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IT사회문화미디어국제·과학여성환경·교육
전체기사 공지사항 사회단체알림마당 기고및토론방 편집회의실
편집  2017.06.26 [04:03]
정문순의 문학과 여성
공지사항
사회단체알림마당
기고및토론방
편집회의실
개인정보취급방침
대자보소개
광고/제휴 안내
기사제보
HOME > 정문순의 문학과 여성 >
영화 <대호>의 촌스러운 민족주의
[정문순 칼럼] 민족주의 컴플렉스 벗어야 역사 쿠데타 저지할 수 있다
 
정문순

일제강점기 범 사냥을 배경으로 한 영화 <대호>를 지배하는 것은 두 가지다. 먼저 범의 은혜 갚음이라는 고전 민담 모티브, 그리고 민족주의. 둘은 서로 결이 다르면서도 맞물린다. 민담 모티브라는 전통은 근대와 충돌하고, 민족주의는 외세와 부딪친다. 일제라는 외세는 근대의 허울을 쓰고 이 땅에 침입했다는 점에서 민담 모티브는 이 영화가 꾀하는 민족주의 기획에 포함된다.
 
범의 보은과 관련한 설화는 많다. 일찍이 삼국유사에 ‘김현감호’(김현이 범을 감동시키다.)라는 이야기도 실려 있고, 구전 민담들도 널려 있다. 어렸을 때 읽은 전래동화도 기억난다. 산에서 범을 만나 잡아 먹일 뻔한 남자가 범을 가리켜 어렸을 때 집을 나간 뒤 범으로 변신했다는 소문이 돈 자신의 형이라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목숨을 건지고, 순진한 범은 그 말을 진짜로 믿고 남자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로 생각하더니, 나중에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슬픔에 못 이겨 식음을 전폐하다 자신도 죽었다는 이야기는 참 슬펐다. 영화 <대호>는 그런 전래동화가 주는 느낌보다 얼마나 더 나은 것을 주고 있을까. 

▲ 조선 호랑이를 민족주의 관점에서 그린 영화 <대호>     © 박훈정 필름

영화가 전통 민담을 끌어오는 것 자체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항적 민족주의 코드라는 맥락과 근거를 갖추고 있다면 설득력을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어디까지나 작품에 있는 듯 없는 듯 면면히 흐르는 것이어야 하지 이 영화처럼 대놓고 노골적이어서는 의도가 너무 적나라하고 유치하기까지 하다. 작품 전면에 돌출하거나 영화의 핵심 서사로 자리를 차지하면서 다른 서사를 죽일 경우 그건 ‘옛날 옛적에~’의 현대판 버전이 될 뿐이다. 더 큰 비극은 영화의 어설픔과 유치함이 호랑이 보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군 장교가 지리산 호랑이를 조선 민족의 상징인 양 치부하고 어떻게든 손에 넣겠다고 조선인 포수들을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황군’을 끌어들이는 모습은 호랑이 보은 설화의 활용보다 훨씬 더 유아적이고 유치한 발상이다. 이는 일본이 우리를 그렇게 생각해줬으면 하는 희망사항일 뿐 객관적 사실이나 합리적인 논거에 부합할 수 없다.
 
물론 일제강점기 당시 범 사냥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는 기록은 있다. 그 때문에 조선 호랑이나 표범이 멸종돼 버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호랑이 가죽을 발 아래 깔고 거만하게 사진을 찍은 총독부 관리나 일본군 장교의 모습도 남아 있다. 일제의 범 소탕은 도시 개발이나 전쟁 군수품 확보를 위한 공식적 목적도 있었겠지만, 식민 지배에 대한 제국주의적 우월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식민지 종주국 관리들이 식민지의 토종 생물들을 마구잡이로 사냥하러 다닌 역사가 흔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제가 범을 조선인이나 조선의 혼으로 동일시하고 조선 민족의 혼을 박멸하겠다는 인식 때문에 범을 사냥했다는 식으로 비화할 일은 아니다.
 
