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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닛 옐런, 세계 금융시장의 황제
[인물포커스] 미 연준 사상 최초의 여성 수장, ‘양적완화’ 정책의 어머니
 
김환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세계 경제의 대통령’으로 통한다. 초강대국 미국의 경제를 주무를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기축통화인 달러의 공급과 금리를 결정해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2007~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 연준이 추진한 양적완화(量的緩和·Quantitative Easing) 정책에 세계 각국이 일희일비했던 것은 미 연준의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2014년 2월 1일 미 연준 역사에, 아니 세계 경제사에 새로운 역사가 쓰였다. 재닛 옐런(Janet Yellen) 미 연준 부의장이 벤 버냉키 의장에 이어 제16대 미 연준 의장으로 공식 취임했기 때문이다. 옐런은 미 연준 10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장이다.

옐런은 2013년 중반부터 미 연준 차기 의장으로 강력하게 거론되었다. 예컨대 2013년 6월 20일 로이터통신은 세계 투자은행(IB) 등의 주요 이코노미스트들에게 차기 연준 의장으로 누구를 예상하는지 조사한 결과 응답자 44명 중 40명(91퍼센트)이 옐런이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보도했다. 또 누구를 차기 의장으로 지지하느냐는 물음에서도 응답자 38명 중 23명(60퍼센트)이 옐런을 꼽았다. 이에 앞서 4월 미국의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이 누가 차기 의장이 될 것으로 전망하는지 IB 등의 이코노미스트 52명에게 문의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46퍼센트가 옐런을 차기 의장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으로 꼽았다. 이게 시사하듯, 옐런은 일찍부터 ‘누구보다도 준비된’ 연준 의장 후보라는 평을 받았다.1

옐런이 미 연준 의장이 됨으로써 벤 버냉키 전임 의장이 추진했던 양적완화 정책은 더 오래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양적완화 정책은 옐런과 버냉키가 함께 설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을 만큼 연준 부의장 시절 옐런은 버냉키와 찰떡궁합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벤 버냉키가 ‘양적완화의 아버지’라면 옐런은 ‘양적완화의 어머니’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2

양적완화 정책이란 2007~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연 2.5퍼센트였던 미국의 기준 금리가 0퍼센트대로 떨어져 더는 금리를 내릴 수 없게 되자 미 연준이 시중은행이 보유한 채권을 사들여 시장에 돈을 공급한 통화정책을 말한다. 양적완화는 기준 금리가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서 더는 금리를 낮추기 어려울 때 쓰는 이례적인 정책으로, 금리를 더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시중에 돈을 공급한다는 의미에서 양적완화라고 한다. 쉽게 말해 시장에 막대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시키는 정책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양적완화를 추진했던 미 연준 의장 벤 버냉키는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는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는 일도 마다 않겠다”는 발언을 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도 얻었는데,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총 3차례에 걸쳐 단행한 양적완화로 인해 시중에 풀린 돈은 총 3조 2,000억 달러(약 3,300조 원)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양적완화를 통해 주요 선진 7개국(G7)이 시중에 풀은 돈까지 합하면 10조 달러(약 1경 660억 원)를 넘었다는 분석도 있다.3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했던 이런 이력 때문에 옐런은 미 연준의 양대 정책 목표인 물가안정과 완전고용 중에서 고용 쪽에 더 신경을 쓰는 경기 부양파(비둘기파)로 분류된다.4 일반적으로 통화정책에 대한 입장에 따라서 물가 상승을 더 강하게 통제하려고 할 경우(금리 인상을 더 선호) 매파, 경제성장(혹은 실업률)에 주안점을 둘 경우 비둘기파로 분류한다.5

‘큰 아이큐를 가진 작은 여성’

