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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09.1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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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 : ‘스티브 잡스의 철학’은 잊어라?
[인물포커스] 쌍방향 리더쉽, 운영의 천재로 애플을 이끄는 잡스 후계자
 
김환표

 애플의 ‘후계자 리스크’에 대한 우려

 

혁신적인 창업자가 세상을 떠난 뒤 굴곡을 겪은 회사가 적지 않다. 한때 세계시장을 호령했던 일본의 소니와 애니메이션의 명가 디즈니가 대표적이다. 소니는 1999년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가 폐렴으로 숨을 거둔 이후 빠른 속도로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디즈니 역시 창업자 월트 디즈니가 1966년 사망하면서 20여 년 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두 회사 모두 후계자 양성에 실패한 게 몰락의 결정적인 이유로 거론되는데, 이런 현상을 일러 ‘후계자 리스크’라 한다. 물론 후계자 리스크를 견뎌낸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잘 나가리라는 보장은 없겠지만 천재성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창업자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대체하는 게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2011년 10월 5일 애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자 IT업계는 물론이고 전 세계인들 사이에서 애플의 ‘후계자 리스크’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종교의 창시자는 죽더라도 ‘신도’들은 오래 남듯이 잡스가 없더라도 애플이 자신의 가치와 팬을 그대로 이끌어 갈 수도 있다”며 잡스가 없더라도 애플은 계속해서 혁신적인 제품과 경이적인 실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지만1 대부분은 애플에 ‘후계자 리스크’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예컨대 2011년 10월 5일 『뉴욕타임스』는 “잡스 없는 애플이 유례없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2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가인 레지스 매키너는 “잡스의 경영 유전자(DNA)를 모두 물려받을 수 있는 인물은 애플에 없다”고 말했다.3 잡스가 많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후계자를 양성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주장도 나왔다.4 잡스의 자리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였겠지만 잡스의 후계자로 애플의 새로운 CEO가 된 팀 쿡(Tim Cook)으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CEO로서 본격적인 시작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후계자 리스크’의 대상으로 세간의 입길에 오르내렸으니 말이다.

 

쿡에 대한 이런 평가는 온당한 것일까? 세간의 평가와 달리 쿡은 일찍부터 잡스의 후계자로 거론될 만큼 ‘잡스의 주력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잡스가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았을 때, 2009년 간 이식 때문에 6개월간 애플을 떠났을 때, 잡스가 사망 직전 병가를 냈을 때도 애플을 임시로 이끌며 잡스의 빈자리를 무난하게 채웠다는 평가를 들은 인물이다. 잡스 역시 쿡에서 큰 신뢰를 보낸 바 있다. 애플의 미래를 걱정한 정치적 발언이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잡스는 2011년 8월 24일 CEO직 사임 이메일에서 “쿡을 차기 CEO로 강력하게 추천한다”고 직접 언급했다.5

 

잡스와 만난 지 5분 만에 애플을 택한 쿡

 

1960년 앨라배마주 소도시에서 태어난 쿡은 미국 오번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듀크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12년간 IBM에서 근무한 그는 세계적인 PC 제조사인 컴팩 부사장을 거치는 등 IT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1998년 애플에 합류했는데, 당시 애플 실적이 안 좋아 주위 사람들이 이직을 만류했는데도 스티브 잡스를 만난 지 5분 만에 입사를 결정한 것으로 유명하다.6 쿡은 이렇게 말한다. “스티브와 첫 면접을 시작한 지 5분 만에 저는 경계심과 논리를 모두 던져버리고 애플에 입사하고 싶어졌습니다. 애플에 합류하는 것이 창조적인 천재를 위해 일할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지요.”7 쿡은 2010년 모교인 오번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은 애플에 들어가기로 한 결정에서 나왔다”며 “애플에서 일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내가 내렸던 결정 중 최고였다”고 말했다.8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것일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팀을 만나 보니 그도 저와 원하는 게 같더군요. 그래서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저는 그가 자신이 할 일을 정확히 안다고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저와 같은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고도의 전략적 차원에서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었지요. 덕분에 저는 그가 찾아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한 많은 말을 잊어버리고 지낼 수 있었지요.”9

 

