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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2.11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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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교육으로 아픈 교육을 치유하다
[인물과 사상의 눈]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우리 교육의 미래를 그린다
 
신기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1956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 전주북중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서울중앙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75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1981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1983년 종속이론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때 성공회대학교 총장이었던 이재정 현 경기도교육감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1994년 박원순 현 서울시장과 함께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 창립을 주도했다. 지금의 참여연대다. 참여연대의 창립 사무처장과 집행위원장과 정책위원장을 맡았다. 1999년 이재정 당시 성공회대학교 총장과 함께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을 설립하고 대학원장을 맡았다. 2006년 한국비판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으로 활동했다. 2014년 서울좋은교육감 시민추진위원회가 추진한 단일화 경선에서 민주진보진영 단일 후보가 되었다. 2014년 6·4지방선거에서 39.08퍼센트를 득표해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되었다.

 

그는 단연 가장 논쟁적인 교육감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과 비판과 감시 대상이 될 정도다. 그는 취임식도 없이 업무를 시작했다. 곧바로 자율형 사립고 재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그의 선거공약인 일반고 정상화와 직결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인구 1,000만의 거대도시 서울시의 교육감이라는 지위와 취임 초기부터 더욱 선명해진 진보적 색채 때문에 현재 그의 다음 행보는 초미의 관심사다.

 

그도 자신이 백척간두에 서 있다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거시적 보수 정권 아래에서 미시적 진보 권력이 추구할 수 있는 개혁의 한계도 직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정책적 기획들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갈 작정이다. 그에게도 우군이 있다. 학부모와 학생의 변화에 대한 요구다. 한국 교육이 자기 파괴적 상태에 이르렀다는 그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교육 수요자가 적지 않다. 다만 변화 방법의 각론에서 이견이 있을 뿐이다. 다양한 변화의 요구를 수용하는 유연한 정치력만 있다면 성공한 교육감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인은 선비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시대 진보 교육감에게 더없이 요구되는 덕목이다. 조희연의 정치적 성패에 우리 교육의 미래가 달려 있다.

 

‘진보 교육감’의 현실을 말하다

 

신기주 서울시교육청에 들어가는 게 청와대 들어가는 것보다 무섭네요. 어릴 때부터 받은 아픈 교육 탓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무섭고, 교장·교감 선생님은 더 무섭고, 장학사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존재였죠.

 

조희연 여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이 교장·교감 선생님 출신인 걸요. 게다가 다들 직함은 장학사인데 어쩌죠?(웃음)

 

신기주 다섯 살인 제 딸도 저 같으면 어쩌나 걱정될 때가 많아요.

 

조희연 따님이 기다리고 있는 교육 현실이 지옥 같은 입시 전쟁의 블랙홀이어서는 안 될텐데요. 다섯 살이면 곧 그 문 안으로 들어갈 나이네요. 교육 현장이 디즈니랜드 같을 수는 없어도 조금은 나아지면 좋을 텐데요.

 

신기주 교육감 임기 4년 동안 무엇이 얼마나 개선되느냐가 딸아이에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까, 꼭 바꿔주세요.

 

조희연 많은 부모가 그런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갖고 진보 교육감에게 투표하셨죠.

 

신기주 다들 바꿔달라고 아우성인데 왜 이렇게 쉽지 않을까요?

 

조희연 교육은 보수적인 영역입니다. 학부모가 급진적인 변화를 원하지 않는 면도 있어요. 더 좋은 교육과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만 실현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불안이 많은 것 같습니다. 변화 과정에 두려움이 크다는 게 느껴져요. 변화가 이중의 고통을 동반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고요.

 

신기주 내 자식 인생을 갖고 도박은 못한다는 거겠죠. 그러니까 확신을 달라는 거고요.

 

조희연 그동안 교육개혁이 실패했다고 여기는 과거의 기억 탓이죠.

 

신기주 교육감에 당선된 지 이제 반년입니다. 변화를 바라면서도 개혁을 불신하는 학부모들과 사사건건 진보 교육감들과 각을 세우려 드는 보수 정부 사이에서 불리한 싸움을 벌여 오셨습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되고 나니까 교육이 중앙 권력의 변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걸 더 절감하게 됩니다. 많은 분이 6·4지방선거에서 17명의 교육감 가운데 13명의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는 걸 보면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죠. 실제로는 보수적인 중앙 권력과 그 배후에 있는 보수적인 시장 질서를 바탕으로 한 보수적인 정치 패러다임 내에 제한적인 변화만 추구할 수 있어요.

 

신기주 교육 대통령처럼 각인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교육감의 권한이 제한적이라는 말씀이군요.

 

조희연 교육 자치는 불완전하게 제도화되어 있어요. 지방 교육이 중앙 권력에서 분리되어 있고, 일반 행정에서도 분리되어 있기는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불완전하죠. 교육과정, 학교의 지정과 취소, 예산, 특별교부금처럼 교육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교육부가 얼마든지 법이나 시행령을 통해 교육감의 권한을 제한할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큰 기대를 걸고 유권자가 커다란 정치 혁명적 선택을 했지만, 그 변화가 실제적인 교육이나 입시 패러다임의 변화로 나타나기 어려운 거죠. 저도 조금 두려움이 앞서요. 그런 큰 기대 때문에 저처럼 부족한 사람이 당선되었다는 걸 아니까요. 진보 교육감이 13명이나 당선되었는데도 보수 정부의 교육부가 설정한 보수적 교육 질서 안에서 마이너한 개혁밖에 할 수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국민들이 교육개혁을 더 크게 바라보고 더 큰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 싶어요.

