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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미국 사이에 낀 한국의 길
[진단] 궁극적으로 중립을 추구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이끌어
 
이재봉
역사는 되풀이된다던가. 지난 주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일본과 한국을 방문해 두 나라의 관계 개선을 촉구한 것은 50여년 전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1960년대 미국의 주선과 개입 그리고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한일협정 말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한국에 대한 원조를 일본과 분담하면서 동북아시아에 일본을 중심으로 한 반공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원수처럼 지내던 한국과 일본이 손잡도록 만들었다. 1964년 중국의 핵실험 성공도 미국이 한일협정을 서둘렀던 요인의 하나였다.

이승만은 한일협정에 반대하다 미국의 미움과 압력을 받아 1960년 4월혁명을 계기로 하야했고, 박정희는 미국의 신임을 얻기 위해 졸속적이고 굴욕적으로 일본과 협상을 벌였다. 야당과 대학생들이 “굴욕적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벌이자 서울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거의 두 달 간 대학 문까지 닫아버렸다. 이른바 1964년 ‘6.3사태’다. 참고로, 그 때 시위에 앞장섰던 고려대학생 대표 가운데 한 사람이 이명박이었으니, “내가 학생운동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하는 배경이다.

협상 과정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가 걸림돌이 되자,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은 1962년 일본에서 그리고 대통령 박정희는 1965년 미국에서 독도를 폭파해버리고 싶다는 망언을 했다. 미국의 거센 압력에 비굴함 섞인 조급함으로 대응한 탓이었다. 일본이 지금껏 독도 문제에 관해 억지를 부려온 배경이기도 하다.

1960년대 반공을 위해 구축됐던 한.미.일 삼각공조가 50여년이 흐른 요즘 중국 포위 및 견제를 위해 부활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국의 압력과 한국의 비굴함 섞인 조급함은 여전하다. 미국 부통령이 12월 6일 청와대에서 한국 대통령에게 중국에 줄서는 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라며 공개적이고 솔직하게 압력을 행사한 게 파문을 일으키자, 미국이 아니라 한국 외교부가 ‘오해나 통역 잘못’이라고 부랴부랴 수습하는 게 참 비굴해 보인다.

그리고 중국이 11월 23일 동중국해 일대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것에 맞서 한국 국방부가 보름 만에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것은 좀 조급해 보인다. 특히 이어도를 지키기 위해 공군은 공중급유기 4대를 도입하겠다고 하고, 해군은 이지스 구축함 6척을 도입하겠다고 하니, 바닷속 암초를 두고 중국과 군비경쟁을 하겠다는 것인가. 수십조 원을 들여서.

이어도는 물 밖으로 튀어나온 독도와 달리 물 속 암초라서 영토 분쟁의 대상도 아니다. 더구나 이어도는 일본이 먼저 1960년대에 방공식별구역으로 선포한 해역이기도 하다. 관할 구역이 겹치는 문제를 한.중.일 사이에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야지 천문학적 경비를 들여 갈등과 긴장을 높이며 군사적으로 맞서는 게 바람직할까.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따라 한국도 중국에 맞서 덩달아 쓸데없이 군비를 증강하겠다는 게 몹시 위험해 보인다.

여기서 우리가 종종 겪는 일이 떠오른다. 어른이 아이에게 짓궂게 묻는다. 아빠가 좋은가 엄마가 좋은가. 아이는 현명하게 답한다. 둘 다 좋다고. 어른은 더 짓궂게 묻는다. 누가 손톱만큼이라도 더 좋은지. 난처해진 아이는 울기 십상이다. 아빠와 엄마 가운데 한 쪽만 선택하라고 강요받는 아이의 입장이 요즘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의 처지 같다.

한국은 군사안보를 미국에 맡겨놓은 채 미국을 등지기 어렵다. 먹고사는 문제를 중국에 의존한 채 중국을 등지기도 쉽지 않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바람직한 길은 크게 두 가지 아닐까. 하나는 동아시아 공동시장이나 공동체 설립을 추진하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중립을 추구하는 길.

첫째, 동아시아 지역에 공동시장이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은 100여년 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쏘아죽이고 감옥에 갇혀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며 구상했던 이래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제안해왔다. 요즘 정치인 가운데서는 이부영 민주당 상임고문이 적극 주장하고 있다.

