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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 글쓰기, 누가 멍석 깔아주었나
[정문순 칼럼] 환멸의 문단이 만든 괴물, 환멸의 문학으로 돌아오다
 
정문순   기사입력  2015/07/19 [13:36]

쇠스랑의 추억
 
“쇠스랑이라도 있으면 내 발등을 찍고 싶다.” 소설가 신경숙 씨가 <전설>의 표절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렸을 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신 씨의 『외딴방』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발언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쇠스랑’ 운운은 보통의 경우 심한 자책이나 자괴감을 다스릴 수 없을 때 쓰는 표현이지만 신 씨에게는 용도가 조금 다르다. 『외딴방』은 열여섯 살에 고향집을 떠나 상경한 체험을 다룬 신경숙의 자전적 글쓰기이자, 메타적 글쓰기를 시도한 것이다. 『외딴방』에서 자신의 발등을 찍은 쇠스랑은 작가를 꿈꾸던 열여섯 살 신 씨가 고향집을 떠나기 앞서 삶의 고통과 결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온다. 어린 소녀에게 서려있는 야무진 각오는 수십 년이 흘러 똑같은 사람의 입에서 전혀 다른 자리에서 다시 나왔다.
 
어떤 발언이든 그것에 어울리는 자리가 있고 격이 있다.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 나올 때 발언자의 진심이 의심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신 씨가, 솔직한 반성을 표해야 할 자리에 자못 비장한 ‘쇠스랑’ 발언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라고 요구받는 현실에 대해 완강히 거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아마 신 씨는 자신의 문학 인생을 걸고 결코 표절하지 않았다고 저항하는 모습을 세상이 읽어주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신 씨가 자신의 결백을 강조하는 데 동원했던 ‘쇠스랑’ 발언은 자신의 문학에서 어떤 함의를 품고 있는가.
 
면피성 발언의 용도로 전락한 현재와 달리, 『외딴방』에서 신경숙의 발을 찍은 ‘쇠스랑’은 신 씨가 글 쓰는 행위로 구체화하는 자신의 삶을 혹독하게 단련시키는 도구이자 나태함에 대한 응징의 상징으로 제시되었다. 신경숙이 자신의 살점을 찍은 쇠스랑을 치우지 않고 고향집 우물에 가둔 행위는 정갈한 자신의 내면에 삶의 가혹함이나 자신에게 형벌을 가하는 도구를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높은 차원의 정신적 각성으로 제시된다. 자신의 내면에 쇠스랑을 수용하는 한, 신경숙의 글쓰기는 활시위를 당기는 팽팽한 긴장이나 흐트러질 수 없는 필사적인 각성을 견뎌내야 하는 차원으로 격상된다. 이러한 각성은 신 씨의 체험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쇠스랑에 처음 발등이 찍힐 당시 신경숙은 “생은 독한 상처로 이루어진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고” 했다.
 
부모 슬하에서 고생 없이 자란 10대 여성이 상경을 꿈꾸며 “생은 독한 상처” 운운하는 것은 소녀적 감상성의 표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다 할 체험도 없는 10대 소녀의 입에서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듯한 각성이 나오는 것은 조숙함으로 읽어야 할까. 선체험인 양 어린 소녀의 야무진 인식은 향후 상경하여 산업체 특별학교에 다니면서 겪을 고생이나 동료의 죽음이 주는 충격을 예견이라도 하듯 미리 자신을 담금질해 놓는 예언자적인 행위였다. 신경숙 글쓰기의 자의식과 당당함은 다분히 과장과 허위를 벗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작가로서 신경숙의 자의식이 허위의식을 탈피하지 못한다는 점은, 『외딴방』의 경우 글쓰기에서 팽배해 있는 자의식이 그녀가 공식적으로 표명한 글쓰기의 목적과 충돌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신경숙은 1970년대 산업화의 ‘역군’으로 성장기를 보냈던 자신의 또래인 ‘그녀들’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얘기를 하든 그 얘기가 오로지 나 자신만을 향해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녀’들 중 핵심 인물은 신 씨보다 몇 살 더 먹은 ‘희재언니’라는 동료다. 실연을 당해 자살하여 변사체로 발견되는 ‘희재언니’는 신 씨인 ‘나’의 삶에 가장 큰 그림자를 드리우는 인물로 제시되지만 정작 ‘희재언니’라는 인물은 『외딴방』에서 안개 속을 헤매고 있으며 인물 정보도 불투명하다.
 
