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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분교생들의 슬픔과 분노를 알어?"
현대판 서얼, 대학인의 존엄을 훼손시키는 '분교'차별화
 
박상준   기사입력  2003/11/29 [10:36]

같은 재단에 속하고 동일 교육 목적을 가진 학교(예를 들어 대학교)를 구분할 때 설립된 시기에 따라 본교와 본교라는 용어로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고등 교육법 제24조에 보면 "학교의 설립, 경영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국내외에 분교를 설치할 수 있다." 라는 말이 나온다. 그 외에 교육과 관련된 여러 가지 규칙이나 법령에서 추가적으로 설립되는 학교를 분교라고 명명하고 있다. 과연 이런 용어를 널리 보급시키는 것이 올바른 행위일까? 추가적으로 뒤늦게 설립된 학교를 분교라 칭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런 문제 제기에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의 장(장소)을 설립된 시기의 시간적 간격에 따라 본교와 분교라고 구별하는 방법은 그 곳에 소속된 학생들에게 그릇된 가치를 심어주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교육 환경 속에서 배운 이들은 그 폐단이 더욱 심하다.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분교(?)와 안산캠퍼스 본교(!)     ©한양대학교홈페이지

대한민국에서는 근 반세기 동안 교육의 장(장소)을 인간의 질을 판별해 신분을 매기는 카스트(차별적 서열 사상)주의로 물들여 놓았다. 교육의 원천적인 문제에 의해 파생되는 폐단 중에 하나인 본교와 분교에 대한 사회적 가치관에 대하여 논의를 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이란 창의성을 요구하지도 않을 뿐더러 무의미하게 마저 느껴질 만큼 주입하고 강제적인 교육 환경으로 인해 학생들마다 특정한 분야에서 잠재되어 발견하기조차 쉽지 않은 천재성을 일깨우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로 인해 무의미함으로 가득 찬 불필요한 교육을 묵묵히 받아들인 이들은 속칭 일류대에 입학하게 된다. 이것은 바보로 가는 교육을 순순히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고 생각된다. 그 외에 학생들은 입시 위주 교육을 통해 흥미나 동기를 부여 받지 못했거나 창의성이 결여된 허위의 교육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이다. 즉 교육을 통해 학문에 대한 흥미와 동기 유발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창의성을 발휘할 소지가 다분한 이들을 속박하여 사육시킨 꼴이 된다. 교육적 폐단에 의해 행복한 삶을 추구할 기회를 잃었다면 훗날 어떤 심정일까? 이들의 삶은 훗날 절실하게 보상 받길 원할 것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의 폐허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곧바로 연좌제(마땅한 근거 없이 연관되어 운명을 같이 하는 제도)의 형벌을 내리 듯이 대학의 정신을 차별로 도배하고 사회 마저 차별로 만연하게 한다.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어떠한 교육적 혜택을 받았다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단지 혜택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일류대에 속했다 칭하는 이들)은 자신의 마음에 차별을 온전하게 길러 키우고 있는 상태를 점검하지 못했거나 받아들인 상황이다. 더불어 살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이들은 도태시키거나 재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프라이드와 긍지를 손상 당하거나 또는 심히 훼손당한 상황이다. 교육의 장(장소)에서 필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학문할 수 있는 만족할 만한 여건을 구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뿐이다. 그 외에 어떠한 구별법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학생들은 교육 환경이 충분히 구비된 학교 중에서 사정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교육의 장(장소)이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의 능력이 어떠한 곳에 가더라도 변하는 것은 없다.

대한민국의 교육의 장은 학생들의 창의적 능력을 최대한 키워주지 못하고 도태시키는 장이 되어 왔다. 창의성을 발휘하는 능력을 배양하지 못했거나 익숙하지 못한 이들은 앞으로 닥쳐올 사회 진출에 대하여 당당한 태도를 보일 수가 없다. 그들에게 유일한 경쟁력이란 비교우위밖에 놓여 있지 않은 것이다. 사회에 이바지할 창의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당당하게 기회를 부여 받을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차별에 호소한다. 타인보다 질이 높은 인간임을 내세우고, 타인보다 질이 좋은 학교 출신임을 내세우면서 부조리하게 기회를 제공 받기를 원한다. 창의성에 기반을 둔 공정한 경쟁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삶의 방식이란 익숙해지면 너무나 순탄하면서도 쉽다. 마땅한 경쟁 없이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 받으니, 기회를 제공 받지 못한 이들과는 그 때부터 뚜렷한 능력의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그 결과를 내세워 차별이 깃든 대학 서열론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거나 입증하는 근거로 제공하고 있다.

창의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경쟁력을 상실한 대학생들이 비굴해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법칙일지도 모른다. 약육강식의 섭리는 생존을 위한 모든 수단을 정당화시킨다. 따라서 사회에 팽배한 차별의 가치에 대하여 의구심을 품지 않는 상황에서 미리 자신들을 위해 학벌에 의한 서열을 더욱 고착화시키거나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의 존엄과 타인의 존엄도 파괴하는 행위이다.