 

신기주 언론은 교육감이 어마어마한 권한을 가진 것처럼 표현합니다. 인사와 재정에서 막강한 권한을 움켜쥐고 있다고요. 실제로 들여다보면 절름발이 권력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자율형사립고등학교(이하 자사고) 재지정을 둘러싼 논란에서 드러난 것 같습니다.

 

조희연 거시적인 보수 권력의 한계 내에서 미시적인 권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맞는 말일겁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자사고 문제를 놓고 씨름해왔습니다. 폐지하네 축소하네 논란이 컸죠. 하지만 교육부장관이 하루아침에 직권 취소를 해버리면서 모든 노력과 논란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거죠. 교육감은 인사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평교사 장학관을 임명하는 문제가 있어요. 아시다시피, 교육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전문직으로 장학사와 장학관이 있어요. 장학사가 되려면 특정한 시험을 통과해야 하지만, 장학관은 7년 이상 경력이 있는 평교사를 교육감이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그래서 인천시교육감이 장학관을 임명했죠. 저도 4명 정도 임명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교육부가 어느 날 갑자기 교육부가 임용령을 바꾸어 평교사의 장학관 임용을 금지해버린 겁니다. 교육청이 아무리 오래 준비해온 일이라도 교육부가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어요. 거의 모든 정책에서 그게 가능해요. 교육감은 시민의 인식과 달리 초·중등교육의 관리자적 역할이 커요.

 

신기주 대학은 교육부가 직접 관장하잖아요.

 

조희연 대학 체제와 대학 입시가 초·중등교육을 부분적으로 종속변수화하지 않습니까. 결국 교육부가 초·중등교육의 운영 패러다임을 설정하는 거죠. 그 패러다임 안에서 교육감은 초·중등교육 관리를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교육과정만 놓고 봐도 다 국가교육과정이란 말입니다. 국가교육과정의 틀 안에서 선택교육과정이나 창의적 체험 활동에 제한적으로만 적용할 수 있어요. 입시 체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 틀 안에서만 다양성이 주어지는 거죠. 그래서 조금 더 큰 권력 체제인 시장 권력이나 중앙 권력이 바뀌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신기주 그래서 더 궁금합니다. 온갖 한계에도 취임 첫해부터 자사고 재지정을 추진한 이유는 뭔가요?

 

조희연 사사로운 정책 의지나 이념이나 진영 논리에서 비롯된 결정은 아닙니다. 진보적 교육 단체들은 처음부터 14개 자사고를 전면 취소하라고 점거 농성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8개로 취소 대상을 줄였죠. 그 안에서도 스스로 개선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한 학교 2개를 빼고 6개로 줄였습니다. 14개에서 6개가 된 거죠. 14개와 6개는 큰 차이가 있다고 봐요. 14개를 모두 취소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분도 있었고, 6개만으로도 굉장히 급진적인 개혁이라고 비판하는 분도 있었죠. 특히 보수 언론이 그런 시선에서 저를 바라봤죠. 이 지점에서 앞선 진보 정치인들이 겪었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느꼈습니다. 진보의 가치를 결결하게 유지하면서 진정성과 현실주의를 결합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요. 앞선 진보 정부들의 성공과 좌절의 근본적 원인은 양 진영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었기 때문이거든요.

 

신기주 진보 정치가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노선을 선택했을 때 적극적 지지 기반은 오히려 이탈하고 반대파는 강경하게 공격하는 형국의 반복이었죠.

 

조희연 그래서 공중에 붕 뜨지도 않고, 정박지(碇泊地)를 잃어버리지도 않고, 지지 기반도 잃지 않는 지점을 찾으려고 애써왔어요.

 

신기주 찾으셨습니까?

 

조희연 저를 지지해주었던 진보적인 교육 진영의 기대를 최소치의 지점에서 수용하는 거죠. 어차피 최대치를 수용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감내할 수 있는 정도로요. 자사고라면 14개까지는 아니지만 6+2까지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권한을 위임받았다며 자신의 지지 기반을 배반하는 선택을 한 정치인은 외면받아요. 백지의 자유 공간에서 정책 선택 혹은 전략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잘못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도 유념했습니다.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라

 

신기주 교육감에게 필요한 건 교육정책뿐만 아니라 교육 정치 같습니다. 정책을 실행할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거죠.

