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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03.2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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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수사관의 양심에 대하여
[최을영의 인물포커스] 국정원의 대선개입 정조준, 불씨를 살린 용기
 
최을영
“사건 수사 중 겪은 부당함을 밝히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수사과장직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

“네, 거짓말입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사람은 살면서 무수히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인생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택도 있지만 인생 자체가 바뀌는 선택도 있다. 또 오롯이 자기 몫으로 남는 선택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선택이 사회 전체를 선택의 갈림길에 옮겨놓는 경우도 있다. 한 사람의 신념과 양심에 따른 선택이, 다른 누군가를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하고, 그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과 이 사회의 신뢰도와 부패도를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2013년 8월 19일, 국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청문회 자리에서 초기에 사건을 담당했던 권은희 전(前) 서울수서경찰서 수사과장 역시 선택을 했다. 경찰의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축소 수사와 관련해 그는 한때 상관이었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발언을 뒤집었다. 8월 16일 김용판은 청문회에 출석해 권은희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격려” 차원이었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3일 뒤 권은희는 김용판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확고히 증언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김용판 전 청장이 지난 금요일 청문회에 나와 격려 전화를 한 것일 뿐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김 전 청장의 증언은 거짓말이냐”고 묻자 권은희는 “네, 거짓말입니다”라고 답했다.

국정조사 청문회 자리에서 울려퍼진 그 한마디 말은 곧 권은희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당시 권은희와 함께 증인석에 나왔던 다른 경찰들은 권은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권은희는 일관되게 수사를 하면서 자신에게 가해졌던 외압을 증언했다. 김용판으로 대변되었던 외압의 주체는, 2013년 10월 윤석열 검사의 발언과 함께 그 외연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법무부, 국정원, 새누리당 수뇌부, 청와대로까지 말이다. 또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와 국가보훈처도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뭔가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는 의혹과 함께 지난 대선이 공정히 치러졌나 하는 의심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사실 국정원 댓글 사건이라 명명된 이 사건이 이처럼 크게 확산된 데에는 ‘온전한 수사’를 원했던 두 사람 덕분이다. 경찰에서는 권은희가, 검찰에서는 윤석열이 자신의 양심과 몸담고 있는 조직의 직업윤리에 따라 양심선언을 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조직 내의 분란이나 항명, 혹은 논란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의 신분에, 또는 직업을 유지하는 데 위해가 가해질 수도 있는 발언을, 더구나 위계적인 조직으로 알려진 경찰과 검찰 내에서 상관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발언을 공개하는 일은 함부로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들의 발언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위해보다 수사를 책임지는 직업윤리를 우선에 둔 ‘소신 발언’ 그리고 수사관으로서 양심에 따른 ‘양심 선언’이라 할 수 있겠다.

외압을 폭로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3년 10월 말 윤석열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국정조사에서 한 발언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윤석열이 작심하고 쏟아낸 발언과 그가 추가로 확인한 국정원 직원의 트위터 글 5만 6,000여 개가 공개되면서 국정원 댓글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언론에서는 민주당이 공개한 트위터 글을 토대로 이런저런 분석 기사를 써내고 있고 추가적인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이 사건을 최초로 여론의 공론장에 올린 이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검찰의 수사가 있기 전 경찰의 수사가 있었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는 2012년 12월 11일 국정원 직원의 오피스텔 앞에서 나중에 김하영으로 밝혀진 직원에게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며 서 있던 권은희 서울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서 시작됐다. 최초에 증거를 넘겨받은 것도, 초동수사를 벌인 것도 권은희가 수사과장으로 있던 수서경찰서였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권은희는 기이한 일을 겪게 된다. 스스로 밝힌 것처럼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하지 말라는 지시를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서 직접 받았고, 서울경찰청에 댓글 검색어 78개를 넘겼으나 이를 4개로 줄이라는 황당한 요구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대선후보 마지막 방송토론회가 있던 12월 16일, 수서경찰서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에 대해 혐의 없다는 내용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밤 11시 16분에 들어야 했다. 또 서울경찰청에 넘긴 자료를 돌려줄 것을 끈질기게 요구한 끝에야 받아볼 수 있었지만 그렇게 넘겨받은 자료는 “깡통”에 불과했다. 대선이 박근혜의 승리로 끝난 뒤 권은희는 계속 수사를 했지만 어인 일인지 그는 2013년 2월 다른 경찰서로 발령이 나서 수사에서 손을 떼게 된다.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때부터 경찰 상부에서 벌어지던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권은희는 2013년 4월 18일 경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고 난 뒤 언론을 통해 외압 사실을 폭로한다. 그리고 8월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수사 과정에서 있었던 지속적인 외압을 폭로하게 된다.

