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미사일방어는 ‘지정학적 재앙’이 될 수 있다
[김종대의 안보 설명서] 미국과 중국 군비 경쟁에 등터지는 나라될려나?
 
김종대   기사입력  2014/08/01 [00:12]

왜 한·미·일 정보 협력인가?

2008년 1월 11일,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당선자가 국방부를 방문했다.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과 김관진 합참의장이 당선자를 맞이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미국의 미사일 방어(MD)에 한국이 적극 참여를 고려한다”고 알려지자 이것을 의식했는지 김장수 장관은 한국의 ‘MD 참여 불가론’을 주장했다. 근거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미사일 방어는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적성국으로 간주하게 되는 정치적 문제. 둘째는 초보적인 MD 시스템 구축에만 11조 원이 소요되는 재정적 문제. 셋째는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기술적 문제였다. 이날 김장수 장관의 보고가 이루어진 이후 인수위원회는 MD 참여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MD 참여 문제가 또 불거진 때는 2008년 5월이었다. 미국이 한국의 영토나 영해에 탄도미사일을 탐지하는 X밴드 레이더를 배치하자고 한국에 협의를 요청해올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미국이 고고도 미사일요격시스템(THAAD)도 한국에 배치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에 국방부가 전문가들을 소집해 전략 회의를 했는데, 여기서도 미국의 요구에 대해 ‘수용 곤란’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대미 관계를 고려해 ‘한다, 안 한다’고 발표하지도 않고 공론화도 하지 않는 것으로 유야무야되었다.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문제를 덮으려 한 것이다. 이후 MB 정부 5년간 MD 문제는 사실상 논란에서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미국 군부와 의회에서 한국의 MD 참여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이 계속되고 북한의 거듭되는 미사일 시험으로 군사적 위협이 가중되자 정MB 정부 말기 “우리가 하려는 것은 독자적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이지 미국의 MD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당시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은 “미국으로 날아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우리가 어떻게 방어하냐”라며 미국 본토 방호와 한국의 미사일 방어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미사일 방어 문제는 한국 정부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었다. 이 문제만 제기되면 한국은 약소국으로서 몹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아야 했다. 미국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이명박 정부에서 미국의 MD 참여 요구를 받아들이려는 징후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시도였다. 2012년 6월에 국무회의에 기습 상정해 협정을 체결하려는 시도는 무산되었지만, 굳이 이 당시에 한·일 관계에서 큰 분기점이 될 협정을 체결하려는 의도는 미사일 방어였다.

문제의 핵심은 미사일 방어

국가 간에 정보를 교류하려면 굳이 협정이나 조약이 아니라 양해각서(MOU)로도 충분하다. 한·미 간에도 군사 정보를 교류하는 기본 틀은 무슨 협정이나 조약이 아니라 ‘군사정보교류합의각서(PASS-K)’였다. 그러나 군사 정보를 보호하는 협정이 특별히 필요한 순간이 한미 동맹에도 있었다. 60년이 넘은 한미 동맹의 역사에서도 군사 분야의 지적 재산권, 즉 특허권을 보장하는 협정이 체결된 지는 20년밖에 안 된다. 1991년 11월에 체결된 한미 특허비밀보호협정(PSA)이 그것이다. 이는 ‘긴밀한 군사 안보 협력 관계에 있는 우방 간에 군사상의 발명과 기술을 상대방 국가에 특허로 출원할 경우 접수국은 이를 일정 기간 공개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특례적인 공업 소유권에 관한 협정’이다.

