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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가 ‘혼혈인’이 아니고 ‘흑인’인 이유
[두부독감 29] 강준만이 들여다 본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두부   기사입력  2013/10/16 [19:21]
▲ 강준만 교수가 현미경 처럼 들여다 본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 인물과 사상
“이 책에는 골드러시, 인디언 소탕작전, 프런티어 사관, 맥도날드 제국, 아이비리그, 자동차 혁명, 복음 상업주의, 처세술 혁명, 성기 콤플렉스, IQ 논쟁, 금주법, 군산복합체 등 28가지 미국사의 은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바마는 혼혈인인가 흑인인가?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 주 출신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혼혈인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그를 흑인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백인에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흑인으로 간주하는 ‘한 방울 원칙’ 때문이다. 이 한 방울 원칙에는 미국의 잔혹한 역사가 숨어 있다.

20세기에 법으로 명문화한 한 방울 원칙은 미국을 강타한 우생학 열풍 때문에 등장했다. 프랜시스 골턴의 의해 탄생한 우생학은 혁신주의 물결을 타고 미국 사회 전역을 물들였다. ‘우생학과 혁신주의의 잘못된 만남’이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유색인종의 높은 출생률에 주목하면서 산아제한을 옹호하는 중산층이 ‘인종적 자살’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런가 하면 매디슨 그랜트라는 뉴욕 사교계의 명사는 『위대한 인종의 쇠망』(1916년)에서 이민족 간의 결혼을 우려하면서 미국인의 잡종화를 경고하기도 했다. 이민제한법도 이런 형태의 잡종화를 방지하고자 제정된 것이다. 한 방울 원칙은 이런 시대적 광풍에 편승해 입법화되었으며, 1967년 흑백 결혼 금지법이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사라졌지만, 지금까지도 한 방울 원칙의 사회문화적 힘은 오롯이 남아 있다.

▲ 오바마는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 주 출신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그런데 왜 미국인들은 그를 흑인이라고 부르는가? © 인터넷 이미지

블루스의 여왕인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이상한 열매〉에도 미국의 슬픈 역사가 숨어 있다. ‘이상한 열매’는 백인들에 의한 사적인 린치로 교수형을 당한 흑인들의 시체가 나무에 매달린 채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상징한다. 여기에는 흑인 남성들에 대한 성기 콤플렉스가 자리 잡고 있는데, 노예제도 시대부터 흑인 남성은 ‘걸어다니는 음경’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1930년 인디애나 주에서 흑인인 토머스 십과 애브럼 스미스가 백인을 살해하고 그의 애인을 강간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나중에 백인의 애인은 강간을 당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두 흑인은 나무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다. 백인 구경꾼들은 그들의 시체를 보고 웃음을 지었고, 그 장면을 찍은 사진은 수만 장이 팔려나갔다. 이는 흑인 성기에 대한 백인들의 강박과 공포가 흑인들에 대한 폭력으로 비화된 사건이었다.

이 책은 궁극의 미국사일지 모른다. 미국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앤드루 카네기가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자선사업을 벌인 것처럼 미국은 세계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힘을 갖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숨기고픈 역사가 똬리를 틀고 있다.
 
“미국은 유럽이 2,000년 동안 경험했던 것을 한두 세기로 역사를 압축시켜놓았다”고 한 대니얼 부어스틴의 말처럼 미국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괴수’가 되었다. 그 힘은 미국 스스로 만든 것이다. 미국이 어떻게 그 힘을 만들었는지는 이 책에 담겨 있다. 단, 이 책을 반미(反美)인지 친미(親美)인지 구분하는 이분법으로 보지는 말자. 그냥 ‘미국사 파노라마’를 ‘쿨’하게 즐기면 된다. 일독(一讀)을 권한다.
 
* 이 글은 『기획회의』 제354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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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0/16 [19:2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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