자부심으로 시작한 경찰 생활

여기서 잠깐,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 권은희가 어떤 경로를 거쳐 경찰이 됐는지 살펴보자. 그가 자신의 직업인 경찰에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그의 행적을 보면 알 수 있다. 1974년 광주에서 태어난 권은희는 전남대학교 법대를 나와 200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시 43기로 사법연수원을 거쳐 충북 청주에서 변호사로 1년 동안 활동하다가 2005년 사법·행정·외무고시 등 국가고시 출신자를 대상으로 한 경찰 특별채용에 합격해 경정 계급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고시 합격자로 경찰에 특채된 최초의 여성이었다.

그가 경찰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사법시험 2차를 준비하던 시절의 일화 때문이다.

“사법시험 2차를 준비하던 2001년 휴대전화가 고장이 나 나흘간 집과 연락이 되지 않았는데, 광주에 사시는 아버님이 걱정이 돼 저를 찾아 신림동 고시촌을 헤매다가 경찰관과 함께 원룸을 방문해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당시 아버님을 도와준 경찰에 큰 감동을 받은 것이 경찰 입문의 계기가 됐습니다.”1

또 하나는 사법연수원 시절 현장 실습에 나가면서 경찰 업무에 다시금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당시 수사 업무의 80퍼센트 이상을 경찰이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무척 놀랐다”며 “실무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경찰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또 “국민에게 사랑받고 과거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하려면 경찰 조직이 더욱 변하고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고도 말했다.2 경기 용인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도 그는 “국민의 소중한 인권 보호를 위해서도 수사 구조 개혁은 이뤄져야 한다”며 “경찰도 기존의 낡은 권위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더욱 신뢰를 줘야 한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3

이후 권은희는 경찰청 법무과에 1년 정도 머문 때를 제외하고는 수사 일선에 있었다. 현장 수사를 소중히 여겼고, 경찰이라는 직업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초경찰서 수사과장을 거쳐 그는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2년 12월 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국정원 여직원의 오피스텔 앞에 서게 된다.

사건의 재구성

자, 그러면 이제 대선을 8일 앞둔 2012년 12월 11일 권은희가 국정원 직원 오피스텔 앞에 서 있던 시점부터 2013년 2월 4일 권은희가 송파경찰서로 석연치 않은 전보 발령을 받을 때까지를 재구성해보자. 권은희가 수사과 직원들과 오피스텔에 가게 된 이유는, 국정원 심리정보국 소속 직원이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올리는 등 불법 선거 개입을 하고 있다는 민주당의 신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하영이 자진해서 나올 때까지 경찰은 오피스텔에 들어가지 못했다. 압수수색 영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11일 민주당 당직자들이 현장을 확인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권은희는 이를 거부했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는 강제로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튿날인 12일에 민주당은 김하영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고, 권은희와 수사팀은 이날 압수수색 영장을 준비했다. 하지만 압수수색 영장 신청 서류를 준비해 서울지방검찰청까지 방문했지만 영장을 신청하지는 못했다. 왜 그랬을까? 2013년 8월 19일 국회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서 권은희는 2012년 12월 12일 김용판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전화를 걸어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말한다.

“작년 12월 12일 김 전 청장과 통화했다. …… 수사팀은 문제의 오피스텔(국정원 여직원 오피스텔)에서 철수,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 전 청장이 직접 전화를 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김 전 청장이) ‘내사 사건인데 압수수색을 신청하는 것은 맞지 않다’, ‘영장을 신청했는데 검찰이 기각하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말했다.”4

김용판은 이때 전화를 건 이유가 격려 차원이었다고 말했지만 권은희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2005년에 경찰에 임용되어 업무를 수행하면서 지방청장에게 압수수색 영장 신청 또는 구체적 사건 관련 지시를 받은 건 처음이다”5란 말도 했다.

