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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웠던 경찰, 다정한 이웃이 되다
[류상태의 문화산책] 길 잃은 어머니를 찾아준 경찰에 감사하며
 
류상태   기사입력  2016/02/14 [16:19]

내 어린 시절, 경찰은 무서운 아저씨들이었다. (그땐 여경은 없었거나 있어도 만나기 힘들었다.) 195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 경찰은 늘 수갑과 권총을 허리에 차고 무서운 표정으로 범죄자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경찰서나 파출소(지금의 지구대) 정문 양쪽에는 늘 ‘때려잡자 공산당’ ‘간첩신고는 000’ 등의 간판이 붙어있었다.

 

하여 어린 마음에 길에서 만나면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되는 반갑지 않은 사람들이 경찰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는 것일까. 지금도 경찰은 정서적으로 그리 반갑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런 내가 갑자기 경찰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길 잃은 어머니를 찾아준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가 길을 잃은 날은 지난 1월 29일 금요일이었다. 늘 그랬듯이 다니시던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물리치료실까지 모셔다 드렸다. 이후 나는 약국에 들러 약을 타서 먼저 집으로 돌아오고 어머니는 혼자 물리치료를 받으신 후 집까지 찾아오시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때까지는.

 

그런데 그날은, 오실 시간이 지났는데 소식이 없었다. 경로당에 가보았다. 계시지 않았다. 다시 병원 물리치료실로 찾아갔다. 치료를 마친 어머니가 떠난 시간이 이미 한 시간이 넘었단다. 아내와 집 근처를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사색이 된 아내는 병원 근처 도로로 뛰쳐나갔고 나는 동네 지구대에 실종신고를 냈다.

 

경찰과 함께 병원 CCTV를 살펴보았다. 병원 문을 나선 어머니는 앞선 사람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 화면에서 사라졌다. 왼쪽으로 가셔야 되는데... 왼쪽으로 눈만 돌려도 우리 아파트가 바로 코앞에 보이는데... 울먹이는 아내와 나에게 경찰이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지금 순찰대원이 총동원되어 샅샅이 찾고 있으니 곧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사라진 지 세 시간쯤 지나 병원에서 거의 1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나와 줄곧 연락을 주고받은 경찰이 아내와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다른 차편으로 도착하셨다.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어보였다. 고생한 분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경로당에 다녀오겠다고 하셨다. 쉬셔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현관을 나서고 계셨다. 평소처럼 저녁식사시간이 되어서야 들어오신 어머니는 식사를 마치고 잘 주무셨다.

 

문제가 생긴 걸 안 건 다음날 아침이었다. 얼굴이 퉁퉁 부은 어머니는 일어나지 못하셨다. 앉지도 못하고 통증을 호소하시는 어머니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어제 저녁까지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아마도 어머니는 길을 잃으셨을 때 어디선가 넘어지셨거나, 경로당에 오가시는 도중에, 또는 저녁이나 밤중에 화장실에 다녀오시다가 넘어져 다치셨을 것 같다. 병원에서 엑스레이와 MRI 검사를 받았다. 예상대로 어디선가 넘어져 허리를 다치셨다. 어머니는 지금 혼자서는 화장실도 마음대로 다녀오시지 못한다. 이번 주 2차 엑스레이와 피검사 결과에 따라 시술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동안 경찰은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긴박했던 순간 최선을 다해 도와준 그분들의 도움을 잊지 못할 것이다. 고맙다는 인사에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며 위로해주신 일, 전화로 재차 안부를 물어왔던 일, 치매치료지원제도에 대해 자세히 안내해 준 일 등이 생각난다.

 

그런데 어제(2월 13일), 그러니까 사건이 일어난 지 이미 보름이 지났다. 경찰 한 분이 전화를 주었다. 어머니를 찾은 순경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경찰이라기보다 20대 초반의 전형적인 아가씨 말투였다. 동료들 사이에서 어머니 사건을 내부 소식지에 실어보자고 한 것 같았다.

 

찾아뵈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하는 순경의 말투는 어린 시절 뇌리에 자리 잡았던 경찰의 이미지와는 거의 정반대였다. 어머니가 그때 많이 다치셨지만 오시라고 했다. 의외라는 듯 놀라며 그래도 되겠느냐고 다시 묻는 젊은 순경의 목소리는 쑥스러움과 조심스러움이 잔뜩 담긴, 내 딸아이보다도 어린 소녀의 어투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오늘 낮, 두 분의 경찰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한 분은 사오십대의 베테랑인 것 같은 느낌의 남자 분이었고, 또 한 분은 예상대로 앳된 얼굴의 여순경이었다. 인사를 주고받는데 무전기가 삐삐거리며 무언가 주절대고 있었다. 그 시커멓고 두툼한 무전기와 녹색의 야광으로 장식된 경찰복을 보는 순간, 그 옛날 내 뇌리 깊숙이 담겨진 어떤 위압감과 거부감 같은 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젊은 순경은 어머니의 손을 꼭 쥐고 위로의 말을 하고 있었다. 경찰복을 입지만 않았으면 그냥 수줍음 많은 또래 아가씨일 뿐이다. 자세히 보니 나이든 경찰도 인상이 좋았다. 그는 부모님과 장인어른(또는 장모님)이 모두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고 했다. 건강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순경이 들고 왔던 종이봉지를 내밀었다. 비타민음료와 초콜렛이 담겨있었다. 오늘이 발렌타인 데이라 초콜렛을 좀 사왔다고 했다. 기억력은 거의 잃으셨지만 순간 판단력은 잃지 않으신 어머니는 손녀의 손을 잡으신 듯 연신 웃으시며 고맙다고 하셨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어렸을 적 내 무의식 깊이 자리 잡았던 무섭고 달갑지 않은 경찰의 이미지는 이제 사라지지 않을까! 대신 따뜻한 이웃으로서의 경찰이 그 자리를 대신하지 않을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따뜻한 이웃이 있어서 참 좋네요.^^ 그런데 아차, 찾아온 손님에게 차 한 잔, 과일 한 접시도 대접하지 못하고 그냥 보내고 말았군. 이런 이런~!!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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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2/14 [16:1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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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원득 2016/02/17 [18:48] 수정 | 삭제
  • 국민에게 주어진 위와 같은 혜택을 많은 분들이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경찰관의 한 사람이자, 대힌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요~^^
  • 이영재 2016/02/17 [15:41] 수정 | 삭제
  • 정말 따뜻한 아름다운 경찰상입니다~더불어 선생님의 칭찬이 경찰관을 더욱 감동하게 합니다!!!^-^
  • 정용선 2016/02/17 [09:57] 수정 | 삭제
  • 경기경찰청장 정용선입니다.저희 경찰관들의 선행을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25,000 여 경기경찰은 도민을 가족같이 사랑하고, 그래서 도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경찰이 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앞으로도 국민의 고귀한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머털도사 2016/02/17 [09:56] 수정 | 삭제
  • 다정한 이웃같은 경찰. . . . .훈훈한 이야기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