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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왜 감옥 밖에 계십니까?”
[주제가 있는 미국사] 정부는 왜 현명한 소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강준만
미국-멕시코 전쟁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명백한 운명’으로 여겨졌지만, 극소수나마 이 전쟁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사람들도 있었다. 대표적 인물이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다.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난 그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했으나 부와 명성을 쫓는 화려한 생활을 따르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 속에서 글을 쓰는 초월주의자였다.

1846년 소로우는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는 의미로 인두세 납부를 거부해 감옥에 갇혔다가 친척 아주머니가 벌금을 대신 내준 덕분에 다음날 풀려났다. 그가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시인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이 찾아왔다. 소로는 에머슨을 스승처럼 모셨고, 실제 에머슨으로부터 많은 정신적 영향을 받았으며, 그를 도와 잡지 편집을 한 적도 있었다. 면회 온 에머슨이 물었다. “너는 왜 감옥에 있느냐?” 그의 답변이 걸작이다. “선생님은 왜 감옥 밖에 계십니까?”1)

1966년 열린 ‘프리덤 랠리(Freedom rally)에 참여한 시카고 시민들. 비폭력을 기조로 시민들의 집단 행동을 표방한 이날의 집회에서는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제임스 메레디스, 플로이드 맥키시크 등이 연설자로 참여했다. (1966. 7. 10)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 수많은 저항 운동가들의 지지를 받다

소로우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이는 <미학>지에 실렸다가 1849년 [콩코드강과 매리매크강에서의 일주일(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나중에 ‘시민의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소로우는 이 글을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나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하루 빨리 조직적으로 실현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이 말은 결국 ‘가장 좋은 정부는 전혀 다스리지 않는 정부’라는 데까지 가게 되는데 나는 이 말 또한 믿는다. 사람들이 준비가 되었을 때 그들이 갖게 될 정부는 바로 그런 종류의 정부일 것이다. 정부는 기껏해야 하나의 편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부가 거의 언제나 불편한 존재이고, 모든 정부가 때로는 불편한 존재이다.”2)

소로우는 무정부주의자인가? 소로우는 그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걸 예상했던지 “나는 무정부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지금 당장 정부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당장, 보다 나은 정부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 사람들은 자신의 존경을 받을 만한 정부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바로 그것이 보다 나은 정부를 얻을 수 있는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권력이 일단 국민의 손에 들어왔을 때 다수의 지배가 허용이 되고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는 실제적인 이유는 그들이 옳을 가능성이 가장 크거나 그것이 소수자들에게 가장 공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가장 힘이 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사건건 다수가 지배하고 있는 정부는 정의(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도 내의 정의일지라도)에 입각한 정부라고 할 수는 없다. 옳고 그름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다수가 아니라 양심인 그런 정부는 있을 수 없는가?”3)

소로우는 ‘다수결 만능주의’에 단호히 반대한다. 다수라고 해서 불의(不義)를 정의(正義)로 바꿀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는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majority of one)’라는 개념까지 제시하면서 정의(正義)가 지배하는 사회를 역설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왼쪽)와 그의 저서 [콩코드강과 매리매크강에서의 일주일]. 이 책에는 훗날 ‘시민의 불복종’으로 널리 알려진 소로우의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 강연이 실려있다.

“나는 서슴없이 말한다. 노예제도 폐지론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몸으로나 재산으로나 매사추세츠 주 정부를 지원하는 일을 지금 당장 중지하여야 한다고. 그리고 정의가 자신들을 통해 승리하도록 노력하지 않고, 한 표 앞선 다수가 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만약 그들이 하느님을 자기편으로 두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며, 다른 사람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욱이, 어떤 사람이든지 그가 자기 이웃들보다 더 의롭다면 그는 이미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4)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는 단 한 사람이라도 도덕적으로 우위이면 그는 이미 다른 사람들을 이길 수 있다는 말로 19세기 미국의 지식인들 사이에 자주 사용되던 어구였다. 그렇지만 정의가 무엇인지 안다 하더라도 연약한 소시민의 입장에선 주변을 살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세(大勢)에 역류해 정의를 주장하는 건 소시민의 본분을 벗어난, 미친 짓으로 간주돼 온 게 동서고금의 법칙이었다. 소로우는 그 법칙을 의심할 것을 제안한다.