특허는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군사적 발명과 기술은 비공개로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 특허가 5,000건인 데 반해 한국은 4건밖에 되지 않았으니 미국의 군사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일방적인 성격의 협정인데, 미국이 왜 이런 협정을 한국에 요구했는지는 자명하다. 미사일 방어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전략 방위 구상, 즉 ‘별들의 전쟁(SDI)’에 한국이 관심을 보이자, 미국은 먼저 이 협정을 체결하라고 압박을 가했던 것이다. 이 협정은 1987년 10월 폐기된 한미 과학기술협력협정보다도 한국에 훨씬 많은 규제와 의무를 요구하고 있어, 한국 연구기관과 기업에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 자명한데도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협정을 체결하고 한국은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 위성 정보를 경기도 오산의 전구항공통제본부(TACC)를 통해 일부를 활용할 수 있는 이익이 있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20년이 지난 2012년에 한·일 간에 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가 논의된 배경도 동일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동북아시아에서 지역 미사일 방어가 초미의 현안으로 등장하니, 일본은 한국과 미사일 방어에서 협력을 도모하되 그전에 반드시 이 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10조 엔 이상을 쏟아부어 미국의 MD 체계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일본의 군사 기술이 한국에 유출될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고는 한국과 미사일 방어를 거론하기 어려웠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핵심 조항은 군사, 특히 미사일 방어 분야에서 일본의 지적 재산권, 즉 특허권을 보호하는 것이고, 이는 한·미·일 간의 미사일 방어 협력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더 핵심적인 의미는 한·미·일 3국이 이 협정을 통해 미사일 방어에 필요한 지휘·통제(C2: Command, Control) 시스템이 융합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협정이 체결되면 중국이나 북한의 미사일이 발사되는 그 순간부터 한·미·일이 공동 작전을 하기 위한 군사적 체계를 완비하는 것, 즉 준(準) 동맹의 성격으로 군사 관계를 변화시키려 할 것이다.

특히 이 문제는 일본에 각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이미 일본은 1990년대부터 일본 열도가 북한이나 중국의 미사일 공격에 노출되었을 때 미사일이 일본으로 날아올 때까지 기다려 방어하면 때가 늦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미사일이 일본에 도착하기 훨씬 이전, 즉 한반도에서 미사일을 요격해야 일본이 안전하다는 점은 일본 내 많은 군사전략가 사이에서 논의되던 주제였다. 한국 영토에서 일본을 타격하는 미사일을 요격하려면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인근에 출동해 작전을 수행하든지, 일본 자위대가 한국군과 합동 작전을 펴든지 해야 한다. 따라서 미사일 방어를 필두로 한·미·일 군사작전을 완전히 융합하는 새로운 집단 방위 구상이 모색되고 있었다.

한·미·일 지휘 체계의 융합이 진짜 목적

무엇을 융합한다는 것인가? 미사일 요격에서 한·미·일 군사작전의 ‘지휘 통일(unit of command)’이다. 고속으로 비행하는 탄도미사일이 한반도로 가는지, 일본으로 가는지, 괌의 미군 기지로 가는지, 아니면 미국 본토로 가는지를 판단하는 데는 분초 단위의 시간밖에 없다. 그런데 한반도 상공을 지날 때는 주한미군 사령관이 요격 명령을 내리고, 일본에 다 가서는 주일미군 사령관이 요격 명령을 내리고, 괌으로 거의 다 가면 미국 태평양사령관이 요격 명령을 내리는 식으로는 군사작전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복잡하게 나누어진 지휘 체계를 단일 전구(戰區) 지휘관으로 통합해야만 하고, 여기에 한국과 일본의 군사 자산이 미사일 요격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통합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구상이다. 그러려면 첫 시작은 지휘 통제의 융합을 위한 군사적 제도를 갖추어야 하는데, 이를 촉진하는 거대한 우산(umbrella)이 바로 한·미·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다.

이러한 군사적 공조와 융합은 2011년 2월에 발표된 미 합참의 국가군사전략서(NMS)와 같은 해 6월의 미·일 외교국방장관회담(2+2), 2012년 1월에 발표된 오바마 대통령의 신(新)국방전략지침, 6월의 한·미 외교국방장관회담(2+2), 한·미·일 공동 해상군사훈련의 취지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북한, 더 나아가 중국의 대륙간탄도탄미사일의 위협에 맞서 한·미·일의 군사적 공조 네트워크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한·미·일의 합동군사작전은 국적을 초월한 다국적 방위 체제, 즉 유럽의 나토(NATO)와 유사한 새로운 집단 방위 체제가 출현하게 됨을 의미하는데, 여기에 한국이 포함될 경우 대중(對中) 외교에서 한국의 자율성은 크게 잠식된다.

이 점을 주목한 중국 역시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한국이 MD에 참여할 경우 한중관계는 조정될 수 있다”라고 협박하던 터였다. 2005년에 원자바오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군산과 오산의 미군 기지에 패트리어트(PAC-3) 미사일이 배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미국의 군사전략에 한국이 편입되는 걸 우려한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중국은 한국의 MD 참여가 한중 관계에서 ‘금지선(red line)’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MD 참여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2014년 2월 말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 4월의 한미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간에 미사일 방어를 위한 시스템의 상호 운용성(Interoperability)과 한·미·일 정보 협력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상호 운용성이란 탄도미사일 감시, 추적, 요격에 필요한 정보 시스템이 동일한 표준으로 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중국이나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되면 3국의 시스템이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체제로 인터페이스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이 점은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중심정책(Pivot to Asia)’과 ‘재균형(re-balancing) 정책’의 핵심 중에 핵심이다.