 

조희연 이렇게 교육정책이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우리 교육이 놓인 정치적 조건 때문이라고 봅니다. 오랜 세월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가장 기득권적인 방식으로 보수화되었습니다. 가장 변화가 느린 영역이기도 했죠. 교육감 직선제를 통해서 비로소 민주주의적 방식에 따라 선출된 교육 자치 권력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경기도에서 시작된 일련의 교육개혁 바람입니다. 비로소 제대로 된 인간적인 교육과 인간다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제도 교육 내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크게는 보수적인 권력 집단과 시장 논리와 충돌합니다.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주의, 경쟁과 성공이 아닌 협력과 공존, 수월성(秀越性) 제일주의와 서열화가 아닌 교육 평등을 강조하는 새로운 교육 가치의 흐름을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이 주도적으로 제기하게 된 것이 교육정책의 정치화를 낳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기주 교육정책의 정치화가 불가피하다면 결국 핵심은 정책 추진의 속도입니다. 급진적 정책은 체감 속도를 높이고 온건한 정책은 체감 속도를 낮추니까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의 9시 등교는 체감 속도가 낮은 반면 자사고 재지정은 체감 속도가 높아요. 자사고를 우선 정책 과제로 선택하면 교육부에 가로막힐 게 뻔했죠. 그런데도 정면 승부를 거셨어요.

 

조희연 저는 6·4지방선거 최대 이변의 주인공이 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반면에 자사고 폐지라는 최대 공약을 갖고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었죠.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으니까요. 그리고 5년 만에 돌아오는 자사고 평가가 마침 취임 직후에 예정되어 있었던거죠. 저에게는 불행일 수도 있는 겁니다. 1년 정도는 보수를 끌어안으면서 여러 가지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다가 정면 승부를 걸 수도 있었어요. 자사고 문제로 초반부터 대결 공간 안으로 진입하게 되면서 그 이후의 많은 정책이 진영 프레임에 갇힌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보수적인 대중과 급진적 변화를 우려하는 학부모까지 포용하는 정책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진영 프레임이나 고정화된 비판 속에서만 정책들이 보도되고 평가된 측면이 있죠.

 

신기주 그런 결과를 우려해서 정면 승부를 피하라고 조언한 분이 적지 않았던 걸로 압니다.

 

조희연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저는 진보적 교육 공동체와 혼연일체가 되어 선거를 치렀습니다. 물론 취임 이후에는 운동과 행정의 분리가 불가피할 겁니다. 그러나 초기국면에서 너무 급진적인 개혁이 저항에 부딪힐 수 있는 것처럼 너무 급진적인 배반은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어요. 저의 진보적 진정성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정치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가치를 지킬 수 있다면 손해와 저항을 감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앞선 진보정치인들이 걸었던 길을 깊이 헤아려봤어요. 제가 보수 언론이나 보수 진영에서는 뿔 달린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고 정치적으로 손해를 본 측면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일반고학부모들이나 양심적인 시민은 진정성을 조금 더 이해해주는 측면이 있어요. 갈등과 대립으로 비치는 현상이 혼란과 불안감을 낳기에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교육에서 건강한 민주주의적 역동성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비로소 무엇이 옳은 교육인지, 우리 교육의 근본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현실의 제도적 한계와 문제는 무엇인지 등을 드러내며 국민적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국민이 더 높은 교육 의식화 단계로 가고 있다고 봤죠.

 

신기주 반대로 자사고 학부모들은 교육감님과 악수조차 안 하려고 했죠.

 

조희연 그 사건을 겪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사익을 추구하는 사회입니다. 이익집단 민주주의에 경도되어 있죠. 독재를 벗어나서 민주주의적인 공간으로 진입하는데는 성공했습니다. 자기 의견을 억압받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했죠. 그런데 자유의 상당 부분이 공적 시각이나 공적 관심이 아니라 억압되어 있던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그것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방향으로 나아갔어요.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사회적 의제나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공동체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한데요.

 

신기주 내 아이를 공동체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부모가 한국 사회에 몇이나 될까요? 진보 교육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장벽 같습니다.

 

조희연 우리 사회에 굉장히 부족한 부분이죠. 지금도 교육 현장에서 마주치는 많은 교육민원인이 자기중심으로만, 혹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느냐 아니냐의 관점에서만 사안을 보지말고 전체 공동체의 관점에서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내 아이의 관점이 아니라 우리 아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 말입니다. 물론 저는 교육감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권력으로서 비판받아야 하죠. 권력은 다양한 입장에서 견제되어야 하고, 권력을 갖고 있는 기관장의 정책이 무조건 옳다는 법도 없어요. 굳이 권력자라는 단어에 따옴표를 친다면, 권력 행사가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성찰적 시선이 필요하죠.

 

신기주 교육은 여러 정치 영역 중에서도 당위론이 가장 광범위합니다. 아이들은 행복해야한다, 입시 지옥은 사라져야 한다, 모두 당위죠. 하지만 교육이야말로 당위만으로는 개혁될 수 없는 분야 같습니다. 부모는 내 아이한테만 유리한 제도로 교육이 작동하길 바랍니다. 그게 가장 강력한 시장 원리죠. 그 힘을 역이용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고도의 정치 전략이 필요합니다. 부모들이 내 아이를 위한 정책이라고 믿게 만들어야 하죠. 자사고 재지정은 일부 학부모를 적으로 돌렸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조희연 그것이야말로 보수 언론이 만들어낸 이미지입니다. 자사고 문제는 공교육의 중심에서 일반고를 제거해버리는 현재의 교육 체계를 흔들어서 일반고를 부활시키는 프로젝트의 일부거든요. 그러니까 자사고의 폐지나 축소는 일반고 르네상스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에요. 자사고 정책은 일반고 전성시대의 일부일 뿐이라는 거죠. 아시다시피 일반고 전성시대는 저의 교육철학입니다. 저는 교육 불평등에 도전하는 교육감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당선되었어요. 그런데 보수 언론이 왜곡된 보도를 하면서 자사고 문제의 본질인 일반고 부활과 공교육 정상화 이야기가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났어요. 교육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해야 하는 주제를 교육감과 학부모 사이의 갈등으로만 그려낸 거죠. 그래도 이제는 이런 관점에서 자사고 문제를 인식하는 분이 많아져서 조금은 안도를 합니다.

