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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아프리카박물관 가보니 '설국열차 꼬리칸'
곰팡이에 쥐구멍 가득한 기숙사…"유럽에선 상상도 못하던 일"
 
김민재   기사입력  2014/02/11 [00:03]

기숙사 방 안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사진=민주노총 제공)

군데군데 비닐하우스가 놓여있는 경기도 포천시의 광릉수목원로.

'아프리카인을 착취하는'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은 그 야트막한 산 중턱에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3선 국회의원이자 새누리당 사무총장인 홍문종 의원이 이사장으로 운영하는 박물관치고는 무척 초라한 차림새였다.

휑하니 넓은 박물관 부지 한구석에 있는 좁은 천막은 입구 머리 맡에 '춤추는 움집 임바 임바'라고 쓰여있지 않았다면 미처 공연장일 거라 생각조차 하기 힘들만큼 허름했다.

천막 입구에서 서성이던 부르키나파소 공연가들에게 주차장에서 산 입장권을 건네고 들어선 공연장은 무척 어두워서 무대가 잘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포장도 없어 보도블럭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50여 개의 플라스틱 의자들 사이로 공연을 앞둔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무용수와 음악가들이 2개의 기름 난로 주변에 모여들어 언 손을 녹이며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뒤 경쾌한 타악기 소리와 함께 아프리카 전통 춤이 시작됐지만 음량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은 앰프에는 잡음이 가득했다.

격렬한 춤 동작을 버텨줄 넓은 무대도, 난로에서 새어나오는 석유 냄새를 내보낼 환기구도 없는 천막이었다.

◈이곳은 '설국열차 꼬리칸'… 난방도 안되고 벽마다 곰팡이 가득



이윽고 공연을 마친 부르키나파소 공연가들, 박물관 곳곳에서 일하던 짐바브웨 조각가들과 함께 이들이 머무는 기숙사를 직접 찾아갔다.

근로계약서에는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과 침대, TV 냉장고를 구비한 숙소를 준비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초라한 공연장 이상으로 기숙사는 피난민들이 몸을 숨긴 폐가를 연상케했다.

화장실 근처 방바닥에는 땅에서 새어나온 물이 눈에 띄게 고여 있었고, 곰팡이가 가득한 벽지 곳곳에는 쥐구멍들이 뚫려있었다.

고장난 보일러는 꺼진 지 오래여서 거실에 발을 딛자 뼛속까지 시린 기운이 올라왔다. 3개 동의 기숙사마다 하나씩만 제공된 작은 전기히터로는 추위를 참기 힘들어, 노동자들은 근처 주민들이 버린 난방기구를 가져와 고쳐 사용하는 형편이었다.

침실문을 열자 영화 '설국열차'에 나오는 꼬리칸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두 명도 간신히 몸을 뉘일까 말까 한 작은 방에 4명씩 자는 건 기본이었다. 방을 가득 채운 2층 침대 곳곳에는 누추한 짐가지들이 주인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자리가 부족해 남자들은 거실과 복도에 침대를 두는가 하면, 아예 건물밖 현관 옆에 돗자리로 간신히 외풍을 막아 방을 만들기도 했다.



부르키나파소 무용가 엠마뉴엘(Sanou Emmanuelle Migaelle) 씨는 "예전에는 공연장과 기숙사 모두 박물관 부지 안에 있었는데 지금은 철거됐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기숙사만이 아니었다. 이들의 하루 식비는 겨우 4000원. 그나마도 2500~3000원 수준이었지만, 홍문종 이사장에게 직접 찾아가 항의한 끝에 올렸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하지만 실수령액 50여만 원인 월급에 하루 식비 4000원으로 살 수 있는 음식이라곤 뻔한 수준일 수밖에 없다. 유통기한을 지난 쌀포대와 3분 인스턴트 요리, 라면봉지만 뒹굴 뿐 야채나 과일, 변변찮은 음식은 찾기 어려웠다.

