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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당국은 수년간의 고통을 배상하라"
 
취재부   기사입력  2015/07/09 [01:23]

7월 8일 오전 9시 20분에 서울법원종합청사 정문 앞에서 “고려대 당국의 출교-퇴학-무기정학 징계에 따른 손해배상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기자회견은 손해배상 파기 환송심 변론기일(같은 날 오전 10시 10분, 제23민사부(나) 고등 민사 김용석, 강상욱, 박영주 판사)을 앞두고 열린 것이다(지난 보도자료 참고 http://club.cyworld.com/5158041515/157783700 ).

▲ 고려대 당국의 출교-퇴학-무기정학 징계에 따른 손해배상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 복학한고대출교생

 

기자회견에선 고려대 전 출교생 강영만, 안형우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사무처장 김진석 교수(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가 차례로 나와 고려대 당국의 부당함과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다음 심리는 8월 19일 오전 11시에 열리며, 당일 참가자들의 발언을 통해 고려대 당국의 출교-퇴학-무기정학 징계의 부당함을 소개한다.

 

기자회견 발언(안형우/강영만 전 출교생, 김진석 민교협 사무처장)

안형우(고려대 전 출교생, 32)

 

2005년입니다. 당시 고려대 총장이 삼성과 기업인들에게 머리를 숙였습니다. 고려대 학생들이 벌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명예철학박사 수여 반대 시위에 대한 사과였습니다. 그리고 1년 뒤, 이 시위에 적극 동참한, 저를 포함한 7명의 학생들이 출교됐습니다. 입학 기록까지 사라지는 초강경 징계였습니다. 올해까지 거의 10년에 이르는 길고 긴 줄다리기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2005년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 해 말 고려대 병설 보건대가 통합되고, 보건대 학생회장이 학생회장단 회의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초, 고대 당국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방해해서 행사를 준비하던 전교의 학생들이 입학처를 점거했을 때, 새로 통합된 보건대 학생들과 우리들은 다른 학교 학생이란 생각 없이 함께 싸웠습니다. 그 해 초 있었던 총학생회 선거도 당연히 같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설 보건대생들이 전문대생이므로 우리학교 학생이 아니라고 한 것은 학교 당국뿐이었습니다. 수업은 폐강되고, 등록금은 올랐습니다. 보건대 학생들이 투표에 참여하면 불법선거고, 총학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차별에 분노한 보건대생들과 여기에 연대한 학생들의 시위는 정당했습니다. 학생들의 요구안조차 받을 수 없다며 매몰차게 보건대생들을 외면한 처장단들에겐 정의가 없었습니다.

 

이건희 시위로 체면을 구긴 학교 당국은 아마도 때를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요구안을 받고 가시라고 학생들이 앞을 막아 섰을 때, 적어도 교육자로서 일말의 양심이 있었다면, 이것이 “감금”이라고, 저희가 “패륜아”라고 날조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상벌위원회에서 소명기회는 없었고, 단지 “학교 못 다녀도 괜찮냐” 하는 질문만 있었습니다. 호출된 순서대로 견책, 유기정학, 출교가 차례로 떨어졌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교육입니까? 보건대생들에게 연대한 학생들이야말로 불의를 참지 말라는 가르침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징계 다음날 삭발을 하고 본관 앞 천막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2년 간 먹고 자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대화를 요청하는 학생들에게 헤드락으로 답했던 연구처장의 모습은 출교까지 당한 저에게도 충격이었습니다. 대화를 요청하는 부모님들에게 총장실을 점거했다고 날조한 학교 당국의 모습은 또 하나의 분노였습니다.

 

나중에 법정에 제출한 학교 당국의 문서는 출교의 이유로 이건희 시위 주도자인 점, 민주노동당 당원인 점 등을 꼽고 있었습니다. 짐작했던 것이지만 서글펐습니다. 그러나, 출교는 아니라고, 교육은 이런 게 아니라고 말씀해 주신 고대 교수님들의 성명서는 저희들에게 따듯한 위로가 됐습니다.

