團)에서는 아직까지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호칭을 "군(君)"으로 부른다. 어떠한 조건과 상관없이 인간을 임금처럼 섬기자는 의미인데 지금으로 따지면 양성평등의 의미와 더불어, 연령이나 직책이 가지는 무게를 떨치고 평등한 관계속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을 지향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 도산은 살아생전 이 평등의 가치를 흥사단원, 나아가 국민들에게 전파하려 했던 걸까.
▲ 지도자의 소통과 인격, 토론과 평등을 중시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 ©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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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직책이 높거나 나이가 많으면 회의나 토론의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이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며 제압하려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나보다 나이가 적거나 직책이 낮은 자가 아는 척을 하거나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면 건방지고 무례한 사람으로 전락한다. 의견이 다르다고 토론한다는 것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치부된다. 이는 조직, 나아가 집단이나 사회, 국가의 발전을 필연적으로 저해한다. 의사결정 과정에 충분한 토론이 결여되고 쌍방향 의견 개진이 차단되는 시스템하에서 갈등과 대립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물며 우리는 지금 왕정에 살고 있지 않다. 한사람의 왕이 유일하게 옳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왕의 신하로서 그의 생각에 복종하는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아픈 피의 교훈을 딛고 일어선 숭고한 가치이기도 하지만 토론의 자양분으로 평등의 꽃을 피운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엄있게 지향하는 국가의 지도자는 내가 지향하고 주장하는 정책을 설득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설득하는 민주주의의 프로세스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의무가 있고, 또 그 모범을 보여야 할 시대적 책임감과 엄중함을 갖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대통령의 모습속에서는 상대방과 의견을 나누고 내가 가진 신념과 정책을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다. 내가 하라는대로 따라오라는 식, 명색이 한 국가의 지도자가 내 생각이 다 맞는데 반대 입장의 사람들을 어이없다는 식으로 반응하며 나라 말아먹는 사람처럼 대놓고 신경질적으로 혀를 차는 모습등은 이해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국정교과서 밀어부치기, 할머니들을 더 어이없게 한 위안부 문제 타결, 국민을 울리는 개성공단 일방 중단, 필리버스터를 보고 책상을 내리치며 화를 냈다는 것등이 이를 방증한다. 왜 대통령은 기자회견하면서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을까. 왜 대통령은 야당과 둘러앉아, 국민과 소통하며 대화하지 않을까. 내 주장이 다 옳으므로 그런 대화와 토론을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고 자신에게 표를 준 사람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1000만인 서명운동에 싸인하며 오죽했으면 국민들이 이렇게 하겠냐고 말하면서, 한겨울 길거리에서 노숙하며 소녀상을 지키겠다는 대학생들의 오죽함, 왜 우리를 두 번 죽이는 것이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오죽함,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야당 국회의원들의 오죽함은 들리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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