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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류상태의 주일편지] 국민은 전쟁 예찬하는 정치인 경계하고 통제해야
 
류상태   기사입력  2013/06/22 [08:17]
이틀 후면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3주년이 됩니다. 50대 이상의 장노년층 분들은 ‘한국전쟁’이라는 말보다 ‘육이오’라는 말이 더 익숙할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들어온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양대 세력의 이념에 휘말려 250만이 넘는 백성이 희생된 어처구니없고 슬픈 전쟁이었습니다.

엄청난 재앙의 대가로 얻은 것이라고는 양쪽 모두 패자가 되어 반도 전체를 폐허로 남긴 것뿐이었습니다. 하여 오늘은 다시는 한반도에서 그런 어리석은 전쟁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우님들과 함께 예수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전쟁과 평화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1993년 출간되어 45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초대형 스테디셀러입니다. 한 신문사 기자가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0년대에 일어났던 재미 핵물리학자 이용후 박사의 교통사고 사망사건을 추적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용후 박사는 고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핵폭탄을 만들어 우리나라의 자주국방을 이룩하려고 했던 분입니다.

사건에 깊이 들어갈수록 핵개발 완성을 눈앞에 두고 강대국의 공작으로 이용후 박사가 살해되었다고 확신한 권순범 기자는 유신독재에는 철저하게 반대했으면서도 조국의 자주국방을 위해 대통령과 손을 잡은 이박사의 애국심에 감명을 받아 그의 죽음에 얽힌 국제적 음모를 국민들에게 밝혀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인도와 프랑스에서 이박사의 절친한 친구와 동료 과학자를 만난 권순범은 우리나라에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 80kg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 때 이미 일본은 톤 단위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엄청난 경비를 투입하여 자위대의 군사력을 강화하며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집요하게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권순범은 대통령을 만나 남북한의 합의하에 핵폭탄을 만들 것을 건의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대통령은 안기부장을 북한특사로 파견합니다.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받은 김일성 주석도 남측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여 마침내 남과 북은 핵의 공동개발에 합의하고 핵무기 제조에 박차를 가합니다.

드디어 핵개발에 성공한 남과 북은 핵폭탄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레이저잠금장치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남북이 합의하지 않으면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반쪽 폭탄이 된 핵무기는 남북한에는 신뢰를, 외세의 침입에는 강력하고도 무서운 방어 무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시베리아의 개발계획을 두고 한국과 경쟁을 벌이던 일본은 한국이 개발권을 따내자 경제적으로 강력한 경쟁상대로 떠오른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독도를 무력으로 점령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한국의 반격이 시작되면 첨단 무기를 앞세워 한국의 산업시설을 마비시키고 경제적 속국으로 만들 시나리오를 짜놓고 기회를 엿봅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일본 대사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본국에 이 사실을 알리지만 한국에 핵폭탄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본 각료들은 만에 하나 한국이 핵미사일이나 핵을 실은 전폭기를 띄운다 해도 슈퍼컴퓨터로 무장한 일본의 전자방어망을 결코 뚫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마침내 태백산 중턱 어디에선가 핵미사일이 발사됩니다. 거대한 불기둥을 뿜으며 하늘 높이 솟아오른 미사일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잠시 후 일본이 자랑하는 슈퍼컴퓨터의 대공요격시스템 모니터에 점 하나가 파장을 일으키며 나타나고 그 상황은 즉각 일본 각료회의에 보고됩니다.

일본의 슈퍼컴퓨터는 첨단 전자교란 장치를 가동하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이 비행체를 추적하지만 처리중이라는 자막을 내보낼 뿐 요격미사일을 쏘아 올릴 목표점을 찾지 못한 채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잠시 후 동경에 공습경보가 울리고 동경을 향해 날아오는 비행체가 핵미사일임을 알게 된 일본 국민들은 무모한 전쟁을 벌인 정부를 원망하며 경악과 공포에 휩싸입니다.

