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박근혜정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인물과사상의 눈] 종북몰이에 기댄 정치는 이제 멈춰야 한다
 
홍유진   기사입력  2014/01/02 [15:38]
2013년은 10년 넘게 성공적으로 운영되어왔던 개성공단이 5개월이나 폐쇄되었다가 재가동되는 등 매우 다사다난한 해였다. 남한의 정권이 바뀌고,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자리를 잡는 와중에 생겨난 남북 관계의 균열이 그대로 영향을 미친 탓일까. 남한 언론이 북한 체제를 비난했다는 이유를 빌미로 하루아침에 노동자를 철수시키고 통신을 폐쇄한 북측의 강경 대응은 남북 관계의 진전에 걸림돌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대로 폐쇄 수순을 밟게 될 줄 알았던 일각의 예상과는 다르게 개성공단은 되살아났다. 아직까지 완벽하게 가동되지는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그 생명력과 가치에 대해서만은 세상에 각인시킨 셈이다.

▲ 정동영 상임고문     ©대자보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은 2004~2005년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내며 개성공단을 일군 주역으로 누구보다 개성공단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최근 인터뷰집 『10년 후 통일』을 출간한 그는 개성공단이야말로 한국형 통일 모델로 손색이 없다고 단언한다. 개성공단이 이뤄낸 경제적·정치적·안보적 가치들을 재평가하고, 이를 남북화해협력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인 출신인 정동영 상임고문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전주시 덕진구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열린우리당 의장을 역임했고,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후보에게 큰 표 차이로 낙선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뒤 그는 용산참사 현장, 한진중공업과 쌍용차 파업 현장, 제주도 강정해군기지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며 국민과 함께 호흡해왔다. 2012년에는 사단법인 ‘대륙으로 가는 길’을 발족하고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과 통일을 통한 대륙 진출을 위한 연구·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NLL 논쟁, 국정원 댓글 사건 등으로 정국이 총체적 혼란에 빠져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공약들인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국민 통합 등은 그의 마음에서 사라진 듯하다. 낮은 길을 걸으며 진정성을 보여온 그에게 한국 정치의 화두를 물었다.

개성공단에 애정이 없는 박근혜정부

홍유진 :최근 『10년 후 통일』을 출간하셨는데,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정동영 :지난봄, 개성공단이 닫히던 때 어느 모임에 가서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강연을 들은 출판사 대표가 “책으로 만듭시다” 제안을 하더라고요. 개성공단이 닫히지 않도록 어떤 노력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내게 됐죠. 사실,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잘 몰라요. 그래서 강연할 때마다 늘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북한 하면 뭐가 연상됩니까?’ 하고 말이죠. 그러면 예외 없이 독재국가, 가난, 세습, 핵문제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올립니다. 부정적인 이미지로 덮인 북한과의 화해 협력, 통일 문제 등을 얘기하고 있으니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가는 거예요. 한마디로 즐거운 주제가 못되는 것이죠. 나에게는 가슴이 뛰는 소재인데, 사람들한테는 아닌 것이었죠.

홍유진 :그동안 개성공단에 열정을 쏟으셨는데, 개성공단의 상징적 의미를 말씀해주신다면요.

정동영 :‘전쟁이 나네 마네, 개성공단 닫히네 마네’ 소란이 있는 와중에 그나마 ‘개성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가 있었구나’ 하고 처음 알게 됐다는 사람이 많아요. 그동안 사람들이 잘 몰랐던 겁니다. 지난번 폐쇄와 재가동을 겪으면서 역설적으로 알게 된 거죠. 두 가지 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 있어요. 한반도 긴장 국면에서 존재감이 드러나게 된 것과 결과적으로 그런 상황 속에서도 불사조 같이 살아나네, 하는 희망이 생긴 거죠. 이건 기존의 남북 관계에서는 없던 일이에요. 금강산 관광사업은 여전히 꼼짝 않고 있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 엄중한 상황에서 닫혔는데 다시 문을 연 것만으로도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다’는 증거가 되는 거죠.

홍유진 :아직도 개성공단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요.