1946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인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옐런은 학구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옐런이 미 연준 차기 의장에 임명된 다음 날 『뉴욕타임스』는 옐런의 한 동료가 ‘큰 아이큐를 가진 작은 여성’이라고 평했다고 전했다. 체구는 작지만 매우 지적인 인물이라는 의미다. 미 연준 내부에서는 옐런은 역대 어느 의장보다도 탄탄한 경제 이론으로 무장한 사람이기 때문에 “옐런과 저녁 식사 약속을 잡는 날엔 그와 식사 시간 내내 경제학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6 학구파답게 어렸을 때부터 공부에 큰 소질을 보였다. 포트해밀턴고등학교에 재학 시절 영문학 최우수상, 수학 최우수상, 과학 최우수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7 옐런의 가족 역시 학구적이다. 그의 남편 조지 애컬로프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이며, 외아들 로버트 애컬로프는 현재 영국 워릭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옐런은 아이비리그인 브라운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애초 옐런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공무원이 되고자 했는데, 수학을 좋아해 경제학을 택했다는 것이다.8 옐런은 1971년 예일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당시 예일대학에서 옐런을 가르쳤던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옐런은 가장 똑똑한 학생 중 한 사람이었다”며 “그는 금융시장에 대한 예리한 이해력과 ‘인간의 고통은 그 무엇보다 실업과 연관돼 있다’는 강한 신념을 지닌 인물”이라고 회고했다.9 하버드대학과 런던정경대학(LSE) 교수를 거쳐 1994~1997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를 지냈으며, 1997~1999년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2004년 6월 로버트 패리 총재 후임으로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가 되었다.
 
학구파 이미지가 강하지만 옐런은 통화정책에 대한 실무적 능력과 뛰어난 경제 예측 능력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는 평을 얻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옐런은 미국에서 호황론이 한창 이어지던 2007년 말 신용 경색 심화와 경기 후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비관론을 내놓았는데, 다음 해 실제로 세계경제가 금융 위기에 휩싸이면서 경제 예측력이 매우 날카롭다는 평을 얻었다.10 『월스트리트저널』이 2009~2012년 연준 위원들의 경제 전망 발언을 분석한 결과 옐런은 38건의 전망 중 36건을 적중시켜 가장 높은 예측력을 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 2013년 10월 8일자는 이런 이유를 근거로 옐런을 “매보다 날카로운 예측 능력을 지닌 비둘기”라고 했다.11

옐런은 인간적인 매력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옐런은 남편과 합쳐 2012년 기준으로 주식, 채권펀드, 은행 예금 등으로 480만~1,320만 달러(53억 5,000만~147억 3,000만 원)의 재산을 가진 재력가지만 이웃집 할머니처럼 매우 수수하고 서민적인 사람이며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호평을 받고 있다.12 블룸버그통신은 풍부한 유머로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고 시장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옐런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훌륭한 강점이라고 했다.13 소통 능력과 더불어 학구파 경제학자답게 논리 전개가 튼튼하다는 해석도 있다. 앨런 블라인더 전 연준 부의장은 “옐런의 논리 설득력이 대단하다”면서 “자기 논리를 반대론자에게 잘 주입해 끝내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정책을 놓고 옐런과 종종 충돌했지만 옐런의 견해를 경청해 정책에 반영했다고 했다.14

옐런의 남자들: 제임스 토빈과 조지 애컬로프

옐런의 인생과 학문적 성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이른바 토빈세로 유명한 제임스 토빈 교수다. 옐런은 시장 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정부의 역할과 규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른바 ‘케인지언(Keynesian)’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토빈이 케인스 경제학을 설파한 예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는 것과 관련이 깊다. 토빈은 “시장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믿는 대표적인 케인스주의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옐런은 토빈 밑에서 고용과 실업에 초점을 맞춘 경제학자로 성장했으며, 1990년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버클리) 교수 시절 경제학계의 ‘대항문화(counterculture)’ 운동에 참여하는 등 ‘새 케인스학파 모델’의 이론적 기초를 닦는 데 기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 역시 토빈에게서 받은 사상적 세례와 관련이 깊다.15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 옐런이 실업 문제의 심각성과 이에 대응하는 정책 당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시각을 갖게 된 것은 스승인 제임스 토빈 때문이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16 2002년 토빈이 사망하자 옐런은 예일대학 신문에 ‘그는 인류 복리를 개선하는 작업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려준 인물’이라는 취지의 글을 기고해 스승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17

