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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평화학자, 그는 왜 유일신론 폐기 주장했는가?
[책동네] 이찬수 교수의 유일신론의 종말, 이제는 범재신론이다
 
류상태   기사입력  2014/09/16 [13:04]

 

1. 이찬수 교수, ‘배타적 유일신의 죽음’을 선언하다 
 
십여 년 전, <예수는 없다>라는 충격적인 제목의 책이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당시 20만부 또는 50만부가 팔렸다는 설이 있었으니 딱딱한 종교분야 책으로는 초대형 베스트셀러인 셈이다. 이 책을 써낸 오강남 교수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사람으로 당시 캐나다의 리자이나 대학에서 종교학을 강의하는 저명한 종교학자였다.
 
이 책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저자 자신이 갖고 있는 독실한 신앙관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 같다. 제목으로 보면 이미 기독교를 떠난 사람일 것 같은데, 이 책은 행간 곳곳에서 예수님에 대한 깊은 신앙고백과 애정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에서 이 책은 곧 금서로 지목되었다. 내가 단지 “지목되었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강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유신독재시대처럼 정부가 나서서 금서로 지목했다면 모두 폐기처분되었겠지만 한국의 소위 보수정통교회 지도자들이 금서로 지목한 건 별 효력을 얻지 못했다. 내가 알기로는, 몰래 이 책을 읽은 교인들도 수없이 많았고, 한국 교회가 이만큼이라도 열린 데에는 이 책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당시 교회지도자들이 이 책에 대해 흥분한 이유는 간단하다. 어찌 감히 “예수는 없다”는 발칙한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제목이 갖는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다. 저자에게서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제목은 출판사에서 정한 것이다. 제목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는 저자도 당황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세한 설명을 듣고 동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교회가 주장하는 그런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예수는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 이찬수 교수의 <유일신론의 종말, 이제는 범재신론이다>     ©동연(와이미디어), 2014

이찬수 교수가 최근에 지어낸 책 <유일신론의 종말, 이제는 범재신론이다>를 꼼꼼이 읽어보았다. 제목을 보면서 와 닿은 느낌은, “한국 교회에서 금서로 추가할 책이 하나 더 늘어났군.”이라는 생각이다. 발칙하게도 ‘유일신론의 종말’을 주장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의 주장은 <예수는 없다>에서 주장하는 논지와 다르지 않다. “유일신에 대한 한국 교회의 이해가 너무나 왜곡되어 바로 잡기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폐기하는 게 낫겠다는 뜻이다.
 
책에서 저자는 유일신론을 폐기하는 것이 차라리 나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유일신론 종교 전통에 속한 이들 상당수가 신이 무엇인지, 어떻게 인식하고 서술해야 하는지 진지한 성찰 없이 수백 년 전 수직적 신분사회에서 형성된 언어만 고집하기 때문”이다.(5쪽)
 
책을 발간한 저자의 의도는 다음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정말 제대로만 해석한다면 유일신론은 여전히 인류의 평화를 위한 신론적 기초로 삼을 만하지만, 재해석을 하기에는 그동안 유일신론의 오해 내지는 왜곡이 준 폐해가 지나치게 크다. 이제는 유일신론이라는 용어를 폐기하고 범재신론이라는 새로운 말을 확장시켜가야 할 ‘때(카이로스)’가 되었다.”(303쪽)
 
여기서 우리는 너무나도 유명한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선언을 근거로 니체를 무신론자라고 쉽게 단정하지만, 나는 니체야말로 진정한 영성을 갖춘 철학자이며, 예수와 기독교를 정확히 이해한 사람으로 보고 싶다.
 
니체는 “신은 없다”가 아니라 “신은 죽었다”고 말했다. 전자는 무신론의 선언일 수 있겠다. 하지만 “신은 죽었다”는 말에는 “전에는 살았었다”는 전제가 담겨있을 수 있다. 사실상 니체가 말하는 ‘죽은 신’은 교회가 오랫동안 믿고 가르쳐왔던 교리의 신, 교회가 독점하고 마음대로 이용해왔던 배타적 유일신이 죽었다는 선언이었다. 
 
2. “이제는 범재신론이다.”
 
이찬수 교수가 자신의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간추려보면 대충 이렇다. “‘신은 하나’라고 할 때의 ‘하나’는 사실 ‘전체’를 의미한다...”(16쪽) “그런데 그동안 유일신론에 대한 오해의 폭이 비할 수 없이 커서, 이제는 유일신론이라는 용어나 개념은 폐기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배타적) 유일신론을 넘어 진정한 유일신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폐기”다.
 
그는 유일신론을 폐기하는 대신 범재신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면 범재신론은 유일신론과는 다른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용어의 차이가 있을 뿐 범재신론은 진정한 유일신론, 다시 말하면 그동안 교회가 배타적 교리에 젖어 잃어버린, 포용적이고 우주적인 유일신론을 되찾는 것이다.
 
