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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대통령, 훌륭한 지도자 될 수 있다?
[강준만의 이론으로 보는 세상] 감성·사회 지능을 포함한 다중 지능 이론
 
강준만   기사입력  2015/06/05 [02:20]

 왜 무식한 대통령이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 감성·사회 지능

 
미국의 대중심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대니얼 골먼(Daniel J. Goleman, 1946~)이 1995년에 출간한 『감성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 400만 부가 팔리고 3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면서 ‘감성 지능’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실제 생활에서는 IQ가 중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학업 성적과는 관계없는 EQ(Emotional Quotient)가 더 중요하다는 게 핵심 메시지다.


이 책이 현대사회에 스며들어 있는 ‘감성 불감증’에 방부제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밝힌 골먼은 감성 지능의 다섯 가지 주요 영역으로 ① 자기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자기의 장단점을 파악하며 그래서 자기 가치를 느낄 줄 아는 ‘자기의식’, ②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자기 규제’, ③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의욕과 실패 후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동기 유발’, ④ ‘공감’, ⑤ ‘사회적 기량’ 등을 들었다.14


골먼은 지도력, 자신감, 대인관계 능력, 개선 의지 등에서 뛰어난 사원은 감성 지능이 남달랐다며 “나는 이렇게 예측한다. 앞으로 모든 학교에서 전통적인 학과목 이외에 실용적인 삶의 기술도 가르칠 날이 올 것이다. 그리하여 공감(empathy)이 대수(algebra)와 똑같이 교과의 한 과목으로 편입될 것이다”고 말했다.15


골먼은 188개 회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기업 세계에서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감성 지능이 리더십의 능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영리하기만 한 사람들은 보통 불꽃처럼 한순간 타올랐다가 금세 꺼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는 감성 리더십이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16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의 전기 작가 루 캐넌(Lou Cannon)은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 지능 이론에서 레이건을 설명할 수 있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는데, 공화당의 전략가 데이비드 거겐(David Gergen)은 레이건이 골먼이 말한 다섯 가지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었던 반면 빌 클린턴(Bill Clinton)은 감정이입이나 사교성은 뛰어났지만, 골먼이 분류했던 다른 요소들은 매우 부족했다고 주장한다.17


감성 지능의 성공 사례로 더 적합한 인물은 레이건보다는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일지도 모르겠다. 미국 대법관을 지낸 올리버 웬들 홈스(Oliver Wendell Holmes, 1841~1935)는 루스벨트를 가리켜 “지성은 2류지만, 기질은 1류(A second-class intellect, but a first-class temperament!)”라고 했는데, 이 말은 바로 친근감 등과 같은 루스벨트의 감성 지능을 지적한 것이었다.18


2006년 골먼은 EQ에 사회적 교류와 관련된 지능지수로 ‘사회 지능(SQ: Social Intelligence Quotient)’을 추가했다. “SQ는 EQ 중 개인 간의 관계와 관련된 부분이다. EQ는 더 큰 개념이고, 이 중 타인들과 어떻게 조화롭고 효과적으로 지낼지를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게 SQ인 셈이다. 따라서 SQ는 타인과의 동화(同和)와 사회적 기술에 중점을 둔다.”19


골먼은 ‘사회적 두뇌’에 해당하는 SQ가 직장에서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어 사람을 새로 채용하거나 리더 자리로 승진시킬 때 SQ와 EQ가 탁월한 사람을 찾는 회사가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또 골먼은 이메일 등을 통해 서로 원거리에서 협업하는 일이 많아지고, 직장 동료와 고객들의 배경이 과거에 비해 더 다양해지고 있어 이러한 감정이입과 협동 능력을 가리키는 SQ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20


사회 지능은 골먼이 처음 만든 개념은 아니다. IQ 검사에 대한 선풍적인 관심이 일어난 1920년 직후에 심리학자인 에드워드 손다이크(Edward Thorndike)는 ‘사회 지능’을 제시하면서 “남자와 여자를 이해하고 다루는 기술”이라고 정의하고 우리 모두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이라고 했다.21 그러나, 오늘날에도 IQ 측정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을 창안한 심리학자 데이비드 웩슬러(David Wechsler)는 1950년대 말 사회 지능을 “일반적인 지능을 사회적 상황에 적용한 것”일 뿐이라고 하며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22