또 한 명은 남편인 조지 애컬로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다. 애컬로프는 누구인가? 정보 불균형과 관련해 중고차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설명한 ‘레몬 이론’으로 2001년 노벨상을 탄 경제학자다. 옐런과 애컬로프는 1978년 7월 결혼했는데, 옐런이 학계에 자리를 잡는 데는 애컬로프의 공이 컸다. 옐런은 1970년대 말 남편과 함께 런던정경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애초 옐런은 남편인 애컬로프가 런던정경대학에 영입되면서 ‘패키지 조건’으로 교수 자리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옐런의 능력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남편인 애컬로프에 비해 명성이 떨어졌다는 것일 뿐 옐런이 교수로서 하자가 있었던 인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학교 동료였던 메그나드 데사이 교수는 “옐런은 LSE 내에서 매우 저평가된 존재였다”며 “진지하고 똑똑했고 요란하지 않았지만 탁월한 인재였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는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18

옐런과 애컬로프는 든든한 학문적 동지이기도 했다. 옐런은 경제학자로서 또 정책 입안자로서 실업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는데, 이 점에서 애컬로프와 죽이 잘 맞았다. 애컬로프는 한 책에서 “우리는 성격만 딱 맞았던 게 아니라 거시 경제에 대한 입장 역시 완전히 일치했다”고 말했다.19 두 사람은 학문적 동지로서 노동 시장에 대한 논문 10여 편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이 논문들은 경제학자로서 옐런이 천착해왔던 ‘경제 통화정책을 통해 고용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미 연준 의장 지명 과정에서 옐런이 폭넓은 지지를 받은 배경에는 남편인 애컬로프와 함께 이룬 학문적 업적이 큰 역할을 했다.20 옐런이 인플레이션 위험 속에서 버냉키와 함께 양적완화 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것도 바로 이처럼 고용 문제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학문적 관심에 따른 것이다.

옐런인가? 서머스인가?

앞서 본 것처럼, 옐런은 버냉키 후임 미 연준 의장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았지만 애초 미 연준 의장으로 가장 강력하게 거론된 인물은 옐런이 아니라 로런스 서머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었다. 2013년 7월까지만 하더라도 오바마의 마음이 서머스에 기울었다는 보도가 주를 이루었으며 심지어는 도박사들 사이에서도 서머스에 베팅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하니, 대세는 서머스에게 넘어간 것으로 보였다.21 서머스는 오바마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바마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차기 미 연준 의장으로 옐런을 지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나는 그녀를 모른다’며 서머스를 밀어붙이려 했다.22

하지만 8월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계와 경제학계 모두에서 서머스가 역풍을 맞기 시작한 것이다. 정계와 경제학계는 서머스가 미국 경제를 망친 금융 규제 완화 정책의 선봉에 서 있던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서머스는 파생 상품에 대한 규제에 반대해 2008년 금융 거품 붕괴를 몰고 온 인물이었으며,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시티그룹 등의 자문을 맡으며 월스트리트와 유착관계를 맺어 대형 금융기관을 보호하는 데 급급했을 뿐 소형 금융기관은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머스를 둘러싼 논란은 또 있었다. 서머스는 하버드대학 총장 시절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오마바가 서머스를 지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정계와 재계는 집단행동까지 보였다. 경제학자 350명은 옐런을 지지하는 서한을 백악관에 전달했는데, 9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는 “이 시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옐런 부의장을 뽑지 않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며 “그 누구도 옐런 부의장만큼 차기 Fed 의장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옐런 부의장을 지명하지 않는다면 악의를 품은 행동으로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의원 3분의 1도 옐런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23