 

민교협은 출교 바로 다음날 성명을 발표해 정의를 세우려 했습니다. 고대 청소 노동자들은 명절 때마다 저희들을 잊지 않고 찾아 주셨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수없이 많은 분들이 연대해 주셨습니다. 저희를 출교한 어윤대 총장은 재임용에서 교수님들에게 부적격자로 지목돼 탈락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희들은 2년 만에 복학할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은 있었습니다. 2008년 1월, 출교 무효 가처분 소송에서 저희가 승소하자, 신임 이기수 총장은 천막을 찾아와 “복학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희는 천막을 접었습니다. 곧 들려 온 소식은 퇴학이었습니다. 다시 천막을 치면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금세 나온 퇴학 무효 가처분 판결로 2008년 3월, 저희는 복학할 수 있었습니다. 연대 덕입니다. 2009년 2월에는 저를 포함해 출교생 세 명이 졸업했습니다. 다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졸업한 저에게 통지서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집에서 문서를 본 부모님은 놀라서 전화를 했습니다. 상벌위원회가 소집되니 출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어 날짜를 확인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연도는 정확히 2009년이었습니다. 1년 만에 다시 소집된 상벌위원회는 졸업생 세 명을 포함해 출교생 일곱명에게, 무기정학을 내렸습니다. 출교당했던 2년의 기간을 무기정학으로 소급처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연대를 구하고,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1년 반 만에 나온 판결은 무기정학도 무효라는 것이었습니다. 2010년 9월, 4년 6개월의 긴 싸움 끝에 징계가 최종 모두 사라진 것입니다. 저희뿐 아니라 견책과 유기정학도 모두 지워졌습니다.

 

징계를 모두 철회했을 때 몹시 기뻤지만, 그러나 “아님 말고” 식 징계에 분명한 책임을 물리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도 계속되고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는 신자유주의 대학 구조조정에 맞서 싸우는 모든 투쟁에 힘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희들이 입은 피해도 배상받고, 부모님의 억울함도 풀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손해배상소송입니다.

 

1심에선 패소했지만, 2심에선 부분승소로 1500만 원 배상 판결을 받았습니다. 최근 3년 만에 대법원에서 판결을 하겠다고 했을 때, 설마 이게 뒤집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사실 고등법원이 졸업생 3인에게 한 무기정학에 대해서만 각 500만 원씩 배상하라는 부분승소도 부족한 것이었습었습니다.

 

그런데, 쌍용차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바로 그 재판부가, 박정희 시절 남산에 사람을 끌고 간 것에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한 그 재판부가, 저희들의 배상 판결도 뒤엎어 버리고 파기 환송했습니다. 판결문의 요지는 “징계가 상식에 맞지 않다고 볼 이유가 없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불의에 분노한 보건대생들에게 연대한 학생들이 출교당하는 것이 상식입니까? 출교했다 안 되면 퇴학, 그마저도 안 되자 심지어 졸업생에게 무기정학을 처분한 고대 당국이 상식적입니까?

 

고등법원에 올바른 판결을 촉구합니다. 저는 법원이 고대 당국에 분명한 책임을 물어,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만 맺습니다.

 

강영만(고려대 전 출교생, 34)

 

▲ 기자회견     © 복학한고대출교생

 

 

앞서 우리 안형우 친구가 얘기를 한 것을 좀 정리를 하자면, 저희가 소송을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상식적입니다. 2년간 찜통같은 더위와 혹한의 추위 속에서 천막 하나 쳐 놓고 거기에서 먹고 잤습니다. 저희들이 원해서 한 일이 아닙니다. 저희에게 출교라는 징계를 내려놓고 대화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학교랑 한 마디 말이라도 섞어 보려면 유일한, 우리의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것입니다. 찜통 속에서 그렇게 먹고 자자 아무리 젊은 학생들이었지만 허리 병을 얻었고 무릎이 아팠고 만성적으로 위염에 시달렸습니다.

 

이 징계가 모두 무효로 판결이 났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들이 2년 동안 학교에서 공부도 못 하고 졸업을 딱 한 학기 남겨 놓고 졸업하는 친구들과 후배들을 보면서 아파했던 그 마음, 그리고 상처받은 몸, 그건 누가 도대체 보상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학교 당국은 끝까지 저희들에게 퇴학·무기정학 징계를 내릴 때까지도 단 한 번도 진상조사에 임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이 시위를 벌인 바로 그날 그냥, 감금을 했다고 패륜 행위가 있었다는 팝업 공지창을 띄워 놓고 언론에 모든 사실을 공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을 그야말로 죽일 놈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법원을 통해서 모두 사실관계가 엎어졌습니다. 이것을 증거로 모두 인정할 만한 능력이 없다고 그렇게 법원이 판결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사실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말했던 것을 이제 주워 담아야 합니다. 철회를 해야 합니다. 저희들에 대한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학교 당국은 끝까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포털 사이트와 고려대 학생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게시판에 저희들에 대한 악선동이 아직도 있습니다. 아직도 저희들은 감금범이고 패륜아들이고 정말 천하의 죽일 놈들입니다. 이것이 모두 법원을 통해서 인정되지 않았는데도 아직도 그렇습니다.