 

“병든 사회, 아픈 교육”

 

신기주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피해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지자들은 분열되고 보수 언론은 공격하면서 고립무원이 되었죠.

 

조희연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를 너무 쉽게 철회했던 분들이 나중에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보면서 다시 생각하고 이해하게 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런 화두를 갖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성을 김대중 대통령의 지혜롭고 때로는 보수적인 방법론 속에서 풀어낼 수는 없을까? 저의 진정성을 가능한 한 대중적 지지 속에서 이른바 헤게모니로 추구할 수 있을까?

 

신기주 자기 성찰적 권력 행위를 하는 시민사회 출신 권력자가 과연 헤게모니를 쟁탈할 수 있을까요?

 

조희연 교육감 선거에서도 제가 붙들고 있었던 화두는 헤게모니 전략이었어요. 지적·문화적 선도성이라고 해석되는 헤게모니는 진보적인 의제가 보수냐 진보냐의 경계를 뛰어넘어 폭넓은 공감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때로는 급진적이기까지 한 정책을 진보적 대중은 물론이고 보수적 대중의 일부까지 설득하는 방식으로 끌고 가는 데 골몰했죠. 지적, 도덕적, 문화적, 문명적으로 어떻게 설득력을 갖고 추구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제게는 그런 양면성이 있어요. 진정성이 제 가치지만 개혁의 속도나 내용에서 개혁을 시행하는 주체의 전략을 치밀하게 고민합니다. 특히 언어 구사의 측면에서 그렇죠. 대중에게 정책을 설명하는 언어는 사소해 보이지만 때로는 보수 언론이 진보 정치인을 진보적 대중과 분리하는 수단이 됩니다. 보수적 대중의 최대주의적 이반(離叛)을 일으키는 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죠.

 

저는 진보 정권 시대에 분석자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저는 자사고 문제를 제2의 고교 평준화라고 불렀어요.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이 강행한 제1의 고교 평준화에 빗대서 엄명(嚴明)한 거죠.

 

신기주 나름 보수적 유권자의 프레임을 논리를 파고 들어갈 만한 언어 구사네요. 『병든사회, 아픈 교육』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2014년 3월에 내셨으니 교육감에 당선되기 전인데, 그때부터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셈이네요.

 

조희연 나름 숙고한 언어 전략입니다. 이러면 보수 진영 내부에도 나름 고민을 던져줄 수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보수 언론이 보수 대중을 최대주의적으로 이반하기보다는 보수 언론조차도 보수적 언론을 최소주의적으로 이반할 수밖에 없는 언어 전략과 담론 전략이 무얼까 고민합니다.

 

신기주 헤게모니 전략을 쓰는 건 상대방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결국 자사고 문제는 교육부장관과 서울시교육감의 맞대결 양상으로 흘렀습니다. 이때 교육부장관은 권력의 최대치를활용했죠. 결국 상대는 막 싸움을 하는데 이쪽은 정정당당하게만 싸우려는 형국이죠. 막 싸워도 이길까 말까인데요.

 

조희연 그건 그렇습니다. 우리가 흔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부르는 좌우 균형이 극단적으로 비대칭적인 조건이 있어요. 그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보 교육감은 교육행정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죠.

 

신기주 어느 쪽이 대중적으로 더 정의롭게 비치느냐는 다른 문제 같습니다. 자사고 문제에서 교육부장관은 자사고 학부모들과 학생들을 위해 교육감의 무리한 정책에 제동을 걸어주는 것 같은 태도를 취했어요. 터무니없죠. 자사고 정책은 더 많은 일반고 학생의 이익을 장기적으로 침해하니까요. 그래도 그걸 명분으로 삼아서 정치적 자산을 득점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조희연 그래서 어떤 선택이 올바른지는 확정적인 게 아니에요. 언제나 고민이 수반되고 가보지 않은 선택도 하게 됩니다. 헤게모니를 어떻게 획득할 것이냐는 늘 예민한 문제죠. 시도교육감협의회에 가면 지금은 진보 교육감이 13명으로 다수파예요. 1기 진보 교육감 시대 때는 소수파였잖아요. 진보 교육감이 다수파인 지금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어떤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발휘하는 게 옳은지 고민하게 됩니다. 지금껏 행정과 시민운동의 거리를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행정과 운동은 참 다릅니다. 그렇다고 행정에만 몰두하면 시민운동은 물론 시민운동적 가치와 결별할 수가 있어요. 우편향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고 그냥 운동적 가치만 가지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돌진하듯 전진하는 게 최고의 선(善)일까요. 그게 최고의 전략일까요.