미국의 유력 언론들도 옐런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라나 포루하 부편집장은 8월 19일자 칼럼에서 차기 의장의 양대 후보로 거론되는 옐런 부의장과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모두 유능하지만 옐런 부의장이 여러 이유에서 이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선 옐런 부의장이 그간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위해 노력해왔다면서 이는 앞으로 몇 년간 미국이 맞닥뜨릴 도전에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또 버냉키 의장이 이른바 양적완화라는 경기 부양책을 구사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 옐런 부의장을 선택하는 것이 정책의 연속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했다.24 9월 16일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에즈라 클라인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옐런을 연준 의장에 지명해야 하는 5가지 이유」라는 칼럼에서 옐런의 화려한 연준 경력, 실업 해결 적임자, 정치적 중립 성향, 첫 여성 의장의 의미, 탁월한 경기 예측 등 옐런을 지명해야 할 다섯 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옐런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25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워낙 강하자 결국 서머스는 9월 15일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상원의 인준 과정이 험난할 수 있고, 그 경우 연준과 행정부, 나아가 이 나라의 경제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지명 철회를 요청했다.26

“장기 실업자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

그런데 옐런은 왜 이렇게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던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양적완화 정책 이후 실업률 하락 추이와 맞물려 경제 정상화를 시도하고 있는 미국 경제의 ‘회복 플랜’에 옐런만큼 적합한 인물은 찾기 어렵다는 인식의 확산 때문이다.27 이와 관련 박희준은 옐런은 “물가 안정을 맹신하는 연준 내 고위 공직자와 달리 물가 안정과 거의 같은 비중으로 실업 타파에 누구보다 앞장서 주장해온 인물이어서다”면서 “고(高)실업 시대에 정부 개입을 통해 고용을 높이는 정책을 수행할 적임자라는 점”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했다.28

실제 그렇다. 앞서 본 것처럼 옐런은 경제학자로서 또 정책 입안자로서 실업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것으로 유명하다. 예컨대 2004년 남편 애컬로프와 함께 쓴 논문에서는 “중앙은행이 장기 실업을 외면해서는 안 되며 국가가 직접 나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미 연준의 첫 번째 목표는 물가 안정이지만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옐런이 취한 일관된 입장이었다. 예컨대 옐런은 1999년 4월 예일대학에서 한 연설에서도 “일상의 개입 없이 자본주의 경제가 완전고용을 할 것인가? 분명히 아니다”면서 “완전고용에서 벗어나는 게 사회문제인가? 틀림없이 그렇다”고 했다.29

옐런이 실업 문제와 고용에 집착하는 것은 학문적 배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부모가 공장이 많은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대공황을 직접 겪었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깊다. 저소득층 이민자들이 몰려 살았던 뉴욕의 낙후 지역 브루클린에서 실업자로 내몰려 하층민으로 전전해야 했던 부모의 삶의 통해 ‘실업의 공포’를 직접 체험해 누구보다 실업의 고통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2013년 11월 미 상원 은행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옐런이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 장기 실업자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며 “브루클린 출신이란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말을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30

정부 역할론을 강조하는 옐런이 미 연준 의장에 취임했기 때문일까? 일각에서는 옐런의 승리는 곧 월스트리트의 패배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강남규는 서머스와 옐런의 대결은 월스트리트와 메인스트리트의 대결이었다고 말한다. 미국은 19세기 후반 산업화 이후 정치·경제 지형을 둘러싸고 제조업을 중시하는 메인스트리트와 금융자본을 대변하는 월스트리트가 대립해왔는데, 옐런은 메인스트리트를 대표하는 인물이었고 서머스는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31 이런 맥락에서 김보미는 옐런이 미 연준 의장으로 지명된 것은 여성이 처음 미국 경제 수장 자리에 앉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경제 대국 미국을 지배해온 경제관의 변화로도 읽힌다. 1970년대 이래로 미국은 시카고학파가 주장해온 ‘완벽한 시장’에 대한 이론을 따라 정부 개입을 제한하는 시장자유주의 경제를 추구했다. 옐런은 이와는 달리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중시한다.”32