쿡이 애플에서 맡은 일은 공급망과 재고 관리였는데, 놀라운 수완과 능력을 발휘했다. 『스티브 잡스』의 저자 월터 아이작슨은 “쿡은 애플의 핵심 공급 업체를 100곳에서 24곳으로 줄였다. 공급 업체들은 거래를 지속하기 위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해야 했으며, 그의 설득에 따라 회사 위치를 애플의 공장 옆으로 옮긴 업체도 다수 있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또한 쿡은 애플의 창고 19개 가운데 10개를 폐쇄했다. 쌓아둘 공간을 없앰으로써 재고를 줄인 것이다. 잡스는 1998년 초에 2개월분의 재고를 1개월분으로 줄였다. 그해 9월, 쿡은 그것을 6일분으로 줄였으며 이듬해 9월 무렵에는 놀랍게도 2일분으로 줄였다(때로는 단지 15시간분만 남겨놓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컴퓨터 제조 공정도 4개월에서 2개월도 단축했다. 이 모든 조치 덕분에 비용이 절감되었음은 물론, 새 컴퓨터를 한 대 한 대 생산할 때마다 최신 부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10

 

이렇듯 재고 관리에 ‘혁신’을 가져와 운영 효율성을 높인 쿡은 ‘운영의 천재’라는 평을 얻었는데, 애플은 이때 확립한 부품 구매 체계를 지금까지도 지속하고 있다.11 2002년부터 글로벌 판매 및 영업 부문 대표를 맡았던 쿡은 2004년 잡스가 암 종양 수술을 받자 2개월간 임시로 애플을 이끌었으며, 공을 인정받아 2005년 10월 잡스에 의해 애플의 2인자인 최고운영책임자(COO·Chief Operating Officer)에 임명되었다. 당시 잡스는 “(쿡이 글로벌 판매와 영업 대표로 실질적으로는 COO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할 때가 됐다”고 했다.12

 

팀 쿡의 쌍방향 리더십

 

쿡은 잡스와 마찬가지로 실리콘밸리에서도 손에 꼽히는 일중독자다. 그는 사무실에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팀원들에게 새벽 4시 30분에 이메일을 돌리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할 때도 있으며, 국제전화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걸고 일요일 저녁 회의까지 주재할 정도라고 한다.13

 

하지만 다른 점이 더 많다. 잡스는 ‘독불장군’ 이미지가 강하지만 쿡은 소통에 능한 ‘남부신사’로 평가받는다.14 『포천』의 이코노미스트 아담 라신스키(Adam Lashinsky)는 2008년에 기고한 「스티브 잡스 배후의 천재 팀 쿡(The genius behind Steve)」에서 쿡에 대해 “쿨하고 침착하며 절대로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고 표현했다.15 잡스는 의견이 대립될 때는 불같이 화를 내는 스타일이지만 쿡은 경청을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쿡에 대해 “일 년에 적어도 3번은 만나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경청하는 자세였다. 그 정도면 굉장히 높은 지위인데도 우리의 얘기를 다 들어주더라. 굉장히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16

 

협력사들과 동반자 관계를 추구한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중국에 있는 폭스콘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대부분을 위탁 생산하고 있는 폭스콘은 노동자에 대한 극심한 노동통제와 착취로 악명이 높다. 499달러짜리 아이패드를 폭스콘에서 조립하는 데 드는 비용은 12달러에 불과하다. 이런 비인간적인 작업환경으로 적잖은 노동자의 자살이 이어지면서 폭스콘의 노동 조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2012년 3월 쿡은 애플의 CEO로는 최초로 중국을 방문해 폭스콘과 함께 임금·노동조건 등과 관련된 노동법 위반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17 잡스는 생전에 폭스콘의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을 알고 있었지만 텔레비전에 출연해 폭스콘이 아주 좋은 회사라고 거짓말을 했을 뿐만 아니라 “폭스콘의 자살률은 중국 평균 자살률보다 낮다”는 말로 폭스콘을 옹호한 바 있다.18 쿡이 애플의 CEO로 임명되었을 때 애플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던 삼성과 LG 등이 반겼던 이유이기도 하다.

