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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문’과 ‘스크린도어’, 한국인의 정신 상태
[시론] 한문에서 영어만능, 저마다 제 자리에서 제 할일을 제대로 하자
 
리대로   기사입력  2014/10/30 [23:50]

우리나라는 제 말글로 이름도 제대로 못 짓고 새말도 만들 줄 모른다. 지난 1500여 년 동안 한문으로 이름을 짓더니 이제 영문이다. 그것은 통일 신라 때부터 중국 말글에 길들면서 뿌리내린 모습이고 버릇이다. 신라 제22대 지증왕(500~514 재위)은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이라고 불렀으나 중국식으로 ‘왕(王)’이란 명칭을 붙여서 ‘지증왕’이라고 한 것부터 시작해서 그 뒤 통일 신라 왕들은 중국 당나라 식으로 이름도 짓고 관직과 땅이름을 바꾼다. 바로 신라 제35대 경덕왕(742~765 재위) 때부터 중국 문화 식민지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중국에 푹 빠진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제 말글이 있는 지금도 남의 말글로 이름을 짓거나 다른 나라가 쓰는 낱말을 그대로 들여다가 쓰고 있다. 한마디로 얼이 빠진 말글살이를 하고 있다.


옛날에는 중국 한문을 섬기고 중국식으로 한자로 이름을 짓고 말을 만들어 쓰다가 일본 식민지 때에는 일본 말글을 그대로 들여다 쓰면서 땅이름, 사람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꾸었다. 하늘이 도와 일본이 망한 뒤에는 우리 말글을 되찾아 쓰고 살리자는 움직임이 있어 공문서도 교과서도 우리 말글로 쓰고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짓는 바람이 일었으나 전문용어, 학술용어는 일본 강점기 때 쓰던 말을 그대로 베껴서 쓰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에 눌려 살게 되니 회사 이름을 영문으로 바꾸고, 전문 용어를 그대로 미국말을 들여다가 쓰니 한심하다. 옛날에 중국 당나라 지배를 받을 때부터 남의 말글을 섬기던 버릇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 가운데 요즘 지하철에 안전시설을 만들면서 쓰기 시작한 ‘스크린도어’란 말이 있다. 어떤 얼빠진 이가 승강장이나 전철 안에서 안전 문이 열린다고 알려줄 때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라고 방송하게 했다. 한글단체와 시민들은 그 뜻도 잘 모르는 외국말을 날마다 듣게 되니 싫고 또 우리 말글살이를 어지럽히는 것이어서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그 말을 “안전 문이 열립니다.”로 바꿔달라고 말해서 그렇게 바꾸기로 했다. 그런데 ‘서울도시철도공사(사장 김태호)’가 운영하는 5.6.7.8호선에서는 “안전 문이 열립니다.”로 바꾸었는데 ‘서울메트로(사장 이정원)’가 운영하는 1.2.3.4호선은 아직까지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로 말하고 있다.


‘서울메트로’는 회사 이름도 ‘메트로’라는 외국말로 되어서인지, 아니면 서울시장을 우습게 여기거나 우리 말글을 더럽히려고 마음을 먹어서인지 ‘스크린도어’란 외국말을 고집하고 있다. 사장이 그 참뜻을 모른다면 거기 노동조합도 있고 여러 간부들도 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김영삼 정부 때 성수다리가 무너져서 수십 명 사람이 죽고, 대구 지하철에서 사고로 191명이 죽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져서 501명이나 죽었고, 올 해엔 세월호 사고로 314명이나 죽은 것은 모두 어이없는 안전사고라는 것을 생각할 때 지하철에서 ‘안전’이란 말을 날마다 되새기면서 주의해야 할 터인데 ‘스크린도어’란 뜻 모를 외국말을 고집하니 지하철 안전까지 걱정된다. 
 

▲ 지난해 한글날 박원순 시장은 나도 참석한 가운데 한글문화연대 우리말지킴이들과 시청역에서 ‘스크린도어’란 말을 ‘안전문’으로 바꿔 쓰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 서울시

 


지하철이나 여객선 안전을 제대로 힘쓰지 않으면 몇 백 명 목숨을 앗아가지만 제 겨레말을 제대로 지키고 살리지 않으면 수천 만 우리 겨레까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난 수 천 년 동안 우리 한아비들은 우리 글자가 없어 남의 말글을 섬기고 빌려다가 썼더라도 지금 우리는 한글이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가 있고 그 말글로 말글살이를 하고 우리 문화를 발전시킬 때이다. 지금 우리에겐 ‘안전’이란 말을 되새기며 정부와 공기업을 가릴 것 없이 온 국민이 함께 나라와 겨레의 안전에 힘쓸 때이다.


그런데 서울시 공기업인 ‘서울메트로’라는 회사가 그 이름도 외국말이고, 거기서 알려주는 말도 외국말로 ‘스크린도어’란 말을 고집하는 것은 우리 국민정신 상태가 얼빠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못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는 서울시장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고 우리 말글을 살려서 우리 겨레와 나라를 튼튼하게 만들겠다는 국민의 바람과 뜻을 짓밟는 일이다. 서울메트로(이정원 사장)는 지하철 알림 말을 할 때에 “안전 문이 열립니다.”로 당장 바꾸기 바란다. 그것이 공기업으로서 바른 태도요 제 자리에서 제 할 일을 다 해서 나라 발전과 국민 안전에 이바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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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0/30 [23:5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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