엠마뉴엘 씨는 "생활하기 어렵다고 말하자 '아프리카 사람이니까 1달러면 하루종일 살 수 있지 않냐'고 했다"며 "아프리카에선 물가가 낮으니까 가능할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이들은 "외국에서는 같은 일을 해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노동 조건에서 일했다"며 "박물관장이 '예술가는 원래 어려운 직업'이라고 말하는데, 정작 그들은 우리가 일한 덕분에 돈을 벌고 있지 않느냐"고 입을 모았다.

◈"우리는 어엿한 예술가… 아프리카에서도 이런 대우는 안해"

이날 무대에서 춤을 추던 엠마뉴엘 씨는 "유럽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충분히 혼자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돈을 줬고, 숙소도 이곳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부르키나파소 제2의 도시인 보보디올라소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춤을 추고 좋아했다. 먼저 공연회사에 들어간 친구들이 유럽 등을 오가며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꿈은 더 간절해갔다.

17살 무렵 처음 공연회사에 들어가 정식으로 춤을 배웠고, 20살이 넘자 정식으로 공연에 나설 수 있었다. 16년 동안 춤을 배우면서 줄라동, 보고동, 만자니, 줄사, 데피동 등 15가지가 넘는 전통민속춤도 익혔다.

그러다보니 꿈은 어느새 현실로 찾아왔다. 처음에는 부르키나파소 근처에 있는 아프리카 국가를 돌며 공연을 벌이던 엠마뉴엘은 프랑스와 포르투갈, 이탈리아, 모나코 등을 넘나들며 단기계약을 맺고 공연을 벌였다.

열심히 일하니 대우도 점점 좋아졌다. 프랑스에서는 한 번 공연하면서 60달러씩 받은 적도 있었고, 말리에서는 오페라단에 소속돼 새로운 춤을 배울 수 있었다.

2012년 한국에 올 때도 비슷한 수준의 노동조건을 기대했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개인 방도 없이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기숙사도 황당했지만, 첫 공연이 끝나자 박물관 관계자는 관중으로 온 아이들에게 공연을 가르치라고 지시했다.

10분이면 끝나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공연장 대기실 밖에 나가보니 수백여 명의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의하는 그에게 박물관 관계자는 "계약서에 모든 걸 적을 수는 없다"며 "휴식시간에도 아동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라"고 다그쳤다.

그렇게 10개월을 보내고 다시 귀국행 비행기 표 값을 갚느라 2년을 보내는 동안, 간간히 앞장 서서 항의하던 사람들은 아무런 소문 없이 박물관에서 사라졌다.

◈"홍 이사장은 강력한 정치인…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박물관 관계자들은 "가난한 아프리카 대신 한국에서 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면서 그냥 버티라"고 했지만, 이제 이들은 그저 한국을 떠나고 싶을 뿐이다.

심지어 노동조건에 대해 항의할 때마다 폭언을 들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아프리카인은 원래 가난하다(poor)"거나 "아프리카인은 동물(animal) 같다"는 말도 들었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짐바브웨에서 온 조각가 파이나(Chikumbirike Phainah) 씨는 "우리가 박물관의 조건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자 박물관 관계자는 '우리가 잘못을 저질러도 문제없다'고 했다"며 "그는 '홍문종 이사장이 아주 강력한 정치인이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든 뭘하든 너희들은 별 수 없을 것'이라고 비웃었다"고 회상했다.

이에 대해 박상순 박물관장은 "홍 이사장이 박물관을 인수하기 전에 지어진 건물 15개가 불법건축물로 판정돼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며 "인근 주민들의 빈 방이나 헛간 등을 구해 임시 기숙사로 사용하다 보니 시설이 열악한 건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그나마도 주민들에게 지역 문화시설이라고 설명해 간신히 구한 것"이라며 "조만간 방 3개짜리 기숙사를 준비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나라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운영하는 아프리카 전문 박물관. 하지만 직접 찾아보니 외려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을 불법 착취하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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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2/11 [00: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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