 

회사 경영도 잡스와는 많이 다르다. 구본권은 “잡스 1인이 주도하던 경영 스타일도 달라졌다. 쿡은 디자인을 총괄하는 조너선 아이브에게 제품 개발 전반을 위임하고, 마케팅은 필 실러, 소프트웨어 개발은 크레이그 페러리기 등 주요 임원에게 권한을 넘기는 등 집단지도 체제 형태로 애플의 의사결정 구조를 변모시켰다”고 했다.19 회사의 중대 사안을 비밀리에 처리했던 잡스와 달리 쿡은 직원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이런 경영 방식 때문일까? 2012년 미국의 취업정보 사이트 글래스도어가 2011년 3월 16일부터 1년간 미국 각 기업 직원에게 던진 ‘CEO의 경영 방식에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쿡에 대한 애플 직원의 지지율은 97퍼센트에 달했는데, 이는 2010년 잡스에 대한 지지율 95퍼센트를 뛰어넘은 수치다. 쿡은 미국 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지도 조사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20

 

혁신은 사라졌는가?

 

CEO로 취임한 후 1년 동안 쿡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잡스 시절 애플의 절대 가치였던 혁신이 사라졌다는 비판이다. 예컨대 2012년 9월 12일 쿡은 아이폰5를 선보이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우리가 이전에 작업했던 그 어떤 제품과도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지만 디자인을 제외하고 잡스가 남긴 유산이 아닌 것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는 지적이 주를 이루었다. 당시 대다수의 미국 언론은 아이폰5에 대한 혹평을 쏟아내며 혁신은 없었다고 평가했다.21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잡스 사망 1주기(2012년 10월 5일)가 다가오면서 잡스에 대한 추모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윤고현은 2012년 9월 “잡스에 대한 그리움은 지난 3월 ‘뉴아이패드’ 출시 때부터 두드러졌다. 미국 코미디언 댄 쿡은 트위터(@danecook)를 통해 뉴아이패드에 대한 실망감을 전하며 ‘잡스가 무덤에서 당황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트위터 사용자(@grumpygamer)도 ‘진짜 뉴아이패드라고? 애플은 더 나은 이름을 찾기 위해 잡스의 영혼과 회의라도 열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아이폰5 공개와 함께 국내 네티즌은 더 거세게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소셜 네트워크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잡스 없는 애플’에 대한 실망감과 잡스에 대한 그리움을 거칠게 표현하고 있다. 게시판과 트위터에는 ‘1년 반 동안 겨우 이거냐. 스티브 잡스 덕이었나’, ‘잡스 머리에서만 나오던 혁신. 애플도 끝났네’, ‘김태희 기다렸는데, 마누라가 온 격’, ‘잡스가 그립다’ 같은 의견이 쏟아졌다.”22

 

아이폰5와 같은 시기에 공개된 새 운영체제 iOS6가 선보인 자체 지도 서비스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쿡이 직접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지만 애플 마니아들의 성토는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애플의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은 쓰레기”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떠나기도 했는데, 영국 보도채널 스카이뉴스의 경제부문 편집자로 자칭 ‘애플 마니아’였던 에드 콘웨이는 “10대 때부터 애플과 함께해왔”지만 이제 애플과 결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iOS6에 대해 “아주 형편없다”고 혹평하고, 혁신이 사라졌다고 꼬집으면서 “새 아이폰의 수많은 앱은 모두 쓰레기다. 애플이 3년 전 아이패드 이후 새로운 제품을 내놓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이어 그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순수함으로 대표돼 왔고 그래서 신뢰할 수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이런 특징이 사라졌다”고 했다.23

 

시장의 실적마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쿡에 대한 비난은 절정에 달했다. 2013년 4월 19일 애플의 주가는 390.53달러로 최근 1년 새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는데, 2011년 12월 이후 애플 주가가 400달러 미만으로 내려온 것은 처음으로 2012년 9월 19일 702.19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을 때보다 45퍼센트 가까이 주가가 폭락한 것이다.24 급기야 쿡이 교체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온라인 증권전문사이트인 ‘더 스트리트(The Street)’는 “잡스가 살아 있었다면 쿡을 해고했을 것”이라고 혹평했다.25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아예 애플의 CEO를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디자인한 인물로 쿡 체제에서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책임지고 있는 조너선 아이브 수석 부사장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26

 

쿡의 ‘잡스 지우기’

 

이런 비판 속에서도 쿡은 의연했다. 오히려 본격적으로 ‘마이웨이’를 걷기 시작했는데, 잡스 체제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2014년 5월 쿡은 30억 달러를 들여 음향기기업체 ‘비츠 일렉트로닉스’와 ‘비츠뮤직’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다른 기업 투자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잡스의 방식을 버린 것이었다.27

 

