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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들의 날갯짓? 중간은 없다
[정문순 칼럼] 일방을 위한 중재는 중립을 빙자한 비겁함 또는 강자 편들기
 
정문순

어지간해서는 언론을 타는 일이 없는 문학계가 요 몇 달 간 떠들썩하다. 한 문예지가 개최한 좌담회에 참석한 어떤 작가는, 표절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라는 주변의 요구가 많다고 하면서, “어떤 식으로 뭘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말 모를까.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데서 터진 문제가 첨예한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는데도 “나더러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반응을 보인다면 실망을 넘어 비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는 자신의 태도가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주민 지원 단체에 있던 시절 네팔로 영구 귀국했다가 방한한 이주노동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네팔의 어지러운 정치 상황에 대해 지식을 좀 얻어 보려고 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관심없다,”, “난 어느 쪽도 좋아하지 않는다.”였다. 실망스러웠지만, 그들의 태도는 정치 무관심과 냉소가 가득한 대한민국 유권자들을 생각하면 낯선 것이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네팔 사람이든 한국인이든 자신이 혐오하거나 관심을 끊은 정치세력에게서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제 손으로 정당이나 정치 모임을 새로 만들지 않는 한, 누구든 기존 정치세력의 영향권에서 놓여날 수는 없다. 양비론이나 중립에 서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중립적 태도로 산다는 것은 정치적 의사 표현이 가로막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에도 방관자가 되는 처지를 막지 못할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겪고 싶지 않은 일에도 발을 담그는 것을 막지 못하는 일이 많다. 조선일보보다 자칭 중립을 표방하는 언론들의 정치 기사를 더 혐오할 정도로 기계적 중립을 밥맛없어 하는 것이 내 신조지만, 내 삶에서 직접 중립의 폐해를 겪은 것은 재수 없는 일이었다. 이전 직장에 있었을 때 나는 상급 직원한테서 상습적인 성희롱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가끔 악몽까지 꾸었음에도 별 것 아닐 거라고 억지로 이해하려고 애쓴 세월이 꽤 오래 갔다. 그러다 퇴직하면서 그대로 묻어갈 일이 될 줄 알았는데, 우연히 만났을 때 쌓였던 앙금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직장 성희롱 피해자가 공론화를 결심한 후 겪을 수 있는 경로를 나도 피해가지 못했다. 사과를 요구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못했다. 뻔뻔스럽게 나오는 가해자한테서 2차 피해도 당하고 법적 대응으로 갈 수밖에 없나 생각하던 차에 옛 여자 동료한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가해자와 오누이처럼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나는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피해자인 당신 입장을 존중해야겠지만 나는 어느 쪽에도 서고 싶지 않다, 두 사람이 여기서 행동을 중단했으면 좋겠다……. 횡설수설하던 그 여자가 내게 한 말의 골자이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그 여자를 생각하면 몇 년이 흐른 지금도 분노 조절이 힘들다. 그 여자는 중재 역할을 맡고 싶다고 했다. 똑같은 일을 겪어도 가해자에게 아무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가해자에게 공감하고 그에게 기울어진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중재를 하겠단다. 피해자 앞에서 중립 운운하다니, 편을 들고 싶다면 떳떳하게 편들었어야 했다.
 
지금 가해자는 인권 상담도 하고, 가끔 성폭력 상담도 하며 잘 살고 있다고 들었다. 모르긴 해도, 중립적인 그 여자도 배를 불리지는 못해도 그런 대로 먹고 살고 있을 것이다. 갈등과 이견이 대립하는 국면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는 자들은 대박을 치지는 못해도 좀처럼 쫄딱 망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중간이나 2등은 보장된 삶이라고 생각하니 그들의 행태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나, 중립이오” 하는 것은 최소한 망하지는 않을 수 있는 절박한 보신책으로 선택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눈금의 한가운데 섰다고 해서 그 지점이 중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둘이 똑같이 보이더라도 누가 더 잘하고 더 잘못한 것이 없을 수는 없다. 중간 지대는 기계적 중립론자들의 얄팍한 머릿속에서나 존재할 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공간일 뿐이다. 중립 지대에 서는 것은 실상 둘 중 나쁜 쪽의 본색을 희석하기 십상인 것. 죄다 나쁘다느니,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느니 하면서 자신의 이익에는 귀신 같이 밝은 박쥐들의 날갯짓을 나는 경계하고 또 경계한다.
 
* 9월 15일 경남도민일보 게재 칼럼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5/09/23 [19:45]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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