정동영 :그렇습니다. 절반 정도 살아난 것 같아요. 그래도 사람은 80퍼센트, 약 4만여 명이 출근하고 있는데 이는 북쪽 사정 때문이 아니에요. 다섯 달 동안 닫혀 있다 보니 판로가 다 끊긴 겁니다. 대부분 제조업이고 주문을 받아 생산하는 공장인데, 공장이 닫힌 동안 거래처가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밖에요. 게다가 다들 어렵게 운영되는 중소기업들이잖아요. 다섯 달이면 자금이 바닥나니까 정부에서 경협 보험금을 지급했어요. 원래 경협 보험금은 이번처럼 경제 외적인 이유로 한 달 이상 공장 문을 닫게 되면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한 회사당 수십억 원씩 받았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공단이 재가동되면서 그 돈을 다 반납하라고 한 거예요. 2013년까지는 연체이자가 6퍼센트, 2014년부터는 10퍼센트 물리겠다고 하는데 기업들에 당장 갚을 돈이 어디 있겠어요. 공장 문이 닫힌 동안 다 쓰고 사라졌죠. 공장 문 닫은 것이 이 기업들 책임이 아니잖아요. 책임 분담 차원에서 유예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걸 보면서 이 정부는 개성공단에 애정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홍유진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인들에게도 일말의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요.

정동영 :유동옥 개성공단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개성에 간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 얘기한 적이 있어요. 첫 번째, 돈 벌러갔다. 그렇죠.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거죠. 두 번째, 화해협력 시대에 일조하고 싶다는 소명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아들딸들한테 대립하는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홍유진 :개성공단의 성과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정동영 :가시적인 성과로는 경제적인 부분을 들 수 있습니다. 123개 기업이 다 팔팔하게 살아났어요. 한계 상황에 처한 우리나라의 수많은 중소기업에 희망의 증거를 제시한 거죠. 흑자가 안 날 수가 없는 환경이에요. 왜냐하면 인건비와 토지비가 거의 제로에 가깝거든요. 그런 조건에서 판로만 있으면 매출대비 이익률이 높은 거지요.

안보 측면에서 역시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공장이 터를 잡은 곳이 북한 영토잖아요. 보통 영토도 아니고 DMZ와 맞닿아 있는, 그리고 휴전협정 마지막까지 가장 치열한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에요. 그런 곳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만나 공장을 만들고 뭔가를 생산하고 있어요. 이건 세계 초유의 일이에요. 남북 긴장과 대결 국면이 올 때마다 안전판 역할, 평화의 숨구멍 역할을 한 거예요.

북한을 선거에 이용하면 안 된다

홍유진 :박근혜정부의 대북 정책과 철학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동영 :2014년 지방선거 전까지는 어떤 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남북화해 협력으로 가려면 공안 통치를 포기해야 합니다. 북한하고 화해협력을 하려고 한다면 ‘너 종북이지? 친북이지?’라는 논법은 더는 통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죠. 종북몰이의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국내 정치의 분단 상황과 남북 긴장을 활용해서 종북몰이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것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의 남북 화해협력을 이루기 힘들죠. 이게 바로 현재 우리나라 남북 관계 국면의 핵심입니다.

홍유진 :같은 시기에 분단됐던 독일은 24년 전에 통일이 됐는데 한국은 7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긴장과 안보 불안에 시달리는 이유에 대해 설명이 되네요.

정동영 :이유는 하나예요. 북한을 선거의 종속변수로 써먹어온 겁니다. 지난 수십 년간 ‘좌파 후보’라는 딱지를 붙여 종북몰이를 버전을 바꾸어가며 되풀이해왔고, 지난 대선에서는 ‘NLL 팔아먹었다’며 야당 후보를 공격했습니다. 이를 벗어나지 않는 한 분단 극복은 요원한 일입니다. 통일보다 정치가 우선하는 거예요. 분단 상황을 이용해서 정권을 창출해왔잖아요. 끊임없이 반복되어왔죠. 예외적인 기간이 바로 민주정부 10년입니다. 그 시대를 청산하고 화해협력으로 가자고 외쳤죠. 그 결실이 바로 개성공단과 9·19공동성명 아닙니까.

홍유진 :그 시기에 통일부 장관으로 활약하셨죠. 의미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정동영 :저에게는 행운이었을지도 모르죠. 제가 통일부 장관으로 있을 때 개성공단과 9·19공동성명을 일궈냈으니까요. 2004~2005년의 일이지만, 그때의 일로 끝난 게 아니라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잖아요. 개성공단의 의미도 남북 간의 경제사업, 군사안보적인 측면에서 가치를 뛰어넘는 한국형 통일 모델이라는 데 핵심이 있어요.

