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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가 죄인입니다.
[정문순 칼럼] '일베'의 젖줄이 된 영남 보수, 경상도 양심은 없나
 
정문순
지난 5월은 어느 해보다 더웠습니다. 날씨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여름 같은 봄으로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기상 관측상 기록적인 해라는 것 말고도 잊을 수 없는 게 하나 더 있군요. 올해 5월은 처절한 핏빛 도시 광주가 전례 없이 모욕당한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5.18이 역사적으로 복권된 지가 언제인데, 박근혜 정부, 종편 방송, ‘일베’ 인터넷 사이트가 약속이나 한 듯이 역할을 분담하여 5.18을 딴죽 걸고 넘어뜨리고 짓밟는 행각을 보며, 시계가 신군부 시절로 되돌아갔나 통탄을 이기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분노가 워낙 심해서 그랬을까요? 5.18 당시 태극기가 덮인 희생자 시신과, 그 앞에서 넋을 잃고 오열하는 유족을 모독한 ‘일베’ 사람들에 대해 성격파탄자나 정신질환자 수준으로 일축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반사회적인 행동을 일삼는 세력을 정신 나간 사람들로 규정해 버리면 우선은 편하겠지만 결코 정당한 대접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일베’가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그 뿌리가 그렇게 허술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오월애>에는 한 시민군 출신이 “살다 보니 유공자 소리도 듣지만, 아직도 어떤 지역에서는 폭도라고 한다.”라고 말하며 씁쓸해 하는 표정이 화면을 가득 메웁니다. 노년에 이른 늙은 시민군이 과연 생전에 “어떤 지역”으로부터 폭도의 누명을 벗을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참담하게도, 그 “어떤 지역”에 사는 사람인 제 귀에는 지리산 너머 고을 사람들에 대해 인간으로서 차마 해서는 안될 말들이 드물지 않게 들어옵니다. 
 
옛 마산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김호일은 97년 대선 당시 자당 후보를 돕는답시고 전라도 출신 대통령 후보와 그 아들의 신체 장애를 공적인 자리에서 흉내 내며 조롱한 적도 있습니다. 인간의 품위라는 것을 밑바닥까지 헤쳐 보게 만드는 그의 됨됨이와 막돼먹은 상상력은 가히 ‘일베’ 아이들이 원조로 떠받들어도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라면 난리가 났겠지만, 불행히도 경상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김호일이 치른 대가는 아무것도 없었고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될 사람을 제 손으로 뽑았다는 자괴감 때문인지 아니면 막가는 국회의원에게 동조해서인지 그때 마산 사람들이 조용했던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김호일이 아무런 믿는 구석도 없이 전라도를 모욕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전라도 출신에 대한 냉소, 폄하, 비난, 왜곡, 박해는 경상도 지역에서는 정신 나가거나 별종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는 점이 슬픕니다. 전라도 차별 의식은 일상에서, 밥상머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납니다. 늙거나 젊거나 세대를 막론하며, 성비와 빈부와 계급을 가리지 않으며, 심지어 시민운동 한다는 사람의 입에서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광주의 봄을 유린하고 피로 물들이며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의 뿌리인 원조 군사 독재자의 딸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경상도의 선택에서 이미 올해와 같은 광주에 대한 능멸의 조짐은 보였습니다. 막돼먹은 국회의원과 ‘일베’ 아이들에게 쓴소리 할 줄 모르는 경상도 사람이라면, 과연 ‘일베’의 젖줄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야권 일각에서는 ‘일베’ 사이트 폐쇄를 주창한 적이 있지요. 정치권의 상상력은 역시나 비범한 점이 있습니다. 거기 문을 닫으면 그 목소리들은 어디로 갈까요? 알아서 연기처럼 소멸하고 말까요? 이런 태도가 보여주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막가는 사이트의 폐쇄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일베’의 목소리가 강력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권과 민주주의 중 광주에 빚지지 않은 것이 몇 개나 되는지, 광주의 희생 없는 한국 민주주의를 상상이나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광주는 자신의 희생으로 꺼져가는 한국 민주주의를 살렸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영남 보수층에 속한 분이라면 80년 광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속내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당신이 보수 정권을 지지하더라도 천인공노할 패악을 부리는 ‘일베’ 아이들에게 “홍어 택배 발언은 너무 심했어.”라고 꾸짖을 수 있는 분이기를, 경상도 사람의 양심이 그래도 죽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분이기를 바랍니다.

* 경남도민일보 6.3 게재 칼럼을 손본 글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기사입력: 2013/06/04 [09:20]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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