영화가 민족의 명산 지리산에 웅거하는 전설적인 범을 조선 민족의 혼으로 설정하다보니 범은 일거에 민족영웅으로 격상된다. 범이 새끼 시절 어미를 잃고 자라면서 가족을 몽땅 잃은 것도
수탈 당한 조선민족의 운명과 동일하다. 그러나 총알에도 끄떡없는 슈퍼히어로이자 새로운 액션 영웅의 자리를 꿰찬 범의 웅자를 보니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범이 새끼 시절에 자신을 살려준 포수와 더불어 장렬한 최후를 스스로 선택할 때 영웅 신화와 저항적 민족주의는 화룡정점을 찍는다.
 
호랑이 잡는 소동을 벌이는 일본군 장교는 영화 <명랑>에서 이순신 잡기에 얼이 나가 제 목숨을 걸고 죽음의 도박을 벌이는 왜장의 모습과 정확히 겹치기도 한다. 이 점에서 민족주의 컴플렉스는 이 영화뿐만이 아니라 한국 영화, 나아가 우리 문화가 해방 60년이 넘도록 아직 극복하지 못하는 고질 중 하나인 듯하다.
 
민족주의에 과도하고 불합리할 정도로 사로잡힌 이 나라에서 왜 지배권력은 선조의 항일 역사를 은폐하고 민족을 지우려고 줄기차게 시도하는지 의문스럽다. 짐승에게마저 민족 색깔을 입히는 나라에서 친일파의 후세가 집권할 수 있고, 그 정권이 일제강점기 항일 역사를 지우는 데 안달이 나 있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달리 생각하면 우리가 집착하는 민족주의의 양상이 건강하지 못하고 일그러져 있는 한 그 약한 고리를 파고드는 것이 이 정권의 ‘역사 쿠데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민족주의 컴플렉스가 극복되지 않는다면 역사를 두고 벌이는 무모한 도박을 벌이는 자들과의 싸움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5/12/24 [20:08]  최종편집: ⓒ 대자보
 
관련기사목록
[영화] 봉준호 "넷플릭스 100% 전권 줘, 나는 행운아다" 임순혜 2017/05/17/
[영화] 노벨문학상 칠레 시인' 네루다' 망명 다룬 <네루다> 임순혜 2017/04/30/
[영화] 설마 선거가 이런 모습? 미리 본 대선 <특별시민> 임순혜 2017/04/19/
[영화] 아일랜드 풍광 속 비극적인 사랑 그린 <로즈> 임순혜 2017/04/11/
[영화] 전쟁의 상처와 슬픔 그린 영화 <랜드 오브 마인> 임순혜 2017/04/05/
[영화] 설원속, 모든것 초월한 사랑 <투 러버스 앤 베어> 임순혜 2017/03/31/
[영화] <공각기동대>, 강력한 액션 황홀한 비쥬얼의 재탄생 임순혜 2017/03/28/
[영화] 백성위에 권력으로 군림한 <왕을 참하라> 임순혜 2017/03/08/
[영화] 인종이 다른 사랑, 세상을 바꾼 위대한 사랑 임순혜 2017/02/27/
[영화]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피살사건'을 아시나요? 임순혜 2017/02/06/
[영화] 남북영화 '공조' 인기 몰이 김철관 2017/01/30/
[영화] 범죄 영화의 틀 깬 <조작된 도시> 임순혜 2017/02/01/
[영화] 영화 <판도라>가 무시한 지역말의 중요성 정문순 2017/01/09/
[영화] 영화인, 영진위 위원장-사무국장 고발 김철관 2016/12/24/
[영화] 환상의 세계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임순혜 2016/09/27/
[영화] 꿈꾸는 동화같은 영화, <우주의 크리스마스> 임순혜 2016/09/25/
[영화] '상남자'만 환영? '아수라' 시사회 女 배제 논란 유원정 2016/09/21/
[영화] 영화 덕혜옹주에서 느낀 점 김철관 2016/08/07/
[영화] "영화 '달호 이야기', 청렴공무원상 보여줄 것" 김철관 2016/07/18/
[영화] 영화 <대호>의 촌스러운 민족주의 정문순 2015/12/24/
최근 인기기사
  개인정보취급방침대자보소개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우) 120-093 서울시 영등포구 버드나루로 80 제일빌딩 별관 4층 TEL: 070-4411-5452ㅣFAX: 02-6280-5462 (web@jabo.co.kr / c.p: 010-2249-9446)
대자보ⓒ1998-2014 ㅣ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133 ㅣ 발행인 겸 편집인 : 이창은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대자보' 가 생산한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센스 2.0 : 영리금지 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