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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반공법' 41년 만에 재심서 '무죄'
몇 마디 말로 5년 뒤 징역형… 유족들 법정서 눈물 쏟아
 
최창민   기사입력  2015/01/22 [01:30]

"피고인 각 무죄."

10여분 동안 담담히 판결문을 읽어내려 가던 판사가 낭독을 멈추자 한동안 법정 안에 침묵이 흘렀다.

 

환갑 나이의 재심 신청자 자녀들은 "감사합니다. 재판장님!"이라고 말하고는 조용히 법정을 빠져나왔다.

 

41년 만에 내려진 무죄 판결에 대한 심경을 묻자, 유족 중 1명은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 4단독(판사 이대로)은 21일 이미 고인이 된 김도원(1918년생)씨, 차은영(1920년생)씨 부부의 반공법 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41년 전 내려진 징역 2년의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에 따르면 부인 차씨는 1969년 10월 초순과 11월 중순, 남편 김씨는 이듬해 2월 각각 거리와 자택 등에서 통일교 교인들과 만나 김일성을 찬양하고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혐의를 받았다.
 
경찰은 이로부터 5년 뒤인 74년 3월 해당 발언을 문제 삼아 김씨 부부를 체포해 구속했고, 법원은 이들 부부에게 각각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이후 이들 부부는 고등법원과 대법원에 차례로 항소했지만 모두 기각돼, 형기 2년을 모두 채우고 76년 3월에 만기 출소했다. 당시 전남 광양경찰서는 김씨 부부를 영장도 없이 체포했고, 불법 구금한 상태에서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검찰 수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가족과 변호인의 접견권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영장도 없이 체포돼 판사의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당시의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기간을 넘겨 위법한 구금을 당했다"며 "경찰 수사과정에서 위법한 구금, 회유 또는 위축된 심리상태로 인해 임의성 없는 자백을 했다"며 경찰과 검찰의 심문조서를 증거에서 제외했다.
 
또 재판부는 "4년이 넘게 지난 시점에서 대질조사 등 사실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이적성 발언을 한 사실을 인정한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사건의 당사자인 김도원 씨는 1990년, 차은영 씨는 2000년에 각각 세상을 떠나 고인의 자녀들이 재심을 대행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재심청구서에서 "변호인의 접견권이 침해된 상태에서 고문, 폭행 등이 있었다"며 "4~5평 정도 되는 작고 음습한 수사실에서 잠을 재우지 않으면서 자백 취지의 진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아들인 김희곤(60)씨는 "내가 19살이던 어느 날 부모님이 행방불명이 됐다가 2년 징역을 살고 오셨다. 지역에서 간첩이나 빨갱이로 낙인 찍혀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닐 수 없어 타향살이를 했다"며 "41년 동안의 한이 풀리는 것 같다. 저 세상에 계신 부모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나"라며 눈물을 흘렸다.
 
변호를 담당한 조영선 변호사는 "70년대 중앙정보부의 공작에 의해서 혐의가 창작돼 말 몇 마디 때문에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해 처벌받은 안타까운 사건"이라며 "당시 법원과 검찰이 진술의 허위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이 있다"며 "뒤늦게나마 사실을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 희생자 대부분은 소시민으로 방어력이 취약해 스스로 변론할 수 없었고, 지역사회에서 낙인이 찍혀 재생이 불가능한 40년을 보냈다"며 "세월이 지나 피해자 대다수가 사망했고 재심 소송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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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1/22 [01:3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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