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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애국, 40년 전으로 되돌아간 민주주의 시계
[정문순 칼럼] 40년 전 국정 교과서의 낡은 상상력을 꺼내보다
 
정문순
▲     ©정문순


<옛날 교과서를 다시 읽다>
 
고사리 손의 아이들이 두 손으로 들기도 벅찬 태극기를 만지고 있다. 40년 전 초등학교 국어교과서 표지 그림이 그랬다.
 
남북한이 기를 쓰고 툭하면 무력 충돌을 일삼거나 전쟁 전야 상황을 연출하던 냉전 시대 초중등학교 교과서에는 애국을 강요하는 이야기들이 단골로 실렸다. 냉전이나 휴전이라는 체제의 위기에서는 국가가 국민에게 애국심을 요구하기 좋은 시대였다. 전시라면 더욱 좋다. 그래서 6.25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넘은 70년대에도 국정교과서에서 전쟁 이야기가 끊임없이 등장했다.
 
6월 25일 학교에서 돌아온 ‘진수’는 교사로부터 반공교육을 확실히 받고 돌아왔는지 할머니한테 ‘6.25사변’ 때 겪은 일을 이야기해 달라고 조른다.(「태극기」, 제3차 교육과정 초등학교 국어 3-1 교과서) ‘공산군’이 얼마나 우리한테 악랄하고 소름끼치는 일을 저질렀고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재미있어하는 게 아이들의 심리다.
 
그런 경험은 나한테도 있다. 한반도 남쪽 끝자락에서 유복하게 나고 자란 내 엄마한테도 6.25전쟁의 여파가 미치긴 했다. 바짝 긴장하고 재밌는 전쟁 경험담을 들으려고 했지만 엄마의 이야기는 빈약했다. 공습 소식을 듣고 방공호에 피신해 있었는데 얼마 후 미군들이 지나가며 안심시켜 주었다는 게 엄마가 겪은 전쟁 체험의 전부였다. 전쟁이 엄마한테 미친 영향은 안 그래도 재미없게 다니던 학교를 그 길로 ‘때려치웠다’는 정도. 아버지의 경우 타격이 좀 더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한테서 직접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졸업한 학교의 성적이나 수상 기록을 전쟁 통에 몽땅 분실하여 크게 낙심했다는 이야기를 엄마로부터 전해 들었다.
 
'밋밋한' 전쟁 경험을 겪은 내 부모님에 비해 국어교과서에 나온 진수의 작은아버지 영호는 가족 이산, 피난, 방공호 피신, 총소리 등 민간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전쟁의 고통을 몸소 겪었다. 손자인 진수의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할머니는 아들 영호가 진수만한 나이에 쓴 6.26 때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꺼내어 보여준다. 할머니 말씀이 걸작이다. “네가 이 글을 읽으면 (......) 우리나라가 얼마나 고마운 나라인지 알 것이다.”
 
국민이 애국심을 느끼려면 나라가 위엄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외적이 이 나라를 넘볼 기회를 아예 주지 말거나, 침입을 받더라도 단박에 시원하게 물리쳐야 한다. 그게 맞을 것이다. 전쟁을 막지 못한데다 ‘국부’가 국민을 속이고 혼비백산 도망갔고 서울을 내준 나라의 국민이 대한민국에 애국심을 느낄 여유가 있을까.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부재는 영호 아버지의 부재로 형상화되어 있다. 아버지가 국군이 되어 용감하게 ‘공산군’과 싸운다고 한다면 식구들의 애국심이 발동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공무원인 영호 아버지는 전쟁이 나자마자 식구를 내팽개치고 혼자 어디론지 피신했다. 왜 반공시대 교과서는 가장의 체면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를 비겁한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국가와 국민을 일체화하는 시각이라면 이런 설정은 불가피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의 위기가 곧 국민의 위기라고 생각하기를 요구하는 나라라면 전쟁을 막지 못하고 도망가기 바쁜 정부라고 해도 별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식구들을 지키지 못하고 혼자 달아난 아버지라도 자식들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아도 된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이나, 남은 식구를 어머니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은 절체절명에 이른 국가가 집안의 위기다. 이 국가 외의 다른 국가를 선택하는 것이 절대 허용되지 않는 나라의 국민이라면, 전쟁을 당하여 정부가 사라진 상황을 자신의 안위도 절박해진 위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라가 국민을 버려도 나라는 어디까지나 나라다.
 