서사의 핵심 중 하나이어야 할 ‘희재언니’ 이야기는 『외딴방』 서사에서 시종일관 존재가 있기는 하되 실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로 존재한다. 이는 신경숙 글쓰기가 가진 두 가지 의도의 충돌이 ‘그녀들’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귀결되는 데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70~80년대 이 땅의 가난한 딸들이 겪어야 했던 삶은 『외딴방』에서 무력한 개인의 힘으로는 그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으로 처리되어 있다.
 
『외딴방』은 신 씨가 개발독재 시대 10대 여성 노동자들의 고통을 자신의 글쓰기로 대변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실상은 성인도 되기 전에 집을 떠나 고생했던 경험이 만들어낸 자신의 자의식에 과도한 가치를 매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신경숙은 삶의 모든 국면을 글쓰기 하나로 수렴하는 듯하지만, 그녀의 글쓰기에 ‘나’의 삶은 팽배한 반면 남의 삶이 들어설 자리는 없는 것이다. 신경숙의 발을 찍은 쇠스랑이 잠긴 고향집 우물이 나타내는 것처럼, 신 씨의 내면세계가 삶의 고통에 대한 깨달음과, 자신을 각성시키는 형벌마저 포용하는 당당한 자의식으로 구축되었다고 제시되는 한 전혀 부족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으며 자족적이고 완벽할 뿐이다. 신 씨의 내면은 남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무수한 쉼표와 말줄임표가 등장하는 것이 신경숙 소설의 특징이기도 한데, 특히 『외딴방』에서는 토씨 대신 쉼표를 거느린 “열여섯의 나,”가 임자말 자격으로 수시로 출몰한다. 쉼표로 임자말과 다른 문장성분의 연결을 끊음으로써 문장의 흐름을 차단하는 행위는 세계의 중심이 ‘나’라는 의식 또는 세계와 ‘나’는 단절되어 있거나 연관성이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중심주의는 역설적으로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신경숙은 “소설을 이루는 문장으로는 아무리 해도 삶에서 발생했다 사라지는 섬광들을, 앞설 수가 없다”, “과장되게 폐쇄시키고 보편성 없이 드러낼 수밖에 없는 문장의 한계”, “내 아무리 집착해도 소설은 삶의 자취를 따라갈 뿐이라는, 글쓰기로서는 삶을 앞서나갈 수도, 아니 삶과 나란히 걸어갈 수조차 없다”라고 글쓰기의 한계를 거듭 고백한다. 그러나 신경숙의 고백이 세계와의 접점을 포기한 자의 변명처럼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신 씨가 글쓰기의 한계를 설파하는 것은 고향집 우물 같은 내면의 집에서 자급자족하는 데 적응한 자가 바깥 공기와 닿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일 수 있다.
 
