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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산증인의 생생한 임시정부 이야기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이 밝힌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이윤옥   기사입력  2014/12/14 [21:20]

 

▲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김자동, 푸른역사     © 푸른역사

“임시정부 가족 일행은 1939년 4월 4일 버스 다섯 대에 나눠 타고 광시성의 류저우(유주)를 출발해 충칭(중경)으로 향했다. 내 나이 겨우 12살에 중국 창장(장강) 이남의 넓은 지역을 두루 여행한 셈이었다. 7살 이전에 상하이(상해), 자싱(가흥) 등에서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지만 그 후 5년 남짓 동안의 여정은 어린 나에게도 큰 경험이었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은 이번에 나온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도서출판 푸른역사》 책에서 그렇게 말했다. 12살 때 벌써 드넓은 중국 땅 상해에서 중경까지 무려 5천 킬로미터의 임시정부 피난길을 경험한 김자동 회장이야말로 임시정부에서 태어나 중경에서 광복을 맞고 귀국하여 현재도 임시정부 관련 일을 하고 있으니 “임시정부”의 산증인이라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12월 12일(금) 저녁 6시 광화문 ‘경희궁 뷔페’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주최의 송년회가 조촐히 열렸다. 이 자리에서 기자는 김자동 회장이 쓴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한 권을 받아와서 바로 그날 저녁 단숨에 이 한 권을 읽어 내려갔다.
 
김자동 회장은 2년 전 《상하이 일기, 도서출판 두꺼비》 를 낸바 있는데 2년 사이에 또 한권의 책을 내나 싶어 책장을 펼치니 “2012년 말에 <상하이 일기>라는 초판을 냈는데 이것이 부족함이 많아 출판사와 협의 하에 수정 보완하여 이번에 제목을 바꿔 새로 내었다”란 안내문이 있었다.
 
2년 전 나온 《상하이일기》도 읽은 적이 있지만 27년간 나라 잃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오로지 조국의 광복을 찾기 위한 고난에 찬 행군이었던 임시정부의 이야기는 몇 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이제 우리 곁에는 김자동 회장처럼 나긋나긋하게 “임시정부” 이야기를 들려 줄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이 정감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 1936년 여름 필자의 부친 김의한이 장시성 우낭현의 쑨원기념 중산도서관 관장으로 일할 때 도서관 앞에서 찍은 사진. 앞줄 왼쪽 넷째가 모친 정정화, 다음이 부친 김의한이다. 부친 앞의 소년이 필자.     © 김자동


 
이 책은 역사학자가 쓴 딱딱한 사실 위주의 책이 아니면서도 역사학자 보다 더 예리한 역사적 안목이 행간에 스며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어떤 역사책에서도 알려 주지 않은 ‘임시정부와 함께한 이웃들의 이야기‘ 가 독자의 흥미를 돋운다. 그것은 마치 색깔 조합이 잘된 하나의 아름다운 조각보를 보는 듯 정겹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해 미일전쟁이 터졌을 때 중경의 한인사회는 ‘이제는 일본이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라는 생각에 고무되었다. 개전 초기 안 좋은 소식들이 들려도 전세가 곧 반전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반년 가까이 반갑지 않은 보도가 이어졌다. 임정은 연합국의 종국적인 승리를 확신했지만 답답한 심정은 어쩔 수 없다. 국내 사정도 암울했다. 전시체제 아래서 일제의 압박과 수탈은 점점 심해졌다. 언젠가 밝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일제와의 협력을 거부하던 지식인과 사회지도자들 중에서 변절자가 속출했다. 그들은 일제에 협력했다” 당시의 국제정세와 조국의 상황을 김자동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뿐만 아니라 임시정부와 함께하던 가족의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있다.
 
“우리 가족은 창사(장사)에서 7월까지 머물렀다. 그곳에 있던 5개월 동안 같은 핏줄의 한국 친구들을 사귀게 된 것이 기뻤다. 우리끼리도 보통 중국말을 하고 지냈지만 과거에 사귀었던 중국 아이들과 다른 친근감을 느꼈다. 창사에서 머문 기간은 중국 소학교에 다니기에 너무 짧았다. 임정은 임시학교를 개설하여 10여명의 아이들에게 국어와 우리노래 등을 가르쳤다. 교장은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항일운동에 가담한 이달 선생이 맡았으며 송면수, 김효숙 내외분이 국사와 국어를 가르치셨다. 노래와 춤은 김철 선생이 맡았는데 그때 배운 노래들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얼마나 우리말이 가슴 깊이 새겨졌으면 80여 년 전의 일을 기억해낼까 싶다.
 