골먼은 사회 지능을 사회적 자각과 사회적 능력으로 나누어 재평가한다. 사회적 자각은 다른 사람의 내적 상태를 그 자리에서 느끼는 것에서부터 상대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고, 복잡한 사회적 상황에 ‘참여하는’ 것까지 아우르는 스펙트럼을, 사회적 능력은 사회적 자각을 바탕으로 원활하고 효과적인 상호작용을 구축하는 것을 가리킨다.23


인간의 뇌 속에 본능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통제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연구 결과 뇌에는 이성적 사고를 통제하는 ‘하이 로드(High Road)’와 감성적 영역에 작용하는 ‘로 로드(Low Road)’가 존재하며 이들이 상황에 따라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골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 로드는 무의식적으로 즉각 반응하는 반면 하이 로드는 속도는 느리나 본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는 차이가 있다. 특히 로 로드는 너무 빨리 반응, 본인 의지와는 관련 없이 움직인다. 때문에 운동이나 인간의 사귐에 있어서는 감성적인 로 로드 분야가 중요하다.……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IQ보다 SQ가 중요하게 된다. 일정 수준까지 도달한 간부들의 경우 지적 능력 면에선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리더로서 부하들의 감정을 읽고 호흡할 줄 아는 사회 지능이 중요하게 된다.”24


그러나 모든 이들이 감성 지능이나 사회 지능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심리학자 한스 아이젱크(Hans Eysenck)는 “골먼의 이론은 거의 모든 종류의 행동을 ‘지능’으로 분류했을 때 어떤 전형적인 모순이 생기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골먼이 제시한 다섯 가지 핵심 ‘능력’이 감성 지능을 정의한다면, 이들 사이에 깊숙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골먼은 이들 사이에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근거로 감성 지능을 측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만 봐도 감성 지능 이론이라는 것 자체가 모래 위에 세워진 성 같은 것으로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25


미국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Todd G. Buchholz)는 “감성지수를 강조하는 쪽에서는 지능지수 혹은 SAT 점수가 높지 않더라도 훌륭한 관리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감성지수가 관리 역량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주 일부의 데이터일 뿐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작 놀라운 것은 학급 반장이나 운동부 주장이 반드시 높은 감성지수를 지녀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들 중에 감성지수가 높은 아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흉악범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친구를 괴롭히거나 아주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 중에는 사람의 감정을 곧잘 읽어내 사람을 괴롭히고 마음대로 이용하는 데 탁월한 이들이 있다.”26


영국의 임상심리학자 스티븐 브라이어스(Stephen Briers)는 『엉터리 심리학(Psychobabble)』(2012)에서 “감성 지능이 점차 인기를 더해가면서, 처음으로 이것을 제시했던 심리학자 피터 샐러비(Peter Salovey)와 존 메이어(John Mayer)의 개념은 거의 알아보기 힘든 것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며 리더십과 관련된 골먼의 주장을 ‘궤변’으로 일축한다. 브라이어스는 “성공한 리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동정심 많고 감성적인 사람이라면 망설였을 결정을 단호하게 내리고 희생을 감수하는 능력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은 외골수처럼 자신의 주장에 집중하고 어떤 반대도 강압적으로 제압해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보기에 정말 지능이 높은 이들은 성격이 좋아 사회에 잘 적응하기보다는 사회적 통념에 도전을 제기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사고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위대한 사상가들 중에 괴짜가 많은 것도 이것을 증명해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감성 지능을 개발하면(일단 골먼의 버전으로), 당신은 상사의 눈에 모범 직원으로 비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여기서 나는 감성 지능 운동이 실제로는 기업에 적합한 순종적인 사람들을 양성하려는 목적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어 브라이어스는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가 했던 유명한 말을 소개한다. “감성 지능을 강조함으로써 이득을 얻는 쪽은 노동자 측이기보다는 기업 측인 경우가 많다. 감성 지능이 높을수록 기업 문화에 온순하게 적응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또 정말 성공하는 게 목표인 독자라면 골먼의 책을 내려놓고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 Machiavelli, 1469~1527)의 『군주론(The Prince)』(1532)에 나와 있는 다음 대목에 주목하는 게 더 나을 거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은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방식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사람은 자신을 보존하기보다는 몰락하는 길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브라이어스는 “그렇다고 골먼의 이론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주장한 ‘윤리와 공감에 바탕을 둔 리더십’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감성 지능 운동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점은 믿는다. 그러나 감성 지능 지수가 성공이나 출세의 문을 여는 황금열쇠라는 통념은 믿지 않는다. 감성 지능이 높은 리더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성공의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27


