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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웅 김구, 어떻게 진보의 상징됐나?
[주장] 친일파와 박정희, 친일사학자들이 만든 신화, 냉정히 평가해야
 
백시나

대한민국 역사의 성역 김구에 대한 청문회

 

『김구 청문회』를 출판하기 위해 우리는 6개월 동안 작업을 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우리는 매우 마음 아팠다. 백범 김구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최고의 독립영웅이자, 정치가이며,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우리는 그 동안 김구가 안두희에게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면서 행복한 상상을 수없이 해왔다.

 

▲ 백범 김구에 대한 신화를 벗겨내고 새로운 평가를 시도하고 있는 <김구 청문회>     © 매직하우스

김구의 저서 『백범일지』를 읽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누구나 읽었던 <나의 소원>의 감동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김구에 대하여, 김구가 살아 있다면 이 책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워했을 거란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맘이 아프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역사 속에서 수많은 지도자들이 견디어야 하는 고통이면서, 그 혹독한 검증을 거쳐 살아남아야만 비로소 한 시대를 책임지는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김구는 한 때는 우(右)에서는 김일성 등 빨갱이와 내통했다며 좌로 몰리고, 좌(左)에서는 극우로 몰리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김일성 등과 내통했다는 누명은 벗어도 좋을 거 같다. 이 책 어디에서도 김구는 공산주의와 내통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중도파로서 좌와 우의 통합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다는 찬사도 걷어 들여야 할 것 같다. 김구 지지자들에게 가장 아픈 부분은 이 점이 될 거 같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 부분이 가장 많이 아팠다. 좌와 우의 통합을 위해 가장 치열하게 애썼다고 믿어왔던 김구를 보내고 나면 우리는 그 대안으로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역사는 그동안 김구를 선택했다. 김구를 선택하는 동안 동시대의 인물 여운형을 버렸다. 어쩌면 여운형은 김구가 받고 있는 찬사를 거의 다 받았어야 하는 유일한 인물이었는지 모른다.

 

책 제목을 김구 청문회라고 정한 것은 백범 김구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담아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스스로(?) 동학의 접주로 활동했던 구한말과 일본인 스치다를 살해하고 사형집행 직전까지 갖던 시절, 그리고 탈옥을 한 이후 망명생활과 한때 도산 안창호에게 임시정부에 문지기라도 시켜달라고 했던 그 유명한 인사청탁 때와 김구가 주석으로 임시정부를 이끌던 시절, 그리고 해방 이후 이승만과의 갈등과 협력관계, 그리고 안두희에게 저격당하던 순간들과 사후 김구가 민족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하는 장면들을 다룬다.

 

나는 개인적으로 왜 김구는 3.1 운동 각종 독립운동 및 독립선언서에 그의 이름이 없었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이 책을 만들면서 그 의문의 상당부분은 풀렸다. 이 책의 신랄하고 가혹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김구의 명성에는 조금의 흠이 가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 할지라도 해방공간 내에서 김구가 걸어온 길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성역화 된 인물은 백범 김구이다.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신화는 상당부분 깨졌다. 하지만 백범에 대한 신화만큼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신화를 깨는 자체가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이제 김구에 대한 비판을 시작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그가 선택한 길이 최선의 길이었는지 다시금 묻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정말 김구의 일생이 우리가 아는 그 어떤 정치인보다 탁월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친일파 문인 춘원 이광수가 윤문 각색한 <백범일지>

 