“나는 이것만은 알고 있다. 즉, 이 매사추세츠 주 안에서 천 사람이, 아니 백 사람이, 아니 내가 이름을 댈 수 있는 열 사람(열 사람의 정직한 사람)이, 아니 단 한 명의 정직한 사람이라도 노예 소유하기를 그만 두고 실지로 노예제도의 방조자의 입장에서 물러나며 그 때문에 형무소에 갇힌다면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시작이 아무리 작은 듯이 보여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껏해야 거기에 대해 토론만 하고 있을 뿐이다.”5)

소로우는 그렇게 열변을 토하면서도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스스로 절감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는 그걸 모르지 않는다는 듯, 안간 힘을 다해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당신의 온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그때는 이미 소수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소수가 전력을 다해 막을 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 의로운 사람들을 모두 감옥에 잡아 가두든가, 아니면 전쟁과 노예제도를 포기하든가의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주 정부는 어떤 길을 택할지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6)

이 글은 한동안 독자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가 19세기말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에게 발견되어 그의 정치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인도의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간디는 “나는 소로우에게서 한 분의 스승을 발견했으며, ‘시민의 불복종’으로부터 내가 추진하는 운동의 이름을 땄다”고 말했다. 간디 이후에도 이 글이 실린 책은 세계의 수많은 저항 운동가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소로우의 비폭력 불복종 사상은 일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절대반전운동과 무교회주의의 원천이 되었으며, 우치무라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함석헌과 김교신 등에 의해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퀘이커교도이기도 했던 함석헌은 “‘시민의 불복종’을 일반인에게 소개하는 것이 가장 우선 해야 할 일이었다. 소로우는 역시 위대한 인물이다!”고 말했다.7)

노예제폐지에 앞장선 프레드릭 더글러스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는 ‘시민의 불복종’을 실천한 또 하나의 위대한 인물로 소로우와 동갑내기인 프레드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1817~1895)를 빼놓을 수 없다.(더글러스가 노예 출신이라 출생연도가 불분명해 1818년 출생설도 있다.) 그는 멕시코전쟁을 “수치스럽고 잔인하고 사악한 전쟁”이라며 유약하게 대응한 다른 전쟁 반대론자들마저 비판했다. “노예를 소유한 우리 대통령이 멕시코 전쟁을 수행하려는 결의와 그 전쟁에 필요한 인력과 돈을 국민으로부터 성공적으로 짜낼 수 있는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대통령에 대한 반대가 너무 희미했기 때문이다 (…)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평화를 지키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8)

프레드릭 더글러스

이름도 모르는 백인 아버지와 노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더글러스는 메릴랜드에서 탈주한 노예였다. 그는 그가 섬긴 여러 주인 중의 한 사람인 어느 부인에게서 글을 배웠다. 그녀는 노예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불법이고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개의치 않았다. 더글러스는 쓰는 법은 독학으로 익혔다. 그는 훗날 “노예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더글러스는 글을 통해 자유와 인권을 알게 됐고 노예제에 의문을 품었다. 농장의 주일학교에서 다른 노예에게 신약성서 읽는 법을 가르치자 소문을 듣고 매주 40명이 넘는 학생이 비밀리에 찾아왔다. 그러나 6개월 뒤 들통이 나고 말았고 여러 농장주가 합세해 이 모임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문제 노예’로 찍힌 16세의 더글러스는 ‘노예 길들이는 사람’에게 보내져 매일 두들겨 맞다가 1838년 9월 3일 탈출해 기차를 타고 매사추세츠로 도주했다.