그는 나중에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2차 공판 자리에서 김용판의 변호인이 “피고인(김용판)의 전화가 부당한 지시로 보기는 어렵지 않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그건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것이다. 현장을 보고 기록을 보고 압수수색영장 신청 여부는 우리(수사팀)가 판단하는 것이다. 서울청장이라는 지휘에 있다는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 신청하지 말라고 하는 건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게 맞다.”6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지 말라는 압력은 이광서 당시 수서경찰서장에게도 들어왔다. 이광서는 2013년 9월 17일 열린 김용판의 수사 축소 사건에 대한 4차 공판 자리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할 요건이 부족하긴 했지만 당시 민주당과 여직원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어 영장을 신청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 하지만 서울청장을 비롯해 경찰청 지능과장, 서울청 수사과장 등 3명이 전화를 걸어와 경찰 수사권 조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영장 신청 보류를 지시했다”고 말했다.7

어찌됐든 경찰은 12월 13일 김하영이 제 발로 걸어나올 때까지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 사이 김하영은 인터넷 접속 기록과 문서파일 등을 삭제했다고 경찰 조사에 진술했다.8 증거 인멸로도 볼 수 있는 정황이다.

김하영의 컴퓨터와 노트북 하드디스크 등을 임의제출 형식으로 건네받은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12월 13일 78개의 검색 키워드와 함께 이를 서울경찰청 디지털분석팀에 넘기고, 12월 15일 김하영에 대한 1차 소환조사를 벌인다. 그런데 15일 새벽 권은희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12월 15일 새벽까지 수서경찰서 수사팀이 수사를 하고 늦은 귀가를 하는 도중에 서울경찰청에서 (검색) 키워드를 줄여달라는 요청이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 키워드 축소는 곧 수사의 축소를 의미한다. 그 당시 (전화를 한 수서서 직원에게) 결재받을 수 없다는 핑계를 대서라도 축소하지 말라고 얘기했다.”9

하지만 다음 날 수서경찰서는 검색 키워드를 4개로 줄여 보내준다. 그런데 나중에 검찰이 확보한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실 CCTV를 보면 12월 14일 새벽 4시에 서울경찰청은 국정원 직원의 수상한 40여 개의 아이디와 닉네임, 댓글을 단 흔적을 확인한 것으로 나온다. 즉 검색 키워드를 줄이기 전에 이미 댓글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이 동영상에는 “주임님 닉네임이 나왔네요”, “야 대박인데 진짜” 같은 분석관들의 발언 내용이 담겨 있었고, 분석관들이 출력한 관련 증거만 A4 용지 100여 쪽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10 이 동영상은 7월 25일 경찰청 국회 업무보고 당시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공개했고, 8월 1일에는 녹취록까지 공개했다.

하지만 이렇게 찾아낸 자료는 2012년 12월 16일 밤 11시에 전격적으로 진행된 수서경찰서의 중간 수사 발표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사를 진행한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보도자료 작성과 발표에 배제되었다. 당시 보도자료는 서울경찰청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고,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는 김용판의 주도로 이뤄졌다.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그날 밤 11시에 보도자료를 팩스로 보내줬을 때에야 같은 시간에 중간 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던 사실을 알았다.

배제된 수사팀

수서경찰서 수사팀이 서울경찰청에서 ‘분석 결과 보고서’를 받은 건 16일 밤 10시 30분이었다. 국정원 직원 김하영의 아이디와 닉네임이 담긴 ‘하드디스크 분석 자료’는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12월 18일 저녁 7시 35분에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권은희가 강력하게 항의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에서 열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2차 공판 자리에 증인으로 참석한 권은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서울청이 증거물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서울청 김병찬 수사2계장은 ‘증거 분석 내용이 노출되고 국가 안보에 위해가 초래된다, 국가 안보가 심각한 상황에 놓이고 사회의 혼란이 커진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증거물 분석을 돌려주지 않는 건 형사소송법 위반이라고까지 말했다. …… 국가 안보 관련 내용이라 사회 혼란이 커진다는 것만 강조했다. 수사팀을 믿지만 검찰에 가면 다 노출될 거라며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11

하지만 이렇게 받은 증거물도 메모장을 제외하고는 의미 없는 정보만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권은희는 증거물에 손을 댔구나 하는 의심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증거물이 왔는데, 메모장을 제외하고는 의미 없는 정보였다. 서울청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직접 증거를 분석할 수 있는 URL 접속 자료를 갖게 되었다. 즉시 줄 수 있는 정보인데도 수사팀에 숨겼다는 사실을 알고 ‘디지털증거분석팀이 증거에 손을 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조사를 한 끝에 다수의 인터넷 접속 자료 등을 보게 되었다. …… 증거 목록을 받고 우리 수사팀이 갑자기 매우 심각해졌다. (서울청에서) 받아온 증거에 내용이 없다며 담당 직원이 ‘과장님 깡통입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김하영 노트북에서 삭제된 메모장 파일에서 나온 아이디 닉네임 따위를) 구글링 해보니 특정 후보·특정 정책과 관련한 내용이 나왔다. 서장은 보고를 받고 매우 충격에 빠져서 ‘서울청에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이미 수서경찰서는 12월 16일 서울경찰청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 사건 중간수사 발표를 했다. 관련 혐의를 찾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말까지 했다.”12