옐런에게 남겨진 숙제

옐런은 버냉키와 마찬가지로 저금리를 바탕으로 한 통화 완화 기조를 더 오래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런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2014년 2월 11일 옐런은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 나와 6시간 동안 자신의 통화정책에 대한 구상을 밝히면서 “기존 통화정책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말해 사실상 제로 금리 수준인 현재의 기준 금리를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고수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33

시사주간지 『타임』은 옐런이 미 연준 의장으로 지명된 후, 2014년 세계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인물(The World’s Most Powerful Person)로 옐런을 지목했지만,34 옐런의 앞날이 탄탄대로인 것은 아니다. 그간 미 연준이 추진했던 저금리 정책에 맞서 금리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들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4년부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새로 합류한 위원들의 상당수가 금리 인상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채워지면서 임기 초반부터 옐런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예컨대 2014년 2월 19일 공개된, 연준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버냉키가 주재한 마지막 회의인 1월 FOMC 회의록에서는 통화량 확대를 주장하는 비둘기파와 통화 긴축을 요구하는 매파 간에 힘겨루기가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비록 매파들의 금리 인상 시도는 아직 경기 회복이 완전치 않다는 비둘기파들의 반대에 부닥쳐 수포로 돌아갔지만 일단 FOMC 테이블에 오른 이상 앞으로 회의 때마다 금리 인상은 단골 메뉴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35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까? 정유진은 “위원들 대다수가 같은 비둘기파로 구성돼 순탄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버냉키 시절과 달리, 옐런에게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진 위원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부담감이 더해졌다”며 버냉키는 옐런에게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속도 조절과 금리 인상이라는 두 가지 숙제를 남겨주고 떠났다고 말한다.36