입시 교육을 통해 양성된 학생들은 타 대학에 대해 무의미한 기준을 근거로 그들의 위상을 저하시키려고 시도한다. 또한 그들의 프라이드와 긍지를 손상시켜 경쟁 능력을 저하시키려고 노력한다.(인생에 있어 최고의 경쟁 무기는 자존심과 긍지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행위인 줄을 깨닫지 못하는 건가! 인간의 프라이드와 긍지를 훼손하는 것은 그의 존엄을 상실시키려는 의도와 같다.

존엄이 없는 인간이 인간이라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명백한 살인행위에 속한다고 주장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것이 대한민국의 교육 상황이다. 이런 부조리한 사회적 가치관이 분교와 본교의 구별법에도 스며들어 있어 이점을 논하고 학교 설립시 분교라는 명칭의 사용을 폐하고 본교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길 바라며, 또한 분교 사용의 근거가 되는 교육인적자원부의 법령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러 대학이 분교(라는 용어)의 폐단을 인식하지 못하고 본교와 분교를 운영하고 있으나, 내가 몸담고 있는 한양대학교를 구체적인 예로 들어 설명하고 싶다. 나의 사색의 시간을 방해할 요소들로부터 도피시켜 자유롭게 해준 한양대학교의 넓은 교정에 대하여 감사함을 느끼기에 유치하나마 잠시 한양대학교를 치켜세우는 예를 드는 것 같더라도 묵과하고 계속해서 생각을 피력하겠다.

한양대학교의 안산캠퍼스는 분교로 칭해지고 있고, 서울캠퍼스가 본교로 칭해지고 있다. 그러나 교육환경은 안산캠퍼스가 월등히 우수한 편이다. 그 점을 뒤받침해주 듯 대교협 평가에서 건축분야에서 1위, 전자전기에서 2위, 디자인대학에서 1위, 정보경영 1위, 모든 분야에서 항상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즉 그들은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산캠퍼스 학생들은 서울캠퍼스 학생들로부터 분교에 비해 본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이들로부터의 모욕을 당하면서 감수를 하는 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안산캠퍼스 학생들의 프라이드와 긍지를 조금씩 본교라는 가치를 무기 삼아 훼손시키고 있는 행위를 서울캠퍼스 학생들이 하고 있다.

입시를 마치고 갓 입학한 신입생들은 이 상황에 직면하고 정신적으로 심한 모멸감을 느끼며 대학의 이름을 바꾸기를 건의하곤 한다. 사물의 이치와 자연의 섭리를 아는 이들이라면 인간의 존엄에 근거가 되는 프라이드와 긍지를 해하는 상대는 자연상태에서는 반드시 제거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산캠퍼스 학생들은 오히려 서울캠퍼스 학생들에게 그다지 분노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의 존엄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교육을 초.중.고등 교육을 통해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존엄이 훼손 당하는 상황에서도 정당한 공격적인 방어 수단인 분노의 표출과 행동을 보이지 못하고, 서울캠퍼스 학생들과 한양대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 비인격적인 가치관을 키우고 있다. 이것이 분교와 본교의 상황이다. 아마 여타 대학 또한 이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된다.

2003년 11월 27일에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실에 통화를 시도하여 교육적 차원에서 분교라는 명칭의 폐지를 건의했다. 인간의 존엄을 해하는 그릇됨이 일상적인 용어에까지 침투해 있는 대한민국 교육 현실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프라이드와 긍지를 훼손당하는 안산캠퍼스 본교 한양인들을 위해 그들에게 했던 말로써 마무리 짓고자 한다.

"한양대학교는 한양대학교입니다. 그리고 본교와 분교는 자신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니까요. 님들이 안산을 거점으로 한양대학교 학창 생활을 한다면 님의 근본이 되는 학교(본교)는 바로 안산에 있는 한양대입니다. 따라서 님에게 있어서 분교는 서울에 있는 한양대이죠. 물론 입장이 바뀐다면 또 다른 해석이 되겠죠.

그리고 한양인이 학교를 떠나 사회에서 활동하게 되면 단지 님에게 남는 것은 한양대 출신이라는 것만 남을 뿐입니다. 누가 본교 또는 분교 나왔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본교 나왔다고 대답할 줄 아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이 생활한 터전이 근본(본)이 되는 것이죠.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은 마음에 차별이 깃든 이라고 판단 내리면 될 것입니다.

즉, 한양대 출신이 분교라고 대답할 확률은 제로입니다. 한양대 출신은 모두 본교라고 대답을 해야 하겠죠. 즉, 한양대에는 분교라는 말이 쓰일 일이 없습니다.

그릇된 가치관을 가진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가치에 현혹되어 분교와 본교로 나누어 자신들을 상처 입히는 누를 범하지 마십시오. 안산 한양 후배 여러분들은 올바른 가치관으로 본교와 분교를 구별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올바른 가치관으로 본교와 분교를 구별하다 보면, 분교라는 단어가 왜 존재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이해하기 힘이 들 겁니다.

여러분의 근본(본)이 되는 학교이자 여러분의 생활터전의 근본(본)은 안산이고 학교(교)는 한양대입니다. 고로 여러분은 본교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본교를 책임지고 발전시키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안산 후배님들은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하여서 행복한 학창생활만 하면 됩니다. 그게 어떤 지식보다도 사회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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