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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못할 일본식 ‘등잔풀’의 오역 ‘등대풀’
[한글사랑] 일본말 등잔인 '등대'를 잘못 번역하고 버젓이 쓰고 있어
 
이윤옥   기사입력  2015/04/10 [10:18]

  ‘등대풀’이라고 하면 언뜻 바닷가나 섬 같은 곳에 세워둔 ‘등대(燈臺)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등대’란 바닷가의 등대가 아니라 일본말로 ‘등잔’을 뜻하는 것인데 잘못 번역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어 <어원유래사전(語源由來辭典)>에 따르면, “등대풀에서 등대란 항로표시를 위한 등대가 아니라 옛날에 집안의 조명기구인 등명대(燈明臺)를 말한다. 등대꽃을 보면 심지처럼 노란꽃대가 올라와 있고 꽃잎이 그 주변을 받쳐서 마치 등잔처럼 보여 이렇게 부른다” 고 풀이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등대풀(灯台草, 도다이구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등잔불을 켠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일본인의 눈에 그렇게 보인 것일 뿐이다. 만일 이 꽃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한국인에게 이름을 붙이라고 한다면 전혀 다른 이름이 나왔을지 모른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꽃을 일본말 ‘등대’를 따서 ‘등대풀’이라고 부르고 있고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다루지 않은 채 식물 생태만 말하고 있다. 
 

▲ 꽃을 자세히 보면 등잔모양을 닮았다. 등잔을 뜻하는 일본말 고어가 등대인 것을 모르고 등대풀이라고 번역해서 쓰고 있다     © 이명호 사진작가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를 보자. “등대풀(燈臺-) : 대극과의 두해살이풀. 줄기는 높이가 23~33cm이고 뭉쳐나며 꺾으면 흰색의 즙이 나온다. 잎은 어긋나고 쐐기 모양 또는 주걱 모양이다. 5월에 황록색 꽃이 작은 산형(繖形) 화서로 피고 열매는 삭과(蒴果)를 맺는다. 독이 있으며 뿌리는 약용한다. 경기, 경남, 제주 등지에 분포한다. ≒녹엽녹화초ㆍ택칠. (Euphorbia helioscopia)”
 
 읽어봐도 아리송하다. 왜 등대풀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애당초 안중에도 없다. 그리고 ‘산형화서’니 열매가 ‘삭과’로 열린다는 말도 어렵기 짝이 없다. 일본에서 쓰는 식물용어를 무비판적으로 옮겨다 놓고 할 일 다 했다는 자세다.
 
 중국에서는 이 등대풀을 ‘택칠(澤漆)이라고 하는데 줄기를 꺾어보면 끈적한 유액(乳液)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서양에서는 이 풀을 “미친 여자의 젖(madwoman's milk)이라한다.
 
중국이나 서양에서는 이 식물의 줄기에서 나오는 유액을 보고 지은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꽃 모양이 등잔불을 닮아서 등잔풀이라 한 것을 한국에서는 일본말의 등대가 등잔의 옛말인지 모르고 어느 알량한 학자가 ‘등대’로 번역하여 ‘등대풀’이 된 것이다. 꽃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등대풀에 관한 누리꾼들의 의식을 알아보고자 뒤져 보니 대부분 바닷가의 ‘등대’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시인조차 그렇게 알고 있었다.
 
"탐라 바닷가에서 / 꽃등 켠 등대 보았네 / 꽃받침 위에 / 꽃받침 위에 / 꽃받침 위에 /
꽃 등대 / 노란 전구알 바투 켜 놓고 / 고기잡이 떠난 / 님 마중 나서듯 / 대낮에도 깨금발
목을 쑥 빼고 / 바다를 향해 등대지기 / 꽃등 환하네
                      "등대풀꽃" - 박경숙 (충청신문 2014년 2월 26일 ‘아침을 여는 시’)-
 

▲ 등대풀은 땅바닥에 기어서 자라는 풀로 바닷가 등대와는 무관하다     © 이명호 사진작가


 
‘등잔풀(등대풀)’이 일본에 처음으로 보이는 문헌은 에도시대 『본초강목계몽(本草綱目啓蒙)』이다. 한국에서는 1937년 일제강점기에 만든 『조선식물향명집,朝鮮植物鄕名集』에 등대풀(Dungdaepul)이란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이 일본의 옛말인 등잔을 일컫는 ‘등대’를 바닷가의 등대로 오인한 듯하다.
 
식물을 관리하는 <국가생물종자지식정보시스템>에서는 등대풀에 대한 생육환경에 대한 이야기와 이 풀을 다려 먹으면 진해거담제로 좋다고만 할뿐 더 이상의 정보는 없다. 등대풀은 높은 언덕에 등대를 바라보고 자라는 식물이 아니라 습기가 적은 마른땅에 납작 엎드려 살아가는 풀꽃이다.
 
꽃모양이 등잔을 닮았다해서 일본인이 붙인 것을 잘못 번역하여 등대풀로 굳어진 이름 ‘등대풀’. 그렇다고 등잔풀로 하자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그리 바쁘고 중요하여 우리는 우리 들 뫼에 자라나는 풀꽃 이름에 이토록 무관심하게 살고 있는지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윤옥 소장은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제대로 된 모습을 보고 이를 토대로 미래의 발전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외대 박사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과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민족자존심 고취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밝힌『사쿠라 훈민정음』인물과사상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도서출판 얼레빗
*항일여성독립운동가 20명을 그린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도서출판 얼레빗
*발로 뛴 일본 속의 한민족 역사 문화유적지를 파헤친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 바보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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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4/10 [10:1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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