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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마쓰이 송가를 쓴 미당, 전두환도 찬양하다
[현장] 친일과 독재찬양 "두 얼굴의 시인" 전북 고창 서정주문학관 탐방기
 
이윤옥

10월 24일(금) 어제 ‘청계문학 (회장 장현경)’ 회원들과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단풍이 곱다는 정읍의 내장사를 들러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인 고창의 미당문학관까지 서울에서 당일치기 여행으로는 조금 벅찬 일정이었다. 내장사의 단풍은 아직 물들 기색이 보이지 않았지만 산채 비빔밥으로 새벽부터 달려간 허기를 채우고 이내 고창으로 향했다.

 
 고창군 부안면 질마재 거리는 ‘국화 옆에서’를 쓴 미당의 고장답게 고향 어귀부터 노란 국화꽃으로 야단스러웠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지 대형버스 주차장까지 갖춘 미당문학관 언저리에도 국화는 지천이었다.
 

▲ 전북 고창의 미당 서정주 문학관 입구, 이르는 곳마다 국화가 지천이다.     © 이윤옥


그러나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한 미당의 말과는 달리 그의 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한 곳은 멀리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바람’은 물리적인 바람이 아니고 세상 풍파를 뜻함이었나 싶은 생각을 하며 잘 꾸며 놓은 문학관 내부를 둘러보았다.


 대저 문학관이란 돈을 얼마나 들였는가에 따라 좌우 되는 것일 뿐 실제 문학관의 주인공을 제대로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라는 평소 생각 때문인지 미당 문학관 전시물이 썩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아니, 유명한 건축가의 설계 건물임에도 “특이 한 게 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어쩜 그것은 내가 미당에게 갖고 있는 ‘그 어떤 이미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2층 전시실이었을까? 정갈한 시인의 서재를 재현 놓은 곳 앞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해설사는 그 서재가 서울 남현동 시절의 모습이라고 했다. 

 
미당과의 인연은 사실 오래되었다. 내가 바로 그가 살던 남현동 옆집에 살았기 때문이었다. 벌써 이십여 년도 넘은 이야기다. 관악산의 사계를 바라다 볼 수 있는 남현동 시절 나는 집 옥상에 올라 미당 집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곤 했다.
 
 “미당이 아내를 부르기 위해 딸랑거리는 종을 달아두었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부터 나는 가끔 그 집에서 딸랑거릴 ‘종소리’에 귀를 종긋 거리기도 했다. 숱한 시인 묵객들이 드나들었을 미당 집 대문을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두드리지 않았다.
 

▲ 미당문학관 안에는 단체 관람객이 많다     © 이윤옥

 

▲ 서울 남현동 시절 미당의 서재     © 이윤옥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정국대원(靖國隊員, 야스쿠니를 뜻하며 불사 항전을 뜻함)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 게로 왔느니
우리 숨 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운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 서정주, 오장마쓰이(松井伍長) 송가(頌歌), 가운데 - 
 
내가 남현동에 살 무렵, 읽던 미당의 친일시다. 나는 그때 미당의 친일작품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나게 된 또 한편의 시가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처음으로>” 였다.
 
(앞 줄임)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중간줄임)
 
이 나라가 통일하여 흥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1987년)
 

▲ 3층 전시실에는 미당의 친일 작품 8점이 걸려있다.     © 이윤옥


좀 인용이 길어졌지만 사실 원문은 더 길다. 그의 나이 73살에 지어 전두환 각하로부터 4억원을 받았다는 시다.
 
꽤나 돈을 들였을 미당 문학관 내부를 돌아보면서 나는 자꾸 미당 옆집에 살던 남현동 시절이 오버랩 되었다. 그 무렵 신문들은 미당이 치매를 막기 위한 나름의 방편으로 세계의 명산 이름을 외운다고 보도했다. 그래서인지 미당문학관 계단에는 그가 말년에 치매를 막기 위해 외었다던 세계 유수의 명산 그림이 엽서로 전시 되어 있다. 그리고 4층 맨 꼭대기 전시실에는 그가 꼬부랑 영어로 쓴 산이름을 적은 원고 뭉치가 보물인양 전시 되어 있었다.
 