 

신기주 공격이 최고의 수비일 수도 있죠.

 

조희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흔히 중용을 이야기하지만 중간 지점이 언제나 어디냐는 확정된 게 아니거든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극우와 온건 우익의 중간쯤에 서 있었어요. 민주화하면서 스펙트럼이 확장되고 중간 지점이 좌로 조금 이동한 것뿐이지 여전히 제한된 이념의 지평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지금은 진보가 교육계 안에서 다수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 게 올바를 것인가? 소수파 전략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올바른 목소리를 내면서 올바른 요구를 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다수파가 된다는건 보수까지 끌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죠.

 

신기주 상대방은 이미 소수파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리과정 예산만 해도 그래요.

 

조희연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싸고 정부와 지방 교육감들 사이에 상당한 긴장감이 조성되었죠. 누리과정은 기본적으로 현 정부가 내걸었던 공약입니다. 문제는 예산이죠. 예산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지 않고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을 약간만 고쳐서 기존에 정부가 교육청에 부여하는 지방교부금 안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집행하도록 편법을 쓴 겁니다. 유치원은 물론이고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 예산까지 해결하도록 만든 거죠.

 

신기주 지방교육청도 이미 재정 압박이 상당한 상황인데요.

 

조희연 지방교육재정은 세입과 세출이 매우 경직되어 있고, 운용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새로 취임한 교육감으로서 혁신적 정책들을 펼쳐 보이고 싶은데 그렇게 하기는커녕 현상 유지도 힘든 상황이죠. 절대적으로 부족한 예산에 누리과정 예산 파동까지 겹치면서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재정 위기를 맞은 거죠. 이때 지방 교육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 어린이집 예산을 지방재정에 편법으로 전가하는 중앙정부에 대항해서 어떻게 교육재정을 확보할 것이냐. 여기에 대해서는 진보 교육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신기주 전면적 거부냐, 일부 수용이냐로 갈렸죠.

 

조희연 이때 진보가 다수파일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에 고민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3개월 부분 편성안을 수용하는 쪽으로 간 거죠.

 

신기주 당장 어린이집 예산을 없애는 식이 아니라 절충안이었죠. 하지만 다른 시도 교육감은 전면적으로 편성을 거부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조희연 일부는 편성 거부였고 일부는 편성 수용이었죠. 일부 편성 수용은 아무래도 보수교육감까지도 접점이 있는 안이었겠습니다만, 저는 다수파 전략이 필요하다는 쪽이었어요. 물론 2기 진보 교육감 시대는 사회구조적으로 진보가 다수파를 점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감안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적어도 시도교육감협의회 안에서는 다수파잖아요. 이 두 가지 현실 사이의 긴장과 딜레마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기주 누리과정 예산은 보수 정부가 다수파인 진보 교육감들을 함정에 빠뜨린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꼼수로 예산 압박을 주면 진보 교육감들은 당연히 반발하면서 편성을 취소하겠죠. 그런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돌아갑니다. 부모들은 자기 지역 교육감들에게 책임을 묻게 되어 있어요.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다는 것만 체감하니까요. 결국 중앙정부의 재정 적자는 해소하면서, 지방 교육감에게는 어린이집 폐쇄의 정치적 책임을 덧씌울 수 있는 거죠. 소수파의 이점을 이용한 교묘한 정치 전략이죠. 이쯤 되면 경건한 교육 분야야말로 실제로는 마키아벨리즘의 세계인 셈인데요.

 

조희연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마키아벨리즘을 넘어서는 전략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훨씬 더 섬세한 전략이 필요한 면이 있다는 거죠. 아까 설명한 것처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의 부분 편성 전략이야말로 나름 진보 교육감과 어린이집 학부모들 사이에 대립 구도를 조성하려는 보수의 전략을 피해가는 지혜로운 전략이 아닐까 싶어요.

 

신기주 진보 교육감들은 정부의 꼼수 예산 떠넘기기에도 누리과정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구도가 짜이면 오히려 보수가 역풍을 맞게 되는 건데요.

 

조희연 저는 그렇게 가자는 쪽이었어요. 보수도 그런 전략적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2012년 대선에서 보수가 진보의 의제를 선점한 것만 봐도 그래요. 그래서 4대 암까지 건강보험 범위를 확장한다든지 기초노령연금이나 누리과정 정책을 추진한다든지 하는 긍정적인 보수의 전략이 나오는 겁니다. 이제는 진보가 그런 보수의 전향성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가 남아 있다고 봐요. 저는 보수의 유연성이 쇼라거나 고도의 위장 전략이라고 보지 않거든요. 아래로부터의 시민사회운동 혹은 진보 운동의 요구가 대중화되면서 보수가 불가피하게 그런 조건들을 정책에 반영한 결과라고 봅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대중의 진보적 요구나 진보 운동이 일정 부분 성공하면서 보수가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거죠. 물론 제한적이고 불완전하게 수용했기 때문에 왜곡이 발생한 측면이 있습니다.

 

진보는 보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신기주 진보 역시도 그런 보수의 속성을 꿰뚫어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보는군요. 진보 교육감의 다수파 전략을 말씀하는 것도 그래서고요. 진보가 보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니까요.

