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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류상태의 문화산책] 성적과 스펙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지는 말자
 
류상태   기사입력  2015/06/17 [13:56]

6월이 한창 지나고 있으니 대학교건 중고등학교건 이제 곧 학기말고사를 치르게 될 것 같다. (메르스로 휴학한 학교가 많아 좀 늦춰지려나?) 하여 오늘은 시험에 대한 얘기를 좀 나누고 싶다. 벌써 골치 아프다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창을 닫을까 염려되지만 조금만 참고 읽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내가 학교 교목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이화여고 강당에서 중고등학교 합창제가 열렸는데, 어느 여고 합창반에서 부른 곡이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노래 제목은 <꿈>. 학생들이 부르는 슬프고 애절한 가사 내용이 선생님에게 하소연하는 형식으로 노래 속에 담겨있었다.

 

선생님, 시험이 보기 싫어요.
답답한 교실을 뛰쳐나와서
눈부신 햇살이 반짝거리는
저 푸른 동산 위로 가고 싶어요.

 

선생님, 시험이 없어진다면
나무같이 새같이 구름같이
푸르게 훨훨 꿈꾸고 날며
마음껏 푸른 꿈을 꾸고 싶어요.

 

풀밭에 누워 책을 읽다가
재미나는 이야기하고
옹달샘에 뛰어가서 물을 마시고
시를 써 친구에게 보내렵니다.

 

우주보다 넓고 넓은 우리의 세계
하늘보다 높고 높은 우리의 희망
선생님, 우리에겐 꿈이 있어요.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노래를 들으며 가슴이 저미도록 아팠고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정말 시험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능도 없고, 학기말고사도 없고, 그냥 대학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다 입학시켜주고...


하지만 시험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고 한국인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누구나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될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 젊은 벗님들이 앞으로 치루어야 할 시험이 참 많고도 많다. 학교에서 치르는 중간고사, 학기말고사, 대학입학을 위한 수능과 본고사, 취직시험, 각종 자격증을 위한 시험 등...


시험을 치를 때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겠다. 어쩌면 중요한 시험에서 낙방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인생 낙오자가 되는 것인가? 아니, 그럴 수는 없다. 그냥 그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것뿐이어야 한다. (나는 방금 끝문장을 “그냥 그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것뿐이다.”라고 썼다가 고쳤다. 양자의 차이는 매우 크다. 젠장~!!)


시험 얘기 하다 보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일제시대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최봉석 목사라는 분이 계셨는데, ‘전도 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날마다 평양 거리에서 큰 소리로, “예수 천당!”하고 외치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요즘 길거리 전도자들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외친다. ‘예수 천당’은 좋은데 ‘불신 지옥’은 좀 뺐으면 좋겠다.)


이 분이 신학생 때였다. 전도는 열심히 했지만 공부는 별로 안했던 것 같다. 하루는 시험을 보는데 아는 문제가 하나도 없더란다. 그래서 “성령님, 도와주십시오.”하고 기도했는데 아무 응답이 없더란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성령도 시험에는 떤다!”고 했단다.


이야기 하나 더. 역시 신학생이 시험을 보았더란다. 문제는 잘 알겠는데 도무지 답을 모르겠더란다. 그래서 답지에 이렇게 썼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나중에 그 답안지에 채점이 돼서 돌아왔는데 이렇게 적혀 있더란다. “하나님은 100점, 너는 빵점!”


요즘엔 졸업 후에도 끝없이 시험을 봐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스펙’을 쌓기 위해서다. 스펙이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유감스럽지만 스펙이 연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 스펙이 좋아야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고,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 인생을 편하게 살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생각해보자. 돈은 우리 삶을 편하게 해 준다. 작은 차보다 큰 차가, 작은 집보다 큰 집에 사는 게 편하다. 하지만 돈으로 각종 편리를 누리는 사람이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끝없는 경쟁의 노예가 되어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모든 사람이 다 달려야 할 필요가 있는 걸까? 달려야 할 사람은 달리고 걸어야 할 사람은 걸어도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많이 벌어서 많이 쓰고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적게 벌어도 알뜰살뜰 절약해가며 오순도순 재미있게 사는 사람도 많다.


자신과 사회의 발전을 위한 어느 정도의 경쟁은 필요하다. 하지만 경쟁도 스펙도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우리 인생을 무한정 소비해가면서 추구할만한 절대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젊은 벗이여, 그대 생각은 어떤가?


마지막으로 이거 한 가지는 꼭 기억해주기 바란다. 스펙은 스펙이고 인격은 인격이다. 스펙과 능력은 각기 달라도 사람의 인격은 하늘 아래 똑같이 귀한 것이다. 성적과 스펙으로 자신의 인격과 가치를 평가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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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6/17 [13:5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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