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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삼성? 역시 무서운 삼성!
[변상욱의 기자수첩] 노동의 재생산 없이 다음 세대 번영 기약 어려워
 
변상욱   기사입력  2013/11/06 [20:21]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지난달 31일 삼성전자의 서비스 하청업체 수리기사 최종범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카톡 대화방에 남긴 마지막 말은 “그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가 숨진 곳은 천안시 직산읍 군서리의 한 모퉁이. 결혼 전 아내와 자주 데이트를 했던 고향마을 근처였다.

◈ “‘그래도 삼성전자인데’... 라구요?”

삼성서비스센터의 도급업체 직원들은 고정급 없이 서비스 건당 수수료가 급여가 된다. 시간당 임금을 따지지 않으니 식비, 통신비, 수당의 지원이 없다. 회사 측은 고 최종범 씨의 월 평균 수입이 400만원을 넘겼다고 하고 최근 급여통장에 찍힌 명세는 310만에서 35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최 씨의 동료들은 달리 말한다. 300만원이 넘은 건 성수기라 그렇고 비수기는 200만 원대라는 것. 거기에 차량유지비, 통신비, 자재 값 등 수리기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월 50만~100만원이니 차 떼고 포 떼면 비수기는 150만 원대, 성수기는 250만 원대를 받으며 일한 셈이다. 이러니 비수기에는 빚내 살고 성수기 때 겨우 갚고가 반복된다.

서비스 기사들은 고객평가를 받아 제출해야 한다. ‘매우만족’을 받아야 잘리지 않고 살아남는다. 일부 고객은 수리비를 깎아주면 ‘매우 만족’을 주고, 안 깎아주면 점수를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단다. 이러다 보니 수입이 오른다는 성수기는 근무시간이 밤 9시를 넘겨 10시까지다. 소비자가 저녁에 퇴근해 집에 와서 가전수리 서비스를 불러도 밤늦게 서비스 기사가 달려오는 배경이다.

이 고통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동자들은 문제의 근원은 삼성이라고 개선을 촉구한다. 삼성전자서비스 기사의 90%는 협력업체 직원이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는 삼성전자라고 주장한다. 소송을 내 법정에서 심리 중이다.

그러나 삼성의 입장에서는 협력업체에서 벌어진 일이고, 협력업체 사장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사장은 삼성전자서비스 관리직 출신이다. 왜 사장은 아무것도 할 능력이 없을까? 삼성전자협력업체 직원들이 밝힌 이야기를 모아 그림을 맞춰보자.

노동자들은 힘겨우니 노조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해결해 보려고 한다. 국민의 권리이다. 하지만 노조결성 움직임이 보이면 사측은 노사협의회를 만들어 대신하자고 한다. 그걸 겨우 밀어내고 노조를 만들면 복수노조가 등장한다. 복수노조가 통하지 않으면 갑자기 감사를 벌인다며 표적감사가 벌어지고 조합원들이 흩어지고 떠나간다. ‘지역 떼가기’도 있단다. 노조원이 많은 센터에서 일감을 떼어내 노조원 적은 센터에 몰아주는 방식이다.

그런 상황에서 늘 온순하고 회사 측 입장을 이해하려 애썼다는 고 최종범 씨는 자신의 목숨을 던지며 이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고인의 형이 전하는 이야기도 들어보자.

(동생에게) “한번은 열심히 일하라고 하니 ‘지금 죽을 것 같이 힘들게 열심히 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하냐’고 열을 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냐.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으로 지내라고 하며 생각했다. ‘그래도 삼성전자인데’ .... ”

삼성의 답을 구해 보자.

“그래도 삼성전자인데 ...”가 맞는가, “역시 무서운 삼성전자야”가 맞는가?

◈ “역시 삼성전자야 ...”입니다

노동계는 “역시 삼성전자야”로 뜻을 모았다. 지난 4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5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삼성에 맞선 공동 투쟁’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고 최종범 씨의 죽음을 계기로 노동계가 "삼성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삼성이 쥐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삼성의 사과 ▲노조원에 대한 표적 감사 중단 ▲일감 빼앗기 중지 ▲부당 인사 중단 ▲노조 파괴 매뉴얼 인정 및 사과 ▲적정 생계비 보장 ▲임금 체계 개선 ▲삼성과 삼성전자서비스 차원의 성실 교섭 등이다.

죽어라 일하는데 가난한 것은 노동자의 비애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쓰러뜨리는 치명적인 병이다. 일터에서의 내쫓김, 일터에서의 부당한 처우... 이것은 일에 대한 긍지,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상실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에 취업해 일하니 통계상 ‘미래창조 첨단일자리’에 들어 있다고 여기지 목숨을 내놓을 만큼의 워킹푸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워킹 푸어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꿈과 비전은커녕 인간의 존엄마저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파악해 지켜줘야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다.

노동이 세대를 이어가며 확대되지 않고 끊기는 것은 치명적인 국가의 병이다. 노동자가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자신의 몸을 추스르고 가정을 꾸려가는 노동의 재생산 없이 우리 다음 세대의 번영은 기약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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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1/06 [20:2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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