이렇게 미국이 일관되게 한·미·일 정보 협력을 강조하는 와중에 지난 5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 “주한 미군이 고고도 미사일요격시스템(THAAD) 도입을 위해 부지 조사까지 했고, 나중에 한국에 판매한다는 계획도 세웠다”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즉각 “그런 사실도 없고 미군의 협의 요청도 없었다”라고 부인하고 나섰다.

그러나 제임스 위너펠드 미 합참 차장과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 등이 보도 내용을 인정했고,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과 페피노 드비아소 미 국방부 국장 등은 “한국 정부에서 THAAD 도입을 위한 문의를 받은 적 있다”라며 되레 기사 내용에 힘을 실어주었다. 마침내 6월 3일에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이 “(THAAD 배치는) 미국에서 추진을 하는 부분이고 제가 또 개인적으로 (미국 군 당국에) 사드의 전개(배치)에 대한 요청을 한 바 있다”라고 한 포럼에서 말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거짓말쟁이라고 미국이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중국이냐, 미국이냐

국방부의 태도에도 석연치 않은 점은 있다. 5월 31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에 참석한 김관진 국방장관과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은 ‘공동 언론 보도문’에서 “3국 장관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관련된 정보 공유의 중요성을 재확인했으며, 이 사안에 대해 앞으로 계속 검토해나갈 필요성이 있다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라고 밝힌 점이다. 이를 국방부는 “북한 핵미사일에 관한 정보 공유를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하느냐 등을 논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 (3국 간) 실무 워킹 그룹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3국간 정보 공유 약정은 이명박 정부 시절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아니라 양해각서 방식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명박 정부에서도 체결하지 못했던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양해각서로 형식만 바꿔 체결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한 상황인 것이다. 애초 국방부는 “이번 회의에서 정보 보호 양해각서 체결은 의제도 아니고 논의도 하지 않는다”라고 공언하던 터에 불과 며칠 만에 뒤집힌 것이다.

그러면 THAAD 배치와 정보 보호 양해각서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최대 고도 150킬로미터 상공, 즉 머나먼 우주에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THAAD는 탄도미사일이 발사 단계(boosting)를 넘어 중간 단계(midcourse), 종말 단계(terminal) 중 중간 단계에서 요격을 한다. 발사 단계는 적진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요격이 어렵고, 종말 단계는 음속의 최대 10에 이르는 가속이 붙기 때문에 또한 요격이 어렵다. 그렇다면 중간 단계 요격이 현실적인데,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지상에 배치된 THAAD와 이지스함에 배치되는 스탠더드미사일(SM-3)이다.