《도산일기》를 비롯하여 앞에서 소개한 독립지사들의 자서전류는 대부분 직해본 백범일지와 마찬가지로 한문식 구식 표현을 사용한 문어체 문장이다. 당연히 독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백범일지》는 달랐다. 《백범일지》는 처음부터 유려한 문장, 쉽고 간결한 문체로 출발했다. 《백범일지》는 출간되자 말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백범 개인의 일생도 흥미로웠지만,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지사들의 행적을 어느 정도나마 파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체는 보너스였다. 국사원본은 《백범일지 친필본》이 공개될 때 까지 유일한 원본 구실을 했으며, 이 책을 기본으로 수많은 《김구자서전》과 《김구평전》이 탄생하여 백범일지 집필자의 텍스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국사본백범일지》는 친필본과 차이가 너무 많은 작품이다. 백범의 조상 이야기를 소개한 도입 부분부터 다르다. 친필본은 “조선(祖先)은 안동 김성(金性)이니 김자점(金自點) 씨의 방계(傍系)라…”로 시작되지만 국 사본의 첫 부분은 “우리는 안동 김씨 경순왕(敬順王)의 자손이다.…”로 출 발한다. 원본에 없는 내용이 추가된 경우다. 더욱이 일부 내용은 아예 빠져 있는 경우도 있다. 사리원에서 경의선 열차를 탔을 때 황해도 봉산의 만세 운동에 관한 이야기 등이 삭제되어 있다. 《국사본백범일지》는 단순 교열이 나 윤문 정도가 아니라 재구성본이라고 해야 맞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백범일지》의 진정한 작가는 누구라고 해야 할까?

 

백범은 《백범일지》 초간본에서 저자의 말을 남겼다. 이 글에서 백범은 “김지림 군과 삼종질 흥두가 편집과 번역, 철자법 수정 등 궂은일을 했다” 고 서술했다. 이 문장으로 인해 오랫동안 김지림이 《국사본백범일지》의 윤문자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광수가 윤문의 주인공임을 알고 있으며 인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김신이 이광수가 윤문자임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김신의 말을 들어 보자.

 

“춘원은 자신이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답니다. 아버님은 그의 행실 때문에 망설였는데, 누군가가 글 솜씨도 있는 사람이고, 속죄하는 기분으로 맡겠다니 시켜보라고 했대요. 그가 윤문을 한 것은 사실이나, 아버님이 그걸 알고 맡기셨는지 의문입니다.”

 

친일파였던 춘원이 스스로 《백범일지》의 윤문을 자청했는지, 김구가 이 광수의 윤문을 알았는지 등에 관한 사항은 향후 좀 더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분명한 것은 이광수가 《국사본백범일지》의 산파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아무튼 《백범일지》가 전 국민의 교양서로 자리 잡게 된 일등 공신은 아무래도 이광수의 몫으로 돌려야 할 듯싶다.

 

김구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한 박정희와 친일사학자들

 

건국공로훈장 제도는 1949년 4월 27일 대통령령 〈건국공로훈장령〉이 공포되면서 제정되고 시행되었다. 최초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1949년 8월 15일에 중앙청에서 거행된 건국공로자 표창식에서 대통령 이승만과 부통령 이시영에게 수여되었다. 박정희 군사정권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 제도의 문제점 몇 가지만 지적한다.

 

첫째, 친일파들이 독립운동가의 서훈 자격을 심사했다는 점이다.

 

1962년 문교부 독립운동유공자 공적조사위원회 명단 7명 속에는 이병도와 신석호가 들어가 있다. 이 두 사람은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던 등의 전력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제된 이들이다. 친일이력이 있는 박정희 와이병도, 신석호 등이 김구를 최고 항일 투사로 만든 셈이다.

둘째, 공적내용이 사실과 다른 경우가 너무 많다.

 

김구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보훈처의 작성한 김구의 공적조서를 보면, 김구의 독립운동 기간을 50여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1894년 동학혁명 시기부터 김구가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보고 있는 모양이나 이것은 분명히 오류이다. 또 인천감리영(仁川監理塋)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후 집행일인 8월 26일 특명으로 사형집행이 중지되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며, 김구가 살해한 매약상 스치다(土田讓亮)를 일본 육군중위(倭陸軍中尉)라고 표현한 것도 백범일지를 일방적으로 신뢰한 결과이다.

 

셋째, 서훈기준이 모호하다. 건국훈장이냐 독립훈장이냐?