스스로 완전하다고 자부하는 자는 겉으로만 의젓해 보일 뿐 실상은 세계와의 교섭이나 싸움 속에 자신을 기꺼이 내놓을 자신이 없다. 신경숙 글쓰기의 자기 지향성은 세계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의 고백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내 소설이 무언가를 변화시킬 힘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내게 있어 소설이란 나 자신을 견디게 해주는 것뿐이다. 내 마음 속에 기른 헛것들을 더 이상 가두어 놓을 수가 없어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을 때, 그때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잊는다.”(「모여있는 불빛」) ‘헛것’이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약한 자의식의 표출로서, 신경숙에게 글쓰기는 지치거나 상처받기 쉬운 자신을 달래고 위로해주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문학은 문학이고, 세계는 세계이며, 글을 쓰는 행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는 자의 결함은, 글쓰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 가능성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희망에 대한 실패였다는 걸 1963년생들은 순식간에 경박스러워지면서 감지했다. (……) 해도 해도 안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희망은 소모전이었던 것이다.”(「멀리, 끝없는 길 위에」) 80년대 변혁적 사회운동에 대한 신경숙의 진단이다. 신경숙은 다른 경우에서는 더디거나 판단을 유보하거나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도 역사에 대한 평가가 필요할 때는 단칼 휘두르듯 냉정하다. 80년대 민중문학의 위세에 억눌려 소외를 당한 자신의 처지를 반영하거나 80년대 거대담론의 종언에 통쾌함을 느끼는 듯한 이런 진술은, 『외딴방』에서 80년대 노동자를 다룬 문학은 많지만 70년대 노동자를 조명한 것은 드물다는 신경숙의 항변이 은근히 느껴지는 것과 유사하게 다분히 감정적으로 읽힌다.
 
그보다 큰 문제는 신 씨가 역사의 발전 가능성을 부정한다는 것인데, 그녀 말대로 “해도 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면 우리는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상책일 터이다. 역사에 대한 신 씨의 무지는 현대사에서 막중한 의미를 띠는 1987년 대통령선거가 1988년에 일어났다고 착각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멀어지는 산」) ‘역사의 종언’을 확고히 믿고 있는 신 씨는 스스로 자신의 글쓰기를 복고적이고 퇴행적인 역사의식에 가두고 말았다. 
  
신경숙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 문화연대와 인문학협동조합이 공동 주최한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 토론회     © 대자보

 
신경숙 자신은 자기 위무의 글쓰기에 집중했지만, 그것을 한 작가의 자폐적인 글쓰기 행위로 보지 않고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서사나 거대담론이 무너져 내린 90년대 문학 환경은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문단이 선택한 것은 전혀 과격하지도 불온하지도 않은 목소리의 작가였다.
 
기존 질서에 대한 싸움과 전복을 말하기는커녕 자신의 과거에 유달리 집착하고, 자기 반성의 제스처에 익숙하거나 자기 내면으로 파고들어가는 작가였다. 가부장적인 문단 질서가 구획해 놓은 판에서 결코 그 질서를 넘보지 않으며 자신들의 입지를 전혀 건드릴 생각이 없는 신경숙은 문단에 전혀 위험하지도 불온하지도 않았다. 신경숙의 글쓰기가 8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정반대편에 있는 듯하지만 자기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그녀의 문학이 기성의 문학적 권위에 전혀 균열을 낼 수 없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소설을 일기 쓰는 행위쯤으로 생각하며 자신을 달래거나 추스르는 방편의 글쓰기를 하는 데 치우친 신경숙 문학은 패배의식과 무력감에 침잠해 있던 문단으로서는 자신을 위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신 씨는 신세대문학의 기수로 키울 만한 것이었다. 남에게 반성을 요구하기보다 자기반성을 더 잘하는 듯한 신경숙 문학은 패배감으로 전망을 잃어버린 당시 문단으로서는 남자의 잘못을 나무라지 않는 아내나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창비 진영의 평론가 임규찬은 90년대 중반에 당대를 “환멸의 시대”라고 불렀다. 그에게는 90년대 문학 역시 “환멸의 문학”이었다. ‘환멸’이라는 표현에서 당시 끝 모를 수렁에 빠져들던 리얼리즘 계열 평단의 현실인식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신경숙 문학만은 예외적으로 그들에게 ‘환멸’이 아니라 환희였고 환호할 만한 것이었다. 80년대 문학의 지배적 조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신경숙은 기운 빠진 ‘후일담문학’을 남발하던 환멸의 문학을 쇄신할 수 있는 문단의 대안이자 기대주였다.
 