최근 일어난 남북 간의 무력충돌을 보더라도 남북 양쪽 정부는 체제 위기에 이른 상황을 국민들에게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안보 불안은 안보를 책임져야 할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접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지율을 더 높인다는 것은 언제나 사실로 입증이 되었다. 30%에 머무르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남북 상호포격 사건 이후 40%대로 훌쩍 뛰어올랐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나라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국가주의의 힘은 이토록 끈질기게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영호 아버지는 가족을 떠났지만 흔적을 남겨두었다. 태극기다. 애국심의 절정은 영호 어머니가 “아버지께서 두고 가신 좋은 것”이라면서 숨겨 둔 태극기를 아들에게 보여주는 대목. 이 부분에서 태극기는, 부재한 아버지가 사실 부재한 것이 아니고 여전히 가족 곁에 존재하고 있음을 강변하는 상징물이다. 엄마는 피난 짐을 꾸리는 와중에 이불 뜯어 그 속에 숨겨 둔 태극기를 아들에게 보여줄 여유가 있었다. 아니면 도망 간 아버지(대한민국)를 아들이 행여 원망할까봐 걱정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국가니까. 태극기를 본 아들 영호의 반응. 
 
“어머니,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를 터여요.”
나는 얼른 태극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깜짝 놀라시며 내 손을 잡았습니다.
“얘, 가만 있어. 지금 부르다가 공산군한테 들키면 큰일난다.”
나는 두 팔만 번쩍 들고 소리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영호야, 국군이 오거든 큰 소리로 불러라.”
어머니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하였습니다.
 
정부가 도망가고 아버지가 사라지긴 했지만 머지않아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두고 간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싶은 열렬한 애국심을 느껴야 한다. 미래의 아버지가 될 아들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애국심을 환기하는 대목이 필요하더라도 그 상황에서 만세를 부르겠다는 아들이나, 철없는 아들에게 태극기를 보여주는 엄마의 모습은 70년대 국정교과서 편수자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옆길로 잠깐 새자면, 사실 이 이야기의 유치함은 모자의 행동에 그치지 않는다. “공산군들은 날마다 동네에 와서 사람들을 붙잡아 가고, 곡식을 빼앗아가고, 일을 죽도록 시켰”다고 하면서도 정작 영호네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 공무원과, 군인(영호의 형은 군에 갔다.)을 둔 전형적인 ‘우익’ 가족이 적치 상황의 서울에서 국군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무사히 지내고 있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다. 영호네가 피난을 가는 것은 서울 수복 직전 남한 군대가 진격할 때뿐이다.
 
영호는 전투기가 하늘에 뜬 것을 보고도 ‘비행기’라고 부르며 국군을 수송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폭격을 해대던 미군 전투기의 실체도 숨기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교과서 편수자들은 주제 의식이 유치하면 다른 부분이라도 보완을 하여 그럴싸한 이야기를 꾸밀 만한 성의도 없었다.
 
전쟁을 막지 못함으로써 국가의 첫 번째 역할인 국민 생명과 안전 보호의 의무를 위배한 국가라도, 아니 그럴수록 국민은 국가를 더욱 사랑해야 한다는 파시즘 논리를 배우며 자란 것이 내 세대다. 내 앞 세대도 그랬다. 후속 세대도 그랬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국가주의 논리가 통하지는 않았다.
 
14년 전 6월, 사람들은 너나없이 태극기를 몸에 휘감고 거리에 몰려나갔다. 이제 태극기는 영호의 아버지나, 서울을 사수하라는 녹음기 틀어놓고 대전에 도망간 국부의 상징이 더 이상 아니게 되었나. 물론 스포츠를 국위 선양과 동일시하는 국가주의라는 지적은 있었다. 월드컵에서 우승한다고 한들 국가의 위신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전의 국가주의와 달라진 점은 자발적이라는 것이었다. 문민정부를 거쳐 사형수 출신의 인권 운동가를 대통령으로 뽑았던 시대, 한국인들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게 부끄럽지 않은 시대가 되었기에 “대한민국”을 서슴없이 외쳤다. 내 기억에 한국인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외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리라. 그 전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는 입에 떠올리기에 부끄럽고 낯 뜨거워지는 이름이었다.
 
세월이 다시 흘렀다. 설치미술인지 뭣인지 갑자기 관공서에 나부끼는 태극기 떼를 보는 세상이 되었다. 2015년 대한민국 국민들은 경찰 지구대 앞을 지날 때도 나라한테 보호받는다는 감사와 애국심을 느껴야 한다. 관공서가 아닌 큰 빌딩에는 대형 태극기가 나붙었다. 시내버스 이마에도 태극기가 붙었다.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니라고 아파트관리사무소에서는 방송에다 떠든다. 태극기를 그리 사랑하거든 정부나 열심히 실천할 일이지 왜 국민들에게 이상한 애정을 강요하는가. 40년 전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교과서의 유치한 이야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무서운 일이다. 맹목적인 애국주의를 강요하는 시대가 내 생애에 다시 올 줄 몰랐다고 한다면 내 소견이 짧은 것일까.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쌓아올린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지 2010년대 대한민국이 40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현실, 절망스럽다.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건 영호 모자 같은 멍청하고 생각 없는 국민인가. 이 나라는 정부가 도망 간 나라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태극기 들고 만세 부르고 싶어져야 한다는 40년 전 초등 교과서의 유치한 발상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묻고 싶다.
 
* 이미지 출처: KDMT Inc.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5/08/26 [00:22]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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