홍유진 :한국형 통일 모델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정동영 :지구상에 분단되었다가 통일된 모델이 두 가지 있습니다. 독일과 베트남이죠. 흡수통일로 막대한 대가를 치렀던 독일과 무지막지한 전쟁으로 희생해야 했던 베트남입니다. 둘 다 우리나라에는 적용이 불가능합니다. 전쟁은 생각할 가치도 없고요. 독일의 흡수통일도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 안에서는 가능성이 박약해요.

예를 들면, 중국이 북한을 뭐라고 간주합니까. 북한 정권의 안정성을 ‘핵심 이익’이라고 간주하고, 전략적 자산이라고 평가합니다. 미중정상회담에서 나온 이야기거든요. “미국은 중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엄연한 국제정치의 현실이죠.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중국의 확고한 입지를 무시하고 어떻게 붕괴·흡수통일을 추구한단 말입니까. 굳이 대외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북한이 동독처럼 백기를 들고 흡수통일을 바랄 가능성이 없어요.

즉, 한국이 지향해야 할 모델이 아직까지는 나타나지 않은 거예요. 그나마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 가장 큰 성과를 보인 것이 개성공단 모델입니다. 서로 총질하는 게 아니라 같이 모여서 물건을 만드니까 관계가 더 좋아지더라. 이를 더 확장해나가자는 거예요. 그 과정에 경제적 통일이 올 거고 이를 지속해가다 보면 사회적·문화적 토대가 구축될 거라는 거죠. 평화적·점진적·단계적인 통일 원칙을 지켜나가자는 겁니다.

이명박정부의 대북 정책은 적대심만 키웠다

홍유진 :우리 국민들로는 현 남북문제의 많은 원인이 북한의 도발, 핵문제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거든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동영 :글쎄요.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언론의 책임이 큽니다. 정부의 책임이기도 하고. ‘북의 책임이다’라고 보는 사건 중의 대표적인 것이 천안함 사건입니다. 확실한 증거가 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결론이 난 것은 ‘북한 아니면 이런 짓을 할 놈이 없잖아’라는 이상한 논리 때문이거든요. 만약 그 논리의 허점을 지적하면 바로 ‘너 종북이지?’ 하고 마구잡이로 몰고가버립니다.

개성공단 폐쇄도 분명 북한이 원인을 제공한 게 맞아요. 노동자를 모두 철수시켰으니까. 그러나 인과관계를 따져보자고요. 왜 철수시켰을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간단하지 않습니까. 만약 우리 땅 2,000만 평을 북한에 내줬는데, 전쟁이 나네 마네 소리가 나오면 불안하지 않겠어요? 북한도 마찬가지죠. 군사적 취약 요소라는 판단이 들면 그 안에 있는 인민 5만 명의 안전이 절박해질 수밖에 없죠. 그런 인과관계를 이해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우리는 전혀 따져보지도 않고 ‘거 봐. 북한은 원래 저런 놈들이야’ 하고 외면해버린 것입니다.

홍유진 :현재 북한은 남북 관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동영 :화해협력에 목말라 있다고 생각해요. 안보 문제는 한시름 놨다고 평가하고 있는 거거든요. 어쨌든 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체제 결속이 이뤄졌고, 지금은 권력층부터 인민들까지 자긍심으로 고무된 상태예요. 그래서 두 가지 국가 목표를 내세웠죠. 소위 이야기하는 병진 전략, 즉 핵무력 증강과 경공업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죠. 김정은 위원장이 약속한대로 ‘더는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는 거예요. 최근에도 중국에 가서 경제특구를 설명하면서 선전을 했거든요. 그런데 북한의 경제 발전은 우리 남쪽의 협력 없이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어요. 그걸 북한도 알기 때문에 남한과의 화해협력을 바라는 겁니다. 그러니 박근혜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입지가 좋은 거죠. 화해협력으로 기조를 전환하면 얼마든지 핵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남북한 관계 개선을 추구할 수도 있으니까요.

홍유진 :우리 정부가 핵문제에서는 시종 강경책으로 대응해온 게 사실인데요. 이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시는 건가요?

