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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도피처에 숨은 ‘검은 돈’
[김영호 칼럼] 재벌 조세회피 방치하면서 조세정의 외치는 것은 무의미
 
김영호   기사입력  2013/06/04 [15:34]

봉급생활자의 월급봉투가 유리지갑이란 말은 옛말이 됐다. 이제 국세청은 보통 사람의 모든 소득을 확대경을 통해 유리구슬 드려다 보듯이 파악하고 있다. 어디에 글 몇 줄 써서 몇 푼 받거나 어디 가서 말 몇 마디하고 몇 만원 받더라도 꼬박 꼬박 세금을 내나 국세청은 사업자로 분류해서 그 자료를 집적한다. 은행에 예금이 있어 이자가 생겼다면 이자소득세를 내고 국세청에 보고되어 합산된다. 임대소득도 마찬가지다. 자산을 사고팔아도 모두 파악해 세금을 챙긴다. 6월이 되면 국세청이 모든 소득을 합쳐 종합소득세를 내라고 통지한다.

그러나 큰 부자는 다르다. 차명-도명계좌로 재산을 분산, 소유하여 누진과세를 피한다. 해외거래와 연결시키면 돈을 얼마든지 외국은행 해외계좌로 빼낼 수 있다. 재산을 아예 조세도피처로 빼돌려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를 차려서 그 명의로 외국인 행세하면서 국내재산을 증식시킨다. 미공개정보를 이용해서 유령회사 이름으로 자사주를 사고팔아 떼돈을 번다. 국내재산의 소유권을 유령회사의 명의로 바꿔놓으면 증여세-상속세를 내지 않고 자식에게 재산을 대물림할 수 있다.

조세도피처 반대운동을 펴는 영국의 조세정의 네트워크가 지난해 7월 1970~2010년 조세도피처로 도망한 금융자산 누계가 21조~32조달러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도피액은 7,790억달러(원화 888억원)이다. 중국의 1조1,890억달러, 러시아 7980억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올해 정부예산 342조원보다 2.5배나 많은 규모이다. 이것은 또한 한국의 부패구조가 얼마나 심각하고 재산도피가 얼마나 용이한지 말한다. 인구-경제규모와 비교하면 믿기 어려운 엄청난 규모이다.

1985년 5월 미국의 모건 개런티 트러스트 은행이 1976~1985년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제3세계 18개 외채국의 외화도피액이 1,980억달러라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멕시코,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남아공화국에 이어 한국이 5위로서 도피액이 120억달라라는 것이었다. 1980년대 들어 외채가 갑자기 급증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외채망국론으로 나라가 시끄럽던 1984년 외채규모는 434억달러였다. 원화로 36조8,900억원이었다. 당시 국민이 3년 동안 내는 세금과 맞먹는 빚이었다. 이 보고서를 감안한다면 조세정의 네트워크의 자료가 과장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국세청-관세청은 조세도피처의 한국인 유령회사에 관해 실태를 거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최근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지에 유령회사를 차린 한국인이 245명이라고 발표했다. 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와 공동취재를 통해 조세도피처에서 유령회사 설립을 대행해주는 2곳의 내부고객 자료에 담긴 170개국, 13만명의 고객명단과 2만2,000개의 유령회사 정보를 확보, 분석해 후속발표를 이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검찰의 CJ그룹에 대한 역외탈세 수사와 맞물려 조세도피처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유령회사가 200만개가 넘고 조세도피처가 80개국이 넘는다는 점에서 뉴스타파가 확보한 자료는 극히 부분적이다. 조세도피처(tax haven)은 면세-감세의 범위에 따라 조세천국(tax paradise), 조세대피처(tax shelter), 조세휴양소(tax resort)로 나눠진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인이 세운 유령회사의 숫자는 엄청날 것이다. CJ그룹만도 해외법인이 148개나 된다. 조세도피처에 한국인이 외국국적의 회사를 세우더라도 외국에서 하는 상업적 행위로 간주되어 한국정부가 과세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 까닭에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조세도피에 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미국은 해외금융회사 계좌신고법을 제정하고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한다. 미국인은 해외금융계좌를 국세청에 신고해야 하고 외국금융회사는 미국인-미국법인의 금융계좌에 관한 정보를 미국 국세청에 통보해야 한다. 최근 스위스가 미국과 조세를 회피한 의혹이 있는 미국인의 계좌정보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유럽연합(EU) 27개국은 5월22일 정상회담에서 늦어도 금년내에 은행계좌정보 자동교환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는 동참한다는 입장이고 비회원국으로서 조세도피처로 유명한 스위스, 리히텐슈타인과도 참여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다.

지하경제의 양성화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다. 이것은 음성세원 포착과 복지재원 확충을 위해서 중요하다. 부자들이 재산을 해외의 조세천국으로 빼돌려도 방치하면서 조세정의를 말할 수 없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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