그래서 옐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위원들과의 원활한 소통 능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본 것처럼, 옐런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거론되고 있다지만 과연 옐런은 입장이 첨예하게 다른 사람들과의 의견을 조율하며 버냉키가 남기고 간 숙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까? 그간의 행적을 바탕으로 옐런을 비둘기파로 분류하는 시각도 많지만 옐런을 비둘기파, 매파 등 어느 한쪽으로 분류하기보다 실용주의자, 혹은 합리적인 중도파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은데, 세간의 시선은 그가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글로벌 경제 상황 속에서 옐런은 성공한 ‘경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참고문헌]
1) 「연준 차기 의장 누가 될까…옐런 ‘유력’」, 『세계일보』, 2013년 6월 20일.
2) 박관규, 「‘양적 완화의 어머니’ 옐런, 테이퍼링 ‘고난도 퍼즐’ 잘 풀어낼까」, 『한국일보』, 2014년 1월 24일.
3) 김태근, 「[美, 달러풀기 축소] 美, 3차례 걸쳐 3조 2000억 달러 풀어…G7 합치면 10조 달러」, 『조선일보』, 2013년 12월 20일.
4) 손제민, 「미국 연준 새 의장에 옐런…세계 경제권력 ‘여성 파워’」, 『경향신문』, 2013년 10월 9일.
5) 김승현, 「[MONEY RADAR] 재닛 옐런 美 Fed 새 의장 내정자: 버냉키가 풀어 놓은 막대한 유동성 어떻게 회수할까」, 『한국경제 매거진』, 2013년 11월 25일.
6) 이미아, 「[美 Fed 의장에 재닛 옐런] 옐런은 누구… “주택시장 침체 온다” 경고 적중」, 『한국경제』, 2013년 10월 9일, A3면.
7) 「미국 사상 첫 Fed ‘여성 의장’ 옐런…“매보다 뛰어난 비둘기”」, 『한국경제』, 2013년 10월 9일.
8) 한경닷컴 산업경제팀, 「“도대체 그 여자가 누구냐”에서 세계 경제대통령으로」, 『한국경제』, 2013년 10월 11일.
9) 김인순, 「타임 선정 ‘올해 가장 힘센 인물’은 재닛 옐런」, 『전자신문』, 2014년 1월 3일.
10) 「미국 사상 첫 Fed ‘여성 의장’ 옐런… “매보다 뛰어난 비둘기”」, 『한국경제』, 2013년 10월 9일.
11) 박현, 「시장만능주의 비판…물가보다 고용 안정 강조」, 『한겨레』, 2013년 10월 9일: 이미아, 앞의 기사.
12) 김희원·윤홍우, 「[미국 새 연준 의장 옐런] 데이터 앞세운 날카로운 분석가…한·미 통화 스와프 지원」, 『서울경제』, 2013년 10월 9일.
13) 박현진, 「물가보다 고용 챙기는 비둘기파…시장과의 소통 탁월」, 『동아일보』, 2013년 10월 10일.
14) 김재현, 「벤 버냉키 후임 물망 오른 옐런은 누구?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연임하지 않을 것 관측」, 『데일리안』, 2013년 4월 26일.
15) 박현, 앞의 기사.
16) 박진형, 「옐런 연준 부의장, 차기 의장 후보 1순위」, 『연합뉴스』, 2013년 6월 20일.
17) 하정민,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 매보다 날카로운 비둘기 ‘경제대통령’으로 날다」, 『신동아』, 2013년 12월 24일.
18) 한경닷컴 산업경제팀, 앞의 기사.
19) 박관규, 앞의 기사.
20) 박희준, 「재닛 옐런 美 연준 부의장이 거명되는 이유?」, 『아시아경제』, 2013년 4월 26일; 이미아, 앞의 기사.
21) 권구찬, 「[더블 클릭] 포스트 버냉키」, 『서울경제』, 2013년 9월 2일; 강남규, 「월스트리트 vs 메인스트리트…미 연준 차기 의장 격돌」, 『중앙일보』, 2013년 7월 29일.
22) 박현진, 앞의 기사.
23) 강규민, 「크루그먼 “오바마, 옐런 뽑을 수밖에 없을 것”」, 『연합인포맥스』, 2013년 9월 16일; 김보미, 「미 경제정책, 시장주의서 ‘정부 개입’으로 선회」, 『경향신문』, 2013년 10월 9일.
24) 박준호, 「美 시사주간지 타임, 연준 의장에 재닛 옐런 부의장 공개지지 부편집장 칼럼 통해 “금융시스템 안정·업무 연속성 등 우위”」, 『서울경제』, 2013년 8월 9일.
25) 「“옐런이 연준 의장 돼야 하는 5가지 이유” 『WP』」, 『세계일보』, 2013년 9월 17일.
26) 정재민, 「재닛 옐런, 양적 완화의 비둘기」, 『시사인』, 제316호(2013년 10월 9일).
27) 김희원·윤홍우, 앞의 기사.
28) 박희준, 앞의 기사.
29) 박희준, 앞의 기사.
30) 김근철, 「[지구촌을 이끄는 W리더십]-① 재닛 옐런」, 『아시아경제』, 2014년 1월 3일.
31) 강남규, 앞의 기사.
32) 김보미, 앞의 기사.
33) 이상렬, 「[뉴스분석] 옐런 ‘초저금리 유지’…한국은 신흥국 중 가장 튼튼 평가」, 『중앙일보』, 2014년 2월 13일.
34) 김인순, 앞의 기사.
35) 이상렬, 「금리 올려야 되지 않겠소? 도전 받는 옐런」, 『중앙일보』, 2014년 2월 21일.
36) 정유진, 「[미 연준 ‘옐런 체제’ 출범] 긴축 주장 강경파 대거 입성…옐런 ‘소통의 리더십’ 본격 시험대」, 『경향신문』, 2014년 1월 29일.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14년 5월 호에 실렸습니다.
기사입력: 2014/05/20 [18:18]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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