 

일부 연예인들은 인터넷 악플 때문에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저희들도 지금까지도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배상은 누가 해야 합니까? 고려대학교 당국이 해야 합니다. 앞서 안형우 씨가 얘기했듯이, 저희들에 대한 징계는 진보적 활동가들에 대한 표적 징계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에 대한 징계가 당연히 학생들의 진보적인 활동과 학교 당국의 일방적인 학사 행정에 대한 저항을 무너뜨리려고 했던 그런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부당하다고 판결이 났습니다. 이것은 많은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 막무가내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학교 당국들이 흠칫 놀랄 법한 그러한 판결들이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학교가 징계가 '아님 말고'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완전하게 배상해야 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우리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0년이 지난 오늘, 지금도여러 진보적 활동가들과 교수님들과 시민·사회 세력이 모두 이 사건에 대해서 법원의 상식적 판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원은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했지만 고등법원은 다시 양심적이고 상식적으로 고려대 당국에 배상을 판결해야 할 것입니다.

 

김진석 교수(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사무처장, 서울여대)

 

이른 아침 이 자리에 서 있는 마음이 매우 무겁습니다. 사실 지금 여기에 있는 학생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많은 분들이, 어쩌면 거리에서 만났으면 선후배의 연을 맺었을 수도 있고 그리고 또 어떤 분들은 제가 학교에 있기 때문에 교수와 제자로서 연을 맺을 수 있는 그런 분들을 지금 이런 아침 비가 내리락 말락 하는 이런 아침에 법원 앞에서 이러한 모습으로 만나야 된다는 건 매우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게 안타까운 이유는 지금 이렇게 만났다는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얘기를 해야 하는 이유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기자회견 발언 모습     © 복학한고대출교생

 

 

제가 안형우 학생의 연대 요청을 받고 실질적으로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다시 한 번 복기해 봤습니다. 실제로 이 일이 있었을 때는 저는 교수의 신분도 아니었고. 저도 역시 학생의 신분으로 밖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형식적으로 봤을 때 이것은 2006년 4월에 학교에서 벌어진 시위와 본관 농성의 결과로 학교 측에 의해서 의해서 출교 조치가 이뤄졌고 2년 여의 법정 싸움과 천막 농성 끝에 국가 기구에 의해서 출교에 대한 무효 판정이 이뤄진 그러한 사건입니다. 그러고 나서 또 2009년.. 2015년 오늘까지도 이 싸움은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입니다.

 

제가 어제 판결문을 읽어 봤습니다. 그걸 읽어 봤을 때 학교의 조치는 정말 끝이 없었습니다. 출교 이후에 출교가 무효가 되자 퇴학, 그리고 퇴학이 무효가 되자, 학생들이 졸업을 한 이후에 실질적인 실효성이 없는 것이 너무나 명백한 무기정학 처분을 갖다가 학생들한테 내린 그런 사건입니다.

 

학교에서 어떤 징계 처분을 내린다는 것은 그것이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실질적으로 의미도 없는 상징적인 무기정학 처분을 내리기 위해서, 굉장히 바쁘고 할 일이 많은 교수들이 몇몇씩이나 모여가지고 그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서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고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이 학생들의 미래를 어떤 식으로든지 가로막아 보겠다는 그런 몽니에 다름아닌 것입니다.

 

결국에는 무기정학 처분까지도 무효가 되면서 이 학생들의 싸움은 끝났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이 학생들은 항상 싸움을 걸어 온 사람들에 대해서 대응을 하였지 어떤 식으로든지 실질적인 싸움을 걸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의 오랜 싸움의 경험을 통해서 이 학생들은 아, 이 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모순과 부조리함의 결과라는 것들을 깨닫고, 이제 이 학생들은 싸움을 걸어 왔습니다. 실질적으로 고대가 그리고 교육 당국이 이 문제에 대해서 적절한 답을 내놓을 것을 그리고 적절한 보상을 할 것을 요구하는 싸움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법원은 결과적으로 이 학생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다른 쪽의 손을 들어 준 그러한 사건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를 하고 끝냈을 수도 있을 싸움을 다시금 용기를 내서 싸움을 걸어 온 이 친구들과 이 학생들에게.. 아니죠, 이제 학생이 아니라 성인들이죠. 이 성인들에게 저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정말 끝내고 싶고 지긋지긋할 법도 한 이 싸움을 다시 시작한 이 학생들의 용기에 저희들은 격려를 보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는, 물론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사무처장의 이름으로도 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지금 현재 교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실질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서 일말의 귀책사유를 저 또한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실질적으로 교육 현장에 있는 사람이 교육 현장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 그것으로부터, 그 책임으로부터 저 역시 자유롭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 저를 비롯해서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그리고 많은 지식인과 학술 단체들과 연대해서 이 싸움이 끝날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힘 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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