정동영 :이명박정부는 선(先)비핵화를 내걸었잖아요. 핵이 있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그 결과가 뭡니까. 이명박정부 5년은 ‘북한 핵문제의 고도화 기간’이 됐습니다. 억압하고 대결하고 적대하는 동안 두 차례 핵실험이 있었고 세 차례 로켓 발사가 있었죠. 이명박정부 선비핵화 정책의 결과물이죠.

휴지 조각이 된 남북기본합의서

홍유진 :『10년 후 통일』에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었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말이 나오는데, 북한은 진정 비핵화를 원할까요?

정동영 :핵무기를 솥에 넣고 삶아도 밥은 안 돼요. 지금 북한에 필요한 건 밥인데 왜 핵에 매달리고 있는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북한이 핵이 없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죠. 그러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국제사회의 몫이에요.

그렇다면 북한은 왜 핵 개발을 시작했을까요. 그 원인은 199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세계사에 지각 변동이 있었죠.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유럽에서는 독일이 통일하고, 남북한은 탈냉전 과정에 대응해서 1991년 12월에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어요. 그 내용이 뭡니까. 남북 불가침과 화해협력입니다. 세계적인 탈냉전의 지각 변동에서 남북한이 서로 손을 잡은 거죠.

남북기본합의서를 작성한 지 한 달 후인 1992년 1월에 북한은 대남 담당 비서 김용순을 미국에 보냅니다. 거기서 미국과 북한 간의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조건으로 주한미군의 존재를 용인하기로 하죠. 나름의 생존전략으로 남과 악수하고 미국에도 먼저 악수를 청한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거기에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1992년 남한에서는 대선이 있었습니다. 대선의 승리를 위해 남북 긴장과 안보 불안이 필요했어요. 그렇게 남북기본합의서는 찢겨나가죠. 2012년 12월 대선에서 있었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북한은 우방이자 동맹이었던 중국과 소련에 배신당해 사면초가였습니다. 소련이 한국과 수교를 맺은 지 몇 달 후 북한과 맺은 방위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중국도 1992년 한국과 수교를 맺기로 했다고 북한에 일방적으로 통보하게 됩니다. 당시 북한이 어떤 충격을 받았겠어요. 사실, 김일성 주석은 그 이전에 덩샤오핑을 찾아가 ‘3년만 수교를 미뤄달라’고 부탁을 했거든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거였죠. 그런데도 중국은 한국과의 수교를 강행했습니다. 그 통보를 받고 김일성 주석이 내뱉은 말이 이후 북한의 노선을 결정짓는 기점이 되죠. “중국은 중국의 길을 갈 것이요,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것이다.”

홍유진 :남북기본합의서가 그렇게 백지화된 것이 남북 관계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됐네요.

정동영 :그렇죠. 남북기본합의서는 90퍼센트 이상 남한의 의도로 관철된 합의서였어요. 그전까지는 남북협상에서 5대 5 아니면 4.9대 5.1이라도 북한에 유리하도록 우리가 양보해온 게 사실이거든요.

남북의 악수가 핵으로 변하기 시작한 분기점이 1992년 9월 18일 평양에서 있었던 총리회담이었죠. 정원식 국무총리가 제8차 남북 총리급회담을 위해 평양에 갔어요. 당시 무려 130차례 남북한 회담이 열렸습니다. 불가침에 대한 구속 합의서·화해협력·사회문화협력·군사협력 등 봇물이 터졌지요. 그런데 남한에서 암호로 된 대통령 훈령이 옵니다. 압축해서 말하자면 ‘회담을 깨고 내려와라’는 거였어요. 당황스러운 내용이죠. 당시 대통령이 노태우였는데 서울 떠나올 때만 해도 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치라고 신신당부를 했단 말이죠. 대통령의 지시니까 시킨 대로 하고 내려와보니 그 훈령이 가짜였던 거예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펄쩍 뛰었다고 해요. 알고 보니 안기부장이 석 달 뒤가 대선이니까 남북 긴장을 조성하는 것이 여당 후보의 당선에 필수적이라고 판단해 자의대로 그렇게 한 거였죠. 이게 우리 민족의 비극이에요. 그렇게 대통령 명령을 어겼음에도 임기 말 레임덕 때문에 인사 이동 하나 못시켰어요.