 

조희연 보수는 무상 급식과 무상 보육을 대립시키는 담론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일관되게 무상 보육과 무상 급식은 한국형 복지의 중요한 축이고 아동복지와 학생 복지를 통해 확보하게 자리 잡았다고 주장해왔어요. 무상 급식은 진보가 주도해서 복지의 영역으로 새롭게 개척한 겁니다. 무상 보육은 보수가 주도해서 복지의 새로운 영역으로 개척한 거죠. 물론 보수가 주도했다는 건 약간 어폐가 있죠. 진보가 아래로부터의 복지 운동을 열심히 전개해서 보수가 수용하는 방식으로 의제적으로 주도한 거니까요. 그럼에도 이 두 가지가 한국형 복지의 중요한 영역으로 개척된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를 모두 끌어안아야 한다는 거죠.

 

신기주 보수는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보궐선거에서 진보 돌풍의 원동력이 되었던 무상 급식을 재정 위기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끊임없이 허물어뜨리려고 애쓰고 있죠.

 

조희연 저는 교육재정과 국가 재정의 위기 상황이라고 해도 두 가지 진보와 보수 정책을 대립적으로 보지 말고 모두 끌고 가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심지어 이렇게까지 덧붙였어요. 지금까지는 무상 급식이나 무상 보육을 보편 복지의 관점에서 접근했는데 현재 우리는 교육과 국가 재정 위기를 겪고 있다. 말하자면 복지 확대가 무조건적인 선(善)은 아니라는 지혜를 국민이 선택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복지 확대에 대해서는 선별이냐 보편이냐의 논쟁에 휘말리지 말고 조금 더 지혜롭게 국민적 토론으로 결정해나가자. 그러나 이미 확립되고 국민이 수용한 무상 급식과 무상 보육이라는 한국형 복지는 비가역적(非可逆的)이라는 걸 인정하자. 이렇게 해서 무상 급식과 무상 보육을 대립시키려는 보수 언론의 전략을 피해간면이 있어요.

 

신기주 교육감으로 당선되기 전에 사회학자로서 주장했던 부분이 생각납니다. 사회 변화는 시민사회운동이 진보 정당을 변화시키고, 진보 정당이 다시 보수 정당을 변화시키는 선순환구조를 통해 일어난다고 설명하셨어요.

 

조희연 그렇죠.

 

신기주 설득력 있는 전략 같습니다. 그런데 이론적인 정치 전략 레벨에서 현실적인 교육정책 레벨로 돌아오면 이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임기 초반에 정면 승부를 걸었던 자사고 재지정은 결국 정치적으로 패배한 것 아닌가요?

 

조희연 정치적 승부로 나누는 것이 조금 그렇긴 합니다만, 굳이 따지면 정치적으로 패배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뒤집어서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정치적으로 승리한 것도 아니고요. 단기적으로는 일시적인 정책 좌절이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자사고를 넘어서서 우리 교육 문제 일반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불러오는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그래서 우리 교육이 정부가 지키고자 하는 자사고의 가치, 즉 고교 서열화와 교육 불평등 등 제도적 한계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정치적인 승리가 아닐까 합니다. 고교 체제 불평등 문제, 일반고 황폐화 문제, 교육 불평등 문제를 국민적 문제로 부각할 수 있었으니까요.

 

신기주 거시적 정치 지형도 안에서는 미시적 행정 권력만으로 풀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걸 대중이 감안해준다면 좋을 텐데요.

 

조희연 우리 사회가 정말로 보수 정권 15년 시대로 간다면, 1987년 6월항쟁으로 확립된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는 정비될지라도 내용적 혹은 실질적으로 허구화되어 가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민주주의를 무력화했던 힘이 87년 체제 이전에는 누구나 혐오하는 독재국가의 폭력적 권력 형태로 나타났어요. 지금은 세련된 국가 제도의 모습을 하고 강력한 시장 권력의 힘을 등에 업고 작동하고 있지요.

 

신기주 교육감의 자사고 지정 취소를 교육부가 직권 취소한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겠네요.

 

조희연 법적으로는 장관에게 직권 취소 권한이 있으니까요.

 

신기주 폭력을 쓰는 대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치 전략과 시장 권력을 통해 머리를 써서 작동하는 보수에 맞서는 방법은 치밀한 정치 전략을 세우고 그 결과를 대중과 직접 소통해서 설명하는 방법이겠군요.

 

조희연 지난해 12월 말에 교육단체 원로분들하고 간담회를 했어요. 어떤 분이 이런 평가를 하더군요. 최종적으로 2+6 자사고 정책은 현재의 제한된 조건 아래에서는 최선의 전략이고 정책이었던 것 같다. 보수냐 진보냐, 여냐 야냐, 진보 교육감과 반대 진영의 대립이라는 건 선악의 싸움이 아니에요. 정책의 합리성을 놓고 각축하는 사이일 뿐이죠. 왜 한 평가를 또 하냐는 게 자사고측과 보수 언론의 핵심 공격 지점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항변했죠. 전임자인 문용린 교육감 시대에 자사고 평가가 완료된 게 아니다. 우리는 보완 평가를 통해 최종 평가를 완료한 것이다. 물론 이런 각축을 바라보는 제3자의 시각에서는 정책의 합리성이 의문시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걸 어떻게 상쇄하면서 정책을 추진할까 고민했고 그게 2+6 정책으로 구현된 거죠. 앞으로 운영을 정상화하겠다고 확약한 자사고에 대해서 2년 유예 판결이 내려진 겁니다. 재평가 자체가 무용하다는 논란에서 이탈해서 우리의 논리를 수용하는 부분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보수 진영의 재평가 논란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었다고 봐요.