“한마디라도 더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수서경찰서 수사팀이 증거 자료를 받아 수사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은 대선 당일이었던 2012년 12월 19일이었다. 그리고 해가 지난 2013년 1월 3일 권은희는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뒤집는 발표를 하게 된다.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16개의 아이디를 만들어 269개의 게시글에 288차례에 걸쳐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추천 또는 반대를 표시했다”는 내용이었다.13 권은희는 이때부터 다시금 외압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1월 4일 경찰청 고위 관계자에게서 “(언론에) 한마디라도 더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전해들었고, “1월 4일 김 씨의 소환조사가 끝난 뒤 언론에 김 씨의 인터넷 활동 시간, 게시물의 성격 등을 확인해주려고 했지만 (고위 관계자의 말을 전해듣고) 아무 얘기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14

그런 상황에서도 권은희는 1월 23일 “경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잖아요. 이 사건의 수사기록에는 수사관의 이름이 남습니다.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수사할 것입니다”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15 하지만 2013년 2월 4일 서울지방경찰청은 경정 직급 328명에 대한 인사를 통해 권은희를 송파경찰서로 전보 조치한다. 서울경찰청이 “경찰서 과장급의 경우 보통 1년 넘게 근무하면 근무지를 바꿔준다는 방침에 따른 것으로 다른 고려 사항은 없다”고 밝혔지만 석연치 않은 인사라는 시각이 많았다.16

▲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밝힌, 노골적인 외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권은희 수사과장     ©한겨레신문
그렇게 다른 경찰서로 옮겨진 권은희는 2013년 4월 18일 경찰의 수사 발표가 이뤄진 직후인 4월 1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수사 당시 외압이 있었음을 폭로한다. 그는 “작년 12월 민주통합당이 수서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이후 수사 내내 서울경찰청에서 지속적으로 부당한 개입이 이뤄졌다”며 “경찰 상부에서 김 씨의 불법 선거운동 혐의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를 언론에 흘리지 말라는 지침이 알게 모르게 있었다”고 말했다.17 권은희는 이런 발언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단지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느꼈고 이런 문제가 해결돼야 앞으로 다른 사건 수사도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필요한 문제제기를 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18 또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사건을 맡아 수사하면서 여러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들을 겪고, 수사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에 수사 기록과 김 씨 혐의에 대한 의견 등을 담은 50페이지 분량의 중간지휘서를 경찰전산망에 공식문서로 올렸다”며 “김 씨에게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모두 적용할 수 있다고 여러 경로로 밝혔지만 18일 경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는 이와는 달랐다”고 말했다.19 그리고 “한때 동고동락했던 수사팀에 누가 될까 봐 많은 고민을 하다가 내린 결정”이라며 “거창한 폭로가 아닌 차근차근한 설명에 불과하다”고도 말했다.20

비록 거창한 폭로가 아니라고 했지만 이 발언으로 서울경찰청의 축소 수사 의혹이 전면에 부상하며 국정원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검찰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과 함께 서울경찰청의 국정원 사건 은폐·축소수사 의혹까지 조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사건 당시에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이종명 국정원 3차장과 서로 만나고 3차례 통화한 사실, 이광서 당시 수서경찰서장과 강남 담당 국정원 직원이 10여 차례 통화한 사실 등이 새롭게 드러났다.

한편 권은희의 뒤를 이은 후속 수사팀이, 국정원 직원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의견이 담긴 권은희의 수사지휘서를 묵살한 것도 나중에 드러났다. 민주당 박남춘 의원이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받은 권은희가 작성한 수사지휘서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김 씨 등이 문재인·안철수 후보 지지글, 박근혜 후보 반대글 620개에 890회의 ‘반대’ 클릭을 했다. 이 행위의 ‘목적의지’ ‘능동성’ ‘계획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18대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고 다른 후보를 낙선시킬 의도로 계획적으로 활동한 것으로 충분히 의심된다.”21

그러나 후속 수사팀은 지난 4월 검찰에 이 사건을 송치하면서 “김 씨 등이 437개의 글을 작성했고, 선거 관련 키워드가 포함된 글은 18개에 불과하다”며 “선거 관련 글이 전체 글 중 4.1퍼센트에 불과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22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권은희의 의견을 묵살한 것이자, 나중에 검찰에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과는 상반된 수사 결과였다. 이 자료를 공개한 박남춘은 “경찰이 국정원 사건을 축소, 은폐하기 위해 권 과장을 전보 조치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23