종북몰이에 기댄 정치는 이제 멈춰야 한다

홍유진 :이번 국정원 댓글 사태와 판박이처럼 보이네요. 당시 안기부가 남북 관계를 이용한 것처럼 이번에도 같은 맥락이잖아요. 인터넷 댓글 조작 등 우리 일상 가까이에 국가기관 차원의 조작과 선동이 있었다는 데 많은 국민이 경악했습니다.

정동영 :당시에는 선거운동 하느라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몰랐어요. 사실, 그 뿌리는 2008년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촛불에 데인 이명박 대통령이 그에 대한 대응으로 이런 정보정치와 공작정치를 개시했다고 보는 것이죠. 민간인 사찰·온라인 여론조작·사이버 공작이 시작된 거예요. 뿌리가 깊죠. 만약 이번에 정권이 바뀌었다면 소상하게 드러났겠죠.

자세히 들여다봐도 한심하지만 이런 일들이 모여서 우리 운명을 분단의 속으로 밀어 넣고 있어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권과 보수 언론과 일부 재벌의 합작인 셈이에요. 정치인의 한 사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홍유진 :우리나라의 정치·안보 불안은 고질적인 문제 같아요.

정동영 :2013년 봄 한반도에 레이더에 안 걸리는 핵폭격기 B2가 왔잖아요. 또 스텔스 전투기, 핵잠수함도 접근했고요. 전 세계 언론이 시간대별로 중계하고 전쟁이 나네 마네 시끄러웠잖아요. 그때 미국 록히드마틴과 보잉의 주식 시가 총액이 20퍼센트 이상 폭등했어요. 미국으로서는 나쁠 일이 없죠. 이게 냉정한 계산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에게는 무엇이 최우선이어야 합니까? 바로 국익이죠. 우리의 진정한 국익이 뭡니까. 남북 긴장을 완화하고 안보 불안을 없애는 것 아닙니까. 왜 그 방향으로 안 가느냐 말이에요. 답은 하나죠. 앞서 얘기했듯,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종북몰이와 공안통치가 필요하니까요.

홍유진 :김기춘 비서실장 등 현 정부의 요직에는 박정희정부 시절의 실세들이 많습니다. 국정 운영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십니까?

정동영 :그분들이 활동했던 시대는 냉전시대입니다. 적 아니면 동지의 시대죠. 국내 정치를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남북 관계도 서로가 적대하던 시대로 돌아가면 안 되죠.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인 인사예요. 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고 싶어요.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는가. 경제 문제·국내 정치·국민의 삶이나 민족 문제에 대해 후보 때 이야기한 건 있어요. 남북 관계·복지 확대·국민 통합·남북 화해 협력 기조 등 이명박정부와 다르게 하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벌써 임기 1년이 되어가는 지금 상황을 보면 약속 위반 아닙니까. ‘내가 대통령되면 인사 탕평책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명백한 거짓말이잖아요. 그렇게 거짓말해도 괜찮은 세상이 되고 있어요. 박근혜정부는 지금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정치에서 ‘신뢰’란 제4의 자본이라 할 만큼 중요한 자산이거든요.

한국 정치의 핵심 화두는 정직성의 회복입니다. 무너질 만큼 무너졌어요. 이명박정부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물신주의가 지배했다면, 이번 정부에는 거짓말에 대한 죄의식이 엷어진 게 큰 문제라고 봐요. 전에는 정치인들의 말에 신뢰가 떨어졌는데, 지금은 대통령에 대한 신뢰마저 없어졌어요.

박근혜 대통령도 처음에는 나름 청사진이 있었을 거예요. 그렇다면 대통령이 된 첫해는 그 청사진을 펼쳐나가야죠. 전부 다 거짓말이면 문제가 큰 것 아닙니까.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민주당, 비판자의 역할을 넘어 대안정부로

홍유진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곳곳에서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정동영 :2012년 대선 전인 9월 박근혜 대통령은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유감을 표했거든요. 그 말이 진심이었을까요. 지금 자신이 국가 발전을 막고 있는 거예요. 박근혜정부 자체가 국가 발전의 장애물이 되고 있어요. 그래서 왜 집권했느냐를 묻는 거죠. 국민들 앞에 대답해야죠.

홍유진 :아직 대통령의 임기가 많이 남아 있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거라고 전망하십니까?

정동영 :저는 진심으로 박근혜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특히 남북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면, 이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정세가 얽혀 있거든요. 우리가 뒤로 밀리면 다른 나라가 앞서 가잖아요. 정치 지도자가 ‘분단감수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분단감수성이란 분단을 고통으로 느끼는 감수성을 말하는 겁니다. 최고 지도자의 철학과 비전이 없으면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니까요.