같은 달에 쿡은 구글에 먼저 손을 내밀어 스마트폰 기술 관련 특허 전쟁도 끝냈다. 생전 잡스는 “난 안드로이드를 무너뜨릴 겁니다. 안드로이드는 훔친 물건이니까요. 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핵전쟁을 불사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28 또 7월에는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에서 경쟁관계였던 IBM과 모바일 시장에서 전격적으로 손을 잡았다.29 이에 앞서 2012년 3월 19일 쿡은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통해 450억 달러에 이르는 현금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역시 잡스의 철학을 정면으로 거스른 행동이었다. 잡스는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은 자본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경영이라기보다 투자자들에게 ‘뇌물’을 주는 경영 행위라며 반대해왔다.30

 

2014년 9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서 열린 애플의 대규모 신제품 발표행사에서 쿡은 ‘잡스 마케팅’31을 펼치기도 했지만 ‘잡스 지우기’의 정점을 찍었다. 이날 쿡은 기존 4인치 이하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아이폰을 버리고 4.7인치를 적용한 아이폰6와 5.5인치의 아이폰6 플러스 등 대화면 아이폰을 선보였는데, 대화면 아이폰 역시 “스마트폰은 한 손 엄지손가락으로 모든 것을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잡스의 철학을 뒤집은 것이었다.32 잡스는 대화면 스마트폰에 대해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라며 독설을 퍼부었을 만큼 대화면을 경멸했다.33

 

그런데 쿡은 왜 잡스의 철학을 버린 것일까?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잡스는 이상주의자였다. 잡스는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는 원칙에 반대했다. 고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것이 내가 절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이다. 아직 적히지 않은 것을 읽어내는 게 우리의 일이다.”34

 

하지만 쿡은 실용주의자다. 애플의 한 임원은 2009년 『타임』과 인터뷰에서 “잡스가 회사의 얼굴이자 제품 개발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쿡은 회사 운영을 디자인하며 이것을 현금 더미로 만드는 사람”이라는 말했는데,35 이 발언이 시사하듯, 쿡은 ‘회사 운영의 천재’로 불린다. 쿡의 경영 능력은 잡스가 병가로 회사를 비운 비상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당시 쿡은 아이폰 판매 돌풍을 일으켜 애플 주가를 50퍼센트 끌어올리는 등 탁월한 위기 관리 능력을 발휘해 잡스의 감각을 따라가지는 못해도 경영 능력만큼은 잡스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36

 

이런 점에서 보자면 쿡의 대화면 스마트폰 시장 진출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대화면 스마트폰을 일컫는 패블릿(Phablet, 휴대전화와 태블릿PC의 합성어)의 점유율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장 조사 업체들은 2013년을 ‘패블릿의 해’라고 명명했는데,37 컨설팅 기업인 ‘액센추어’가 23개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2014년에 5인치 이상의 대화면 스마트폰을 사기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신흥 시장인 중국과 인도에선 3분의 2 이상의 응답자가 5인치 이상 화면 크기를 원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38 그러니까 쿡은 잡스 시대에 고수해왔던 애플만의 제품 철학만으로는 수익성을 높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장의 변화와 대중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고 있는 셈이다.

 

‘애플의 파트너와 시장은 쿡을 숭배하고 있다’

 

물론 잡스의 혁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쿡의 경영 능력은 과장되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시장에서 쿡이 거둔 실적은 잡스가 가꾸어 놓은 열매를 거두어들인 것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오히려 지금 상황에는 쿡의 리더십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해 홍장원은 2013년 10월 이렇게 말했다. “이는 ‘구글-삼성’ 연합의 약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른바 경쟁의 패러다임이 달라졌다는 것. 잡스가 세상을 떠난 2011년 10월 당시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점유율은 애플 iOS와 비슷했지만 지금은 두 배 가까이 격차가 벌어졌다. 개방형 OS 안드로이드 장점과 삼성전자 기술발전이 더해져 만든 이 결과는 잡스가 살아 있어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팀 쿡이 저가모델을 내놓은 것도 ‘시장 추종자’ 입장에 처한 애플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은 애플을 따라하는 카피캣(Copycat·흉내쟁이)에 불과하다’는 등 독설로 대표되는 잡스 리더십은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것이다.”39

 