▲ 1942년 10월 제34차 임시의정원 기념사진. 앞줄 왼쪽에서 다섯째가 김구 임시정부 주석, 둘째줄 오른쪽에서 넷째가 필자의 부친 김의한이다.     © 김자동


 
김자동 회장의 할아버지 동농 김가진(1846-1922) 선생은 대한제국 말기 정부에서 대신을 지낸 사람으로 을미늑약 이후 일제에 협력을 거부하고, 조선민족대동단 총재를 맡아 항일투쟁의 전면에 나선 분이었다. 또한 김자동 회장의 아버지 김의한, 어머니 정정화 선생 역시 투철한 독립운동가로 잊어서는 안될 분들이다..
 
책은 대동단의 창립과 할아버지 동농 선생의 상해 망명을 시작으로 고난에 찬 임시정부 5천킬로의 피난길을 거쳐 해방 뒤 백범의 피살과 민족의 비극 6·25한국전쟁, 이어서 해방후 좌우진영의 혼란기 등을 담담한 필체로 소개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는 가족의 중국망명과 관련된 이야기로 1920년대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이야기, 중국 내 북벌,내전과 시안사변, 그리고 어린시절과 임시정부 피난시절에 관해 썼다. 2부는 제2차세계대전의 발발부터 1945년말까지인 충칭시절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데 광복군과 2차세계대전, 해방직전의 충칭생활과 국제정세, 일본의 항복과 임시정부의 귀국에 얽힌 이야기로 이뤄졌으며 3부는 해방된 조국에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특히 해방된 조국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관한 안타까운 이야기와 독재정권으로 야기된 제주도학살사건, 국가보안번제정과 언론탄압, 국회프락치사건의 진실과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과 관련된 이야기 등을 읽어가면서 해방된 조국에서의 기쁨을 단 한순간도 누리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사라져가야 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새삼 되돌아 보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민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과 아버지의 납북 등 이산가족의 고통을 손수 겪게 되면서 느껴야 했던 가슴아픈 사연들이 잔잔하게 그려져 있어 책을 읽어나가면서 굴곡의 역사 현장을 한 편의 드라마로 보는 듯해서 마지막 장까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 귀국 이듬해인 1947년 필자가 5학년 때 부모님과 함께 직은 사진     ©김자동


 
특히 임시정부청사가 있던 상해에서 출발하여 항주(1932), 남경(1934), 장사(1937), 광주(1938), 유주(1938), 기강(1939)을 거쳐 중경(1945)에서 광복을 맞이한 임시정부 노정을 직접 발로 답사하여 글을 쓴 적이 있는 기자로서는 마치 이웃집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처럼 느껴져 더욱 실감이 났다.
 
“토교의 생활은 피난 다닐 때보다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셈이었으나 살림살이가 궁핍하고 쪼들리기는 마차가지였다. 그렇게 궁한 살림을 꾸려나가는 대신 토교에 모인 동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집안 식구들처럼 지냈다.” 고 술회한 김자동 회장의 어머니인 임시정부의 안주인 정정화 애국지사의 자전적 이야기 《장강일기》와 더불어 이번에 개정판으로 선보인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는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광복을 맞이하기 전까지 처절한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를 딱딱하거나 경직된 논문 형식이 아니라 따스한 피가 흐르는 우리겨레의 살아있는 ‘독립운동사’라는 점에서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김자동 회장 자신이 어느 쪽에도 기울거나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역사를 바라다보고 있는 시선이 더 따스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이제 2014년의 해도 기울고 있다. 다가오는 2015 을미년은 95주년의 3,1절을 앞두고 있고 광복 또한 70주년을 앞두고 있는 뜻 깊은 해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나라를 잃고 국외에서 ‘좌절’ 이라는 낱말을 던져 버리고 ‘조국의 광복은 반드시 이뤄진다’라고 믿고 뛰었던 그 역사의 현장을 이 한권의 책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를 통해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독을 권한다.

이윤옥 소장은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제대로 된 모습을 보고 이를 토대로 미래의 발전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외대 박사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과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민족자존심 고취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밝힌『사쿠라 훈민정음』인물과사상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도서출판 얼레빗
*항일여성독립운동가 20명을 그린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도서출판 얼레빗
*발로 뛴 일본 속의 한민족 역사 문화유적지를 파헤친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 바보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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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2/14 [21:2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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