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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신뢰 프로세스, 누가 발목잡고 있나?
[장창준의 통일돋보기] 미국 대북정책, 남북관계 개선 반대 결정적 힘
 
장창준   기사입력  2014/03/11 [17:37]
눈물겨운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는 금강산에서 난데없는 고사성어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북측관계자들과 남측 취재원들 사이의 대화에서였다지요. 북측 관계자들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 민족끼리 잘해보려고 할 때 부채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 아니냐”고 꼬집고 또 다른 북측 관계자는 그 말을 받아 “남측 언론을 보면 남북관계가 잘 되도록 하는 부채라기보다는 꼭 ‘하로동선’같다”고 했다고 합니다.

하로동선(夏爐冬扇)은 한자 뜻 그래도 여름에 난로, 겨울에 부채를 의미합니다. 무더운 여름에 난로가 무슨 소용이 있고, 추운 겨울에 부채를 부칠 이유가 없지요. 즉 아무 쓸모없는 경우에 존재라는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방해가 되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로동선이라는 표현 속에 남쪽 언론 행태에 대한 북측 사람들의 불편한 심기가 엿보입니다.

그 기사를 보다가 불현듯 박근혜 신뢰 프로세스의 하로동선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은 신뢰 프로세스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대통령 본인이 남북관계 개선에 결정적 엇박자를 낼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긍정적으로만 전망하기에는 여전히 불안한 측면이 많습니다. 즉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 추진에 하로동선이 여기저기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남측 군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월 16일 군 고위 관계자가 “상호 비방, 중상 중단과 군 차원의 대북 심리전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며 대북 심리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전평시 북측 지역에 라디오와 TV 전파를 동시에 송출할 수 있는 차세대 기동중계 장비 개발에도 착수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대북 전단을 더 멀리 날려 보낼 수 있는 K-9 자주포용 신형 전단탄도 개발할 계획입니다. “수만장의 전단을 채운 전단탄이 적진 상공에서 공중 폭발해 적진의 사기를 약화시키고 북한 주민에게 정확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말입니다.

2004년 6월 3일 남과 북의 군 장성들은 2차 회담을 열어 전선지역에서의 선전중단과 선전수단 제거를 합의했습니다. 그 합의는 원만하게 이행되어 그 해 8월 15일부터 선전이 중단되었고, 확성기 등 선전수단을 완전히 제거하였습니다.

물론 2010년 5.24 조치 이후 이명박 정부는 대북 확성기 선전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이같은 방침에 북측은 ‘조준격파사격’(5월 26일 장성급회담 북쪽 단장 명의 전통문), ‘전면적 군사적 타격 행동’(6월 12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중대포고’) 등을 언급하며 격렬하게 반대합니다. 재미난 것은 주한미군 사령관 월터 샤프 역시 확성기 선전 방송 재개 방침에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샤프가 반대한 것은 ‘선전 방송의 목적과 효과가 의문이며 특히 남북 군사이의 교전 발생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샤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 심리전부대의 ‘자유의 소리’ 방송을 부활시켰고, 군의 전단살포도 재개했습니다. 민간의 전단 살포를 허용한 것은 기본이었지요. 민간 대북전단에는 1달러 지폐, ‘외부 소식과 북한 체제의 허구성을 담은’ CD와 메모리스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혹여 모르겠습니다. 그 CD안에 ‘19금 동영상’이 포함되어 있었는지도. 여하튼 샤프가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 해 11월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했던 것을 우리 모두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군의 대북 심리전에 대한 욕망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의 정치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그들의 ‘확신’은 심리전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집착이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합니다. 군 관계자가 자신의 입으로 말했던 것처럼 전단탄은 북측 영공에서 폭발해서 전단지를 흩뿌립니다. 이는 ‘도발’을 뛰어넘는 ‘침공’, ‘침략’ 행위입니다. 그 실행 가능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그와 같은 발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위험성을 갖고 있습니다.

둘째, 외교부 관료들의 사대근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현재 박근혜 정부 내에서는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설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근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분위기 속에서 통일부는 금강산 관광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대상이 아니라며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를 타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교부는 금강산 관광 재개는 안보리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를 논하는데 안보리가 왜 등장하냐고요?

2013년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자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안(2094호)을 채택합니다. 그 결의안에는 “북한의 핵, 탄도 미사일, 여타 대량 살상 무기 관련 프로그램 활동 또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반하는 제반 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대량 현금의 북한행 이전을 금지한다”고 돼 있습니다. 외교부는 금강산 관광의 재개는 ‘대량 현금의 북한행’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월 25일 정례브리핑에서 조태영 대변인이 “금강산 관광 재개가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라 채택된 유엔 대북 제재 결의(2094호)에 위배되느냐”는 질문에 “최종적으로 유엔안보리의 유권해설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반면 통일부의 해석은 조금 다릅니다. 지난 해 3월 박수진 대변인이 비슷한 질문에 “금강산 관광은 다른 사안이라고 보고 있다”고 하여 금강산 관광 재개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뜻을 밝혔습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금강산 관광 재개는 유엔 안보리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이 문제는 법리해석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자신의 정책을 자주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주권의식’보다는 강대국이 정해놓은 행동의 틀 안에서만 움직이려는 ‘사대근성’이 발동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2월 21일 미의회조사국(CRS)이 발표한 ‘한미관계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개성공단 확대와 국제화를 추진할 경우 미국 의회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런 사대근성에 빠진 한국의 관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CRS는 이 보고서에 “(남북관계 진전과 개성공단 확대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움직임은 대북 금융제재강화법안 등 북한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려는 미국 의회 내의 입법노력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보고서는 “오바마 행정부와 의회로서는 박근혜 정부가 이끄는 남북관계 진전을 어느 정도까지 지지해 줄 것이냐가 문제”라며 “박근혜 정부는 일정시점에서 개성공단을 확대하고 국제화하려는 입장을 내비쳤으나 이는 의회 내의 몇몇 의원들이 반대하고 있다”고까지 지적했습니다.

보고서에서 언급된 ‘의회 내의 몇몇 의원들’ 역시 외교부 관료들과 비슷한 사대주의자들이겠지요. 결국 이런 종류의 보고서는 한국 내의 사대주의자들에게 남북 관계 진전을 반대할 논리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미국 의회와 충돌하는 것은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남북관계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와 같은 논리 말입니다.

셋째, 미국의 대북 정책이 전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2월 26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북한은 가장 악한 곳”이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잔인한 곳 가운데 하나”라고 북한을 비방하고 “우리는 지속적으로 (북한의) 행동을 압박할 것”이라며 북미 대화보다는 대북 압박 정책을 지속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지난 2월 초 북한은 케네스 배 석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로버트 킹 미국 대북인권특사의 방북을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그 직후 미국은 괌에 있는 B-52 전략폭격기 훈련을 한반도에 진입시켜 폭격 훈련을 실시합니다. 북한은 이에 격분하여 로버트 킹 특사 방북을 불허한 바 있습니다.

결국 미국의 대북정책은 군사적 압박, 외교적 압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대근성이 찌든 한국의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미국의 이같은 강경한 대북 정책은 남북 관계 개선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결정적 힘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 글쓴이는 [진보정책연구원]의 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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