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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앞에 좌초하는 무상급식, 전략적 접근해야
[정문순 칼럼] 무상급식, 당위성 설파가 아니라 세수 확보로 방향 틀어야
 
정문순

‘성완종 리스트’로 기세가 한 풀 꺾이긴 했지만 홍준표 발(發) 무상급식 논쟁은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뜨겁다. 4월 이후 특수학교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경남 도내 모든 학교에서 무상급식이 끊긴 상태다. 경남은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급식비 지원금이 0이 돼버린 곳이다.
 
내가 아는 어떤 초등학교 교사는 자신이 맡은 반의 한 아이가 4월부터 도시락을 싸오겠다고 하더니 점심시간에 빈 교실에 혼자 남아 빵과 우유를 먹더라고 한다. 반 아이들이 급식소에 가서 같이 먹자고 소매를 끌어도 요지부동이란다. 물론 이 아이가 갓 지은 따뜻한 급식소 밥을 그냥 먹을 수 있는 길이 없지는 않다. 아이 부모가 아이의 가난을 증명하는 서류들을 갖추어 제출한다면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아이는 공짜로 ‘얻어’ 먹는 밥을 거부했다. 무상급식의 유상급식 전환이, 돈을 내지 않아도 당당히 먹던 밥에서 돈을 내지 않으면 눈치 보며 얻어먹어야 하는 밥으로 바뀐다는 것을 아이는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3월에 먹은 밥과, 4월 이후 먹은 밥은 같은 밥이 될 수 없었다.
 
아이들 중 누구는 당당하게 급식을 먹고 누구는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불공평한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건 무상급식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기반이기도 하다. 밥 한 끼 가지고 아이들의 여린 감수성을 다치게 하는 것은 이 사회가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무상급식은 가난한 아이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또래들로부터 가난한 아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막아주고, 낮은 자존감과 열패감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었다. 그렇다면 무상급식은 어떤 경우에라도 꿋꿋하게 지켜져야 했고 도전받는 일이 생겨서는 안되었다. 그런데 왜 처음에는 무상급식을 지지한다고 했던 광역자치단체장이 하루아침에 입을 싹 씻고 급식비 지원을 끊어버렸는가.
 
아이들의 여린 감수성조차 하찮은 문제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무상급식 반대 논리가 있다면, 그건 바로 돈이다. 공평하게 먹이는 것도 좋지만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항변을 이길 논리는 많지 않다. 지금의 경제 상황은 무상급식이 움직일 수 없는 대세로 확립되던 2010년 지방선거 직후보다 훨씬 더 좋지 않다. 경남도에서 군 단위 지자체의 경우 재정 자립도는 10% 수준에 불과한 곳이 적지 않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지방재정을 거덜 낼 수 없다는 것이 홍준표 지사가 내세운 무상급식 중단의 수많은 논리 중 하나이자 일부의 공감을 얻는 지점이기도 하다.
 
돈이 없으면 복지 정책을 펼 수 없다는 논리는 물론 낯선 것이 아니다. 무상급식이 도입되기 이전 성장기를 보낸 이들은 나라에서 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밥을 주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배웠던 세대이기도 하다. 특히 궁핍한 시절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성장했던 고령층은 공짜 밥이 부당하다는 논리가 가장 잘 먹혀드는 세대다. “학교가 밥 먹으러 가는 곳이냐?”라는 홍준표의 일갈은 학교가 밥을 먹여주지 않았던 것을 당연하게 알았던 세대의 감성에 영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홍준표는 무상급식에 쓸 돈을 서민 자녀의 교육을 지원하는 예산으로 돌리겠다고 했다. 그 돈으로 '서민자녀'들에게 강남 유명강사들의 수업을 들을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 ‘서민 자녀’들이 지원 받는 돈은 1인당 연간 60만 원 정도로 추정된다. 경남도는 그 돈으로 서민 자녀의 신분 상승을 도울 수 있다고 하는데, 누군가한테는 실소가 나올 정도의 정책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는 서민자녀 지원 대책은 매우 진지하게 먹혀든다는 점에서 우습게 넘길 일만이 아니다.
 
보수언론들이 홍준표의 결정을 서민을 위하는 정책이라며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가난한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상급식을 위시한 보편적 복지에 쓰이는 예산이 부족해져서 가진 자들로부터 지금보다 더 많이 세금을 거두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때마침 올해 초만 해도 정치권에서 세수 확대 방안이 잠깐 논의되기도 했다. 그런 차에 홍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이 나왔으니 보수세력은 얼마나 고맙겠는가.
 
복지는 결국 돈 문제요, 무상급식 논쟁의 모든 국면에 잠복한 것도 돈이다. 돈 없던 시절 물로 배를 채워가며 공부한 것이 당연한 홍 지사 같은 이에게 지방정부가 없는 돈을 털어 모든 아이들의 밥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교육 재정이 한정되어 있는 한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한 밥을!’이라는 무상급식의 캐치프레이즈는 지속가능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상급식을 지속가능한 일로 만들려면 세수 확보를 통해 교육예산을 늘리는 것밖에 없다. 아이들의 섬세한 감수성을 배려하자는 주장은 그것이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경제위기 국면에서는 별로 먹히지 않는다.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는 한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현실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동어반복만 외치는 모습으로 비치는 듯하여 안타깝다.
 
무상급식이 교육에서 중요하다고 해서 그것만 중요하고 다른 건 뒷전으로 밀려나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제한된 교육 예산에서 무상급식만 늘리는 데 그치는 한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에어컨도 마음놓고 못 쓰는 일이 일어난다. 아이들 밥도 중요하지만, 교실 문짝도 고쳐야 하고, 에어컨이나 난방기도 틀어야 한다. 보수언론이 무상급식 때문에 학교 문짝도 못 고친다고 말하는 건 액면상으로는 그럴 듯해 보인다.
 
교육예산이라는 판 자체가 무상급식에 불리하게 짜여 있는 조건에서 경기불황이라는 경제적 여건이 겹치면서 무상급식이 난관에 봉착한 모습은 조세 개혁이 추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상급식이 진행되던 때부터 내포된 위기였다. 이 위기를 무상급식의 당위성을 부르짖는 것으로는 돌파할 수는 없다. 그건 홍준표를 도와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도리어 작금의 무상급식 위기를 교육 예산을 확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전환하도록 힘쓰는 것이 진보가 할 일이다. 아이들에게 눈칫밥을 먹일 수는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만으로는 공허하다는 말이다.

 

지금의 무상급식이 맞닥뜨린 위기는 판을 그대로 두고 무상급식을 키워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 판을 좀더 일찍 바꾸었어야 했다. 
 
* 5월 4일 방송대학보사 게재 칼럼을 손 본 글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5/05/06 [20:05]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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