참고로 지난 6월 17일 이 사건을 담당했던 한 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수서서는 열악한 인원으로 한발 한발 묵묵히 수사해 (사건을) 하나씩 밝혀갔고, 게시글 상당수를 확보했다.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낸 것을 비롯해 수서서 수사팀의 노고와 열정, 치열한 노력은 평가받아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을 소개하며 『한겨레』 정환봉 기자는 “권 과장은 ‘김용판의 조직’을 배신하는 대신 ‘일선 수사관의 조직’을 지킨 것”이라고 평가했다.24

후회하지 않는다

수사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는 권은희의 발언은 8월 19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자리에서도, 김용판에 대한 공판 자리에서도 계속됐다. 그는 청문회에서 2012년 12월 16일 밤 11시에 진행된 중간 수사 결과 발표가 대선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실제로 영향을 미쳤는지는 별개로 대선에 영항을 미치기 위한 부정한 목적으로 (수사 발표를) 한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25 청문회 이후에 권은희는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그에 대한 응원메시지를 전하는 언론 보도가 잇달았다. 또 “광주 경찰이냐 대한민국 경찰이냐”(조명철), “지금 대통령이 문재인이면 좋겠지”(김태흠) 등 권은희에게 몰상식하고, 지역감정을 건드리고, 헌법에서 금지한 ‘십자가 밟기’를 종용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비판을 받았다.26

국회 청문회 자리에서 권은희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기사를 통해 그 발언을 확인했을 때 나는 후련했고,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조직에 반하는, 상급자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는 조직원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은희 역시 그 점을 몰랐을 리 없다. 특히 명령 체계가 확고한 조직 풍토에서 상급자의 발언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일은 웬만한 용기로는 엄두도 못 낼 일이기 때문이다. 조직의 보복 조치가 있을 수 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 일은 권은희의 인터뷰가 2013년 9월 25일자 『한국일보』에 실리자 벌어졌다. 과연 이 인터뷰에서 권은희는 어떤 말을 했을까?

“사건 수사 중 겪은 부당함을 밝히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수사과장 직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는 말을 했고, “만약 12월 16일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감지한 서울경찰청의 의도를 12일 김 전 청장의 전화를 받았을 때 알았다면 영장 신청을 강행했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지난 4월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언론에 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는 “경찰 내부에서는 공식적으로 말할 절차도 없고, 이야기하도록 놔두지도 않는다”고도 말했다. 또 경찰 조직에 누를 끼쳤다는 얘기도 나온다는 질문에 “경찰은 자기목적적인 조직이 아니다. 경찰로서 해야 할 일, 따라야 할 가치, 법이 있다. 이를 도외시한 말은 비난을 위한 비난이며, 맹목이라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얘기했다.27 언론을 통해 공개한 것에 후회가 없냐는 질문에도 그는 당당히 이렇게 말했다.

“공개하기 전 2월 송파서로 전보된 직후가 오히려 어려운 시기였다. 부당함을 밝히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수사과장으로서 직원들을 지휘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고, 조직에 대한 불신이 커져 괴로웠다. 하지만 공개 이후에는 한 점 흔들림 없이 수사과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사건의 실체와 수사 상황을 밝힌 뒤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 과정을 보면서 조직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됐다. 후회하지 않는다.”28

수사관으로서의 다짐과 경찰로서의 자부심이 엿보이는 인터뷰를 진행한 뒤 권은희는 경고 조치를 받는다. 언론 인터뷰 후에 즉시 그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권은희는 보도 하루 전날인 24일에 보도 예상을 보고했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국정원 사건과 관련한 심정, 수사권 조정에 대한 의견”이라고 밝혔다.29 그런데도 경고 조치를 받은 것이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상식 밖의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서명 경고는 철회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시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본 권은희의 행동을 보면 그가 외압이나 조직 내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2012년 12월 11일에 시작된 국정원 댓글 사건이라 명명된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은 계속 진행 중이다. 검찰 수사가 계속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수사를 책임졌던 윤석열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벌여졌던 외압과 국정원의 비협조 행위를 폭로했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그 여파로 윤석열은 권은희처럼 수사에서 배제되었다. 권은희가 살린 불씨가 윤석열에 의해 점화되었다. 이 불똥이 어디로 튈 것인지만 남았다. 과연 불똥이 어디로 튈까? 불을 끄려는 자와 불씨를 살리려는 자 사이에 놓인 균형추는 어디로 쏠릴 것인가? 지켜볼 일이다.