 

신기주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말씀이군요?

 

조희연 제가 마지막으로 자사고에 대한 최종 정책을 선택했을 때, 자사고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어요. 하나는 자사고측이 우리에게 취소무효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이고, 하나는 교육부가 직권 취소를 하는 방향입니다. 원래는 전자가 더 선호되는 전략이었어요. 정책 대상과 정책 집행 주체가 계속 논란을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도 불편한 선택이었죠.

 

신기주 결국 후자를 선택했죠.

 

조희연 우리로서도 상당히 깨끗하게 정리된 겁니다. 교육부의 직권 취소에 대해서는 대법원 재소 같은 방법을 통해서 공세적으로 공방할 수 있거든요. 자사고 학부모들을 상대해야 한다면 수세적 공방을 할 수밖에 없어요.

 

‘한국 교육 대설계’가 필요하다

 

신기주 교육감님께서도 정치적 자산을 쌓았다고 자평하지만, 황우여 교육부장관도 자사고를 지켜냈다는 정치적 자산을 쌓은 측면도 있습니다. 그걸 노리고 직권 취소를 선택했겠고요. 집권당 대표까지 지낸 정치인이니까 정무적 판단을 한 거죠. 1라운드에서 각자 정치적 자산을 쌓았다면 2015년에 이어질 다음 라운드는 무엇일까요?

 

조희연 2004년 4대 개혁 입법 중에서 사립학교법 개정도 중요했어요. 당시 한나라당은 천막 농성까지 하면서 사학 진영과 동맹을 맺어서 사립학교법 개혁 입법을 좌절시켰거든요. 사학의 공공성이라는 화두가 한국 사회에 중요하게 부각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학이라는 게 과거에는 국가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재를 털어서 교육을 통해 사회 공헌을 하려고 설립된 교육기관이었어요. 많은 사학이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일부 사학이 정반대로 가는 바람에 비리 사학이 문제가 되는 거죠. 지금은 국가 재정에서 교사 월급부터 학교 운영비까지 지원하게 되어 있거든요. 일부 재단 적립금만 있으면 됩니다. 이제는 사재를 털 필요가 없어요.

 

신기주 남는 장사인데요?

 

조희연 굉장히 중요한 비즈니스입니다. 나중에 자손들이 유산상속 싸움을 벌이게 되는 거대한 재산이죠. 국가 재정이 대거 투입되는 사학은 당연히 운영의 공공성이 확보되어야 해요. 일부 비리 사학이 있는데 지금은 사립학교법이 너무 후퇴해서 어떤 제제를 해도 효과가 없다는 게 문제예요. 제제를 해도 안 해버리면 그만이거든요. 약간의 재정적 불이익밖에 없어요. 행정적·법률적 제제 수단과 처벌 수단이 없어요. 가만히 보면 외고나 자사고도 대부분 사학이죠.

 

신기주 자사고 재지정 이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겠군요.

 

조희연 그런데 지금은 사학의 힘이 너무 커져버렸어요. 사학을 공공적으로 규제하는 법 자체가 의회를 통과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 지점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는 거고요. 이익집단 민주주의의 초라한 모습이 있는 거죠.

 

신기주 책에서 교육이 아파서 사회가 병들었다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지금 사회는 병들었지만 자신이 병들었다는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중독자 같아요. 학부모나 학생이나 계급상승의 수단으로서 교육에 중독되어 있어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조희연 지금 우리 교육은 대단히 비합리적인 구조 속에서 각자는 합리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합리적 경쟁이 극단화되다 보니까 자기 파괴적 상황에 몰입되어 있죠. 저도 학부모들의 안타깝고 애절한 열망을 이해해요. 우리 사회가 얼마나 험악합니까. 이런 사회에서 한둘뿐인 자식에게 안전벨트 하나라도 쥐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죠. 그 열망이 초·중·고등학교부터 유치원까지 악순환으로 나타나죠. 『동아일보』의 어느 기자가 “누가 누구를 먼저 주저앉힐 것이냐의 싸움”이라고 표현했죠. 이런 왜곡된 경쟁 구조의 이면에 대학입시 체제가 딱 버티고 있습니다. 천민적인 한국 자본주의의 왜곡된 사회적·경제적 현실이 버티고 있다는 거죠. 학력, 학벌, 직업, 지역에 따른 차별이 엄청나게 극단화되어 나타나고 있어요.

 

신기주 취임 초기에 진보 교육감들이 모였을 때 언론에서는 서울대 폐지론 이야기가 나왔다고 보도했어요.