잡스교도들은 잡스를 모욕한 말이라고 발끈할 수도 있겠지만 잡스가 살아 있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쿡은 ‘후계자 리스크’를 걷어낸 것일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자면 ‘그렇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쿡 체제가 시장과 파트너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벤처스퀘어 대표 명승은은 “잡스를 기억하는 팬은 여전히 많지만, 애플의 파트너와 시장은 이미 잡스를 잊고 팀 쿡을 숭배하고 있다”고 말한다.40 비슷한 맥락에서 구본권은 “‘쿡의 애플’ 기업문화 변화는 확연하다. 최고경영자가 ‘오로지 제품’만 신경을 쓰던 잡스 시절과 달리, 기업 활동의 다양한 측면을 챙기기 시작했다”며 “‘쿡의 애플’은 소비자, 투자자, 직원 등 다양한 층위의 요구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만족시키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이어 구본권은 애플의 “문제는 갈수록 늘어나는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보통 기업의 길로 들어섰다는 점”에 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독특한 카리스마의 창업주가 건설한 특별한 애플을 후임 경영자가 합리적이면서 효율적인 조직으로 리모델링하는 데 따른, 불가피한 과정이다.”41

 

어쩌면 잡스 역시 이런 시장의 흐름과 소비자의 기호 변화에 대처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과정’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잡스가 자신의 ‘영적 파트너’42라고 칭했던 조너선 아이브 대신 쿡을 CEO로 추천한 것부터가 그렇다. 쿡에 대한 잡스의 신뢰가 대단히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잡스가 ‘제품의 혁신’만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쿡은 CEO가 되지 못했을 개연성도 있기 때문이다. 잡스는 “팀은 기본적으로 제품을 만드는 친구가 아니지요”라고 말한 바 있는데,43 이 발언을 쿡이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애플을 경영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각주]

1) 김현수·정재윤, 「[스티브 잡스 사망] “이제 씨 없는 사과” vs “그래도 애플은 애플”」, 『동아일보』, 2011년 10월 7일.

2) 김희섭, 「[스티브 잡스 세상을 바꾼 남자] “애플, 잡스를 대체할 사람은 없다” IT 전문가들 회색빛 전망」, 『조선일보』, 2011년 10월 7일.

3) 김창우, 「소니·디즈니·제니스…‘후계자 리스크’ 극복 못해 퇴보 혁신적 창업자 떠난 기업들의 운명은」, 『중앙선데이』, 제239호(2011년 10월 9일).

4) 이경주, 「잡스, 후계자 양성엔 실패했다 삼성경제硏 “한국 기업도 승계 계획 준비해야”」, 『서울신문』, 2011년 10월 28일, 22면.

5) 이수운, 「[굿바이 스티브 잡스] 차기 CEO 팀 쿡은 누구」, 『전자신문』, 2011년 8월 25일.

6) 남형도, 「“잡스를 만난 지 5분 만에 애플로…” 차기 CEO ‘팀 쿡’을 말하다」, 『파이낸셜뉴스』, 2011년 8월 25일.

7) 월터 아이작슨, 안진환 옮김, 『스티브 잡스』(민음사, 2011), 567쪽.

8) 김봉규, 「애플의 새 CEO, 팀 쿡은 누구?: 파산 직전 애플을 세계 1위 만든 ‘운영의 천재’」, 『프레시안』, 2011년 8월 25일.

9) 월터 아이작슨, 안진환 옮김, 앞의 책, 567쪽.

10) 월터 아이작슨, 안진환 옮김, 앞의 책, 568~569쪽.

11) 정지훈, 『거의 모든 IT의 역사: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꾼 위대한 혁명』(메디치, 2012), 360~361쪽; 김봉규, 앞의 기사.

12) 김현동, 「애플, 신임 COO에 팀 쿡 임명」, 『이데일리』, 2005년 10월 15일.

13) 정지훈, 「[정지훈 교수의 IT 인물열전 ①] 스티브 잡스 그 후, 애플 선장 맡을까?: 팀 쿡」, 『주간동아』, 2011년 3월 14일.

14) 송주영, 「잡스 대행 팀 쿡, 잡스 못지않은 열정 종결자」, 『지디넷』, 2011년 1월 24일.

15) 남형도, 앞의 기사.

16) 김정남, 「권영수 사장 “애플 팀 쿡 COO, 경청의 경영인”」, 『뉴시스』, 2011년 1월 23일.

17) 박민희, 「애플 하청기지 폭스콘에 봄 올까」, 『한겨레』, 2012년 3월 30일.