탈출에 성공한 더글러스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William Lloyd Garrison, 1805-1879)이 창설한 노예제폐지협회에서 일을 시작했다. 연설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그는 노예제 폐지 연설을 다니다가 1843년 돌과 몽둥이 세례를 받고 부상당하기도 했다. 1845년 노예제폐지협회는 그의 자서전 [프레드릭 더글러스의 인생 이야기(Narrative of the Life of Frederick Douglass)]를 출간했다.9) 책이 출간되고 강연자로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탈주자로 붙잡힐 위험성이 커지자 그는 영국으로 도피했다가 1847년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뉴욕 로체스터에서 <노스 스타(North Star)>의 창간을 시작으로 노예제 폐지운동의 최선봉에서 활약했다.

더글러스와 개리슨은 노예제 폐지운동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에 사이가 틀어졌다. 개리슨은 미국 헌법을 친노예제 문서로 보았고, 이에 따라 투표 거부와 연방 해체를 주장했다. 반면 더글라스는 헌법에 반노예제 요소가 있다고 보았다. 이런 차이와 갈등으로 인해 개리슨은 더글러스를 배신자로 비난했다.10)

더글러스는 어느 연설에서 “자유가 좋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위한 운동을 비난하는 자는 밭도 갈지 않고 수확만을 바라는 자, 천둥 번개 없이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자, 폭풍우 없이 잠잠한 바다를 바라는 자와 같다”고 했다. “백인이 흑인의 비참함에 기대어 행복할 수는 없다”며 백인의 각성도 촉구했던 그는 1852년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뉴욕 로체스터의 백인 청중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의 7월 4일이 미국의 노예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일년중의 다른 어떤 날보다도 7월 4일은 엄청난 불공평과 잔인성을 일깨우는 날이라고. 여러분의 기념일이 저들에게는 하나의 속임수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자랑하는 자유는 부정한 면허장이며, 국가의 위대함은 과장된 자만심, 자유와 평등의 외침은 공허한 비웃음입니다. 지금 이 시간, 지구상에서 미국인보다 더 폭력적이고 피에 물든 관습을 지닌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11)

더글러스는 남북전쟁 중에는 링컨 대통령의 조언자가 되어 북부군을 위해 흑인 신병을 모집하는 일을 맡아 보았다. 이때 흑인도 백인 병사와 동등한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로비를 벌여 정부의 승인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는 남북전쟁 뒤에는 여러 차례 정부 관리를 지냈고 나중에는 아이티 대사를 지냈다. 훗날 더글러스는 흑인들의 영웅으로 존경을 누렸다. Douglas라는 성을 가진 흑인 젊은이들은 그런 존경의 표현으로 s를 하나 더 붙여 Douglass로 표기하는 게 유행이 되었다. 오늘날 그의 워싱턴 생가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 흑인 인권 운동의 리더들로 꼽히는 말콤 X, 엘라 베이커, 마틴 루터킹, 프레데릭 더글라스(왼쪽부터)의 초상이 필라델피아의 한 벽화에 그려져있다.     © 인터넷이미지

정부는 왜 현명한 소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2008년 7월 4일 [워싱턴포스트]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와 150여년전 더글러스의 독립기념일 연설을 비교 분석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더글러스는 미국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흑인노예를 언급하며 미국이 민주주의 실험에서 소외됐다는 점을 부각시킨 반면 오바마 후보는 미국이 조국이며 독립기념일을 함께 기뻐할 시간으로 규정했다.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오바마는 그런 차이를 드라마틱하게 느끼게 만드는 상징이되었다. 대통령으로서 어떤 업적을 남기건, 오바마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미국과 인류의 진보에 기여한 인물은 아닐까? 그러나 ‘시민의 불복종’에 관한 한 전혀 다른 평가도 가능할 것 같다. 소로우와 더글러스의 계보를 잇는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J. Snowden, 1983-)을 보는 시각 때문이다. 스노든은 2013년 6월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안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지구상 모든 사람들의, 모든 형태의 의사소통을 감시하는 개인정보 수집 비밀 프로그램의 존재를 폭로해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오바마는 6년 전인 2007년 연방상원의원 시절 조지 W. 부시 정부를 상대로 “반인권적인 행위를 한다고 미국의 안보가 강화되는 건 아니다”며 개인 통화기록 수집행위를 비판했었지만, 이젠 “테러 위협 속에서 미국과 미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다”로 바뀌었다. 이렇게 달라진 그에게 언론들은 전임자인 부시 대통령과 다른 게 뭐냐며 ‘조지 W. 오바마’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붙여줬지만, 오바마의 변명에 대한 <타임>지 여론조사 결과(6월 11일 조사)는 48% 대 44%로 찬성이 조금 더 많았다.12)

