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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의 휴전을 간절히 바라며
[류상태의 문화산책] 크리스마스가 뭐하는 날이냐고 묻는다면
 
류상태   기사입력  2015/12/02 [08:09]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어느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독일군과 미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길을 잃은 미군 병사 몇 명이 독일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집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한 명은 부상을 당했고 일행은 너무나 허기져 도저히 부대로 복귀할 수 없었기에 위험한 적 마을로 찾아왔던 것이다.

 

그 시골집엔 홀어머니와 어린 딸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 같은 이 젊은 군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어머니가 보기에 이 젊은이들은 무서운 적군이 아니라 길을 잃은 불쌍한 소년들이었다. 딸은 부상당한 군인을 위해 응급처치를 해 주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시간에 정찰을 하던 독일군 병사 몇 명이 그 집을 찾아왔다. 그들 역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이 집을 찾아온 것이다. 문틈으로 내다보던 딸은 너무 놀라 기절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침착하게 그들을 맞이하고 설득했다.

 

“이 집에 먼저 온 손님이 있다. 그들은 길을 잃었고 지치고 부상당한 소년들이며 도움을 필요로 한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니 절대로 서로 총질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해 달라.” 어머니는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부탁했다. 한참 망설이고 서로 눈치를 살피던 독일군 병사들은 하나 둘 총을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그들 중 의무병이 미군 병사를 정성껏 치료해 주었다.

 

어머니는 병사들을 위해 닭을 잡고 음식을 만들었다. 어머니가 식사기도를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로 총을 겨누었던 젊은이들이 한 식탁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누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고 이들이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했다. 미군 병사들의 눈에도 독일군 병사들의 눈에도 눈물이 비쳤다.

 

식사가 끝나고 독일군 병사들은 미군에게 자기 부대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가르쳐 주었다. 어머니는 부상당한 군인을 위해 들 것을 만들어 주었고 병사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인지 문학적 창작물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오래 전 어느 종교계 잡지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읽었다.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창작이라도 관계없다. 내가 간직하고 싶은 건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소중한 뜻에 있으니까.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때 천사들이 이렇게 노래했다고 기독교성서는 전한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크리스마스는 세계인의 축제가 되었지만 단순히 축제로 그쳐서는 안 되는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바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독일군과 미군 병사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이 오늘날 우리 사는 세상에도 계속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지구마을에는 이와 반대되는 일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예수의 탄생을 누구보다 기뻐한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그의 뜻과는 반대되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의 어머니는 크리스마스를 정말 멋지게 보낸 분이다. 딸과 병사들도 그렇다.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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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2/02 [08: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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