아닌 게 아니라 골먼이 좀 너무 나간 점은 있지만, 그렇다고 올바른 감성 지능 운동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공감(共感) 능력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윤리와 공감에 바탕을 둔 리더십’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모두 애쓴다면 좀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공감은 무한히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한적인 자원이라는 반론도 있는 만큼,28 공감의 증대와 확산을 실현할 수 있는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감성·사회 지능을 포함한 다중 지능 이론은 우리가 꼭 꿈을 가져야 할 이유를 시사해준다. 많은 사람이 꿈이 없거나 아예 꿈을 갖지 않으려는 건 오직 금력 아니면 권력이라는 단일 기준으로 인생의 성공을 평가하는 풍토 때문이다. 그런 풍토에선 꿈을 갖는다는 게 사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어리석게 여겨질 수 있다. 인정(認定)과 성공의 다양한 기준이 공존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일은 ‘위에서 아래로’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 각자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각주]
1) 아얄라 오커트, 「대니얼 골먼」, 사이언 그리피스 엮음, 이종인 옮김,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 세계 최고 석학 30인과의 대화』(가야넷, 2000), 186~187쪽.
2) 대니얼 골먼, 「인간의 마음을 얻는 싸움에서 승리하기」, 사이언 그리피스 엮음, 이종인 옮김, 앞의 책, 195쪽.
3) 데이비드 거겐(David Gergen), 서율택 옮김, 『CEO 대통령의 7가지 리더십: 리처드 닉슨에서 빌 클린턴까지』(스테디북, 2000/2002), 282~283쪽;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 외, 장석훈 옮김, 『감성의 리더십』(청림출판, 2002/2003), 386~391쪽.
4) 데이비드 거겐(David Gergen), 서율택 옮김, 앞의 책, 281~283쪽.
5) James MacGregor Burns, 『Roosevelt: The Lion and the Fox』(New York: Harcourt Brace, 1956).
6) 남정호, 「지위가 높을수록 IQ보다 SQ 좋아야: ‘EQ’ 바람 일으킨 미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 『중앙일보』, 2006년 12월 7일, 21면.
7) 유신모, 「SQ는 성공의 어머니」, 『경향신문』, 2006년 9월 4일, 11면.
8)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 장석훈 옮김, 『SQ 사회지능: 성공 마인드의 혁명적 전환』(웅진지식하우스, 2006), 27쪽.
9)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 장석훈 옮김, 앞의 책, 135쪽.
10)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 장석훈 옮김, 앞의 책, 136쪽.
11) 남정호, 앞의 기사.
12) 스티븐 브라이어스(Stephen Briers), 구계원 옮김, 『엉터리 심리학』(동양북스, 2012/2014), 57~59쪽.
13) 토드 부크홀츠(Todd G. Buchholz), 장석훈 옮김, 『러쉬!: 우리는 왜 도전과 경쟁을 즐기는가』(청림출판, 2011/2012), 299~300쪽.
14) 스티븐 브라이어스(Stephen Briers), 구계원 옮김, 앞의 책, 53~62쪽.
15) 스티븐 아스마(Stephen T. Asma), 노상미 옮김, 『편애하는 인간: 평등 강박에 빠진 현대인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생각연구소, 2013), 240쪽.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15년 5월 호에 실렸습니다.

글쓴이 강준만은 언론과 대중문화를 포함하여 문화사 전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조지아대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위스컨신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고 1989년부터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현대사 산책(전 23권)](2002~2011), [한국대중매체사](2007), [미국사 산책(전17권)](2010), [세계문화의 겉과 속](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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