 

유공자들이 수여받은 훈장의 정식명칭은 건국훈장(建國勳章,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이다. 13년 전 이승만이 받은 훈장을 같은 법률의 적용 하에 김구가 받은 것이다.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은 건국훈장이라는 용어다. 여기서 말한 건국은 1948년 성립된 이승만 정부의 출범일 것이다. 남한 단독 정부의 정통성 여부와 무관하게 아무튼 이 정부가 표방한 정치체제는 공화정이다.

 

5・16쿠데타와 김구의 아들 김신

 

박정희와 김구의 관계는 김구의 아들 김신과의 인연을 생각해 보면 보다 뚜렷해진다. 쿠데타 발생 사흘 후인 1961년 5월 19일에 발표된 32명의 군사혁명위원 명단에는 육군소장 박정희와 함께 공군중장 김신의 이름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5월 23일에는 육군참총장 장도영 등과 “전력을 다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명령에 절대 복종할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김신은 박정희 정권과 내내 함께했다.

 

1962년 공군참모총장직을 예편한 김신은 타이완 주재 대사로 부임해 8년간 일했다. 1971년 귀국한 김신은 대통령의 권유로 공화당 후보로서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하지만 그 후 교통부 장관을 거쳐 유신시대에는 대통령 추천으로 유신정우회 소속 국회의원이 된다. 그리고 독립기념관 초대 이사장을 거쳐 백범김구기념관 관장 및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이 그의 이력이다.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정권을 거쳐 현 박근혜 정권까지 양지만을 선택한 것이 그의 생애였다.

 

김구의 아들 김신이 박정희의 쿠데타에 일조함으로서 얻게 된 과실은 엄청났다. 김신 개인의 일신영달과 가족들의 기득권 진입은 차치하고라도 아버지 김구는 진보・보수・여・야의 경계와 상관없이 대다수 국민이 숭배하는 민족의 영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의 배경에는 민족의 영웅으로 김구를 선택한 박정희의 공로가 크다.

 

한편, 독재자 이승만의 대체자로 김구를 선택한 결과는 이승만의 문제점 을 덮는 효과도 있었다. 이 책을 통하여 줄곧 거론하였지만 김구와 이승만은 너무나 오랫동안 동지이자 동반자 관계였다. 그러므로 김구의 일생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이승만의 반민족적, 반민중적 행위에 대한 저항을 제 대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과오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독립운동 시기의 박용만, 태평양 전쟁 때의 한길수, 해방공간에서의 여운형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역사는 박용만・한길수・여운형을 외면하고 김구를 선택했다.

 

대한민국 역사는 여운형 대신 김구를 선택했다

 

물론 김구는 친일파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친일파 부일배들로 이루어진 한민당으로부터 수많은 자금을 받았고 그들과 결탁했다. 부일협력 재벌 최창학으로 부터 제공받은 김구의 거주지 경교장(죽첨장), 송진우로부터의 900만원, 김연수에게 700만원 그리고 주석김구각하로 극존칭을 써가며 김구와 임시정부 홍보에 앞장섰던 동아일보…등은 극히 일부의 예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백범일지를 윤문, 첨삭한 자가 친일파 이광수였다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1962년 김구에게 수여된 건국공로훈장 중장(현 대한민국장, 건국훈장 1등급)은 친일전력이 있는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 이병도 신석호 등 친일사학자들이 심사하여 결정된 것이다. 이승만이 숨겨진 친일파라면 백범 김구의 경우 친일파들이 그를 항일독립 통일의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역사가와 그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 과거가 조작, 왜곡되었다면 이해와 해석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신화화된 김구의 이미지를 넘어 이제 김구의 실체를 보아야할 시점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구체적 인식은 우리가 가야할 미래의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출판 목적이다. 그리고 김구로 인해 어둠 속에 묻혀버린 독립지사들의 명예가 이 책을 통하여 회복되었으면 한다. 임시정부정통론이라는 허구의 독립운동사가 걷히고 제대로 된 독립운동사가 정립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전한다.

 

* 글쓴이는 <김구 청문회> 출판한 매직하우스 대표입니다.

 

* 본문에 대한 독자 여러분들의 다양한 평가와 반론을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기사입력: 2014/08/09 [23:10]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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