단편집 『풍금이 있던 자리』의 예상 밖 히트로 단숨에 문단의 중심으로 부상한 신경숙 문학이, “고독한 개인의 내면고백”(류보선), “섬세한 감각”(백낙청), “문장 그 자체의 호흡으로 녹아들어 문체적 감각으로 전달”(박혜경) 등의 ‘괜찮은’ 평가를 넘어, 그동안 신경숙 소설의 내면 탐닉에 대해 불편한 반응이 나오기도 했던 일부 리얼리즘 계열 비평가들의 이견을 일소하고 좌우 진영을 가릴 것 없이 정점의 찬사를 받은 것은 『외딴방』이다.
 
비창비 진영 비평가로부터는 “언어의 명주실로 정확하고 치밀하게 짠 이 한 시대의 풍속화 앞에서 우린 무슨 소리를 할 수 있을까.”(남진우)라는 평가가 나왔고, 이미 백낙청을 중심으로 “리얼리즘의 쇄신”이라는 평가가 나왔던 창비 진영에서는 “민중민족문학의 훌륭한 성취”(김명환), “혼신의 힘을 다한 자기부정을 통해 성취한 뛰어난 작품”(김명환), “작가는 마침내 작가로서의 꿈을 이룬 ‘나’를 혹독하게 몰아붙여 자신의 고통과 상실감의 실체와 대면시키는 것이다.”(김사인) 등의 비평이 매겨졌고, 급기야 “‘우리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부여하는 엄청난 일을 해내었다.”(백낙청)라는 극찬까지 탄생했다.
 
문학의 비정치성과 순수성을 주창하는 비평가들이라면 신경숙을 고평하는 것은 자신들의 취향으로 보아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창비 진영의 평론가들이 리얼리즘이나 민중문학의 시각을 내세워 신경숙 문학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신경숙 문학에 이르러 한국 문학은 리얼리즘과 비리얼리즘, 참여문학과 순수문학, 심지어 여성문학을 ‘여류문학’으로 치부했던 가부장적인 남성 비평가들과, 페미니즘 평론을 쓰던 여성 비평가들까지 그 어느 쪽 잣대로 보아도 이견 없이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만능 요술방망이 같은 작품을 만난 셈이다. 신경숙 문학에서 한국 문단은 문학의 성취와 한계를 냉정하게 비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잣대나 준거마저 망설임 없이 놓아버렸다고 할 수 있다.
 
평론가 김사인은 내친 김에 한발 더 나아가 평단이 신경숙을 추어올리는 속내를 다음과 같이 좀더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신경숙 소설의 가장 소중한 몫은 나지막한 몸가짐, 나지막한 어조에 있다. 사소한 것들, 미미한 것들의 결코 사소하지 않음을 그는 그 나지막한 목소리를 얼마나 간곡하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의 소설을 지배하는 의식은 다분히 모성적이다. 그의 소설에 대한 근년의 호응은 돌아가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위로와 안식을 얻고 싶어하는 우리 시대의 내밀한 욕구와 일면 대응한다.”, “신경숙을 위시한 여성작가들의 부상은 한편, 우리 시대가 모성적 자질을 통한 신생을 희구하고 있는 까닭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그나마 평론가 황종연은 신경숙 문학의 인물과 문체가 여성적 특질을 갖고 있다고 다소 중립적으로 평가한 반면, 김사인은 남성의 시각으로 일방적으로 여성성을 규정하는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나지막함’, ‘사소함’, ‘모성적 자질’ 등은 김사인의 글에서 모조리 여성의 고유한 특질로매겨지고 있으며, 김사인이 규정한 여성성이나 모성적 자질은 고작 “우리 시대”의 소생을 위한 수단으로 소용될 뿐이다. 환멸의 시대, 정확히는 이전 시대의 지배적 가치가 몰락함으로써 환멸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시대에 문단이 왜 신경숙 문학이 필요했는지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문단은 전장에서 피 흘리고 돌아온 남자들을 비난하지 않고 말 없이 품어주고 무릎을 내어주며 고생을 위로해줄 엄마나 아내가 필요했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고 위무해 줄 만한 문학을 원했던 문단의 속내를 신경숙이 얼마나 인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실체 이상으로 부풀려진 자신의 문학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길로 나아갔다. 
   