일본 수상은 한국 정부에 급히 전화를 걸어 무조건 항복과 완전한 피해보상을 약속하며 더 이상의 핵 발사를 중지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일본으로 날아든 핵미사일은 동경을 살짝 비켜 무인도에 투하됩니다. 이리하여 남북정부는 침략자를 격퇴하지만 인명피해 없이 거룩하게 용서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2. 민족주의와 국가이기주의의 함정에 대하여

이 소설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선택되는 스테디셀러가 된 이유는, 독자를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과 함께, 무한 대치상태로 국력을 소비하는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핵을 갖게 되면 어느 누구도 함부로 집적거리지 못할 것이라는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설정이 큰 공감을 얻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강대국 지도자들의 국가이기주의입니다. 그들은 지구를 수십 번이나 파괴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핵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나라는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반면에 약소국들은 재래식 무기를 증강하는 데 한계가 있고 핵을 가져야 강대국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핵을 가지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런데 모든 나라가 자기 나라의 안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핵개발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강대국들 뿐 아니라 모든 약소국가들이 결국 핵폭탄을 갖게 되면 그 핵이 전쟁을 억제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언젠가 어디에선가 핵을 사용하게 되고 결국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구의 종말로 이어지게 될까요?

핵을 개발하고 싶어 하는 모든 나라들이 초기에는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핵이 확산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자기 나라만 몰래 핵을 개발하여 일정 단계에 오르면 비로소 만천하에 그 사실을 공표하고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으려 합니다.

자기 나라는 사정이 있어서 몰래 핵을 개발할 수밖에 없고 다른 나라는 절대로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모순된 생각에 빠져있는 정치지도자들이 지구마을 각처에 적지 않게 존재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개인이기주의가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처럼, 이렇게 자기 나라만을 생각하는 국가이기주의가 세계 평화를 위협하며 지구마을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김진명의 소설을 읽고 난 후에 짚고 싶었던 또 하나의 문제는 ‘사해동포주의로 나가지 못하는 민족주의’가 갖는 위험성입니다. 유교의 중심 덕목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자신을 수양하는 사람이라야 가정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고, 가정을 올바로 다스리는 사람이라야 나라도 올바로 통치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이 국가의 지도자가 될 때 비로소 천하가 태평하게 된다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지구마을에는 ‘평천하로 나가지 못하는 치국’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가 사해동포주의와 조화를 이루면 각 나라와 지역의 문화는 서로 발전하며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족주의 자체가 우상화될 때 무서운 비극이 초래된다는 것을 과거의 인류역사는 독일의 나찌즘과 일본 군국주의를 통해 뚜렷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에서 일고 있는 극우정치인들의 몰염치한 역사왜곡이나 그에 못지않은 극우단체들의 반한시위가 얼마나 무모한 극렬 민족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지는 쉽게 느끼고 그 위험성을 질타하면서도, ‘이념을 초월한 한민족의 투합’을 내세워 남북이 합작해서 만드는 핵은 쉽게 관용할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일본을 제압한다는 민족주의적 설정에는 환호하기까지 하는 수많은 한국의 독자들에게서 저는 똑같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3. 전사자 유해발굴에 대한 생각

얼마 전 미국이 한국전쟁 때 전사한 미군의 유해발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제작한 TV 다큐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자국민을 끝까지 보호(?)하는 그런 미국의 정신이 있기에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조국에 충성하는 수많은 미군들이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는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착잡한 마음에 사로잡혔습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도 한국전쟁 때 전사한 국군의 유해를 발굴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지금도 유해발굴은 계속 되고 있으며 가끔 방송을 통해 그 업적(?)이 보도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호전적인 국가들일수록 유해발굴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어떤 의도와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념과 조직의 폭력에 희생된 가엾은 개인의 존엄성이 그 뼈를 국가가 관리하는 성지(?)로 옮긴다하여 회복될 수 있는 것일까요? 전사자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옮겨놓으면 사자의 명예가 회복된다고 생각하는 건 단지 살아있는 자의 자기위로가 아닐까요? 어쩌면 그것은 국가조직과 그 수뇌부들이 자신들의 전쟁행위를 정당화하고 계속 이어갈 명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벌이는 의식행위가 아닐까요?

