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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미국 패권주의에 편승한 영화
[정문순 칼럼]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영화의 상상력
 
정문순

한국 영화는 갈수록 스토리가 고갈되고 있다는 말을 영화 관계자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어지간한 상상력은 이미 영화에서 대부분 다루어졌으며 새로 발굴하여 영화로 만들 만한 게 드물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영화로 다룰 만한 소재가 없을까 생각했지만, 요즘 들어 부쩍 실제 사건을 소재로 다룬 영화가 자주 나오는 것을 보니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고갈되었다는 걱정이 나오는 한국 영화의 상상력과 대조적으로 <인터스텔라>에서 헐리우드 영화의 저력을 확인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미국영화는 우주여행 하나만 파고들어도 앞으로 백 년간은 이야기가 마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SF문학·영화는 문화산업적으로 확실히 흡인력이 크다. 별들 사이를 헤치고(인터 스텔라) 가는 여행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환상적이며, 시간 여행이나 4차원의 세계, 상대성이론, 빅뱅이론, 웜홀 등 차곡차곡 축적된 우주과학 지식도 영화나 문학의 소재로 활용할 만한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우주 관련 지식은 SF 영역이 아닌 영화나 소설에서도 두루 활용될 정도로 미국의 우주산업과 대중문화의 연결고리는 탄탄하다. 가령 소설이나 영화에서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간다는 발상 같은 것은 이제는 흔하디 흔한 소재가 돼버렸다.
 
애초 옛 소련과의 체제 경쟁에서 출발한 미국의 항공우주 프로젝트는 이제는 상업화 전략에서 꽃을 피운 것 같다. 체제 우위를 다투는 경쟁은 사실 실익이 없다. 막대한 돈을 퍼부어 체제 우월을 입증하면 뭐 하나. 냉전시대 미국은 우주산업에 엄청난 돈만 쏟아 부었지만 미국인이 달나라에 발을 디뎌 보았다는 것 말고는 인명 손실을 포함한 막대한 출혈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상업화된 항주우주산업에서는 다르다. 돈만 내면 우주선 타고 지구 궤도를 몇 바퀴 돌 수 있는 우주인 체험여행도 가능해졌다. 물론 가장 지속적이고 확실한 미국 항공우주산업의 상업적 결실은 문학이나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와의 교섭에서 거두어졌다.
 
우주탐험 영화의 경우 예전에는 지구인이 우주여행을 떠나도 궁극적인 종착역은 지구였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이런 경향도 바뀌는 것 같다. <인터스텔라>에서, 오염된 지구의 대체 행성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우주 공간을 나간 아버지는 아내 없이 키운 자식들을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중도에 지구에 귀환하여 임종을 앞둔 할머니가 된 딸과 감격적으로 해후한다. 그러나 우주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연인을 찾으라며 아버지를 돌려보낸 딸은 아버지의 보살핌 없이도 우주 과학자로 훌륭하게 성장했다. 아버지 처지에서 지구의 딸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이다.
 
영화에서 딸은 지구인의 삶을, 아버지는 우주인의 삶을 각각 표상한다. 목숨을 걸고 천신만고 끝에 지구로 귀환한 아버지가 우주공간으로 도로 돌아간다는 설정은, 이 영화가 지구에 대한 미련도 없고 지구의 미래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지도 모른다. 애인이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우주 공간은 딸이 살고 있는 지구 못지않게 한 남자에게 소중하고 매력적인 곳이다.
 
영화는 우주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비해 불행히도 지구 행성에 대한 배려가 없다. 지구와 우주를 대립적으로 설정하기만 했을 뿐 지구도 우주 속 공간이라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인간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보다 지구의 재앙적 운명을 기정사실화한 인식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는 지속 불가능한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생각이 없는 개발주의자나 반생태환경주의자들의 심성과 만나는 부분이다.
 
미국 NASA가 추진한 1970년대부터 추진한 화성 프로젝트는 애초 미국이 지구 상 외에 유일하게 패권을 누릴 만한 영토를 찾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 미국의 패권에 유일하게 맞섰던 경쟁자가 사라지면서 체제 경쟁이 의미를 잃자 미국 우주 전략은 다른 데서 활로를 찾았다. 지구의 미래가 오늘과 같을 것이라고 더 이상 장담할 수 없게 되자 지구 행성의 대안으로 제2의 지구를 화성 같은 행성에서 찾아 영토와 자원을 선점하는 것으로 미국의 궁극적인 우주 전략이 바뀌었다. 미국의 우주전략으로부터 상상력과 영감을 자극받은 SF 장르의 현란함과 ‘돈 칠갑’은 미국의 패권주의를 은폐하는 데 적극적일 뿐이다.
 
그러나 지구의 대체 행성을 찾는 게 더 쉬울까, 지구를 살리는 게 더 쉬울까. 설령 지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별을 찾는다고 한들 인간이 그 행성을 지구의 운명처럼 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주 개척에 쏟아 붓는 천문학적인 돈의 극히 일부만 지구에 투입해도 지구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미국의 우주 전략은 유치하고 허망하게 보인다.
 
미국의 전략에 발맞추어 인간이 망쳐놓은 지구환경의 파멸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영화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과거의 우주인들은 지구 바깥에 나가서 푸른 지구 행성의 자태에 황홀해하며 지구를 우주의 중심적 존재로 우뚝 세웠고 스스로 지구인이라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꼈지만, 이 영화에서 지구는 그저 수많은 행성 중 하나일 뿐이다. 인물들의 의상에 도드라진 NASA 마크와 성조기 문양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것들이 상징하는 미국의 우주전략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는 영화는 정녕 불편하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지구의 미래를 절박하게 걱정하는 영화의 상상력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4/11/14 [20:36]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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