 

조희연 폐지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대학 학벌 체제와 입시 체제, 대학 평준화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죠. 다만 교육감의 영역을 벗어난 의제까지 제기하기에는 여유가 없었죠. 물론 개인적으로는 대학 학벌 체제를 포함해서 입시 체제 전반에 대한 개혁 방향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적절한 시기가 오면 한국의 초·중등교육을 세계 최고로 만들기 위해 대학 총장들은 물론 재계, 언론, 노동, 시민사회 등 다양한 오피니언 리더와 교육감들이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한국 교육 대설계를 위한 사회 대통합 교육회의나 국가교육개혁위원회를 구상해야 한다고 봅니다.

 

신기주 분명 선출직 교육감의 역할은 행정 관리자에 머물러서는 안 될 테니까요. 교육이라는 영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서 진보적 의제를 설정하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조희연 경제적 합리성의 관점에서도 일류 대학 졸업생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너무 크고 전생애적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사회의 건강한 역동성을 위해서도 적절하지 않아요.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이 열심히 패자부활전을 위해서 노력해야 사회가 역동적인 거잖아요. 수능 몇 점 차이로 평생이 결정된다면 패배자에게는 영원한 열패감만 주겠죠. 그건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이지 않으니까 논의할 때가 되었다는 겁니다.

 

신기주 지금은 우리 모두가 대학 입시의 실패자인 것 같습니다. 다들 자신이 대입에 실패했다고 여기죠. 심지어 서울대를 나온 사람들조차도 그렇더군요. 의대에서도 돈 되는 학과에 못 갔거나 법대에서도 고시 패스를 못했다면요.

 

조희연 2015년 저의 교육 어젠다는 우선 교육 내용을 변화시키는 겁니다. 저는 스스로를 세월호 교육감이라고 표현합니다. 세월호 희생을 통해서 학부모들이 새로운 교육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었다고 봅니다. 저는 그런 바람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 보여줄 필요가 있죠. 말하자면 포스트 4·16 교육 체제라고 불러도 좋겠어요. 단적으로 넘버원 교육에서 온리원(only one) 교육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300여 명의 아이도 하나하나 꿈과 끼와 다양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우린 그걸 잃은 거죠. 아이들의 다양한 잠재력과 끼를 꽃피울 수 있어야 미래 경쟁력도 다양화되고 확대된다고 봅니다. 그러자면 우리의 교육철학을 바꿔야겠죠. 2015년에 교복 입은 시민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87년 체제 이후에도 시민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집단이 둘 있어요. 하나는 군인이고 하나는 학생입니다. 군인은 군복 입은 시민으로, 학생은 교복 입은 시민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을 자기 결정권을 가진 주체로 대우해주면 됩니다. 교복 입은 시민 프로젝트를 통해서 학생 자치를 대대적으로 지원할 생각입니다. 저는 요즘 아이들이 결정 장애를 앓고 있다고 봐요. 스스로 자기 문제를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할 능력이 없어요. 국영수 암기만 하면 최고니까요.

 

신기주 사회가 그런 능력을 자꾸만 퇴화하고 지연하고 있죠.

 

조희연 부모도 자식의 결정 능력을 퇴화시켜요. 그래서 대학생들의 학점 관리를 학부모가 대신 해주는 비극적인 모습이 연출되는 겁니다. 학생들의 자율적·자치적 활동을 신장하는 지원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갈 겁니다. 학생회 예산까지 포함해서요. 동아시아형 교육 복지사회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싶습니다. 교육이 희망의 통로이자 복지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는 사회로 가는 꿈을 꾸고 있거든요.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선도적인 교육 복지국가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잠재력이 우리 안에 흐르고 있거든요. 조소앙의 삼균주의(三均主義), 즉 정치 균등, 경제 균등, 교육 균등의 전통이 우리에게 있어요.

 

신기주 검찰이 지난해 12월 4일 공소시효를 하루 남기고 교육감님을 기소하기로 했습니다. 허위공표죄는 징역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 벌금이 법정형입니다. 유죄가 확정되면 교육감직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 기소를 목적으로 한 표적 수사입니다. 어떻게 대응할 계획이세요?

 

조희연 이번 검찰 기소는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문제가 많다는 점을 충분히 피력했습니다. 시민사회에서도 기자회견 등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알리기도 했죠. 어떤 점으로 보나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기소이기 때문에 법원에서 현명하게 판단해서 처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최근 정부의 흐름으로 볼 때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의연하게 소송에 임하겠지만, 이것이 단지 저 하나의 개인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교육 자치를 세우느냐 못하느냐의 문제, 새로운 교육개혁을 열망하는 국민 모두의 염원과 관련된 문제라는 점에서 모든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야 할 것으로 생각해요.

 

신기주 교육감님께서는 늘 이선(二線)에 있었습니다. 스스로 늘 일선이 아니라 이선에서 사회운동을 해왔다고 말씀했죠. 그런데 어쩌다 교육 일선에 서게 된 겁니까?

 

조희연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평생을 살고 싶었습니다만, 의도하지 않게 일선으로 불려나오게 되었습니다. 인생 이모작을 조금 일찍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병든 사회에서 아픈 교육을 치료해서 다시 병든 사회를 바꾸어나가는 일을 할 기회가 생긴 거죠. 진심으로, 교육으로 희망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15년 2월 호에 실렸습니다.


기사입력: 2015/03/26 [23:48]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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