18) 로사 전(Rosa Chun), 「[Weekly BIZ] 로사 전 교수의 경영 인사이트 ①: 독재적 경영 스타일과 비밀주의가 낳은 ‘눈물의 아이폰’」, 『조선일보』, 2012년 3월 24일.

19) 구본권, 「‘팀 쿡의 애플’ 3년…이상에서 실용으로」, 『한겨레』, 2014년 9월 14일.

20) 고은이, 「애플 팀 쿡, 美 IT기업 직원평가 ‘최고 CEO’」, 『한국경제』, 2012년 3월 31일.

21) 엄형준, 「밋밋한 아이폰5…애플의 아이콘 ‘혁신’은 없었다」, 『세계일보』, 2012년 9월 14일.

22) 윤고현, 「“‘하나 더’가 아쉬운 때, 그가 그립다”: 스티브 잡스 사망 1주기 맞아 SNS·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추모 열풍」, 『시사저널』, 1197호(2012년 9월 26일).

23) 김진철, 「잡스 떠난 1년…애플 마니아들 “쓰레기 앱” 극언까지」, 『한겨레』, 2012년 11월 9일.

24) 김준엽, 「팀 쿡 경질설까지…애플이 심상치 않다」, 『국민일보』, 2013년 4월 22일.

25) 홍재원, 「[스티브 잡스 1주기] 죽은 잡스, 살아 있는 경쟁자 꺾었지만 혁신의 끝도 보이기 시작」, 『경향신문』, 2012년 10월 3일.

26) 전설리, 「애플 순이익 10년 만에 감소…팀 쿡 교체說까지」, 『한국경제』, 2013년 1월 25일.

27) 송경재, 「애플 쿡 CEO 잡스와 180도 다른 행보」, 『파이낸셜뉴스』, 2014년 5월 13일.

28) 월터 아이작슨, 안진환 옮김, 앞의 책, 804쪽.

29) 강미선, 「적에서 동지로…손잡은 애플·IBM 모바일 판 흔드나」, 『머니투데이』, 2014년 7월 16일.

30) 천영식, 「애플 17년만에 첫 배당…팀 쿡 ‘독자색깔’ 속도낸다」, 『문화일보』, 2012년 3월 20일.

31) 이날 쿡은 아이폰을 공개한 뒤 “원 모어 싱(One more thing)”을 외쳤는데, One more thing은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을 끝낼 때 애용한 문구로 쿡이 공개석상에서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또 쿡은 “잡스는 애플의 디엔에이(DNA) 속에 깊이 남아 있으며 그의 정신은 항상 회사의 기초가 될 것”이라면서 “나는 매일 그에 대해 생각한다”고 했다. 황희경, 「팀 쿡 애플 CEO “아무도 생각지 못한 제품 연구 중”」, 『연합뉴스』, 2014년 9월 13일; 이정애·조기원, 「애플, 5.5인치의 선택…‘한 손의 철학’을 버렸다」, 『한겨레』, 2014년 9월 10일.

32) 이정애·조기원, 앞의 기사.

33) 구본권, 앞의 기사.

34) 월터 아이작슨, 안진환 옮김, 앞의 책, 881쪽.

35) 서윤경, 「잡스 없는 애플 쿡이 잘 이끌까…탁월한 회사운영 능력 입증 시장 불안감 잠재울지 관심」, 『국민일보』, 2011년 1월 19일.

36) 이승환, 「애플, ‘쿡 체제’ 본격화…잡스 그늘 벗어나나?」, 『아시아투데이』, 2014년 6월 10일.

37) 박나영, 「팀 쿡, 왜 잡스 철학 버렸을까」, 『아시아경제』, 2014년 9월 10일.

38) 이정애·조기원, 앞의 기사.

39) 홍장원, 「스티브 잡스 2주기 맞은 애플…시장추종자로 전락 혁신DNA도 애플 신드롬도 약해졌다」, 『매일경제』, 2013년 10월 5일.

40) 명승은, 「보름달 환하게 뜬 날 애플이 떴네」, 『시사인』, 366호(2014년 9월 19일).

41) 구본권, 앞의 기사.

42) 월터 아이작슨, 안진환 옮김, 앞의 책, 541쪽.

43) 월터 아이작슨, 안진환 옮김, 앞의 책, 723쪽.

 

* 월간 인물과사상 2014년 12월호


기사입력: 2015/02/04 [15:03]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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