동기야 어쨌건 이미 자연의 품에 안긴 사람을 다시 파헤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살과 뼈와 피와 힘줄과 장기,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이루어 사람으로 살게 하는 정신이지 단지 뼈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유해발굴보다는 다시는 그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쟁예방에 힘쓰며 유족을 돕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유해발굴에 집착하는 나라들일수록 전쟁 당시 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호전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 그들은 ‘다시는 그런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 국방비에 정부예산을 쏟아 붓습니다. 그리고 그런 호전적인 나라와 이웃하는 나라 역시 ‘국가방어와 생존을 위해’ 백성들의 땀과 눈물로 조성된 예산을 무기증강에 투입합니다.

4. 전쟁 없는 세상을 이루려면

며칠 전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를 향해 현재 보유한 핵무기의 3분의 1을 감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가 갖고 있는 핵탄두는 3월1일 기준으로 러시아 1480기, 미국은 1654기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은 러시아 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외면 받고 있습니다. (한겨레신문 6월 20일자 기사 참조).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에 핵감축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보도된 그날, 우리나라가 사거리 500㎞에 이르는 장거리 공대지 순항 미사일 ‘타우루스’의 도입을 확정했다는 소식도 함께 보도되었습니다. 군에 의하면, F-15K 전투기에 최대 2발을 장착할 수 있으며, 최대 사거리가 500㎞로 부산에서 발사해 평양까지 타격할 수 있는 이 미사일의 가격은 대당 20억원 가량이며 모두 170여발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위 신문 기사 참조).

알렉산더에 관한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적 두목이 체포되어 알렉산더 대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대왕이 물었습니다. “왜 그런 짓을 했느냐?” 해적 두목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한 일은 당신이 한 일과 같습니다. 단지 나는 작게 해서 해적이 되었고 당신은 크게 해서 대왕이 되었습니다.” 사람 몇 명을 죽이면 살인마가 되지만 수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북한의 핵무장을 비판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를 강조하는 미국의 기간산업은 지금 이 시간에도 엄청난 살인무기들을 생산해내고 있으며, 그것들이 적절히 소비되지 않으면 국가경제가 큰 위기에 처하는 산업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여 지구마을 어디에선가 전쟁이 벌어지거나 긴장상태가 이어져 적정량의 첨단무기가 판매되고 소비되어야 국가경제가 유지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하지만 그런 미국을 ‘천사의 나라’라고 생각하며 무한 신뢰를 보내는 분들이 우리나라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복음주의를 자처하는 한국의 대형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미국을 흠모하며 찬양하는 목회자들이 매우 많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과는 너무나도 멀어진 오늘의 한국 주류교회들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 한국교회의 문제점과 그 대안을 꾸준히 모색하는 류상태 목사 . 최근 한반도 종교갈등과 그 대안을 다룬 <신의 눈물>을 출판    ©대자보
한국전쟁 63주년을 맞아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것은, 전쟁은 사람을 짐승으로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의 대부분은 스스로를 전쟁의 피해자로만 인식하지만 우리가 가해자로서 저지른 끔찍한 일도 있습니다. 월남에 파병되었던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학살 사건은 전쟁이라는 괴물은 나라와 민족을 막론하고 당사자들을 예외 없이 짐승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그 자체로 악입니다.

한국전쟁 발발 63주년을 이틀 앞둔 오늘, 혹 교우님께서 다니시는 교회에서 호전적인 설교를 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에게 엄중 항의하고 제동을 걸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나라가 항구적인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또한 남과 북이 당장 군비경쟁을 중지하고, 군인 수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교우님들이 하실 수 있고 하셔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선거는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가장 중요하고 효율적인 수단입니다. 호전적인 정당에 표를 주지 마십시오. 전쟁을 예찬하는 정치인을 철저히 경계하고 통제해야 하는 의무는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호전적인 정치인에게 표를 주게 되면 한반도는 물론 지구마을의 전화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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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6/22 [08:1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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