물론 신경숙 문학의 부상은 여성작가들의 약진이라는 당대 문단 풍조와도 결부되어 있다. 여성작가들의 부상은 거대담론의 쇠퇴와도 맞물려있지만 90년대 중산층 여성들의 증가에도 기인한다. 80년대 대학의 팽창과 중산층의 확대로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독서시장에 진입한 점을 문학시장은 놓치지 않았다. 여성작가로서 신경숙의 계급적 내면의식은 사회 변화보다 현상유지를 바라고, 관심사라고는 자산 증가나 아파트 값 상승에 집중된 중산층의 욕구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결국 신경숙은 문단에서 진영 논리가 설 공간을 잃으면서 문단이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기획하고 새로운 이윤 동기를 개척한 문화상품으로서 효과적으로 소비되었다.
 
그러나 실력이 달리는 작가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의도적으로 기획되고 전략적으로 띄워진다면 과부하를 견뎌내기 힘들 것이다. 신경숙 작품에서 드러나는 무수한 맞춤법 오류, 비문, 말줄임표나 쉼표의 남발 등은 신 씨 스스로 문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글쓰기 훈련이 더 필요한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국어 쓰는 일을 직업이자 생계로 삼는 사람이 글쓰기의 기본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도 오랫동안 버젓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일이다. 다른 작가가 그랬다면 묵인되지 않았을 법한 기초적인 실수마저 신 씨에게는 작가의 독특한 개성인 것인 양 치부되었다면 역시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물론 신경숙에게 있어서 문단의 기대와 상찬, 일방적 띄워주기 등과, 자신의 실체가 현격하게 괴리되었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해 주는 것은 표절, 그것도 한번으로 그치지 않는 상습적인 표절 행위일 것이다.
 
90년대만 하더라도 문단이 키워주는 데 급급했던 신경숙은 모두가 아는 대로 2000년대 이후 위세가 꺾이기는커녕 그 스스로 문학권력으로 부상했다. 신경숙을 비판하거나 흠을 거론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신 씨가 상습 표절을 저지르는 ‘괴물’이 될 때까지 문학인들은 적극적으로 동조하거나 방관해 온 셈이니 이제 와서 누구를 비난할 것인가. 충만한 것은 소녀적 감수성이며, 결여된 것은 사회적 인식이나 세계에 대한 감수성인 ‘문학소녀’급 소설가에게 당대 한국문학은 그동안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
 
100년이 넘는 한국문학사에서 미성년의 감상주의가 남발되는 작품이 필요할 정도로 우리 문학사의 기반이 그토록 허약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자신을 세상과 철저히 무관한 존재로 생각하거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별개의 존재로 특권화한 신경숙 문학은 생태적인 측면에서도 불안정하며 지속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런 작가에게 엄격한 글쓰기 윤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었는지 모른다. 「전설」의 표절 외에 확인된 다른 표절에서도 신경숙이 남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가져온 행위에 대해 전혀 가책이나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할 때 자신의 문학에 특권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는 욕망이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볼 경우 신경숙의 상습적 표절은 그녀의 글쓰기에 내재한 태생적 한계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신경숙 표절 사건의 공론화가 한 사람을 끌어내리거나 문학계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 괴물을 만들어낸 문단이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물갈이하지 않는다면 문학에 관한 한 진짜 환멸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시대를 환멸로 느낀 이들이 만들어낸 괴물이 신경숙 문학이었다. 이제 신경숙 문학의 부상을 막지 못한 대가로 문학에 환멸의 시대가 온다면 정당한 대가라고 해야 할 것인가.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공멸을 원치 않는다면 그 작업의 첫 삽을 뜨는 일은 90년대 문단의 행태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  이 글은 7월 15일 문화연대와 인문학협동조합이 공동 주최한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 토론회 1부 발제문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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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7/19 [13: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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