그런데 THAAD가 운용되려면 한·미·일의 지휘·통제가 통합되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한·미·일 군사정보협력양해각서다. 바로 이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MD 참여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될 조짐이다. 이런 논란을 의식했는지 국방부는 6월 3일에 재차 “THAAD 도입 계획은 없으며, 우리가 고고도 방어시스템(L-SAM)을 독자 개발한다”라고 발표했다. 미국이 THAAD 개발에 20년이 소요되었는데 동일한 성능의 요격 미사일을 “앞으로 8년 내 개발한다”라는 게 과연 현실적인지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그보다는 미국의 MD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궁색한 변명으로 읽힌다. 어떻게든 미국의 MD에 참여한다는 인상만 주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러는 동안에도 한국이 미국의 거대한 중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위성 같은 처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제 MD 참여 방향으로 한국 정부는 조금씩 나아가는 중이다. 그러면 공격 무기도 아니고 방어 무기에 불과한 MD가 왜 그처럼 한반도 주변의 지정학을 바꾸는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일까? 바로 MD가 중국이나 러시아가 추격하기 곤란한 미국의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를 과시하기 때문이다. 추격이 불가능한 높은 수준의 군사 기술로 중국을 압도하게 되면 중국이 아무리 군사력을 증강해도 전략적으로는 미국을 넘어설 수 없다. 이 때문에 중국은 패권국이 될 수 없고, 아시아에서 지역 패권자도 될 수 없다. 즉 중국으로서는 군사력 균형을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을 안보의 패러다임으로 결속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진용을 구축할 수 있다. 중국이 이에 대한 강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겪어야 하기 때문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요격이 어려운 다탄두(多彈頭)미사일(MIRV)을 증강해 배치하거나 위성요격시스템(satellite intercept system)을 운용하는 등 더욱 공격적인 군사전략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14년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자회의에서 시진핑은 중국의 국방 개혁의 핵심 방향이 ‘신속성’과 ‘공격성’이라며 핵미사일을 보유한 제2포병사령부를 중시하는 현대화된 군사전략을 표방했다. 이와 함께 항공모함 진수, 스텔스 전투기 개발 등 최첨단 무기 증강도 서두르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본격적인 군비 경쟁의 최전방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지정학적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문제는 미국의 단일 패권을 적극 수용하면서 중국 견제에 동참할 것이냐, 한반도 세력 균형을 지향하면서 안정된 질서를 지향할 것이냐다. 특히 이 문제는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를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 매우 어려운 선택이다. 설령 MD에 참여하게 되더라도 한국 정부가 미국에 갖고 있는 협상의 레버리지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점에서 MD는 단순히 군사 무기 체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의 지각 변동이라는 정치·군사적 질서와 동맹의 수준을 결정하는 고도의 전략적 사안이다.

MD는 거대한 ‘믿음의 체계’

그러나 여기에도 의문이 있다. 어쩌면 미사일을 미사일로 요격한다는 발상 자체는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점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MD를 한다고 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지구상에 실효성 있는 미사일 방어 체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굳이 당장 성공할 것도 아닌 MD 문제에 대해 우리가 너무 과민한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MD는 비록 성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과정 자체가 동맹 수준을 상향 조정하는 미국의 단일 패권 전략의 구체화 과정이다. 한국이 MD에 동참하는 것은 미국의 힘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신뢰, 전략적 공조의 과시다. 이렇게 보면 MD란 과학적 개념이라기보다 거대한 ‘믿음의 체계’라고 보인다. 즉 MD는 하나의 이념이다. 이 믿음이 틀리든 맞든 한미 동맹이 이미 이데올로기이자 목적으로 굳어진 한국 사회에서는 MD가 맹목적인 추종의 표상으로 인식될 만하다.

사실 THAAD나 SM-3 도입은 한국 방위와 별다른 관련이 없다. 외기권(外氣圈), 즉 우주에서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하려면 북한과의 일정한 거리가 확보되어야 한다. 북한의 미사일이 고도 100킬로미터가 넘을 때를 기다려 요격 시스템을 작동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한국과 북한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일단 대기권을 벗어난 요격 미사일의 캡슐이 벗겨지고 여기서 분리된 타격체(kill vehicle)가 다시 수평으로 탄도미사일을 향해 날아가야 한다. 그 정도의 요격 고도가 되면 북한의 미사일은 이미 한반도 상공을 한참 벗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이지스함에 SM-3를 배치한다 하더라도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려면 오키나와 남쪽까지 이지스함을 보내야 한다. 이지스함이 이제 겨우 한 척밖에 없는 한국이 이 귀한 자원을 그 멀리까지 보낼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THAAD와 SM-3가 한반도에 배치된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바로 멀리 떨어진 중국의 탄도미사일이 표적이라는 의미다. 즉 북한은 아니다!

THAAD를 한국이 도입하는 데는 최소 5조 원의 재원이 소요된다. 한국 방위와 밀접한 연관성이 없는 무기 체계 도입에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과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이 무리한 요구를 아무리 보수 정권이라도 선뜻 응할 수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 보수 단체와 안보 단체들은 미국의 MD에 우리가 동참하지 않는 것은 “좌파 세력들의 왜곡된 선동 때문”이라며 “하루 속히 미국의 MD에 들어가라”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을 하려는 조짐만 보여도 “미국의 MD에 왜 안 들어가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좌파 세력의 왜곡 선동 때문이 아니라 들어갈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에 못 들어가는 것이다. 이 점을 무시하고 연일 첨단 무기 도입을 주장하는 그들이야말로 왜곡된 선동을 하는 세력 아니겠는가?
 
* 글쓴이는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입니다.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14년 7월 호에 실렸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4/08/01 [00:12]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