1990년대 초 세계적으로 냉전이 종식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지역연합 또는 지역통합이 새로 이루어지거나 확대되어 왔다. 유럽연합 (EU),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 중미자유무역협정 (CAFTA), 남미국가연합 (USAN), 아프리카연합 (AU), 동남아시아국가연합 (ASEAN), 상하이협력기구 (SCO) 등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역연합체나 공동시장이 창설되거나 확대된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나 동북아시아에서는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2013년 현재까지 어떠한 지역적 협력기구도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1993-1994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 동아시아 지역협력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 중국, 일본을 초청하여 이른바 ‘ASEAN+3’ 회담을 가진 것을 계기로 2001년부터 동아시아공동체 설립이 추진되었지만, 중국에 대한 일본의 견제로 진전되지 못했다. 그러다 2009년 9월 하토야마 일본 수상이 취임하면서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밝혔다. 미국에 의존적이거나 종속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했던 외교에서 벗어나 미국과 대등한 관계로 나아가는 한편 중국과 한국 등 주변국들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동아시아를 중시하겠다는 발상이었다. 이에 한.중.일 3국 정상이 공동체 형성에 노력하자는 합의를 했지만 미국의 견제와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동아시아 지역은 세계적 냉전이 끝난 뒤에도 분쟁의 요소가 많아 매우 불안정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념이나 체제가 다른 나라들끼리 정치외교나 군사안보 문제 등을 합의하기는 어렵지만, 경제협력은 상대적으로 큰 어려움이나 갈등 없이 추진할 수 있다. 여기서 중국과 일본 사이의 경쟁 관계를 고려하여 한국이 적극적이거나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이미 추진하고 있듯, 한국이 중국 및 일본과 자유무역협정 (FTA)을 먼저 맺고, 이를 바탕으로 한.중.일 사이의 자유무역협정으로 확대하면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연결하여 동아시아 공동시장을 이룩하고 궁극적으로 정치경제 연합체인 동아시아 공동체로 발전시키는 길을 밟으면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PP)에 조급하게 참가하려는 것은 한중 통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기 쉬울 것이다.

둘째, 한반도 중립화를 지향하는 것 역시 조선 말 1880년대부터 나라 안팎에서 제기된 이래 1950년대부터는 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심 있는 정치인, 언론인, 학자, 운동가들이 주장해왔다. 특히 정치인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1년 대통령후보로 나서면서부터 중립화를 주장했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2012년 대통령 예비후보로 나서면서 중립화를 제안했다. 중국과 관련해, 소설가 조정래가 올해 수십만 권이 팔렸다는 <정글만리>를 통해 “중립을 선언하면 돼. 영세중립국!”이라고 외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농부 철학자 윤구병이 <한겨레> 2013년 11월 21일자에 기고한 “우리는 토끼다: 영세중립 통일조국의 꿈”이라는 제목의 글도 쉽고 재미있어 아래에 소개한다.

“영세중립의 꿈은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과 고종만 꾸었던 게 아니다. 이승만도, 김일성도, 김대중도 함께 꾸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꿈은 ‘푸른 꿈’이 아니라 ‘빨간 꿈’이 되어버렸다..... 한반도를 호랑이꼴로 바꾸고 싶어 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조선반도는 호랑이꼴이 아니라 토끼꼴이다. 그리고 이 토끼를 노리고 있는 러시아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아메리카합중국은 죄다 호랑이, 사자, 늑대, 스라소니 같은 사나운 짐승들이다. 100년 전에도 그랬고, 100년 뒤에도 그럴 것이다. 틈만 나면 조선 땅을 한입에 집어삼키려 드는 이 짐승들의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을 벗어나는 길은 ‘영세중립 통일조국’으로 거듭나는 길밖에 없다.”

참고로, 일부 학자들이 중립화에 부정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은 중립에 대한 오해 때문인 듯하다. 중립이란 본디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제 3국이 교전 당사국에 무력 지원은 물론 각종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등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한 나라가 다른 국가들이나 집단들에 군사적으로 연계하지 않음으로써, 또한 자주성을 가지고 다른 나라들 사이의 전쟁에 불참함으로써, 자국의 안전 보장을 확보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중립은 경제 통상 문제와 관계없이 어느 특정 국가와 군사 동맹을 맺지 않는 것을 뜻한다.

미국은 1970년대 주한미군을 철수할 경우 한반도의 중립화가 필요할지 모른다며 카터 대통령이 정책 검토를 지시하는 등 지난날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구상할 때마다 한반도 중립화를 고려했다. 앞으로도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나 철수를 계획하게 되면 한반도가 중국의 영향권 아래 놓이지 않도록 중립화를 제안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북한 핵무기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 그리고 한미동맹 폐기를 포함하는 한반도 중립화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 삼각공조를 구축하기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선 ‘등거리 외교’를 펼치며 궁극적으로 중립을 추구하는 게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 글쓴이는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한중관계연구원 한중정치외교연구소장, <남이랑북이랑>(http://pbpm.hihome.com)의 편집인입니다.

기사입력: 2013/12/13 [03:14]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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