1) 노정연, 「‘청문회 헤로인’ 권은희 수사과장의 소신발언」, 『레이디경향』, 2013년 9월호(인터넷판)
2) 유영규, 「사시 출신 경찰 1호 9대1 경쟁 뚫은 권은희씨」, 『서울신문』, 2005년 2월 26일, 19면
3) 남경현, 「사시 출신 경정 특채 권은희씨 용인서 수사과장에」, 『동아일보』, 2005년 10월 10일, 16면
4) 이용욱·유정인, 「권은희 전 수서서 수사과장 “김용판 청장 거짓말, 부정한 목적 수사발표”」, 『경향신문』, 2013년 8월 20일, 1면
5) 김은지, 「“서울경찰청이 날 죽이려고 하는구나”」, 『시사IN』, 2013년 9월 7일, 40면
6) 김은지, 앞의 기사, 41면
7) 강경석, 「이광석 전 수서서장 “김용판 전 청장이 국정원 여직원 노트북 압수 막아”」, 『동아일보』, 2013년 9월 18일, 10면
8) 선명수, 「‘원·판·김·세’ 수상한 5일, 대선을 주물렀다」, 『프레시안』, 2013년 8월 20일
9) 선명수, 「권은희 “김용판 거짓말…경찰 ‘부당한 목적’ 분명”」, 『프레시안』, 2013년 8월 19일
10) 정제혁, 「경찰 “국정원 댓글 찾았다” 환호 이틀 뒤 “없는 것으로 하자”」, 『경향신문』, 2013년 6월 15일, 2면
11) 김은지, 앞의 기사, 40~41면
12) 김은지, 앞의 기사, 41면
13) 박세열, 「T·K 출신 서울청장, ‘국정원 댓글’ 수사 라인 교체…왜?」, 『프레시안』, 2013년 2월 4일
14) 정환봉, 「“한마디 더 하면 가만 안 둘 것” 지난 1월 경찰 고위층 말 전해 들어」, 『한겨레』, 2013년 4월 23일, 3면
15) 정환봉, 「경찰이 외면한 국정원 추적기 꼭꼭 숨은 아이디 꼬리를 밟아 원세훈을 잡아라」, 『한겨레』, 2013년 4월 13일, 16면
16) 박세열, 앞의 기사
17) 고상민, 「“경찰 고위층 국정원 사건 축소 은폐 지시”」, 『연합뉴스』, 2013년 4월 19일
18) 정환봉, 「“한마디 더 하면 가만 안 둘 것” 지난 1월 경찰 고위층 말 전해 들어」, 『한겨레』, 2013년 4월 23일, 3면
19) 송은미,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경찰 윗선서 축소·은폐」, 『한국일보』, 2013년 4월 20일, 1면
20) 고상민, 「국정원 사건 의혹…경찰 내부 ‘진실게임’으로」, 『연합뉴스』, 2013년 4월 19일
21) 이효상·구교형, 「‘국정원 선거법 위반’ 권은희 수사지휘서 후속 수사팀서 묵살」, 『경향신문』, 2013년 10월 16일, 1면
22) 이효상·구교형, 앞의 기사
23) 이효상·구교형, 앞의 기사
24) 정환봉, 「권양심님 VS 김뻔뻔님」, 『나·들』, 2013년 10월 7일(인터넷판)
25) 선명수, 「권은희 “김용판 거짓말…경찰 ‘부당한 목적’ 분명”」, 『프레시안』, 2013년 8월 19일
26) 강병한·정환보, 「김 빼는 새누리, 전략 부재 민주, 불성실 증인…의혹만 남아」, 『경향신문』, 2013년 8월 21일, 4면
27) 송은미, 「“죄도 사람도 용서할 수 없다” 권은희 수사과장 언론 첫 인터뷰」, 『한국일보』, 2013년 9월 25일, 8면
28) 송은미, 「“죄도 사람도 용서할 수 없다” 권은희 수사과장 언론 첫 인터뷰」, 『한국일보』, 2013년 9월 25일, 8면
29) 곽휘양, 「기자메모 : ‘권은희 과장 서면경고’ 경찰의 모순」, 『경향신문』, 2013년 9월 27일, 12면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13년 12월 호에 실렸습니다




기사입력: 2013/11/29 [18:14]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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