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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마친 젊은 벗들에게
[류상태의 문화산책] 공부 못하면 못난 놈? 인생의 선택과 필수
 
류상태   기사입력  2015/11/12 [17:06]

 해마다 이맘때 치르는 수능은 우리나라 청소년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겪어야 하는 성인의식이 되었다. 잠시 후면 수험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겠지. (내가 이 글을 쓰는 시간이 11월 12일 오후, 시험이 끝나기 1~2시간 전이다.) 이제 마음껏 해방감을 맛보면 좋겠다. 낮에는 놀이공원으로, 밤에는 치맥집(치킨을 곁들인 맥주가게)으로, 젊음을 마음껏 향유하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대입전쟁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전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이 슬프다.ㅠㅠ)

 

1) 필수과목, 선택과목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 중에 중요과목이라는 게 있다. 국어 영어 수학이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국어는 몰라도 영어나 수학은 철학이나 역사보다 더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영어와 수학은 언어와 논리에 대한 기능을 키워주는 과목이지만, 철학과 역사는 인격형성에 꼭 필요한 가치관을 형성시켜주는 과목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교육과정은 내 생각과는 반대로 편성되어 있다. 인격형성보다 기능과 관계된 영어 수학은 중요과목이 되어 있고, 인격형성과 직접 관계가 되는 철학이나 역사 등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과목으로 인식되고 있다. 철학은 중고등학교에서 선택과목으로 개설할 수 있지만 선택하는 학교가 드물다. 역사 과목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요즘 들어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국사의 경우 다양한 해석을 차단한 채 국가가 나서서 한 방향으로 몰아가겠다고 하여 난리북새통이다.

 

영어와 수학이 교과과정의 중심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우리 사회가 사람다움보다 기능을 더 중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는 “누가 인생을 바로 사는가?” 보다 “누가 유능한가?”를 더 많이 묻는 것 같다. 또한 “누가 최선을 다 하는가?” 보다 “누가 높은 성적을 내는가?”에 관심이 쏠리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과 부모들이 청소년기에 반드시 겪어보아야 할 다양하고 소중한 삶의 체험들을 거의 모두 희생하고 학과성적 올리기에 매진한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경험해보아야 할 삶의 과정을 생략한 채 오로지 학과공부에만 매달리는 건 균형을 잃은 것일 뿐 아니라 위험한 선택이기도 하다. 인생의 직접공부(다양한 인생체험)는 하지 못한 채 간접공부(학과공부)에만 매달린 사람이 높은 성적을 얻고 좋은(?) 대학을 나와 큰(?) 정치인이 되면 사람 잡기 십상이니까.

 

2) 공부 못하면 못난 놈?

 

수능을 마친 젊은 벗들이여, 잠시 짬을 내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스물 전후의 시기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하지 않던가? 인생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껴보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쌓고, 건강하고 활달한 성인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시기이니까. 그런데 요즘엔 고등학생이 되면 새벽에 집을 나와 밤 9~10시가 되어야 들어간다. 모든 친구는 친구 이전에 경쟁상대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방학이 되면 여행을 떠나고 학기 중이라도 틈틈이 고전문학을 탐독했다. 마음을 넓히고 호연지기를 기르며 인생의 멋과 풍요를 위해 꼭 해야 할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고등학생이 여행을 하는 건 사치이고 문학작품을 읽는 건 시간낭비로 인식되고 있다.

 

어쨌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산 결과로 국민소득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하지만 예전보다 우리 삶이 그만큼 더 행복해졌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자살률이 급증하고 범죄형태도 더욱 잔인해지지 않는가? 나는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의 교육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성적만능주의라는 심각한 병에 걸려 있다는 진단은 이미 내가 청소년기를 보내던 1970년대에 내려졌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가 극복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사회문제다. 공부 좀 잘하면 괜찮은 학생이고 공부 못하면 못난 학생이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다. 그러나 공부는 잘하지만 참 못났고, 공부는 못하지만 정말 괜찮은 젊은이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기성세대만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게 아니고 똑같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심지어 기성세대의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젊은이도 은근히 “난 공부 못하니까 못난 놈”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학생이라면 당연히 공부 열심히 하는 게 좋기는 하다. 그러나 모두가 열심히 해도 한 반 삼십 명이면 일등 하는 학생이 있고 삼십 등 하는 학생도 나올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일등을 한 학생이나 삼십 등을 한 학생이나 성적이 다를 뿐 그 인격은 똑같이 귀한 거다. 재능과 능력은 달라도 사람이 가진 인격의 가치는 똑같은 거니까.

 

3) 인생의 필수과목

 

젊은 그대들과 좀 더 얘기를 나누고 싶다. 나는 우리 인생에도 선택과목이 있고 필수과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대가 학생이라면 자기가 맡은 전공과 학문에 최선을 다하는 건 필수사항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것, 정확히 말해서 ‘높은 성적을 내는 것’은 선택사항이어야 한다.

 

모두가 다 우등생이 되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모두가 다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 될 수는 있다. 노력한다고 다 잘할 수 없는 건 인생의 선택과목이어야 한다. 노력하면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준 인생의 필수과목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 동안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했다. 누구나 부자가 되면 좋겠지만 이 땅의 젊은이들이 다 출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노력하며 모범을 보인다면, 대부분의 젊은이들을 건실한 시민으로 길러내는 건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 사회가 그런 넉넉한 품을 갖고 있다면 말이다. (아, 그런데 왜 이리 씁쓸한 걸까?)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밝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 물려주지 못해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젊은 그대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인생의 선택과목, 그러니까 대통령이 되건, 국회의원이 되건, 떼돈을 벌어 멋지게 한 평생 살아보건, 그건 그대들이 알아서 할 문제다. 그러나 인생의 필수과목, 그러니까 건실한 시민으로 살아가겠다는 각오만은 꼭 가져달라고 부탁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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