미 의회의 대표적 강경보수파인 공화당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은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스노든을 붙잡아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정보위원장인 민주당 상원의원 다이앤 파인스타인도 “이쯤 되면 반역이다. 반역죄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반면 뉴스쿨대학 언론학 교수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테러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는 미명 아래, 우리의 인간성마저 저당 잡히고 있음을 만천하에 폭로한 스노든은 우리 시대의 영웅이다.”고 했다.13)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 논란의 재판인가? 미국사는 오늘의 반역자가 내일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걸 무수히 많은 사례로 입증해 왔건만, ‘시민의 불복종’에 대한 당대의 시각은 차갑기만 하다. 스노든은 지금 소로우와 더글러스가 걸었던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의 길을 걷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미국인들, 아니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소로우의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해보는 건 어떨까?

“왜 정부는 현명한 소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왜 정부는 상처도 입기 전에 야단법석을 떨며 막으려 드는가?...왜 정부는 항상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며, 코페르니쿠스와 루터를 파문하고, 조지 워싱턴과 프랭클린을 ‘반역자’라 부르는가?”14)

[주석]

1. 김삼웅, <소로: 숲속 오두막에서>, [넓은 하늘 아래 나는 걸었네: 광기와 방랑의 자유인 33인의 이야기](동방미디어, 2000), 149쪽.
2.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강승영 옮김, [시민의 불복종](이레, 1849/1999), 9쪽.
3.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강승영 옮김, [시민의 불복종](이레, 1849/1999), 12쪽.
4.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강승영 옮김, [시민의 불복종](이레, 1849/1999), 29-30쪽.
5. 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강승영 옮김, [시민의 불복종](이레, 1849/1999), 31쪽.
6.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강승영 옮김, [시민의 불복종](이레, 1849/1999), 33쪽.
7. 김삼웅, ‘불복종운동과 헨리 소로’, <대한매일>, 2000년 2월 29일, 7면.
8. 케네스 데이비스(Kenneth C. Davis), 이순호 옮김,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책과함께, 2003/2004), 233쪽.
9. 프레더릭 더글러스, 안유회 옮김, [노예의 노래: 흑인 노예해방운동가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증언](모티브, 1845/2003).
10. Jean Folkerts & Dwight L. Teeter, Jr., [Voices of a Nation: A History of Mass Media in the United States], 3rd ed.(Boston, Mass.: Allyn and Bacon, 1998).
11. 존 터먼(John Tirman), 이종인 옮김,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재인, 2006/2008), 17쪽.
12. 박승희, ‘’글로벌 아이’ 조지 W 오바마’, <중앙일보>, 2013년 6월 18일.
13. 정인환, ‘양심도 민영화했니?’, <한겨레 21>, 제966호(2013년 6월 24일).
14.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강승영 옮김, [시민의 불복종](이레, 1849/1999), 27쪽.

* 본문 출처 :강준만 교수의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주제가 있는 미국사]


글쓴이 강준만은 언론과 대중문화를 포함하여 문화사 전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조지아대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위스컨신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고 1989년부터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현대사 산책(전 23권)](2002~2011), [한국대중매체사](2007), [미국사 산책(전17권)](2010), [세계문화의 겉과 속](2012) 등이 있다.
 
기사입력: 2014/03/01 [00:48]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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