홍유진 :정권 교체를 기대하기에는 현재 민주당이 제1야당으로서 구심점도 없고, 무능하다는 여론이 강합니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야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되는지 대안을 말해주십시오.

정동영 :안타깝죠. 민주당이 좀 더 강력하게 민주주의의 대안 세력이 되어야겠죠. 민주당 국회의원 126명이 단합하고 100만 당원이 단결해서 민주주의의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홍유진 :말씀하신대로 민주당의 모든 의원이 한마음으로 뭉쳐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시나요?

정동영 :아닌 것 같아요. 제발 친노, 반노의 구도를 넘어섰으면 좋겠어요. 그걸 넘어서지 못하면 다음 대선도 가망이 없습니다.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했어요. 민주당은 자영업자 연합이냐고. 가혹한 지적이지만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자영업자 연합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무슨 역할이든 해야겠죠.

홍유진 :어쨌든 제1야당으로서 민주당의 역할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거라 생각되는데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정동영 :17대 대선이 있었던 2012년의 시대적 화두는 복지국가와 남북 관계였어요. 많은 사람이 새누리당의 공약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민주당의 당헌에 들어 있어요. 3년 전에 당헌 개정안을 제출한 사람이 바로 접니다. 강령 1~3조를 보면 ‘민주주의, 인권, 평화, 보편적 복지가 당의 목적’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내세웠던 그 공약들이 지금 다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당장의 선거에 이기기 위한 공약이 아니라, 오랜 기간 목적을 가지고 정치를 해온 정당을 선택해야지요.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면 당연히 당헌에 맞는 공약을 실천해나갈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당의 정체성이 중요한 겁니다.

홍유진 :일단은 2014년에 있을 지방선거가 관건입니다. 희망적으로 보시는지요?

정동영 :저는 국민의 저력을 믿습니다. 지금의 정치를 제대로 판단한다면 자연스럽게 국민들의 견제 심리가 발동하지 않겠어요. 물론 민주당도 잘해야죠. 국정원을 개혁하고 대선 댓글 사건은 특검을 통해서 진실을 규명해야죠. 대안은 야당밖에 없습니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홍유진 :통합진보당의 해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동영 :헌정사상 초유의 일인데 민주당에서 강력하게 앞장서야 한다고 봅니다. 정당 해산은 국민의 선택으로 정할 일인데, 무리한 거죠. 상식을 파괴하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사파가 국내에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건 시대착오적이죠. 그런 사람들은 민주당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공안통치의 도구로 사용하고 무리하게 상식을 파괴해가면서 법이라는 허울로 정당 해산으로 몰고 가는 반민주적인 행태에 관해서는 강력하게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홍유진 :최근 안철수 의원이 신당 창당을 선언했습니다. 앞으로의 정국 구도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정동영 :신당 창당, 그게 잘하는 겁니까? 안철수 의원이 ‘새 정치’를 말하지만, 오히려 창당을 안 하는 것이 새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권이 지금 거대한 공룡 같은 힘을 휘두르고 있는 상황에서 신당 창당은 힘을 모으는 게 아니라 야권을 분산시키는 형국이잖아요. 정당은 노선과 명분, 정체성을 가지고 정권을 도모하는 건데, 지금 시점에서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홍유진 :차기 대선 후보로 재출마할 의사가 있으신가요?

정동영 :지금으로서는 당을 살리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이 비판자를 넘어서서 대안정부로 자리매김해야겠죠. 한때 당 지도부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일단은 힘을 합쳐야죠. 그 연후에야 정권 교체의 전망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홍유진 :어떤 정치인으로 남고 싶으신가요?

정동영 :어려운 편에 섰던 사람이다. 제가 여기저기를 다니는 동안 어떤 시민이 ‘길 위의 대통령’이라는 명예스런 칭호를 달아줬어요. 저로서는 진심으로 영광스러운 평가죠. 많은 분에게 적어도 ‘정동영은 사익을 앞세운 사람은 아니었다. 남북 통일과 민족 문제를 진심으로 고민한 사람이었다’는 얘기는 듣고 싶습니다. 지금도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있는 중입니다.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14년 1월 호에 실렸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4/01/02 [15:38]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