그는 “신이 하나라는 주장, 이른바 유일신론(monotheism)은 제대로만 해석한다면 범재신론(panentheism)과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17쪽)라고 말한다. 그리고 범재신론을 범신론으로 오해하는 사람을 위해 지면을 많이 할애하여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범신론은 우주를 하느님과 동일시”한다. “하느님의 내재성만을 긍정하고,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초월성은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범재신론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내재성(하느님의 현존)을 동시에 긍정”한다.(299쪽)
 
저자가 배타적 유일신론에서 벗어나 포용적 유일신론, 즉 범재신론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는 자신이 삼십여 년 동안 종교에 대해 공부하면서 내린 결론이 “종교의 핵심은 생명의 살림에 있고, 평화의 구현이 종교적 사명”이라고 말한다. “생명과 평화가 아닌 제도 자체를 드러내는 일은 틸리히의 표현마따나 ‘종교의 악마화’에 가깝다”고 믿기 때문이다.(303쪽) 
 
3. 저자 이찬수 교수에 대하여
 
저자 이찬수 교수는 그동안 기독교 내에서 ‘발칙한’ 발언을 많이 해온 사람이다. 그 때문에 심한 고초도 겪었다. 스스로 나타내듯이 그는 종교평화학자이다. 종교간 대화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하여 대학에서 기독교교육학을 가르치면서 몸소 사찰을 찾아가 부처님께 예를 표하기도 했다. 그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길벗인 이웃종교의 스승에게 예를 표하는 것에 대해 기독신앙인으로서 조금의 부끄러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단지 자기 양심에 또한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말하고 행동했을 뿐이지만 그 일로 인해 그는 학교에서 쫓겨났다. 벌써 8년 전인가 9년 전 일이다. 그는 학교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법적으로 저항했다. 오랜 재판 끝에 대법원에서 승소해 드디어 복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안가 스스로 그 학교를 떠나고 말았다. 워낙 노는(?) 물이 서로 달라 같은 담장 안에서 지내기에는 서로 간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일까?
 
저자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러나 교리적 기독교인은 아니다. 진정한 예수사람이다. 하여 기독교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리를 예수님의 가르침과 동일시하는 교리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배신자일 수도, 이단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간의 그런 평가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 옛날 유대의 종교지도자들도 예수를 이단자로 매도하지 않았던가.
 
조직에 속한 사람이 조직에 거스르는 말을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저자 역시 종교학자이기 이전에 개신교 목사다. 한국 교회와 척을 지는 것이 달가울 리는 없다. 또한 자신이 속한 종교공동체에 대한 깊은 애정도 갖고 있다. 하지만 조직의 눈치를 보기 위해 또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눈을 감기에는 그는 너무 순수하다.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를 오래 동안 보아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는 “그럼 그렇지. 한 통속이었구먼.”하고 비웃는 분도 있을 수 있겠다. 부정하지 않겠다. 사실 그와 나는 ‘한 통속’이다. 그처럼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투명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처럼 자신의 생각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솔직담백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내가 저자와 그의 글을 신뢰하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어려운 신학적 주제를 쉽게 풀어 설명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해석자다. 이런 탁월한 해설자를 나는 <예수는 없다>의 저자인 오강남 교수 이후 십여 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러므로 그의 글이 너무 어렵지 않을까 하고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어려운 주제이지만 너무나 쉽고 간결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풀어썼으니까.
 
하여 나는 이 책을 적극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확언컨대, 이 책에는 한국 교회를 향한 그의 진심과 애절함이 담겨있다.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면, 한국 교회는 지독한 독선과 배타에서 벗어나 사회의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아프게 듣고 있는 ‘개독’이라는 독설도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글을 읽는 분들에게 부탁드린다. 이 책을 꼭 한번 읽어 달라. 그리고 주변에 많이 소개해 달라.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질수록 개신교는 사회의 존경을 받아가며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행복 바이러스’가 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한국 교회가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4. 인상적인 몇 개의 글들
 
신이라는 것은 생명을 살리고 평화가 구체화되는 곳에 생명과 평화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6쪽)
 
신은 자연법칙과 같다 해도 과히 틀리지 않는다. 신은 사물 하나하나와 연결되지만 그에 매이거나 갇히지 않는다.(33쪽)
 
성서에서 야훼신앙은 기본적으로 택일신론(henotheism)적 신앙이었다.(37쪽)
 
우상을 섬기지 말고 절하지 말라는 십계명 조항은, 동물이나 새 등의 구체적인 형상 안에서 신을 보면서 자존자, 초월자로서의 신(야훼)을 다신교적 최고신 또는 부족신(엘) 수준으로 격하시켜버리는 고대 이스라엘 대중의 종교적 몰이해에 대한 엘리트 사제 계급들의 신학적 경고였다.(102쪽)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하여 있다.”(로마서 11,36)는 말씀은 범재신론의 요지를 쏙 뽑아낸 명문이다.(108-109쪽)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리라.”(마태 21,12-17을 비롯하여, 마가, 누가, 요한도...)는 말씀에서 만민은 이방인을 뜻하는 말이다. 이방인에게도 열린 곳이어야 한다는 뜻이다.(159-160쪽)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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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9/16 [13:0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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