선배 시인인 그가 만일 우리의 여성독립운동가 이름을 줄줄이 외었다면 어땠을까? 김마리아, 동풍신, 이애라, 신정숙, 김두석, 김점순, 최용신, 김향화.... 이렇게 말이다. 그리하여 그의 문학관 계단 벽면 가득히 여성독립운동가 모습으로 채워졌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애시당초 미당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당은 “조선이 그렇게 빨리 광복이 될 줄 몰랐다.” 면서 총독부의 나팔수가 되어 부지런히 펜을 놀린 것만 봐도 그러한 기대가 무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전시관 5층 옥상에 올라가면 멀리 노란 국화동산이 보이는데 그곳이 미당의 무덤이다.     ©이윤옥

 
미당 서정주는 20대무렵부터 잡지 <조광 10월호>에 “스무살 된 벗에게” 라는 친일 수필을 비롯하여 “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 <사이판 섬에서 전원 전사한 영령(일본군)을 맞이하여>, <오장마쓰이송가> 등 열렬한 친일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해방된 조국의 국어교과서에서 다뤄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그가 민족의 위대한 시인인줄만 알고 자랐다.
 
 물론 그의 시는 위대하다. 그리고 미당 문학관 벽면을 가득 메운 위대한 업적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거기엔 단서가 붙는다. 시가 단순히 입 언저리에서 맴돌다 나오는 것이 아닌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그의 삶 자체를 존경하고 싶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위대한 것이라는 단서 말이다.
 
 일부 미당을 옹호해주는 사람은 말한다. “시는 시고 삶은 삶” 일뿐이라고 말이다. 맞다. 그러나 틀린 말일 수도 있다. 만일 이완용이 위대한 시인이었다면 과연 우리가 “시와 삶”이 다른 것이라고 감히 그를 변호 해줄 수 있을까?
 
‘서정주 문학관’을 돌아 나오며 이날 저녁 있을 그의 ‘문학축제’ 준비로 부산한 문학관 마당과 마주쳤다. 과연 저녁에 유명한 분들이 모여 ‘미당에 대한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궁금했다. 그러나 올라오는 차가 막힐지 몰라 이내 서울로 향해야 했다.
 

▲ 미당문학관 앞 마당에는 이날 저녁(24일) 있을 ''2014 질마재문화축재 미당문학제'준비가 한창이다.     © 이윤옥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나는 후배 시인으로 “시와 삶”이 유리 될 수 있는 것인지, 또 그래도 되는 것인지 자신에게 몇 번이고 묻고 물었다. 그러면서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라가 망했는데 500년 사직을 지켜온 조선에서 이에 대한 반성을 하는 사람 하나 없으면 어찌 후손을 볼 것인가!”라며 절명시(絶命詩) 4수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매천 황현 (1855~1910) 이 지은 시다.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
 
글을 안다는 것, 글로 영혼의 씻김을 표현한다는 것은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쉽지 않기에 후세에 울림이 오래도록 순결하게 남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미당 고향에 핀 국화는 색만 노랗지 향기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미당 서정주 생가와 문학관
전북 고창군 부안면 질마재로 2-8 
전화:063-560-8058
 


이윤옥 소장은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제대로 된 모습을 보고 이를 토대로 미래의 발전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외대 박사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과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민족자존심 고취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밝힌『사쿠라 훈민정음』인물과사상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도서출판 얼레빗
*항일여성독립운동가 20명을 그린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도서출판 얼레빗
*발로 뛴 일본 속의 한민족 역사 문화유적지를 파헤친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 바보새 등이 있다.

 
기사입력: 2014/10/25 [12:23]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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